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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분은 사과 ㅣ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31
김지현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6월
평점 :

『오늘의 기분은 사과』(김지현/다산책방)
아이들이 좋아하지만, 아이들과 나누기 힘든 도서가 있다. 반드시 함께 읽고 나눠야 할 책이지만, 그걸 풀어가기가, 어쩌면 설명하거나 묘사하기가 힘든 내용이기 때문이다. 특히 감정과 이해를 다룬다면 더 그렇다.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 그것을 받아들이고 성장하는 이야기는, 수업과 강의로 풀어내기가 너무 어렵다. 추상적이라는 상투적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그것이 공기처럼 우리를 애워싸고 있지만, 정작 손에 잡히지는 않고 살결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책을 아이들에게 적극 추천하지만, 함께 읽고 나누자고 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수업과 강의가 아니라 독서모임이나 토론이라면, 잘 어울린다. 인물의 감정에 자신을 대입하기도 하고, 여러 인물 중에서 자신은 누구와 닮았는지, 혹은 인물의 성격이 가진 배경과 행동을 분석하기도 하며, 작품에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이 가능한 친구들을 만나는 건 참으로 귀한 일이다.
오랜만에 깊이 있는 문학 작품을 만났다. 『고요한 우연』, 『나는 복어』, 『율의 시선』을 읽으면서 느꼈던 벅찬 감동을 상큼하게 넘어서는 작품인데, 바로 『오늘의 기분은 사과』다. 『우리의 정원』으로 널리 알려진 김지현 작가의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 ‘김이경’은 너무나 선하고 착한 아이다. 하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친구들과 가까워지고 싶어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데 주저할 때가 많다. 영화를 좋아하고, 마음에 든다면 여러 번 반복해서 보기도 하며, 자기만의 시나리오를 만들기도 하는, 무척 섬세한 아이다. 그러나 그런 꿈을 아무에게도 내보인 적이 없다. 그런 이경이에게 조금씩 변화가 찾아온다.
그저 동화책 속 인물이라면 착한 아이가 좋은 결말을 맞고 행복해지는 이야기겠지만, 현실에서 착한 아이는 먹잇감이 되기 쉽다. 그것도 약삭빠른 아이들 앞에서 말이다. 조별과제에서 자신에게 무거운 짐이 주어져도 이경이는 거절하지 못하고, 묵묵히 그 일을 해낸다. 이런 이경이의 마음을 알고 도와주는 ‘강유림’이 등장하는데, 유림은 정의롭고 올바르며, 친구 관계가 원만한, 그야말로 학교 인싸다.
그런데 이경이에게 그런 친구는 또 있다. 중학교 때 절친이었던 세 사람 중 하나만 같은 고등학교에 왔지만, 다른 반이 된 ‘규리’. 규리는 이경이와 급식을 같이 먹고 많은 것을 함께하지만, 그만큼 이경이를 이용하기도 한다. 이런저런 부탁도 서슴없이 하고, 말도 함부로 하는 편이다. 그런 규리가 이경이는 이제 좀 힘들어지지만, 그것을 솔직히 말하지 못한다. 그런 이경이에게 규리는 역사 수행을 보여달라고 한다.
그리고 새로 전학온 ‘전솔’은 과거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고 얼굴만 아는 사이였지만, 이경과 서서히 친해진다. 솔이의 개 ‘시루’와 만나며 둘은 가까워지고, 서로의 비밀도 조금씩 공유한다. 솔이는 모두와 웃으며 잘 지내고, 적극적이지만, 이경이가 모르는 비밀이 솔이에게 있는데, 그걸 알고 있는 아이들은 이경이가 전솔과 친한 것을 의아하게 생각한다.
이런 친구들 틈에서 이제 이경은 조금씩 성장한다.
이경이가 평가해달라고 보낸 시나리오를 유림이는 국어 수행평가에 인용하고는, 그저 생각이 난 것 뿐이라며 별일 아닌 듯 대한다. 솔이의 말에 용기를 낸 이경이가 유림에게 따져 묻자, 유림이는 이경이의 손목을 세게 움켜쥐며, 녹음 중이냐고 따진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이경은, 유림에게도 남들의 시선과 평가에 두려워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역사 수행을 빌려달라던 규리에게는 싫다는 의견을 분명히 하고, 규리와 잠시 소원해지지만, 규리는 그런 이경의 변화와 성장을 이해하고 또 함께한다. 이경은 스스럼없는 규리의 그런 면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품이 생긴다. 그러나 이경이는 유림이를 ‘파악’하지만 그런 모습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것은 다른 영역이었다.
한편 이경은 전솔이 전학 온 경위와 솔이에게 있었던 진실을, 솔이에게 직접 묻고 듣는다. 그동안 솔이가 보였던 행동과 그 뒤에 숨은,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모습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아픔을 대하는 방식이 모두 같지 않음을, 그것을 받아들일 시작이 더 필요하다는 걸 충분히 깨닫는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파악’과 ‘이해’라는 단어가 가장 크게 와닿았다. 누군가를 파악한다고 그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는 것과 이해는 전혀 다른 영역이다. 세 친구를 만나면서, ‘파악’과 ‘이해’의 영역을 정확히 구분하면서, 이경은 자신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제멋대로인 규리를 파악하면서 애기같은 점을 이해하고, 똑부러진 유림을 파악하지만 이기적이고 두려움에 떠는 유림을 알게 된다. 그리고 당당하고 밝은 솔이를 알고 나서는 솔이의 슬픈 과거와 통과하지 못한 어두운 터널을 이해하고 손을 내민다. 이 과정에서 이경이는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는 좋은 안목이 생긴 듯하다.
『오늘의 기분은 사과』를 읽으면 말할 수 없던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관계 속에서 흘려보내기만 했던 마음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다. 이경이의 성장은 비단 착한 아이가 용기를 낸 이야기가 아니라, 감정을 ‘파악’하는 것에서 ‘이해’하는 쪽으로, 조용히 타인을 분석하는 위치에서 손을 내미는 위치로 옮겨가는 내면의 성장을 그린 이야기다. 이경은 솔직해지기로 용기를 내며, 유림과 규리, 솔이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마침내 자기 자신을 향해 다가선다. 이 모든 변화는 이경 혼자서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오늘의 기분은 사과』는, 겉보기와 과육이 다른 사과처럼 하루하루 달라지는 감정들, 떫거나 달거나 상처 난 그 마음을 감추지 않고 꺼내어 들여다보는 일. 그것이 결국 성장이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읽고 이야기해야 할 이유라는 걸보여준다. 아이들과 나누기 조심스러웠던 이 이야기를 이제는 함께 읽자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감정은 설명하거나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느끼고 나누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 책이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2025.07.06
*이 글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서평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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