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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언어들 - 세포에서 우주까지, 안주현의 생명과학 이야기
안주현 지음 / 동아시아 / 2025년 6월
평점 :

<생명의 언어들>(동아시아)
최근 과학 유튜브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학자들의 영역이라 생각했던 분야를 대중의 눈높이에서 쉽게 설명하면서, 그리고 자연과 우리 사회, 인간을 과학적 관점에서 풀어내기에 재미있기까지 하니, 과학 프로그램은 티비 프로그램으로도 속속 만들어지는 듯하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과학도서를 권하려고 하면 막상 고르기가 쉽지 않다. 전문서는 어렵고, 그림책이나 어린이 과학도서는 좀 부족하다. 그런 점에서 『생명의 언어들』은 어린이부터 청소년까지 과학 입문서로서 손색이 없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은 과학에 대한 진입 장벽이 낮다는 점이다. 유튜브 방송이나 쇼츠를 보는 듯한데,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옆에서 직접 설명해주는 쉽고 친근한 문체와 흥미로운 주제는, 과학이 따분한 ‘공부’가 아닌 새로움을 발견하는 ‘즐거움’으로 만든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자주 마시는 딸기우유의 붉은색이 사실은 선인장에 붙어 사는 연지벌레에서 추출된 ‘카민 색소’(코치닐) 때문이라는 초반의 이야기는, 단번에 독자의 호기심을 사로잡는다. 그 외에도 바늘 없는 주사기, 루돌프의 빨간 코에 관한 과학적 설명은 흥미가 과학적 토대로 올라서는 순간이다.
이 책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샬롯의 거미줄』에서 새끼 거미들이 거미줄을 타고 날아가는 장면을 아이들이 궁금해했지만, 그동안 동화적 상상력으로 넘겼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거미들이 바람을 타고 이동하는 ‘유사비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람 방향으로 거미줄을 길게 뽑아 이동하는 방식은 마치 행글라이딩 같고, 나무 사이에 거미줄을 치는 데도 활용된다고 하니 이제는 아이들에게 과학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기후변화로 인한 동물들의 식습관이 바뀐 사례도 기억에 남았다. 북극 툰드라 지역의 순록들이 기후변화로 지의류를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해안가로 내려와 염분이 높은 해초를 섭취하는 모습이 관찰되었다고 한다. 기후 변화가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들의 행동과 식습관에도 변화를 준다는 놀라운 사례였다.
또한 뾰족한 바늘이 없는 주사기에 관한 이야기는 정말 흥미로웠다. 주사 맞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을 텐데, 고압으로 약물을 분사하는 제트 인젝터부터, 서울대 연구팀의 레이저 제트 주사기, 그리고 마이크로니들처럼 미세 바늘을 이용한 방식은 주사의 따가운 느낌 없이 인체 내부로 약물을 주입하는 방법으로, 점차 상용화되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또한 푸른 피를 가진 투구게의 이야기는 과학발전의 슬픈 이면이었다. 투구게의 피는 헤모시아닌을 가진 푸른색 피인데, 이 혈액에는 내독소가 감지되면 겔 상태로 응고되는 특이한 면역반응을 보인다. 따라서 의약품의 내독소 오염 여부를 확인하는 데 널리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투구게 혈액의 과도한 사용으로, 투구게가 불임이 되거나 죽고, 심지어 멸종위기종이 되어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우려되는 부분이었다.
그 외에도 혈액형과 수혈, 열수분출공, 동굴벽화, 품종개량과 우장춘의 이야기는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상식이자 역사이기도 하기에, 아이들에게 소개하기에 흥미로운 주제였다. 이런 주제에 대해서 가벼운 이야기로 다루지 않고, 새로운 지식에 걸맞는 최신 연구 동향을 알려주는데, 관련 자료를 찾아보게 만든다.
‘생명의 언어’라는 저자의 통합적 시각은, 세포에서 우주에 이르기까지, 자연의 모든 소리와 움직임, 신호와 몸짓을 과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학제 간 융합적 접근은 아이들의 과학적 사고를 넓게 하고, 과학을 바라보는 지평을 넓힌다.
저자는 과학 교육자다운 탁월한 설명 방식이 돋보이는데, 복잡한 과학 개념을 쉽고 친절하게 설명하면서도, 전문적이다. 짧지만 깊고, 쉽지만 묵직하게 풀어내는, 저자의 역량이 잘 드러나는 책이다. 특히 비슷한 책을 읽다 보면, 책마다 반복되는 비슷한 사례와 비유가 많은데, 이 책은 낡은 사례를 되풀이하지 않고, 지금 과학의 현장에서 이뤄지는 연구와 사례를 보여주기에, 현재 최신 과학의 현장과 연구, 특히 대한민국 학자들의 생생한 모습을 반영한 점도 인상 깊다.
『생명의 언어들』 은 어린이 청소년들에게는 과학적 호기심과 즐거움을 주고, 어른들에게는 최신 연구 동향과 관련 지평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2025.07.14
*이 글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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