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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지도 제작자 - 세상의 끝을 찾아서, 2023 뉴베리 명예상 ㅣ 큰곰자리 80
크리스티나 순톤밧 지음, 천미나 옮김 / 책읽는곰 / 2024년 6월
평점 :

<마지막 지도 제작자-세상의 끝을 찾아서>(크리스티나 순톤밧 글 / 천미나 역 / 책읽는곰)
뉴베리상 작품은 빠짐없이 읽어보는 편이다. 이 책은 2023년 뉴베리 아너상을 받은 작품으로, 작가의 두 번째 뉴베리상으로 떠들썩했다. 뉴베리 상과 아너 상을 세 번 이상 받은 작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이 작가는 2021년 <어둠을 걷는 아이들>과 <모두 열 세명>, 그리고 <마지막 지도 제작자>로 뉴베리 아너 상을 받았다. 상의 권위가 아니라, 작품의 재미와 가치로 고개를 끄덕일 만한 훌륭한 작품이다.
<마지막 지도 제작자>는 주인공 소녀의 모험 이야기로, 보물섬이나 15소년 표류기 등을 재미있게 읽은 아이라면, 혹은 ‘캐리비안의 해적’을 재미있게 봤다면, 꼭 읽어보라고 추천할 만한 책이다. 13살 여자 아이 사이(실제 이름은 ‘소드사이 아라완’이다.)는 지도 명장인 파이윤 윙야이 밑에서 일하는 도제인데, 스승을 따라 새로운 땅인 선덜랜드를 찾아나서는 이야기가 중심이다. 그와 함께 망콘 왕국, 사이의 아버지 ‘머드’, 지도 제작자, 새로운 땅을 찾으라는 여왕의 명령, 번영호 함장 ‘산그라’, 대위 ‘리안’, 몰래 밀항한 ‘보’ 등 사건과 인물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작품에 푹 빠져 있다. 손에 잡힐 듯한 상황 묘사와 곁에 살아 숨쉴 듯한 개성 있는 인물과 마주하면서 작품에 금세 몰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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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는 지도 제작자의 도제로, 여왕의 명령에 따라 지도 한쪽에 비어 있는 곳, 바로 선덜랜드를 찾아 떠나는 번영호에 탑승한다. 선덜랜드를 찾는 함선에게는 명예로운 리니얼 혹은 상금을 주는데, 새로운 신분으로 올라가고픈 사이는 선덜랜드 발견을 고대한다. 배에서는 선덜랜드를 찾으려는 이들과 그곳을 지키는 전설의 용에 대한 공포감에 떠는 이들로 나뉜다. 수많은 어려움과 폭풍우를 뚫고 선덜랜드 가까이 가는데, 함장이 병에 걸린 사이, 리안은 사이를 설득해 선덜랜드 발견을 반대하는 이들을 내쫓고 반란을 일으킨다. 리안이 선덜랜드를 찾으려는 이유는 무엇이며, 선덜랜드는 과연 무엇일까? 그곳을 발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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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쪽이 넘는 동화책 속에, 정말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한장면 한장면, 하나의 설정마다 해야 할 이야기가 그득하다.
작품 속 계급 설정이 인상 깊다. 망콘 왕국에서 사람들은 ‘리니얼’을 착용하는데, 리니얼 고리가 많을수록 훌륭한 조상을 둔 좋은 집안을 의미하고, 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13살에 되면 가족, 친지로부터 리니얼을 받는데, 그 리니얼의 개수에 따라 신분이 달라진다. 그 리니얼에 집착하는 사람들과, 리니얼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찾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은 우리 사회의 물질주의 혹은 혈연과 집안 배경이 지닌 무시못할 환경, 그 문제점을 생각할 수 있다.
인물과 관계도 흥미롭다. 사이의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 ‘머드’는 무척 다채로운 캐릭터다. 소매치기를 하고, 사소한 범죄를 저지르며 사는 머드는, 사이에게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범죄자이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목숨을 빚인 사람이기도 하다. 사이가 목숨을 구하는 것은 아버지 머드가 했던 일 때문이기도 하니, 그 아이러니를 보며 감탄한다. 또한 산그라 함장과 리안, 그리고 보의 관계를 통해서, 가족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할 수 있다. 그 무엇도 가족이 지닌 가치를 뛰어넘을 수 없다. 리안을 중심으로 관계를 맺는 여러 인물을 통해서 그 성격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친절한 인물이 등에 칼을 꽂고, 딱딱한 인물이 정의로우며, 불량한 캐릭터가 가장 순수하다. 편견을 깨는 인물의 등장이 무척 반갑다. 또한 옳고 그름, 리니얼과 돈, 명예와 정의 사이에서 고민하며 옳은 길을 찾아가려는 사이의 태도는, 읽는 사람에게 공감과 큰 감동을 준다.
이 작품 저변에 깔려 있는 왕국의 시스템은 제국주의를 상징한다. 특히 망콘 제국이 선덜랜드를 발견하고자 하는 이유는 그저 새로운 지역에 대한 궁금증이 아니다. 망콘 왕국이 ‘발견’했다고 주장한 피타야, 팔린 섬은 왕국에 의해서 약탈당하고 귀중한 자연 환경도 파괴된다. 폐허가 된 곳을 살아가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면, 향후 발견할 선덜랜드의 미래를 볼 수 있다. 아울러 우리가 ‘발견’이라고 하는 것의 진정한 이름은 ‘파괴’는 아닐지 생각하게 만든다. 제국주의가 가져온 이기보다 파괴와 약탈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여실히 보여주는데, 태국계 미국인인 작가의 역사 의식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책에는 참 많은 관계가 등장한다. 혈연, 사제, 동료, 자매, 부녀, 모자, 그리고 군신, 함장과 선원 등, 그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과 음모, 모험이 한시도 빠짐없이 등장한다. 주인공 사이와 사기꾼인 아버지 ‘머드’의 관계가 뒤로갈수록 밝혀지는데, 이 두꺼운 책에서도 못다한 이야기가 많아서 아쉬웠다. 또한 윙야이 사부가 제자 사이를 위해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고, 단안경을 주면서 사이가 스스로 결정하도록 한 장면은 무척 감동적이다. 아울러 사이와 보가 절친이 되어 어려움을 이겨내는 과정은 이 책의 가장 큰 재미다. 욕을 입에 달던 거친 보의 사정을 이해하고 지키려는 사이와 그런 보와의 우정을 깊이 간직하는 장면은, 삶에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고 방향을 알려주는 좋은 관계가 왜 필요한지를 깨닫게 한다. 산그라 함장이 리안 대위를 품어주는 모습은 감동을 넘어서 숭고할 정도다.
결국 이 책은 인간과 자연 환경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된다. 함선은 선덜랜드를 발견하지만, 그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입장은 저마다 달랐다. 발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며, 돈과 힘이 있어도 해선 안 될 일이 있다. 우리가 지키고 보호해야 할 것은 자연이고, 그것은 발견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보호해야 함을 생각한다.
이 책은 미지의 섬을 찾아나서는, 어린 지도 제작자의 모험과 배신, 그리고 진정한 자아의 발견이 어우러진 걸작이다. 17세기 정도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동화이지만, 그 속에 생각하고 나눌 내용이 빼곡히 들어 있다. 어느 한 장면을 가지고도, 역사와 정치, 사회의 한 모습에 대해서 나눌 만큼 다채로운 작품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다루었기에, 미처 끝맺지 못한 내용도 많아 보인다. 머드가 사라진 이유, 다른 조수들의 이야기, 번영호가 기항했던 여러 섬에 관련한 이야기도 무척 궁금하다. <마지막 지도 제작자>의 부제가 ‘세상의 끝을 찾아서’인 만큼, 후속편이 분명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우리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며, 놀라운 모험과 깊이 있는 캐릭터들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찾는 여정을 함께 떠나길 바란다.
초등 고학년에서 중학생까지 추천한다.
2024.06.26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받은 소중한 도서를 읽고 자유롭게 작성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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