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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치킨쇼 - 2022년 제28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ㅣ 일공일삼 106
이희정 지음, 김무연 그림 / 비룡소 / 2023년 1월
평점 :

<천하제일 치킨 쇼> (이희정 글 / 김무연 그림 / 비룡소)
문학상의 가치는 주최나 출판사가 아니라 작품 그 자체에 있고, 이전에 수상한 작품 그 자체로 탄탄한 라인업을 갖추고 있어야, 그 문학상에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특히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동화에 주는 문학상 중, 우리나라 3대 문학상을 고르라면, 나는 ‘창비 좋은 어린이책’과 ‘문학동네 어린이 문학상’, 그리고 ‘비룡소 황금도깨비상’이라고 과감하게 말할 수 있다. 이 세 문학상을 받은 책을 매년 챙겨보고, 그 수준의 아이들과 늘 읽고 강의하고 교안을 만들기에, 나에게 이 세 문학상은 큰 의미가 있다.
특히 비룡소에서 매년 수여하는, ‘황금도깨비상’은 가장 오래된 어린이 문학상이기에, 절대 빠지지 않고 챙겨 읽는 어린이 문학상이다. 황금도깨비상을 받은 <건방진 도도군>, <강남 사장님>, <담을 넘은 아이>, <으랏차차 뚱보 클럽>, <플루토 비밀결사대>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은 뚜렷한 주제 의식과 재미, 그리고 아이들에게 자신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정체성이 분명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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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치킨 쇼>는 아동문학에서 유래가 없는 특별한 동화다. 이런 책은 처음이다. 처음 보는 작가와 처음 보는 이야기, 그리고 스타일이 매우 독특하다. 정말 재미있는데, 너무나 진지하고, 그러면서도 아동의 삶과 교육이 가진 의미, 우리가 가져야 할 가치관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제목처럼 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보여주는 ‘천하제일 치킨 쇼’가 시작된다.
이 책은 서로 다른 두 가지 루트를 타고 산 정상에 오르듯, 두 가지 이야기가 교차 서술된다, 결말에서 이야기가 한 데 모이고 떠오른다.
1.유이(아마도 작가의 조카)는 장래희망이 ‘치킨왕’이다. 친구들은 의사와 과학자를 얘기하지만, 유이는 세상 모든 치킨을 다 맛보고, 치킨 맛을 제일 잘 아는 치킨왕이 꿈이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 높다랗다. 치킨을 좋아하니 살이 찌고, 이제는 치킨도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엄마도 살 때문에 고민이고 아빠는 직장에서 위태롭다. 유이가 가장 좋아하는 냠냠치킨에서 열리는 ‘천하제일 치킨 쇼’에 참가하고 싶은 유이는 친구 건우와 치킨을 시켜먹으며, 황금 티켓을 찾으려 치킨 박스를 긁지만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과연 유이는 ‘천하제일 치킨 쇼’의 어린이 평가단이 될 수 있을까?
2.시골 양계장에서 자신의 꿈을 키우던 일공일호 닭이 ‘천하제일 치킨 쇼’에 참가한다. 101마리의 닭 중 101호인 일공일호 닭은, 철저히 관리받은 여타 브랜드 닭과 다르지만,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그저 치킨이 될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남들처럼, 냠냠치킨 회장이 정해준 운명대로 살아가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으려 날개를 펼친다. 일공일호 닭은 101마리 닭 중 황금닭이 될 수 있을까? 그런데 황금닭이 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1과 2의 이야기는 교차 서술되는데, 뒤로 갈수록 하나로 모이기에, 두 이야기의 교차 서술을 꼼꼼히 읽고 따라가야 한다. 아이들과 이 책을 읽는다면,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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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대상으로 한 동화지만, 책에서 어떤 문장을 하나 똑 떼와도 몇 시간씩 얘기를 나누고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깊이 와닿은 몇 가지 문장이 있다.
“어디서 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지. 내가 누구냐가 중요한 법.”
일공일호 닭은 자신의 출신이나 지역을 탓하지 않는다. 자신이 바꿀 수 없고 결정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는다. 자신을 정하는 것은 자신일 뿐, 나를 가리키는 것은 그저 나일뿐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가격에 가치를 둬서 뭐 하는가? 팔리는 순간, 치킨으로 먹히 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치킨 쇼를 통해 닭의 가치를 아무리 높게 매긴다 한들, 결국 닭의 결말은 치킨일 뿐이다. 따라서 닭의 가치는 가격이 아니라 어떤 닭이냐가 중요한 것이다. 이는 닭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닐 것이다. 우리 아이의 성적과 다니는 학교가 우리 아이들의 가치는 아니다. 우리 아이들의 가치는 가치관과 인성,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에 있다.
“만화 영화도 두 배속으로 보면 결말을 빨리 알 수 있어. 그렇지만 재밌는 대사를 다 놓쳐서 결국엔 다시 봐야 해. 너도 좀 천천히 공부할 필요가 있어.”
초등학생이 벌써 중고등학교 과정을 밟으면서 남들보다 더 빨리 결말을 보고 싶은 아이들, 부모님들이 많다. 하지만 초등시절의 재미와 느긋하게 살아가는 삶의 가치, 읽고 즐기고 나누어야 할 수많은 책을 읽으며, 진짜 아이다운 삶을 살아내어야 한다. 삶의 진리를 닭에게서 배운다.
“한번 주문한 치킨은 메뉴를 바꿀 수 없어. 이미 배달이 출발했거든. 선택에 책임을 지고 최대한 맛있게 먹는 수밖에.”
하지만 이미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면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다. 이미 출발했다면, 그에 책임을 지며, 즐기며 나가아면 된다.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말이다.
“꿈꾸는 삶은 결코 후지지 않지. 삶은 생각하는 쪽으로 스며들거든!”(145~146)
어른들이 정해놓은 길을 따라 가다 보면, 뭔가 거창한 곳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우리가 정해놓은 길의 끝은 결국 애벌레들의 탑이며, 그런 삶은 후지다. 그러나 꿈꾸는 삶은, 꿈을 꾸는 방향으로 스며든다. 후지지 않다.
“치킨은 뜨거울 때 먹어야 맛있어. 생각은 바로 행동으로!”
좋은 책을 읽고, 재미있었다면, 그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뜨거운 치킨처럼, 생각이 가슴을 뜨겁게 했다면 기다리지 말고 행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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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청소년 문학을 자주 접하지만, 짧은 책 속에 정말 많은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리고 깊은 문학 작품의 오마주도 자주 보여 재미있다. 그러나 꿈, 교육, 가족, 가치관 등에 관해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담다 보니, 책의 끝에는 던져놓은 내용을 다 담지 못한 점은 아쉽다. 유이는 뒤에 어떻게 살아가며, 부모님의 사정은 어떤지, 건우는 어떻게 되었는지, 번개맨 언니는 어떤지, 미래 사장님은 과연 누구인지… 충분히 짐작하겠지만, 어린 친구들은 이 책을 읽으며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요?”라고 질문할 것 같다. 그걸 함께 나눠도 좋겠다.
<천하제일 치킨 쇼>는 꿈을 꾸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무용한 것을 꿈꿀 자유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브랜드 닭으로서 명예롭게 치킨이 되는 일보다 더 훌륭하고 가치있으며, 아름다운 일도 있음을 알려준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저마다의 가치관과 꿈을 갖고, 당당하게 나아가도록 안내한다.
황금닭이 되길 포기하고, 힘찬 날갯짓으로 창공을 날아간 닭처럼,
이 책이 황금도깨비상을 발판으로, 아이들이 더 넓은 세상으로 날개를 펼칠 용기와 희망을 준 것 같아 기쁘다.
풍성한 잔칫상에 놓인 그 어떤 요리를 집어들더라도, 생각지 못한 깊은 맛과 정성에 감동하게 될 작품이다.
초등 전체 학년에 두루 추천한다.
2023.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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