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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도둑과 슈퍼히어로 ㅣ 다봄 어린이 문학 쏙 4
온잘리 Q. 라우프 지음, 피파 커닉 그림, 정회성 옮김 / 다봄 / 2023년 6월
평점 :
인간의 역사는 차별의 역사라 해도 틀리지 않으며, 차별을 없애려 노력한 역사이기도 하다. 차별은 자신과 집단을 보호하는 방법이었겠지만, 그 대상이 열등하고 약한 존재라는 점에서 비겁하다. 차별과 혐오는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차별과 혐오는 특정 대상, 집단을 향하는데, 그것은 순수히 독립적으로 생겨나지 않고, 사회와 구조에서 생겨나기에,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
이 책은 우리가 가진 혐오가 크게 발현되는, 학교 문제아와 노숙인을 주인공으로 한다.
이 책의 화자이자 주인공은 최악의 문제아인 11살 헥터다. 그외 주요 인물은 노숙자 토마스, 같은 노숙자인 캣우먼, 노숙자 단체에 봉사하는 학교 친구 메이 리 등인데, 인물 구성이 독특하다. 도둑을 잡는 슈퍼히어로가, 학교 최고 문제아 헥터와 노숙자 조합이라면, 이거 참을 수 없다. 안 읽고 어떻게 지나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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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랜드마크라 여겨지는 기념물이 도난당하는 런던, 사람들은 도둑이 남긴 표식을 통해 노숙자들이 범인일 거라 생각한다. 말썽쟁이라는 말은 애교로 들릴 정도의 문제아 헥터는 학교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 공원 벤치에서 지내는 토마스 씨를 쫓아내려 하고, 그의 손수레를 호수에 빠뜨리는 실수를 저지른다. 얼마 후 피커딜리 광장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타던 늦은 밤, 헥터는 얼굴 없는 도둑을 목격한다. 헥터는 조심스럽게 엿본 범인의 인상착의가, 노숙인 토마스라 여기고, 학교에 온 경찰에게 그 사실을 알린다. 경찰은 토마스를 쫓지만, 자신이 말한 대로 그린 몽타주를 보면서, 헥터는 토마스가 범인이 아닐 거라 생각하고, 메이 리의 도움을 받아 토마스 씨를 찾아 사과하고, 그들은 함께 계획하여 범인을 쫓는다. 과연 노숙인들을 곤경에 빠뜨린 얼굴 없는 도둑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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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네 부분으로 나뉜다.
1.헥터의 온갖 나쁜짓
어른들은 헥터를, ‘헥터어어어어어어어어’라고 부른다. 헥터가 하는 일은 급식 수프 통에 고무 뱀을 넣거나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고 간식을 빼앗는 일인데, 헥터가 윌과 케이티를 대동하고 벌이는 짓들을 보는 일은 별로 유쾌하지 않다. 아마도 헥터가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혹은 아이에 관한 혐오와 편견을 꼬집으려는 작가의 의도겠지만, 잘못과 악행을 저지르는 일에 개연성이 부족한 점은 좀 아쉽다. 이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헥터를 이해하기 쉽지 않고, 작가는 그런한 점을 노린 듯하다.
2.노숙자 토마스 씨를 괴롭히는 헥터
공원의 손수레 노숙자 노인인 토마스 씨에게 쫓겨난 헥터가, 복수를 위해 토마스 씨의 손수레를 훔쳐 달아나다, 결국 호수에 빠뜨린다. 토마스 씨는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으로, 그 손수레에는 소중한 앨범도 있었다. 폭주하는 손수레는 헥터 자신을 의미했고, 헥터는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잘못인지, 무모한지를 모른다. 이 부분을 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뒤에 나올 사건과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장치이기에 이 위기를 넘겨야 한다.
3.도시의 유명 랜드마크를 훔치는 도둑들.
시내의 랜드마크라고 할 만한 천사 동상이 사라지고 패딩턴 곰 동상도 도난당한다. 피커딜리 광장에 있는 분수대 꼭대기의 안테로스 동상에서 활이 사라지는데, 그곳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타던 헥터가 우연히 그 상황을 목격한다. 수염을 기르고 모자를 쓴 사람과 전화 통화를 하는 여자 소리를 듣는데, 헥터는 그가 토마스라고 생각한다. 도시를 떠들썩하게 한 얼굴 없는 도둑이 토마스라니! 헥터는 노숙자를 돕는 단체에서 봉사하는 메이 리를 이용해 토마스의 거처를 알아내고, 그를 경찰에 신고하기까지 한다. 헥터는 자신을 영웅이라 생각하고 유명해질 거라 여긴다. 헥터가 말한대로 경찰이 그린 몽타주를 본 헥터는, 토마스가 범인이 아님을 직감하고,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으려 노력한다.
4.토마스를 의심한 헥터가, 토마스와 도둑을 찾는 과정.
헥터는 토마스 씨에게 사과하고, 메이 리와 캣우먼의 도움을 받아, 이 사건을 해결하고자 한다. 도둑들이 남긴 표식은 노숙자들의 표시이긴 하지만, 노숙자들은 그런 표식을 함부로 남기거나 자신들에게 손해가 될 짓을 하지 않기에, 토마스 씨는 헥터의 도움을 받아 도둑을 잡기로 한다. 이 과정이 무척 흥미진진하고, 나이트 버스 노선에 따라서 범행 장소가 정해진 걸 찾아내고 다음 범행을 예측하여 범인을 찾는 과정이 매우 흥미롭다. 범인이 누구인이 알고 나면, 그 뜻밖의 상황에 매우 놀랄 수밖에 없다. 인물과 구조적 특징이 작품의 주제와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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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진 혐오는 불안에서 시작한다. 그 대상으로 인한 사회, 경제적 불안감이 혐오로 표출되는데, 이 책의 헥터와 토마스, 캣우먼, 그리고 메이 리 모두 사회적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다. 그들이 저지른 일이든 아니든, 그 자체로 혐오의 대상이 되고, 편견은 그들의 이미지를 고정시킨다.
노숙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얼굴 없는 도둑이 벌이는 절도 사건을 통해 드러내고, 범인의 실체와 마주하는 순간, 혐오를 가진 그들의 추악한 면모를 볼 수 있다. 그 과정이 통쾌하지만, 우리 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책이 많다. 온갖 사고를 치고 다니는 주인공의 변화를 본다는 점에서 <내 인생 최악의 학교>와<스피릿 베어>가 떠오르고,범죄의 수위나 자극성으로 볼 때는 <도둑의 수호천사>가 떠오른다. 그러나 <얼굴 없는 도둑과 슈퍼 히어로>는 문제아 주인공과 노숙인이 풀어간다는 점이 독특하고, 결정적인 사건으로 인물의 성격과 상황이 급격하게 변화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헥터만이 아니라 토마스, 캣우먼, 메이 리 모두가 인생 역전을 경험하기에, 열린 결말이 싫거나 불안한 결말을 예상하지 않아서 좋다.
얼굴 없는 도둑들이 남긴 수상한 노란색 기호는 노숙인들만 아는 비밀 기호이기에, 도둑은 노숙인일 거란 의심과 혐오를 부추기고, 그 여론을 등에 업고 엄청난 이익을 얻으려는 세력이 있었다. 노숙인들의 기호를 보고 해석하는 재미도 있는데, 각 챕터 제목 위에 나오는 그 상징 기호로 그 챕터의 내용을 유추하고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도둑들의 상징 기호는 책의 말미에 나오는데, 오히려 책의 앞부분에 제시해두어도 책을 더 흥미롭게 해주었으리라 생각했다.
이 책의 호불호가 갈릴 부분은 단연 헥터의 비행이다. 헥터가 저지르는 잘못에 대해서, 헥터는 과연, 왜 그러는지에 관한 개연성이 부족하고, 그런 인물이 한 번의 사건으로 변화한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문제아와 노숙인에 대한 혐오를 없애기 위해 이러한 장치를 마련한 것이겠지만,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이 막연한 기대와 동경을 갖지 않도록 주의도 필요하다. 혐오도 문제지만 막연한 선의도 경계해야 한다.
그럼에도 노숙인에 대한 배려와 공감, 그들을 위한 여러 활동과 봉사, 더불어 살아가려는 노력과 연대는 깊이 고민할 주제이기도 하다. 특히 북런던의 노숙자 쉽터에 5백만 파운드를 기부한 네스빗 경과 그의 딸이 이 모든 음모에 가담했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저마다 가진 야누스의 얼굴을 마주하게 될 것이고, 부끄러운 부분을 살짝 건드릴지도 모르겠다.
이 작가는 문학과 여성 권리 부분에 대한 공로로 대영제국 훈장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아동과 여성을 위해 활동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 이 책에 그런 작가의 이력이 글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결론적으로 무척이나 흥미로운 책이다. 책의 수준은 크게 높지 않지만, 글밥이 많고 영국, 노숙인, 혐오에 관한 배경이 필요하기에 초등 중고학년이라면 읽을 만하다.
2023.07.15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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