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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마리 원숭이 ㅣ 빨간콩 그림책 27
김채완 그림, 허은미 글, 알프레드 힉먼 원작 / 빨간콩 / 202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백만 마리 원숭이>(알프레드 힉먼 경 / 김채완 그림 / 허은미 다시 씀 / 빨간콩)
🐒‘백만 마리 원숭이앞에서!’
앞으로 수많은 걱정과 고민이 들 때마다 외칠 표현이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정말 그렇다. 고민을 날려버릴 마법의 말 ‘백만 마리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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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는 슬기로운 사람이기도 하지만 ‘걱정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인간이 정착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먹을 게 풍부해지고 앞으로 걱정없이 살 줄 알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날씨, 기후, 환경의 영향이 적었던 수렵채집인과 달리, 인류가 농사를 시작하자, 정착하여 이동할 수 없었다. 땅과 집, 가족을 두고 어딜 떠난단 말인가? 그래서 적의 침입에 맞서 싸워야 했고, 날씨와 기후, 곤충과 동물에 맞서야 했다. 농사를 지으면서 먹을 것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줄 알았지만, 인간은 내년을, 내후년을, 후손을 걱정해야 했다. 인간의 시간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로 확장했고, 걱정의 크기도 점점 더 커졌다.
지금 우리의 걱정도 그러하다. 아이를 낳기 전부터, 시집장가를 보낼 수 있을지를 걱정한다. 임신하자마자 어린이집을 예약해야 하고, 초등 입학부터 중고등학교 일정을 준비한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
이렇게 보면 걱정하는 인간이 우리 사피엔스라는 주장은 별로 틀린 말이 아니다. 물론 걱정해서 걱정이 사라지면 걱정이 없겠다고 자조적으로 말할 수도 있지만, 그런다고 걱정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누구나 겪어본 일이 있을 것이다. 내가 걱정했던 것이, 내가 걱정한 크기와 시간, 감정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작았던 경험. 엄청난 걱정이었지만, 별일 아니게 풀렸던 경험 말이다. 우리가 걱정을 대하는 자세는, 너무 걱정스러울 정도인데, 걱정이 걱정을 더 키우기 때문이다.
수많은 걱정이 걱정인 사람들, 너무 많은 고민이 고민인 아이들의 손에 들려주고픈 책이 바로 <백만 마리의 원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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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오두막에서 사는 ‘안’.
부모님이 일을 나간 사이, 청소와 닭모이 주기, 그리고 저녁을 준비한다.
평상 위로 드리운 그늘이 시원해 보여 잠시 누웠는데,
😤부모님이 고단한 몸을 이끌고 들어와 불같이 화를 낸다.
🏃안은 집을 나와 숲을 향해 달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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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곡하게 채워진 그림 속에, 이 가족의 사랑도 빼곡히 채워진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불같이 화를 내는 부모님이라니! 빗자루까지 던진다.
😢안의 가출을 통해, 안의 걱정, 고민, 속상한 마음이 잘 느껴진다.
😔널따란 숲에 혼자 남은 것 같은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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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 야자나무 아래서 원숭이 한 마리를 만난다.
아빠에게 야단맞은 걸 말한 안에게, 원숭이는 정말 속상했겠다며 친구들에게 안의 얘기를 들려달라고 한다. 원숭이는 안을 데리고 널따란 공터에 도착하는데,
그곳에는 원숭이가 정말 많다. 내가 다 세어봤는데, 딱 백만 마리다!
그곳에서 안은 속상한 마음을 말한다.
“이런, 이런!”
“아이고, 저런!”
백만 마리의 원숭이가 공감해준다. 마음이 서서히 풀리는 안.
이야기를 재촉하는 원숭이들에게 안은
“엄마는 가만히 있고, 나는 저녁도 못 먹고…”
라고 말하지만, 원숭이들은 단호하다.
“그게 다야?”
“그것 말고 더 없어?”
곰곰이 생각하던 안은 기분이 나아진다. 그러면서 원숭이에게 말한다.
🤭“난 생각보다… 그렇게 불쌍하지 않은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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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안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부모님은 안에게 뭐라고 하실까? 궁금하면 마지막 장면만은 책을 읽어 보시길.
고민과 두려움, 걱정처럼, 속상한 마음은 우리를 괴롭게 만든다. 그 마음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단련시키기도 하지만, 쉽게 주눅들게 하고, 포기하게 만들기도 하다. 두려움과 걱정, 속상한 마음이 우리를 성장시키지만, 그건 지나고 난 다음의 일이고, 그 순간만큼은, 불안하고 초조하며, 세상의 모든 고난은 내가 다 지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대부분 그런 고민들은 내가 걱정하는 것보다 작은 크기다. 지금 나에게, 내 감정에 기대어 볼 때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백만 마리의 원숭이 앞에서 그 이야기를 한다면, “애걔걔, 그게 다야?”라고 할 만하다.
우리도 그러잖는가? 내 고민은 엄청 무겁고 힘들지만, 다른 사람의 고민은 ‘그깟 일’이 되기도 한다. 내 고민은 세상 불행한 것이지만, 남의 고민은 ‘고작 그거 하나 이겨내지 못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자신의 고민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고 감정적이기에 고민의 크기가 커지고 세상에서 가장 속상한 마음이 든다.
그런데 그럴 때 백만 마리의 원숭이가 내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내 고민과 걱정을 백만 마리의 원숭이가 귀담아 듣고 있다가, “뭘 그거 가지고 그래?”라고 말할 것 같으면, 그래 그 고민은 이제 좀 그냥 둬도 될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뭘 걱정인가 백만 마리 원숭이에게 말하면 되지. 그리고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 고민을 좀 나눠 주자. 원숭이들처럼 “아이고, 저런!”하며 마음을 도닥여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가진 고민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생각했다.
어린 아이들일수록 그 고민은 더 크게 체감될 테다.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의 고민을 백만 마리 원숭이에게 들려주면 좋겠다. 집집마다 있는 걱정 인형에게 말하듯이 말이다.
2023.09.09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소중한 도서를 읽고 작성한 자유로운 서평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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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