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케어
진보라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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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케어>(진보라/은행나무)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이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메모리케어’를 받는데, 그것은 개인과 집단의 기억을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그것은 과거에 있었던, 혹은 앞으로도 일어날 집단 트라우마를 막기 위해서 시작되었지만, 예측 가능하듯이 개인에 대한 통제와 인간성의 상실로 이어진다.


주인공 ‘봄’은 산복도로에 사는 평범한 10대 소녀다. 할아버지 경식, 부모님과 함께 사는데, 어느 날 할아버지의 건강 수명이 끝나 할아버지가 죽는데, 봄은 할아버지의 기억을 지키려 한다. 썬시티에서 온 ‘나타샤’를 만나 할아버지의 기억을 유지하도록 하는 조건으로, 도도제약의 마케팅 일을 시작하는데, 그러면서 도사리고 있는 음모 안으로 들어간다. 주주 제약이 일으킨 여러 사건과 그 기억을 잊으려 하는 이들에게 도도제약의 제품을 알리는 과정에서, 주인공 봄은 자신을 둘러싼 숨겨진 이야기와 마주한다. 그러면서 친구 유나, 어릴 적 죽은 친구 이안, 썬시티 최고 권력자인 도형의 손자인 준찬 등을 만나면서 봄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간다. 메모리케어의 탄생과 목적을 알게 된 봄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 책의 배경이 무척 신선하다. 철학논술을 할 때 아이들과 오래 고민하는 주제가 바로 ‘기억’인데, 개인의 동질성은 바로 그 ‘기억’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내가 나인 것은 바로 나의 ‘기억’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와 똑같은 존재를 만들 수 있지만, 그것이 나와 기억이 동일하지 않다면, 결국 그가 ‘나’는 아니다. 그러니 내가 기억하는 것이 바로 ‘나’다. ‘기억’이 ‘나’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기억을 케어받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 기억 중 일부를 지울 수 있다면,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는 나와 기억은 오차가 생기고, 그러면 내 존재에 의문이 생긴다. 이 책에서는 개인이 겪은 아픔과 상처, 집단적 트라우마를 위해 그 기억을 없애고, 그 기억의 느낌만을 꼬리표로 남긴다. 결국 기억은 없지만, 그때의 느낌만 남는 셈이다. 실제로도 그런 것 같다. 과거의 모든 걸 기억할 수 없고, 어린 시절의 특정한 시기 역시 기억이 아닌 감정으로 기억될 때도 많기에, 작가가 그려내는 세상이 충분히 공감이 간다.


주인공 봄이가 할아버지의 기억을 간직하고, 자신의 기억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그것을 들키지 않으려 고군분투하고, 여러 유혹을 벗어나며 자신을 지키고 모험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작가가 그려내는 미래의 모습이 디스토피아적이면서도 충분히 공감이 간다.


내가 부산에 살아서 그런지, 읽는 내내, 부산이 배경이라고 생각했다. 하구둑, 다이아몬드 다리, 산복도로, 남항 등 자잘한 배경이, 내가 알고 있는 그곳이라는 생각에, 장소를 대입하며 읽었다. 책 속에서도 산복도로로 올라가는 모로레일이 나오고, 하구둑을 지나 시티로 들어가는 모습은, 명지로 가는 모습을 그대로 구현한 듯했다. 부산 출신의 작가이기에, 자신에게 애틋하게 남은 장소를 책 속에 새겨놓은 것 같아 반가웠다.


이 책은 여러 작품의 연장선에 있다. <얼터드 카본>이 많이 생각났고, 개인의 기억을 조작하여 통제한다는 점에서 <멋진 신세계>도 겹쳐 보인다. 그러나 약물과 헬멧을 활용한 메모리케어, 기억과 꼬리표 등은 작가의 독창성과  빼어난 통찰력이 돋보인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많다. 작가가 만들어 놓은 세상을, 독자에게 쉽게 이해시키지 못한다. 이 책을 읽으며, 작가가 풀어놓는 도시의 모습을, 내 머리에 억지로 넣는 듯한, 메모리케어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하기 위해, 작가가 펼쳐놓은 세계를 인정받기 위해, 너무 많은 설정과 우연과 기억과 사건이, 다소 부자연스럽게 놓이는 점이 아쉽다.


그럼에도 주인공 ‘봄’이 참 훌륭한 캐릭터고, 모든 기억을 보려고 한다는 점에서, 진실을 마주한다는 점에서 주인공 네이밍도 참 기발하다.

SF 디스토피아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자신있게 권할 만한 좋은 작품이다.

이 책을 마중물로, 작가가 더 크게 성장하리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좋은 책을 통해, 깊은 사유의 기회를 주신 ‘은행나무’ 출판사에 감사드린다.


2023. 09. 07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해주신 소중한 도서를 읽고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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