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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과 염소 삼 형제 ㅣ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100
맥 바넷 지음, 존 클라센 그림,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23년 10월
평점 :
<트롤과 염소 삼 형제>
(맥 바넷 글 / 존 클라센 그림 / 이순영 옮김)
그 유명한 맥 바넷의 그림책입니다. 그의 이름만으로도 책을 선택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독서에도 성장과 순환이 있답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림책으로 시작하여 동화책으로, 청소년이 되면 청소년 문학에서 세계문학으로, 성인이 되면 자기계발서와 에세이로 나아가지요. 그 뒤는 문학과 에세이, 계발서와 시집을 오가다가, 나이가 더 들면 다시 그림책으로 돌아온답니다. 그리고 독서의 사이클이 완성되는 것이지요.
그림책으로 돌아가는 데에는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노화에 따른 노안으로 작은 글씨를 읽지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텍스트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그림과 함께 더 넓고 깊게 바라보는 안목이 생기는 것이지요. 또한 사건, 내용, 맥락을 따라가야 하는‘속도’에 얽매는 독서가 아니라, 여유를 갖고 내 삶의 속도에 맞춘 독서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그림책을 독서의 완성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북극곰’에서 받은 <트롤과 염소 삼 형제>는 완성도 높은 그림책이란 무엇인지 정확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긴장과 공포가, 그림을 따라가다 보면 초조하고 불안이 찾아오지만, 마지막에 해소되는 과정까지 매끄럽게 이어집니다. 이야기의 구조가 튼튼하여, 읽고 말하고, 듣고 보는 재미가 함께 있는 작품입니다. 당연히, 그런 작품은 드뭅니다.
다리밑에 살고 있는 트롤은 며칠 동안 쫄쫄 굶었습니다. 버려진 가죽장화와 배꼽에 고인 고름만 먹고 며칠 버틴 트롤은 지나가는 염소네 막내를 잡아먹으려 먹으려 합니다. 트로는 염소에게 겁을 어떻게 요리해 먹을지 궁리하지만, 막내 염소는 살이 더 많은 형이 올 거라며, 형이 더 맛있을 거라 합니다.
“좋아. 그럼, 넌 통과!”
캬, 애들에게 이 부분을 읽어줄 상상만 해도 벌써 신납니다. ‘그럼, 넌 통과!’ 그러면서 트롤는 자화자찬합니다. 막내를 잘 구슬린 자신이 천재라고요.
곧 작은 염소가 옵니다. 아까 걔 형입니다. 트롤은 역시 또 겁을 주며 어떻게 잡아먹을까 궁리합니다. 염소로 할 수 있는 온갖 요리를 상상해 보지요. 작은 염소는 곧 큰 형이 올 거라는 비밀을 말해줍니다. 훨씬 커서, 맛도 더 좋을 거라면서도. 트로는 ‘훨씬 더 큰 형’이라는 말에, 턱수염을 꼬다가 말합니다.
“좋아. 그럼, 너도 통과!”
트롤은 군침을 흘리면서 큰 형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더 큰 형’이라고 할 때 뭔가 ‘싸~한’ 느낌이 들었는데, 과연 이야기의 결말에서 마지막에 등장하는 큰형은 누구일까요? 결말이 고파도 참으셔야 합니다. 읽고 말하고 들으며 이해하는 그 재미를 느끼셔야 합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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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숙제를 안 해오거나 준비물을 챙겨오지 않으면, 애들에게 꾸중하지요. 애들은 늘 핑계를 대고, 대개는 그 핑계에 속아줍니다. 아이들에게는 그 ‘핑계’라는 거대한 뒷배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무언가, 누군가를 핑계로 지금의 어려움을 잠시나마 이겨낼 수 있다면, 혹은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 핑계는 하늘이 내려준 동아줄이 틀림 없겠지요.
하지만 어른이 되면 그런 핑계는 통하지 않는답니다. 그게 아이와 어른의 차이인데, 아이는 핑계를 댈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하지만, 어른은 바로 그 핑계의 대상이기 때문이지요. 어른이 된다는 건, 누군가의 핑곗거리가 되고, 그것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훨씬 더 큰 형’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포악한 트롤 앞에서, 핑계를 댈 수 있는 형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가요. 어려울 일이 있을 때 그 핑계로 찾아갈 수 있는 부모와 가족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요.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된다는 건, 그 역할이 자연스럽게 바뀌는 일이기에, 그게 좀 아쉽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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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의 입장에서 생각해도 참 좋은 작품입니다.
며칠째 굶은 트롤은 막내 염소를 먹으려다, 염소의 말을 듣고 욕심을 부립니다. 훨씬 더 큰 형이 온다는 작은 염소의 말에, 지금의 기회를 놓친 것이지요. 한 번 놓친 버스는 돌아오지 않고, 그런 기회는 사라집니다. 염소에겐 참 안 된 일이지만, 트롤이 ‘지금’, ‘현재’에 충실했다면 상황이 좀 달라졌으려나요? 장화와 고름을 먹던 처지에서, 갑자기 기회가 생기자 허황된 가능성에 기대고, 남의 말만 듣고 판단해버렸습니다. 그럴 처지가 아닌데 말이죠.
하지만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결정이 그렇습니다. 내 코가 석자인데, 연예인 걱정을 하고, 지금 당장 돈이 없지만 카드를 긁어대며,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우선 잠이나 자고 보는 거지요. 애들이 하는 속된 말처럼, 우리 스스로가 ‘트롤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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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과 염소 삼 형제>는 염소 삼 형제가 다리를 건너는 이야기입니다. 다리는 건너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 아래에 트롤이 버티고 있으니까요. 지혜를 쓰든, 힘을 기르든, 덩치를 키우든, 트롤이 지키는 다리를 건너는 수많은 방법이 있지만, 어느 하나 쉬운 건 없습니다. 세상 이치가 늘 그렇듯 말이죠.
학년이 올라가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고, 어려운 것을 배우고 나아가는 모든 과정은, 결국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는 과정입니다. 다리를 건너는 일이 결코 쉽지 않고,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들고 또 위험하겠지만, 그렇게 건너간 뒤에 우리 자신은 한층 더 성장하고 있을 테지요. 건너간 뒤의 나는, 이전의 나와 결코 같을 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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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읽으면서 이런 주제로 함께 나눈다면, 이쯤되면 그림책이 아니라 문학 작품을 읽은 효과가 생기지 않을까요?
무엇 하나 빠뜨릴 것이 없는, 완성도 높은 그림책을 읽으며, 참 행복합니다.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줄 생각을 하니, 어디에서 어떤 말투로, 어떤 표정으로 읽어야 하나, 행복한 고민 중입니다.
전연령대에게 권합니다. 각 연령과 수준에 맞는, 다양한 주제로 풀어낼 수 있는 책입니다. 주최자가 없이도, 아이들 스스로 좋은 주제를 찾아낼 겁니다.
좋은 책을 보내주신 ‘북극곰’ 출판사에 감사드립니다.
2023.09.28
*출판사에서 제공해주신 도서를 읽고 자유롭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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