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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박물관 ㅣ 붉은 박물관 시리즈 1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한수진 옮김 / 리드비 / 2023년 9월
평점 :
<붉은 박물관> (오야마 세이이치로 / 한수진 역 / 리드비)
진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붉은 박물관에서 잠시 잠들 뿐.
아이들과 논술 과정을 다룰 때 빠뜨리지 않는 수업은 바로 ‘고정관념’에 관한 수업이다.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으로 상황을 제대로 볼 수 없으며, 그로 인해 잘못 판단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보고, 보이는 것에 내 고정관념이 합쳐지면, 오판하기 쉽다. 그래서 눈 똑바로 뜨고 깊이 있게 바라보아야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사실 눈을 뜨고 있기에 잘못 보는 경우가 더 많다.
<붉은 박물관>은 미궁에 빠졌거나 미결된 사건을 다룬다. 오랜 미제사건을 다루는 사람은 바로 ‘붉은 박물관’의 관장 히이로 사에코와 수사관 데라다 사토시다. 천재적인 추리력을 가졌지만 내근만 해왔던 사에코와 경시청 수사 1과에서 좌천된 사토시. 오랫동안 미제가 된 사건이나, 종결되었지만 기한을 넘긴 사건의 수사 서류와 증거품은 모두 ‘붉은 박물관’으로 자료가 옮겨진다. 사에코와 사토시는 박물관으로 들어온 자료를 하나하나 검토하는데, 그 과정에서 미제 사건을 해결하거나, 이미 종결되었다고 알려진 사건의 진범을 잡는다.
이 책은 다섯 가지의 에피소드를 담는다.
[빵의 몸값]
나카지마 제빵 주식회사에서 만든 빵에 누군가 바늘을 넣는 사건이 발생하고, 1억 엔을 지불하라는 범인의 요청에 나카지마 사장이 범인에게 1억 엔을 직접 전달하는데, 폐가에서 범인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나카지마 사장이 사라지고, 그는 며칠 뒤 죽은 채 발견된다. 이 사건의 범인은 누구일까?
-절대 범인일 리 없고, 절대 의심해선 안 되는 사람이 범인일 수 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수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던 내용이다. 사에코와 사토시의 첫 수사이지만, 그저 앉아서 거의 모든 것을 다 꿰뚫고 있는 사에토의 추리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사에토가 본 모든 정보를 독자도 함께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복수일기]
범인이 쓴 일기가 붉은 박물관에 들어온다. 다카미 교이치의 일기인데, 옛 애인 마이코가 집 배란다에서 죽은 사건을 조사하던 중, 그녀가 임신 중임을 알고, 의심스러웠던 범인인 오쿠무라 교수를 찾아내어 그를 죽였다는 일기다. 하지만 그는 경찰에게 쫓기다 차에 치어 죽는다. 사에코는 범인의 일기에서 의심스러운 두 가지 부분을 찾는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내용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뀌게 한 방법을 찾는 과정이 흥미롭다. 그리고 범인이 일기를 통해서 숨겨야 했던 것은 무엇일까? 물론 범인이 일기를 남기면서까지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이 의문이다.
[죽음이 공범자를 갈라놓을 때까지]
사토시가 운전 중에 난 사고를 목격하는데,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이, 자신이 25년 전 일어난 교환살인의 범인이라고 말한다. 그 단서 하나로 사토시와 사에코는 과거의 범죄를 뒤지면서 관련한 사건을 찾는다.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것이 진실과 달랐음을 깨닫는다.
-가장 복잡하고 난해했던 부분이다. 물론 설명이 쉽게 되어 있지만, 두 번은 읽어야 했다. 처음에 나온 사람이 다른 사람일 수 있으며, 바뀐 사람으로 이해하며 읽다 보면, 그들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간다.
[불길]
일곱 살 딸 에미리가 유치원에서 1박 2일 캠프를 간 날, 에미리의 집에서는 불이 나 엄마와 아빠, 그리고 이모가 불에 타 죽는다. 죽은 세 사람의 몸에서는 청산가리가 나왔으며, 식탁에는 네 사람 분의 찻잔이 놓여 있다. 엄마는 임신 중이었기에 그 충격은 너무나 컸다. 네 번째 찻잔은 누구 것이며, 범인은 누구일까? 그리고 왜 죽인 걸까?
-이 이야기는 우리가 갖고 있는 편견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불에 탄 세 사람의 시체, 뱃속의 아기, 아빠와 이모의 죽음 뒤에 감춰진 이야기는 보이는 것을 당연히 믿어버리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버리는 작품이다.
[죽음에 이르는 질문]
다마가와 하천 부지에서 24세의 젊은 남자가 피살된 채 발견된다. 죽은 모습과 나이, 범행 날짜까지 26년 전의 살인과 동일한 사건. 심지어는 범인의 실수로 보이는 흔적까지 똑같은 사건이었다. 경찰은 붉은 박물관을 찾아 24년 전의 자료를 둘러보는데, 검찰의 감찰관 효도가 찾아와 히이로 사에코에게 수사를 부탁한다.
-뜻하지 않은 범인을 만나면서도, 범인의 어릴 적 경험을 돌이켜 보면 또한 연민이 생긴다. 학대의 대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벌인 일이라기엔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 아픔을 알지 못한 사람이 그것을 이해할 수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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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미 일어난 사건을 다룬다. 즉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에 대해서 수사관, 탐정이 범인과 줄다리기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수십 년 전에 벌어진 사건을 재수사하기에, 홈즈와는 전혀 다르고 포와로와도 다른 입장에서 사건을 마주한다. 수사일지를 통해서 수사를 하고 간혹 필요한 증언을 사토시가 받아오는 정도다. 천재 탐정인 사에코는, ‘붉은 박물관’ 밖으로 나가는 장면이, 이 책에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히이로 사에토는 편안한 책상 탐정이라 말할 수 있겠다.
이 책에서, 사에코 경정과 사토시, 그리고 독자 모두가 사건 내용을 같이 듣고 똑같은 단서를 쥐고 추리를 시작한다. 셜록 홈즈가 “음… 그랬단 말이지.”하면서 자기만 알고 있는 단서를 마지막에 밝히는 것과 달리, 이 책은 -책 뒤의 평론가의 말처럼- 책 속 인물과 독자가 공평한 출발선에서 나아가는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추리력, 논리력, 그리고 고정관념을 깨는 과정을 멋드러지게 경험할 수 있다. 두 수사관과 독자의 추리를 비교하면서, 누가 먼저 맞히나 내기하듯 읽어도 좋다.
물론 몇몇 이야기는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다. 특히 범행 동기를 이해하기 어려운데, 동기를 이해한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을 둔 채 그런 범행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평범하게 흘러가지 않는 일도 많기에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며 읽어도 좋겠다.
그럼에도 새로운 방식으로 사건을 대하고 해결하는 두 사에코와 사토시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정말 재미있다. 정답이라고 생각한 것은 절대 정답이 아니며, 범인이라 단정지은 사람은 결코 범인이 될 수 없다. 우리가 만든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돌다리도 조심조심 두드리며 읽는 재미가 있다.
370쪽의 꽤 두꺼운 책이지만, 한 번에 다 읽을 필요는 없다. 매일 하나씩, 닷새씩 일어나가다 보면, 추리소설에 대해서 우리가 가졌던 수많은 고정관념이 하나하나 제거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관장 사에코와 수사관 사토시의 어색한 케미가 잘 어울리는데, 이 둘에게 애정이 듬뿍 생긴다. 책 뒤의 평론가의 글을 읽어 보면, 2022년에 후속편이 나왔다고 하니, ‘리드비’에서 출판하리라 기대해 본다.
아, 일본 방송 TBS에서 드라마로 방영되었다는데, 아마도 OTT 어딘가에 있으리라. 얼른 찾아봐야겠다.
2023.10.18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자유롭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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