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초 대나무 숲, 존재하지 않는 계정입니다 우리학교 상상 도서관
황지영 지음, 백두리 그림 / 우리학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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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초 대나무 숲, 존재하지 않는 계정입니다>(황지영/우리학교)


익명의 그늘을 지나, 햇빛 아래 마주 선 아이들


황지영의 『햇빛초 대나무 숲, 존재하지 않는 계정입니다』는 1학기 때 사라졌던 대나무 숲의 귀환으로 시작한다. 새 주인이 내세운 ‘검열 없는 공정함’은 소통의 창구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전시하고 험담을 정당화하는 공간으로 변질된다. 아이들은 익명 뒤에 숨어 서로를 할퀴고, 확인되지 않은 소문은 유나와 동우, 건희의 일상을 잠식한다. 여기까지는 1편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전개인 듯 보이나, 3권은 그 소문의 ‘뿌리’를 끝까지 추적하며 더 단단해진 아이들의 성장을 보여준다.


아이들은 저마다 무언가 뒤에 자신을 숨긴다. 대나무 숲 계정 주인은 자신을 숨긴 채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친구들의 아픔을 구경거리로 만들고, 채연은 전학 온 학교에서의 적응을 숨긴 채 예전 친구 윤성에게 '여전히 외롭다'는 거짓말의 가면을 쓴다. 건희는 1학기 대숲의 창시자였다는 사실과 이전 학교에서의 잘못을 묻어둔 채 좋은 사람으로 남으려 하며, 혜라는 부모의 압박에 맞서 가시 돋친 말들 뒤로 자신을 가둔다. 익명은 책임을 지우기에 달콤하다. 그러나 그 달콤함이 자신의 존재마저 지워버린다는 사실을 작가는 냉정하게 보여준다.


특히 이번 3권에서 돋보이는 것은 유나의 주체적인 태도다. 소문의 피해자로만 머물던 유나는 '초코 치킨' 사진이나 맞춤법 같은 단서들을 꼼꼼히 추적하며 대숲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분투한다. 이 과정에서 유나는 1권에서의 난타반 사건, 2권에서의 굿즈 테러 사건과 비밀 연애를 거쳐 마침내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진실 앞에 서게 된다.


결말은 분명하다. 화면 너머의 익명 사과나 고백은 허상이며, 관계는 서로의 눈을 마주할 때 비로소 온도를 갖는다. 계정은 사라져도 상처와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체험 학습장에서 과거 자신의 가해 사실을 폭로했던 성연을 직접 마주한 건희는 “과거를 고칠 수 없으니, 과거를 안고 가기로 했다”고 고백한다. 아이들은 숨는 대신 자신의 흉터를 햇빛 아래 꺼내 놓기로 한다.


학교 이름이 ‘햇빛초등학교’인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은유다. 햇빛은 모든 것을 드러낸다. 숨기고 싶은 흉터도, 부끄러운 과거도 그 빛 아래서는 숨을 수 없다. 유나가 이마의 흉터를 가리던 앞머리를 걷어 올리고, 건희가 부모님이 써준 반성문 뒤에 숨는 대신 사과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장면은 이 작품이 닿은 가장 단단한 지점이다.


성장은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그것을 안은 채 걸어가는 선택이다. 익명의 어둠 속에서는 누구도 자랄 수 없다. 상처를 주고받으며 단단해진 아이들의 뒷모습은, 관계 속에서 길을 잃은 어린 독자들에게 조용하고 분명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1권의 '진실 찾기'와 2권의 '관계 맺기'를 지나 3권의 '자기 인정'에 도달하며, 햇빛초 아이들의 긴 여정은 비로소 마침표를 찍는다. <햇빛초 대나무 숲> 시리즈를 읽은 독자들이라면, 이제 아이들이 대숲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떠나 진짜 '햇빛' 아래서 서로의 손을 맞잡는 당당한 행보에 뜨거운 응원을 보내게 될 것이다.


2026.02.21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서평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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