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를 부탁해 - 2024년 제30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일공일삼 114
설상록 지음, 메 그림 / 비룡소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호랑이를 부탁해>(설상록/비룡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은 빠짐없이 매년 읽어 본다. 아이들에게 책과 글을 가르치면서 ‘황금도깨비상’ 수상작만으로도 한 학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다. 게다가 내용과 주제와 의미도 시간이 흐를수록 함께 성장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은 따뜻한 마음과 성장, 그리고 공감과 치유의 과정이다.


<호랑이를 부탁해>는 우리 동화의 현주소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에, 이제는 성장과 변화, 학습까지 빼놓을 수 없다. 그것이 현시대 어린이의 숙명이랄까. 이 책은 어린이 필수 영양소를 빼곡히 담아 놓은 느낌이다.


5학년 4반에서 달걀 부화 실험을 하고 있기에, 우주는 아침일찍 등굣길에 나선다. 교실에 들어선 순간, 우주는 검은 모자를 쓴 그림자가 급히 달아나는 모습을 포착한다. 교실은 아크릴 물감에 얼룩지고, 아수라장이 되어 있다. 우주는 지수진과 달걀이 부화중인 협의실을 둘러보는데, ‘호랑이’라고 이름붙인 달걀이 땅에 떨어져 깨어져 있었다. 우주는 사건 현장 사진을 찍고 아이들에게 알리는데, 선생님은 CCTV와 현장을 면밀히 분석해 범행 시각과 단서를 모은다. 과연 검은 모자는 누구인가? 왜 그렇게 황급히 도망쳤을까?


5학년 4반 교실은 마치 탐정극의 한 장면처럼 긴장감 넘치는 미스터리로 전개되다, 흥미로운 학교 생활로 이어진다. 깨진 달걀이 무정란이라는 게 밝혀지며, 검은 모자의 행동이 잘한 건지 아닌지 논란이 생긴 것도 잠시, 곧 병아리들이 부화하는데, 병아리를 사육하는 과정에서 반 아이들은 수없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 수학문제를 풀어 병아리 집을 완성하고, 과학시간에 배운 내용과 백과사전을 찾아가며 병아리를 키우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성장과 책임감이 함께 그려진다. 화자인 이우주와 함께 절친 노하민, 그리고 지수진, 고은별, 임리아 등 친구들 사이에 얽힌 애정과 오해, 그리고 숨겨진 작은 비밀들이 차츰 드러난다. 닭이 된 호랑이(병아리 이름을 ‘호빵’과 ‘사랑이’라고 지으면서 합쳐진 이름)를 입양보내는 과정을 통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고, 따스한 여운을 남기며 이야기는 끝난다.


이 책은 한 번 잡으면 놓을 수 없다. 초반의 긴장감이 극에 달하고, 그것을 이완하는 과정이 노련하다. 등장인물의 특징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특히 행동과 함께 심리를 충분히 들여다 보도록 한다. 추리소설처럼 1인칭으로 전개되며 반 아이들을 관찰자로서 바라보는 우주의 따뜻한 시각이 흥미로운데, 그것은 삽화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게 바라보며, 정의롭고 순수하며 따뜻한 모습이 익숙하지만, 입체적이지 못한 점은 다소 아쉽다. 그러나 편안하다.


초반에 휘몰아치듯 이어진 사건과 현장, 그리고 처참하게 깨진 달걀을 묘사하는 장면이 인상 깊다. 달걀 프라이로 늘 보는 달걀이지만, 이런 모습으로 볼 때는 굉장한 상실감이 느껴진다.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끔 하는 신선한 발상이 돋보인다. 또한 상실로 인한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선생님의 지혜와 기다림의 시간은 무척 큰 함의가 있다. 상실감과 분노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둘을 함께 볼 수 있는지 구분하며, 차분히 생각하고 기다릴 시간을 독자에게도 준다. 흙탕물에서 눈알을 잃어버린 하마에게, 흙이 가라앉을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라고 충고한 새처럼,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다르게 비튼다.


깨진 달걀이 무정란이란 것이 밝혀졌을 때, 그로 인해 다른 달걀이 살 수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을 때, 아이들은 검은 모자를 칭찬해야 할지 고민한다. 세상 일이라는 게 이렇게 복잡하다. 이런 판단에 대해서 함께 논의할 시간을 갖는다면, 독서의 효과는 배가 될 것이다.


이 책에는 실수, 혹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 해야 할 충분한 책임과 진솔한 사과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물론 이를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과 공감도 따뜻하게 전해진다. 그 모든 걸 차치하더라도 재미와 감동이 충분한 작품이다. 읽고 나면 달걀을 부화시키고 싶은 충동이 들기에, 그 과정이 책에서처럼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주지시킬 필요가 있겠다.



명불허전이다. ‘황금도깨비상’다운 좋은 작품이다.

아이들에게 자신있게 권할 만한 책이다.

생각할 거리가 있는 책 추천해달라고 하면, 짜잔 하고 보여줄 책이다.


2025.02.23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임을 밝힙니다.


#호랑이를부탁해

#서상록

#비룡소

#황금도깨비상

#초등추천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