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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게 비치는 빛
1969년 7월 21일,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과 에드윈 앨드린은 달 표면에 반사체가 배열된 작은 판을 지구를 향해 설치했다. 같은 시간 달에서38만 킬로미터 떨어진 지구에서는 천체물리학자 두 팀이 캘리포니아 릭 천문대와 텍사스 맥도널드 천문대에서 두 대의 천체망원경에 각각 작은 장치를 설치했다. 이 천문학자들은 인류가 최초로 달에 착륙한 위치를 세심하게 탐색했다. - P9
이 실험에 사용된 광원인 루비 레이저는 겨우 9년 전인 1960년에 처음 선보인 장치였다. 사실은 사람이 달에 도착하기 전인 1968년 1월에 무인우주선이 달에 착륙했고, 이 우주선에 장착된 텔레비전 카메라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 [이후 칼텍으로 표기한다. 옮긴이]의 제트추진연구소가 로스앤젤레스 근처에서 발사한 레이저 광선을 감지했다. 이 레이저의 출력은 겨우 1와트에 불과했다. - P10
레이저 광선의 반사로 달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는 것은 레이저의 놀라운성질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레이저는 일상에서 수많은 곳에 쓰일 뿐만 아니라 특수한 용도로도 널리 쓰인다 - P10
사물의 본질에 대한 기본적인 연구에서 얼마나 큰 성과가 나올지를 예측하기란 매우 어렵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연구에서 어떤 길이 기술적으로 막다른 골목으로 이어지는지 알아내기도 매우 어렵다.) 여기에서 단순한 진리가 나온다. 연구에서 나온 새로운 아이디어는 정말로 새롭기 때문에 그것이 어떻게 발전할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 P10
리버모어 연구팀은 오염물질이나 방사성 폐기물을 거의 남기지 않고 전기를 효율적으로 생산하는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이 연구 팀은 또한 국립점화시설(National Ignition Facility)에서 훨씬 더 강력한 레이저를 연구하고 있다. 그들은 레이저 출력을 세계 기록보다 10배 높은 1,000조 와트로 높였고, 이것을 다시 작은 점으로 집속시켰다. 이 펄스는 1조분의 1초도 지속하지 못하지만, 작동하는동안에는 지구 전체가 그 순간에 사용하는 것보다 어마어마하게 더 큰 출력을 낸다. - P12
리버모어 연구소의 레이저 핵융합 계획은 레이저 빔으로 물질을 변화시키는 꽤 특별한 사례이며, 조금 더 평범하게 물질을 가공하는 방법은 수백가지가 있다. - P12
과학자들은 엄청나게 강력한 출력의 레이저 빔을 만들어냈지만, 반면에현미경으로 초점을 맞춘 약한 레이저 빔으로 작은 입자들을 부드럽게 이리저리 옮길 수 있고, 살아 있는 세포의 기관도 이동시킬 수 있다. - P13
대기 오염을 감시하는 기관들은 도시 상공의 공기가 얼마나 더러운지를 여러 가지 색의 레이저 빔이 흡수되는 정도를 비교해서 현장에서 곧바로알 수 있다. 굴뚝 위의 공기를 검사해서 그 굴뚝에서 나오는 오염물의 양을 측정할 수 있다. 또한 성층권의 특정 화학물질을 바로 측정할 수도 있다. - P13
레이저가 발명되자 사람들은 군대에서 살인광선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상상했고, 실제로도 레이저를 이용한 미사일 격추 시도에 엄청난 돈이 쓰였다. 이런 시스템이 얼마나 실용성이 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이것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미사일 공격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축복이 될것이다. - P14
실제로 살인광선으로서의 군사용 레이저는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매우 드물고 특수한 예일 듯하다. 그러나 레이저에는 실제로 중요한 군사적 응용이 있다. 통신이 그렇다. 물론 이런 용도는 군대에 국한되지않는다. 현대의 탱크, 폭탄, 미사일이 과녁을 몇 미터 차이로 정확하게 때리는 능력은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를 위해 주로 레이저를 이용한다. - P15
레이저는 실용적인 일을 해낼 뿐만 아니라 다재다능한 연구 도구가 되기도 한다. 과학 연구에서 레이저의 장점은 높은 정밀도이다. 레이저는 극단적으로 순수한, 거의 균일한 파장과 비범한 지향성을 가진 광파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광파를 ‘결맞다(coherent)‘고 한다. 결맞다는 말은 모든 파동들이 서로 보조가 맞는 것을 일컫는 전문 용어이다. 결맞는 빛과 전자기파는 매우 정밀하게 사용할 수 있지만, 레이저와 메이저가 나오기 전까지는 실현할 수 없었다. - P16
광파는 전자기파의 한 형태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전자기파는 서로 얽혀서 이동하는 전기장과 자기장이다. 작은 점으로 집속한 레이저 빔은 태양 표면보다 수십억 배 강한 빛이 될 수 있고, 따라서 레이저가 쬐는점에는 강한 전기장과 자기장이 형성된다. 이 특별한 능력을 바탕으로 물리학과 공학에서 비선형 광학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분야가 생겨났다. - P17
과학에서 레이저는 거리를 정밀하게 측정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한다. 앞에서 보았듯이 달까지의 거리를 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험실이나 기계공작실에서 두 점 사이의 거리를 정밀하게 측정할 때도 레이저를 이용한다. 이제 거리 단위는 표준화된 레이저의 파장으로 정의된다. - P17
이제는 중력파 탐지에 레이저를 사용하는 실험이 준비되고 있어서, 우리 은하와 다른 은하의 초신성이 폭발하는 동안에 별의 핵이 붕괴하는 것처럼 거대한 질량이 갑작스럽게 움직일 때 공간과 시간의 구조에서 일어날수 있는 미약한 파문을 탐지하려고 한다. [중력파 탐지는 2016년에 성공했다.- 옮긴이] 중력파를 탐지하려면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원자 지름의 10억분의 1 정도의 정밀도로 측정해야 하는데, 레이저를 사용하지 않고는 이처럼 정밀한 측정을 해낼 방법이 없다. - P18
적응광학(adaptive optics)은 대기를 통해 전달되면서어쩔 수 없이 번지는 이미지를 레이저를 이용해 훨씬 또렷하게 볼 수 있다. 밤하늘을 쳐다보면, 별은 늘 조금씩 깜빡거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낭만적이기는 하지만, 천문학자들은 이 효과를 좋아하지 않는다. - P18
레이저의 개발이 정확히 언제 시작되었는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아마도1945년쯤부터 물리학자들이 레이저로 향하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할 수있을 것이다. 오늘날 레이저는 엄청나게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지만, 1945년으로만 거슬러 올라가도 이런 뛰어난 기술을 실험에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P19
지금까지 메이저와 레이저에 대해 노벨 물리학상이 여섯 번 주어졌고, 그중 하나는 레이저의 발명에 주어졌다(1964년 니콜라이 바소프, 알렉산드르 프로호로프, 찰스 타운스, 1971년 데니스 가보르, 1978년 아노 펜지어스와 로버트 윌슨, 1981년 니콜라스 블룸베르헌과 아서 숄로, 1989년 노먼 램지, 1997년 스티븐 추, 클로드 코엔타누지, 윌리엄 필립스). 나는 메이저와 레이저에 주어지는 노벨상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특히 화학과 생물학 분야가 유망하다고 본다. - P20
레이저의 원리
레이저는 복사의 유도 방출에 의한 빛의 증폭(light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의 약자이다. (메이저는 복사의 유도 방출에 의한 마이크로파 증폭microwave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radiation의 약자이다.) 레이저는 빛이 분자.원자·전자와 상호작용하는기본적인 방식에 따라 작동한다. - P21
20세기 초부터 닐스 보어, 루이 V. 드브로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같은 물리학자들이 분자와 원자가 빛(또는 다른 전자기파)을 어떻게 흡수하고 방출하는지를 알아냈다. 이렇게 해서 새롭게 생겨난 수학적인 물리학을 양자역학이라고 부른다. 원자나 분자가 빛을 흡수하면, 증가된 에너지에 의해 원자의 일부가 앞뒤로 흔들리거나 빙빙 돈다고 말할 수 있다. - P21
<그림 1>(위)은 원자(굵은 점으로 표시된다)에흡수되는 광자(구불구불한 선으로 표시된다)를 보여준다. 원자 또는 분자가 높은 에너지 준위에서 낮은 에너지 준위로 떨어질 때, 그것들이 흡수할 수 있는 딱 그만큼의 파장을 가진 광자를 방출한다. 이것은 대개 자발적으로일어나고 형광등이나 네온등처럼 보통의 상황에서 분자나 원자가 반짝일때 방출하는 빛이다. - P23
레이저의 원리를 기본적인 열역학의 언어로 명료하게 밝힌 사람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다. - P23
흡수와 자극 방출이 한꺼번에 일어날 수 있다. 빛이 들어오면서 낮은 에너지 상태의 원자를 높은 에너지 상태로 들뜨게 하고, 동시에 높은 상태의 원자를 낮은 상태로 떨어지게 한다. 낮은 상태에 있는 원자보다 높은 상태의 원자가 더 많으면 흡수되는 것보다 더 많은 빛이 방출된다. 즉, 빛이 더 강해진다. 빛이 들어갈 때보다 더 밝아지는 것이다. - P23
레이저를 만드는 비결은 물질 속의 분자 또는 원자의 에너지를 아주 비정상적인 조건으로, 즉 들뜬상태가 바닥상태(또는 더 낮은 상태)보다 더 많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독특한 물질 속에서 적절한 진동수를 가진 전자기 파동이 지나가면 에너지를 잃는 게 아니라 얻게 된다. 광자의 증가가바로 증폭이며, 다시 말해 자극 방출에 의한 빛의 증폭이다. 파동이 물질을 한 번 통과할 때 일어나는 증폭이 그리 크지 않으면, 더 크게 증폭할 수있다. - P25
이 책에서는 물리 법칙을 이렇게 다루는 방법이 발견된 과정, 시작 단계에서의 수많은 시행착오, 실현 과정에서의 막다른 골목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과학자로서 나의 모험과, 예측할 수 없었지만 어쩌면 자연스럽게메이저와 레이저로 연결된 길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이것은 여러 중요한기여자들이 협력하기도 하고 경쟁하기도 하면서 이 분야가 빠르게 성장하는 놀라운 이야기이며, 이것을 과학사회학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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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퍼먼 대학교, 분자, 그리고 나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은 주로 아버지가 구입한 시골 농장을 무대로 펼쳐진다. 나의 아버지 헨리 키스 타운스는 사우스캐롤라이나 북서쪽 구석에있는 블루리지산맥 근처 그린빌 변두리에 8만 제곱미터 넓이의 농장을 소유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집안은 대대로 이 지역에서 목화와 옥수수를 비롯한 곡물과 사과, 복숭아, 고구마 등을 재배했다. - P27
나는 자연에서 처음 얻었던 영감과 함께, 과학은 대략 우주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친구는 주로 형 헨리와 사촌들, 그리고 집 주변의 도마뱀, 새, 바위, 곤충 등이었다. 형은 천성적으로 생물학을 좋아해서 푹 빠져 있었고, 나도 형의 열정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우리는 집밖의 창살에서 뱀을 키웠고, 애벌레 먹이인 나뭇잎을 침실에 숨겨두었다. 부모님도 결국 이런 일에 익숙해졌다. - P28
우리의 놀이는 대부분이 실용적인 물건을 만들거나 탐구하는 것이었다. 나는 또한 사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내기를 좋아했다. - P29
나는 가끔 해안에 있는 찰스턴까지 가서 그 지역 박물관의 자연사 전시물을 구경했다. 평평한 해안과 만에서 본 동식물과 내가 살고 있는 피드몬트 지역 동식물의 차이에 매료되었다. 두 지역의 지질학적 차이도 인상적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형과 나는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새와 물고기 등을 언제나 주의 깊게 관찰했다. 그리고 돌을 뒤집어서 밑에 어떤 생명체가있는지 알아봤는데, 이런 생물들은 돌을 뒤집어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게 된다. 우리는 야외뿐만 아니라 실내에서 즐기는 취미도 있었다. - P29
어느 해 여름 산속에 있는 할머니의 피서지에 갔을 때 잊지 못할 일이일어났다. 나는 살루다강의 지류에서 그물로 작고 화려한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았다. 피라미의 일종 같아 보였지만, 표준어류도감에는 이 물고기와 정확히 일치하는 그림이 없었다. 나는 이 물고기를 포름알데히드에 넣어서 이 물고기의 종이 무엇인지 문의하는 편지와 함께 워싱턴 D.C. 에 있는 스미스소니언 연구소로 보냈다. 답장이 왔는데, 이 물고기가 새로운 종이거나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잡종으로, 같은 물고기를 더 많이 잡아서 보내달라는 말도 적혀 있었다. - P30
아버지는 아마추어 자연학자였다. 어쩌면 아버지는 과학자가 될 수도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젊었을 때 과학은 현실적인 진로가 아니어서, 아버지는 법학을 공부했다. 부모님은 교회, 바른 행동, 학교에 대해엄격했다. 학교에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어려운 일을 겪었다면, 부모님은 그 일을 더 익히도록 해서 우리가 더 잘하도록 했다. - P30
우리는 돈이 많지는 않았지만, 우리 가족은 뿌리와 전통을 자랑스러워했다. 남북전쟁에서 남군의 패배는 20세기 초에도 여전히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나라의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전쟁이 끝난 뒤에 생겨난 여러가지 영향들 중 하나는 사회적 지위의 원천으로서 부를 외면하는 문화였다. 어쨌든 가질 수 있는 부 자체가 많지 않았다. - P31
이 모든 일을 생각할 때, 우리가 이러한 가정에서 자라면서 교육을 자연스럽고 자동적인 의무로 여기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나는 꽤 열정적인 학생이었고, 부모님은 내가 공부를 따분해하자 7학년을 월반하도록 해주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11학년까지만 있었다. 열여섯 살 여름이 지나고, 나는 당연히 우리 도시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했다. - P32
퍼먼 대학교는 내가 교수님들을 대부분 잘 알 수 있을 정도로 작았고, 어떤 학과에서든 특별히 뛰어난 강의는 다 들을 수 있을 만큼 학사 운영도유연했다. 나는 개설된 강좌들 중에서 정말로 좋은 과목들을 거의 다 들었다. 그래서 나는 물리학에서 학사 학위를 받고 현대 언어에서도 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형 헨리는 생물학에서 수석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다. - P33
진로에 대한 계획은 구체적이지 않았다. 형과 공유한 자연사에 대한 취미 덕분에 생물학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 P34
생물학 다음으로, 처음에는 수학을 가장 선택하고 싶었다. 수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은 나의 먼 친척이자 훌륭한 선생님인 마셜 얼이었다. 그러나 2학년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물리학 수업을 받으면서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그 수업을 담당한 교수는 퍼먼 대학교 물리학과 하이든 토이 콕스 교수였다. 물리학은 풍부한 수학적 논리를 가지고 있었고, 수학보다 현실과 더 잘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서 매력적이었다. - P34
3학년 물리학 수업은 교과서를 모두 다루지 못했고, 나는 나머지 부분을 여름방학 동안에 스스로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그 여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블루리지산맥에 있는 할머니의 작은 별장 근처에서 개울이내려다보이는 이끼로 덮인 바위에 앉아 무릎 위에 특수상대성에 관한 부분을 펼쳐 놓고, 아인슈타인의 논리에 실수가 있다는 놀라운 확신에 도달했다. 나는 점심을 먹으러 갔고, 몇 시간 뒤에 돌아와서 책을 펼쳤다. - P35
나는 대학 시절에 물리학과 언어만 배우지는 않았다. 물리학 전공의 필수과목은 네 개뿐이었고, 그중 상당 부분은 교과서 공부였다. 나는 또 대학 박물관을 새롭게 꾸미고, 생물학 수집품을 다시 정리하고, 수영 팀에서400미터를 수영하고, 미식축구 응원단에서 트럼펫을 연주했다. 한번은 로즈 장학금을 신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동의했지만 합격하지 못해도 실망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결국 그 장학금은 받지 못했다. - P36
콘스턴트 교수는 기계를 만지면서 손이 더러워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않는 것 같았다. 어쨌든 그는 밴더그래프 가속기 운용에 서툴렀다. 그래서이것이 내가 한 일이었다. 아직 완전히 인지되지 않고 자세하게 알려지지않은 사실의 물리학 이론을 밝혀내고 정리한 것이다. - P37
나는 1936년 봄에 밴더그래프 연구를 마쳤고, 이것으로 석사 학위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 콘스턴트 교수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그의 말은 분명 크게 잘못되었다. "음. 자네는이제 학위 논문을 끝냈어. 하지만 사실 우리 학교에서 1년 만에 석사를 끝낸 사람은 아무도 없네, 그게 무조건 좋아 보이지는 않아. - P38
칼텍 - 낮은 점부터 높은 점까지
내가 듀크 대학교를 그렇게 빨리 떠난 한 가지 분명한 이유는 물리학과의 전일제 펠로십에 지원했지만 선택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자리는 내가 아니라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 즉 칼텍에서 온 대학원생에게 돌아갔다. 이것은 나름대로 합당한 일이었다. - P39
어떤 의미에서 나는 실패했다. 내가 처음에 지원한 대학원에서 재정 지원을 받지 못했고, 그래서 칼텍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것은 내가 언제나고마워할 만한 실패였고, 운이 좋은 실패였다. 이 일로 말미암아 내가 정말로 원한 것을 바로 추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P39
패서디나까지 가는 길은 긴 버스 여행이었고, 공원과 버스에서 잠을 잤다. 나는 앨라배마에서 친척 아주머니 한 분을 방문했고, 텍사스를 관광했고, 뉴멕시코에서 칼즈배드 동굴을 구경했다. 그리고 사막의 뜨거운 더위와 갈증을 겪으면서 그랜드캐니언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 올라왔다. 그때나는 초콜릿바 두 개만 가져갔고, 초보의 무지함으로 물을 준비하지 않았다. 그때는 여름이어서 나는 협곡의 꼭대기로 돌아오며 선인장의 과육을 빨아먹고 있었다. - P40
당시에 좋은 물리학과 대학원에 입학하기는 오늘날만큼 어렵지 않았기때문에, 물리학과 학생들은 정말로 각양각색이었다. 진짜 문제는 비용이었다. (나는 칼텍에서 한 학기를 마친 뒤부터 조교가 되었고, 남은 대학원 공부를위한 비용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함께 지내기에 흥미로웠다. 그들은 좋은 이야기를했고, 삶에 대해 흥미롭고 다양한 태도를 가졌지만, 몇몇은 그리 좋은 물리학자는 아니었다. - P41
칼텍은 학생 수도 많지 않고 캠퍼스도 크지 않았으며 격식에 얽매이지않아 학문들 사이에 흥미롭고 건강한 교류도 활발했다. 예를 들어 이미 화학과 학과장이 된 라이너스 폴링은 내가 듣고 있던 리처드 톨먼의 통계역학 강좌를 청강했다. - P42
그 시절 정부는 물리학 연구 지원에 매우 인색했으며, 리서치 코퍼레이션과 같은 민간단체나 개인이 연구비를 대고 있었다. - P43
나는 이런 태도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과거에 나는 물리학을 포기하라는 의사의 권고를 받은 적이 있지만, 그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의 눈이 자꾸 말썽을 부려 전문가와 상담했다. 그는 내가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그러니 다른 진로를 알아보라고 했다. - P43
그 시절 칼텍에는 여성이 없어서 (내가 입학하기 몇 년 전에 한 여학생이 착오로 입학한 적은 있었다) 수도원 같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주 좋은 곳이었다. 나는 패서디나 바흐 협회라는 합창단에 가입했는데, 그 모임에는 몇명의 여성들이 있었다. 나는 그 도시가 좋았다. 그 시절에는 스모그도 없었고, 지역 주민들은 칼텍 학생들에게 매우 우호적이었다. - P44
물론 우리는 모두 당시의 세계 정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전쟁이 다가오고 있고 우리도 징집될지 모른다는 느낌이 있었다. 몇몇 학생들은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그들의 표현에 따라 "평화의 행진을 벌이며, 그들이 보기에 전쟁광들과 전쟁으로 돈을 벌려는 사기업들에 항의하고 있었다. - P44
나의 연구실 겸 사무실은 물리학과 건물 지하에 있었다. 벽토를 바른 크고 튼튼한 이 건물은 밀리컨이 시카고에서 온 후에 지어졌고, 칼텍에 지어진 주요 사각형 건물의 일부였다. - P45
동위원소를 분리하려면 이 장치를 약 3주 동안 밤낮으로 쉬지 않고 고장 없이 계속 끓여야 했다. 그래서 나는 장치의 작동을 감시하느라 자주밤을 지새웠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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