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을 청소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사람들에게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12가지 인생의 법칙』 6장)라는 말로 유명해졌다. 평범한 충고였지만 내가 꽤나진지했고, 방 청소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점이 그 인기에한몫한 듯싶다. 그런데 나는 거의 3년 전부터 내가 일하는 방을 제대로 정돈하지 못했다(나는 그 방을 손대지 않은 상태로 놔뒀다). 그동안 나는 정치적 논쟁에 휩싸였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우편물은 산더미처럼 쌓였고, 줄곧 질병에 시달렸다. - P235
내가 그 방에서 찍은 비디오의 정지 화면인데, 배경이 아주 엉망이다(내 꼬락서니도 그보다 썩 낫다고 말하기 어렵다). (중략). 어쨌든 내게는 문제의 방으로 돌아가 깨끗이 정리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 잡동사니를 깨끗이 치우고 싶은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방을 아름답게 꾸미고 싶다는 것이다. - P236
우리는 우리 문명이 축적해온 지혜를 터득하기 위해서 예술(그리고 문학과 인문학)을 공부한다. 예술을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었는가? 아주 좋은 생각이며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오랫동안 고민해왔고, 이상하지만 비슷한 게 없을 정도로 다채로운 작품을 많이 남겼다. - P236
예술품을 사라. 당신에게 말을 거는 작품을 구입하라. 진정한 예술품은 당신의 삶에 파고들어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진정한 예술품은 초월자를 들여다보는 창이다. 우리는 유한하고 제한된 존재, 무지에 매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창이 필요하다. - P237
예술은 문화의 토대다. 예술을 통해 우리는 심리적 통일성을 이루고, 다른 사람들과 평화롭게지낼 수 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마태복음」 4장 4절)라는 말은 아주 정확한 지적이다. 우리는 아름다움으로 산다. - P237
기억과 환상
(전략). 어른이 되고 나서는 예전과 같지 않다. 나는 페어뷰에서 9년을 살면서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보냈는데, 지금도 그곳의 거리가 고화질로 생생하게 그려진다. 반면 지금 나는 토론토에서 그 두 배가 넘는 세월을 살았지만, 우리 집 주변에 어떤 집들이 있는지 아주 막연하게만 알고 있다. 어른이 되어 이렇게 변한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나는 지금 사는 동네가 고향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 P239
나이를 먹을수록 지각은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기억으로 대체되었다. 나는 몇몇 측면에서 더 능률적으로 바뀌었지만, 그 대가로 세계의 풍부함을 느끼는 경험이 빈약해졌다. 젊은 시절 내가 보스턴에서 계약직 교수로 일할 때, 내 아이들은 겨우 두 살과 세 살이었다. - P239
아이들은 특별한 종착지나 목적, 일정을 염두에 두지 않고 구불구불한 동네 길을 따라갔다. 도중에 강아지 · 벌레 · 지렁이를 만나면 즐거워했으며, 임의로 만들어낸 게임을 하며 신나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긴장을 풀고 현재에 집중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 P240
나는엄밀하고 예민하고 목표지향적이었으며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지만, 그런 효율성·성취 · 질서를 위해 많은 걸 외면해야 했다. 내 눈은더 이상 세계를 향해 있지 않았다. - P241
실제로 어떤 이들은 유년기의 황홀한 눈을 잃지 않는다. 특히 예술가들이 그렇다(그러니 예술가리라). 영국의 화가이자 판화가이자 시인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도 그런 사람이었다. 블레이크는 독특한 환상의 세계에 거주했으며,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가 말한 "물자체Ding an sich"¹ (경험을 초월하는 본체-옮긴이)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가깝게 지각했다. - P243
법칙 8.
1. N. F. Stang, "Kant‘s Trnascendental Idealism,"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Winter 2018), ed. E. N. Zalta, plato stanford.edu/archives/win2018/entries/kant-transcendental-idealism. - P448
우리는 위대한 그림을 찬양한답시고 그림에 장식이 많은 사치스러운 액자를 두르지만, 사실은 그렇게 함으로써 그 영광이 액자 안에서 끝나기를 바란다. 그 경계짓기, 그 테두리 때문에 우리에게 친숙한 세계는 변하지 않고 원래대로 남겨진다. 우리는 아름다움에 한계를 부과해, 그 아름다움이 밖으로 뻗어나와 익숙한 모든 것을 어지럽히는 걸 원하지 않는다. - P246
우리가 아는 땅, 우리가 모르는 땅, 우리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땅
우리는 실제로든 관념적으로든 우리가 아는 땅에 거주한다. 하지만 그 바깥에 놓인 것을 상상해보자. 그곳에는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부분적으로나마 알고 있는 거대한 세계가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아는 그 공간 바깥에 아무도 모르는 세계가 존재한다. - P248
집에 혼자 있다고 가정해보자. 깊은 밤, 주위는 어둡다. 이때 예기치 못한 소리가 들린다. 당신은 깜짝 놀라고, 순간 얼어붙는다. 이것이 최초의 변환이다. 미지의 소리(어떤 패턴을 가진 소리)가 얼어붙는자세로 변한 것이다. 다음으로, 심장이 빨리 뛰면서 당신은 어떤 행동을 할 준비를 한다.³ 이것이 두 번째 변환이다. - P249
3. D. C. Fowles, "Motivation Effects on Heart Rate and Electrodermal Activity:Implications for Research on Personality and Psychopathology," Journal of Researchin Personality 17 (1983):48-71. 심장은 보상에 뛰지만, 다가오는 포식자를 피하라고 손짓하는 안전이 바로 그런 보상이라고 정확히 지적했다. - P448
예술가는 홀로 변경에 서서 모르는 것을 아는 것으로 변환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자진해서 미지의 세계로 뛰어든 뒤, 거기서 한 조각을 떼어내 이미지로 변환한다. 춤으로 변환하기도 한다. 자신에게 드러난 세계를 말이 아닌 몸동작으로 표현해서 전달하는 것이다. - P250
창조적인 사람이 도시에서 하는 역할을 생각해보자. 일반적으로그들은 약간 궁핍하다. 예술가로서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인데, 사실 그런 가난은 예술의 동력이 되기도한다(궁핍의 유용성을 과소평가하지 마라). 그들은 도시를 탐험하고, 한때는 좋았으나 지금은 쥐가 돌아다니고 범죄가 만연할 법한 지역을발견한다. - P250
예술가들이 혼돈을 질서로 변화시키는 그런 변경은 거칠고 위험한 곳이다. 그곳에 사는 동안 예술가는 혼돈에 빠져버릴 위험에 수시로 직면한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항상 인간이 이해하는 영역의 가장자리에 살아왔다. 예술과 사회의 관계는 꿈과 정신 활동의 관계와 동일하다. 꿈을 꾸고 있을 때 우리는 대단히 창조적이다. - P251
예술가들도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정말새로운 일을 하고 있다면, 그럴 만도 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의도가 무엇이고 그걸 어떻게 나타냈는지를 말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춤·음악·그림으로 표현할 필요가 사라진다. 하지만 예술가를 이끄는 것은 느낌, 패턴을 감지해내는 직관이다. - P252
일전에 뉴욕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거기에는 위대하고 유명한 르네상스 그림들을 소장한 전시실이 있다(팔수만 있다면 그림 하나가 몇억 달러는 족히 될 것이다). 그 전시실은 신자와 무신론자 모두에게 신성한 장소, 일종의 성소였다. - P253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그 먼거리를 이동해 이곳에 와서, 작품 설명에 주의를 기울이며 그림들을 보면서………… 다들 자기가 뭘 하고 있다고 생각할까?‘ 그 그림들 중에는 훌륭한 구도를 보여주는 걸작 <원죄 없는 잉태를 하신 성모The Virginof the Immaculate Conception>가 있었다. - P253
어쨌든 신은 죽었는데(또는 그랬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럼에도 저 그림은 왜 여전히 가치 있을까? 왜 다른 그림들과 함께 이방, 이 건물, 이 도시에 있으면서 만지지도 못하게 엄격히 보호될까? 왜 이런 그림들은 값을 매길 수가 없을까? 이미 모든걸 가진 사람들은 왜 이 작품들을 탐낼까? 왜 이 그림들은 현대의성소에 이토록 조심스럽게 보관되어 있을까? 왜 전 세계 사람들은 마치 의무를 다하듯, 심지어 선망했던 일이나 필요한 일을 하듯 이곳을 방문할까?‘ - P254
방 하나
우리 부부가 사는 곳은 작은 집 두 채가 쌍둥이처럼 붙어 있는 반독립주택으로, 거실이 13제곱미터(4평) 남짓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거실을 포함해 집안 곳곳을 아름답게 꾸미려고 애썼다. 거실에는 큰 그림이 몇 점 걸려 있다(2차 세계대전이나 공산주의의 승리를 주제로 한 소련의 사실주의, 인상주의 그림들이라 대중적인 취향은 아니다). - P255
냉전시대소련의 인상주의는 독특한 개성이 있었다. 고전적인 프랑스 풍경화와 달리 대부분 거칠고 가혹한 풍경을 묘사하고 있어 캐나다 서부에서 자란 내 취향과 잘 맞았다. 마음에 드는 그림을 찾는 동안 나는 감히 말하건대, 역사상 그 누구보다도 많은 그림을 접했다. - P256
비슷한 시기에 나는 대학 연구실도 아름답게 단장하려고 시도했다. 이미 공들여 꾸며놓은 연구실을 떠나야 했기에 나는 우리 집 리모델링을 도와준 화가의 도움을 받아 새 연구실을 개조하기로 했다(나는 그의 큰 그림을 여러 점 구입했고, 우리 집에도 걸어놓았다). 새 연구실은 창문이 막히고 형광등이 비추는 1970년대 공장처럼 끔찍했다. 감각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라면 30년 동안 그곳에 앉아 있느니 차라리 죽고 싶을 것이다. 노조의 의무 조항과 그에 대한 관리자들의 해석때문에 교직원이 연구실을 크게 개조하는 건 금지되어 있었다. 그래서화가 친구와 나는 대안을 만들어냈다.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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