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산 것인지 모르는 책, 나름 재미있습니다.


몇 발짝 더 나아가보자. 두 도플갱어는 이미 서로 친구가 되었다.
한 사람은 가벼운 옷차림에 날씬하고 햇볕에 적당히 그을린 피부를보니 스포츠를 즐기는 것 같다.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자신의 세 아이를 찍은 사진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때 누군가가 이렇게 묻는다. "혹시 잘 때 이를 갈거나 하는 문제가 없나요?" 그러자그 옆의 여자가 웃으면서 그렇다고 동의한다. 모성이 강한 여자가제안한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나와 같은데 그냥 반말로 얘기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스포츠를 좋아하는 여자가 말한다. "그러지, 뭐. 하지만 우리는 서로 매우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아." "난 살면서 아이를 갖는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넌 어떤 남자한테서 매력을 느끼니? 혹시 네 남편 사진 없어? 세상에! 완전 내 타입인데?"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 P134

"잘 알잖아요." 푀펠 교수는 잠시 망설이더니 숨을 고르고 인생을 더듬어보기 시작한다.
"난 발트 해 근방의 포메른에 있는 농장에서 자랐어요. 만약 2차대전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장남인 내가 농장을 이어받았겠죠. 그랬더라면 지금쯤 감자를 심고 몇 마리의 젖소를 키우며 아침마다 우유를 짜고 있을 테지요. 사실 종마 농장을 갖고 싶어 했던 아버지가 꿈을 이루었다면 지금쯤 내가 아버지의 가업을 잇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전쟁이 끝나고 포메른의 학교에서 퇴학당한 뒤에는 함부르크근처에 있는 티메르호른으로 이사해서 살인자의 집에 살았다면서요?"
"그래요. 맞아요. 하지만 다행히 그 살인자는 나에겐 아무런 해를 가하지 않았지요. 티메르호른에서 난 자그마한 읍내 학교를 다녔는데 선생님들 말에 고분고분 따랐다면 아직도 거기 살고 있을걸요.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도 안 갔을 테고, 아마 슐레스비-홀스타인에서 사업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아니면 사촌 중 한 명처럼 판매원이 되었거나. 또 기독교 기숙학교에 입학하고 싶었던 꿈이이루어졌더라면 지금쯤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고 있겠지요. 아마도 바덴에서 불만에 가득 찬 아내와 일곱 아이를 둔 목사로 살고 있지않을까요?" - P138

친구 맺기에 대한 욕망의 이면에는 사회적 존재라는 인간의 본성이 도사리고 있다. 진화론적 유산에 의해 우리 인간은 안정감을 위해 친구와 소속 단체를 필요로 한다. 정기적으로 같이 훈련하고 모임을 갖는 스포츠 동호회가 필요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또 어떤사람들은 늘 같은 사람이 모이는 길모퉁이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을선호한다. 나이 든 남자들에게는 정기적으로 앉아 있을 자리가 중요한데 외부인의 눈으로 보면 부족 간의 친밀함으로 보이기도 한다. 서로의 의견을 나누며 안전함을 느끼는 것이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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