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라의 비밀 약방
사라 페너 지음, 이미정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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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여자들에게만 허락되는 공간이 있다. 이야기는 18세기 런던의 독약 가게와, 200년을 뛰어 넘어 현대의 런던을 오간다.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세기를 초월한다는 것도 흥미진진하지만 독약과 비밀 약방이라는 자극적인 소재가 책을 읽기도 전에 나를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독약이라는 소재는 비단 책뿐만 아니라 영화나 다큐멘터리, 어디에서나 다루어도 은밀하고 어둡다. 특히 독약은 스릴러물에서 흔한 소재로 쓰이는데 이 책은 스릴러가 아님에도 묘하게 중독되는 느낌이다.

결혼 10주년을 맞이하여 남편과 런던 여행을 계획한 캐롤라인. 하지만 여행을 앞두고 남편의 불륜을 알게되고 상심한 채 혼자 런던 여행길에 오른다. 그녀는 우연히 진흙 뒤지기 체험을 하다 약병을 발견하게 되는데,아무래도 그 약병에 사연이 있는것 같아 대영도서관도 찾아가보고 웹사이트에서 약병에 대해 검색하는등 갖은 노력끝에 그 약병이 약제사라는 키워드와 관련이 있다는 걸 알아낸다. 결국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지도를 탐색한 끝에 찾아간 곳은 200년전 어느 약제사가 약을 제조한 공간이다. 이 공간은 철저히 비밀스럽게 만들어져 200년이 흐른 지금에도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약제사만의 공간이다. 역사학에 관심이 많은 캐롤라인은 어느새 남편과의 불화는 안중에도 없이 약제사의 비밀약방과 그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은밀히 조사하며 런던에서 시간을 보낸다.

캐롤라인이 그토록 궁금해하던 약제사의 정체는 넬라라는 여자다. 200년전 캐롤라인이 발견해낸 공간에서 혼자 비밀약방을 운영하는 넬라. 그녀는 병을 치료하는 약제를 팔고 있지만 동시에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독약을 은밀히 제조하고 판매하고 있다. 단, 남자들의 목숨만. 여자들에게 해가 가는 약을 팔지 않는 것이 넬라의 원칙이다. 어느 날 넬라의 약방에 엘리자라는 12살 소녀가 방문한다. 엘리자는 주인마님의 부탁으로 약을 구하러 넬라의 약방을 찾아간 것인데 엘리자는 이 일을 계기로 약의 효능이나 살인, 유령, 마법에 관한 것들에 관심을 갖게 된다. 하지만 엘리자의 실수때문에 넬라는 감옥에 갈 위기에 처하고 이를 우려해 엘리자는 마법의 약을 제조하고 그 효능이 발현되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한 편, 캐롤라인은 약제사에 대해 조사하는 중 남편을 살해한 용의자로 지목 받는다. 캐롤라인의 남편이 용서를 구하고자 캐롤라인이 머무는 호텔에 찾아왔다가 실수로 독성물질이 들어 있는 유칼립투스 오일을 복용한 것. 캐롤라인의 행적에 대해 조사하고, 독약에 대한 정보가 적혀있는 수첩을 본 경찰관은 남편과의 불화로 캐롤라인이 저지른 일이라고 의심한다.

이야기는 이제 두 가지 미스터리를 남긴다. 그래서 넬라와 엘리자는 경찰에 잡히지 않고 비밀 약방을 지켜냈는가. 또 하나의 의문은 캐롤라인이 과연 용의자 신세에서 벗어나 남편과의 관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독극물이라는 소재로 과거에서 현재를 넘나드는 세 여자의 심리적 갈등과 상황을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스토리에 결말이 너무 궁금해서 순식간에 책을 다 읽었다. 신뢰하던 사람에게 배신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복수를 하기 위해 독약을 이용해 살인을 저지르는 일. 신뢰하지 않았더라면 배신도 당하지 않았을 텐데 너무 슬프고 슬프다. 캐롤라인은 런던 여행을 통해 자신이 정말 원했던것이 남편과의 결혼이 아니었단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토록 꿈꿔왔던 역사공부를 더 하기로 결정한다. 캐롤라인의 삶을 마법처럼 바꿔놓은 것은 무엇일까. 진흙뒤지기 체험에서 약병을 운명처럼 발견하고 약제사의 정체를 끈질기게 파헤치며 흥분했던 그녀의 열정과 꿈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느껴져서 그녀를 계속 응원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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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내가 죽인 소녀 부크크오리지널 4
장은영 지음 / 부크크오리지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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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만 봐도 섬뜩하다. 한 소녀의 죽음을 둘러싸고 소녀를 누가, 왜 죽였는지에 관한 진실 공방이 펼쳐진다.
독서 동아리 회원인 A, B, AB ,O , 햄버거, 만년필, 회장.
특이하게도 각 인물의 이름이 아닌 별명식으로 이렇게 서로를 부르고 있다. 수능일 전날 밤에 소녀가 학교 교실에서 떨어져 죽었고 4년이나 흘렀다. 물론 죽은 이 소녀도 독서 동아리의 회원이었다. 오랜만에 술자리에서 뭉친 독서 동아리 회원들은 다음 날 산장에서 양손이 결박당한 채 아침을 맞이한다.

"여기 있는 너희들 중 누군가는 사람을 죽였다.일주일 안에 살인범을 찾아내지 못하면 너희 모두 쏴 죽여 버릴거야."

7명을 산장에 가둔 사람은 자신이 죽은 소녀의 아버지라고 밝히면서 범인을 찾아내라고 말한다. 일단 용의자가 7명이긴 한데, 이 용의자 7명을 납치해서 산장에 가둔 사람의 정체가 아이러니하다. 납치범이 결국 소녀의 아버지가 아니란 것이 탄로 나기 때문이다. 납치범이 소녀의 아버지가 아닌 이상 그도 용의자 선상에서 벗어나긴 어렵다. 그가 용의자 7명과 관련 있는 공범자인지, 소녀를 스토킹 한 스토커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산장에 갇힌 7명의 회원들은 열심히 범인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모든 추리소설의 용의자가 그러하듯, 그들은 소녀가 죽던 날 밤에 학교에서 A를 봤다는 둥 B를 봤다는 둥 목격자가 되기도 하고 자신의 알리바이를 얘기하는 등 본인은 소녀의 죽음과 관련이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 하지만 산장에서의 하룻밤이 지날수록 용의자들은 하나둘씩 살해당하고 결정적으로 창고에서 소녀의 일기장이 발견되면서부터는 사건과 관계없을 줄 알았던 인물마저 유력한 용의자가 된다.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과 반전으로 책장을 넘길수록 흥미진진해진다. 또한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궁금해서 끝까지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탐정이 개입하지 않고 용의자들끼리 진술을 하고 독자들이 그 안에서 범인을 찾는 방식인데 나는 이러한 전개를 특히 좋아한다. 읽으면서 계속 '십각관의 살인'이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십각관의 살인"도 사람들이 갇혀 있는 방에서 계속 살인이 일어나는데 밀실 살인이라는 트릭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소설 또한 독특한 밀실 트릭이 나오는데 기발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소녀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용의자들의 동기가 하나씩 밝혀지고, 4년 동안이나 범행 사실을 숨기고 지냈던 범인이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근데 이 찝찝한 기분은 뭐지? 그래서 소녀를 누가 죽였다는 거지 !? 결말 부분에서 혼동이 오긴 했는데 결국 범인은 한 사람으로 좁혀지고 죽는 사람은 너무 많다. 흠...꼭 결론을 이런 식으로 냈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범행 동기가 썩 명쾌하게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랄까. 분명 가독성도 좋고 기발한 소설이기는 한데 오래 기억에 남는 작품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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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의 오키나와 일본에서 한 달 살기 시리즈 3
김민주 지음 / 세나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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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서도 자기가 사는 고향을 벗어나 다른 지역에서 한 달을 사는 것이 힘든데 타국에서 한 달 살아보기라니!
뭐..한창 제주도에서 한 달 살아보기는 유행했던 것 같은데 요즘 같은 코시국엔 어림없는 소리지! 이 책의 저자는 2019년 3월 중순에 오키나와에 가서 한 달 동안 경험했던 모든 것들을 책으로 엮었다. 여행 계획을 세세하게 짜고 간 것이 아니어서 상황에 따라 오키나와 지역을 이동하고 숙소를 결정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너무 완벽한 여행은 재미없지 않은가!

나는 일 년간 도쿄에서 살았고 일본 곳곳을 여행해 보았다.
물론 오키나와에 간 적도 있다.
P.123"오키나와는 왜 이렇게 교통편이 안 좋아?"
책에서 가장 공감이 갔던 문장은 단연 이것이다. 오키나와는 나하공항에서 내리자마자 렌터카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렌트를 하지않으면 호텔 이동은 물론 관광지 이동도 어렵다. 하지만 일단 렌트를 하고 차에 타면 우리나라 제주도처럼 해안 도로를 따라 쓩쓩 달릴 수 있으니 그 맛에 오키나와를 가는 것 같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저자는 렌트를 하지 않았고 일본의 친구나 지인들의 도움으로 수월하게 여행을 한다. 이래서 연줄이 중요한 것이다ㅋㅋ

​맥주를 좋아하는 저자는 오리온 맥주 공장을 투어하기도 한다. 이것도 계획에 있던 일은 아니었고 만좌모 쪽에 숙소가 마음에 들어 연장을 해 둔 상태에서 여행 카페를 뒤지다가 맥주 공장을 투어하기로 한 것이다. 즉흥적이고 신박하다. 나는 만좌모에 갔었을 때 사진만 백만 장 찍고 온 기억이 난다. 그리고 카페를 엄청 찾아 돌아다녔던 기억도.. 저자는 저녁에 맥주를 마시며 게스트하우스에서 여러 사람들과 자유분방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펍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엄청 활발하고 사람과 사귀기는 것을 좋아하는 밝은 사람 같다.

저자는 오키나와 한 달 살이 이후 그 해 7월에 오키나와로 다시 떠난다. 미야코지마에서 은하수를 보고 스노콜링을 하겠다는 일념 하에 말이다. 미야코지마 바다에서 스노콜링을 하며 찍은 사진은 절로 감탄이 나온다. 이렇게 이쁜 물고기를 실제로 보면 어떤 기분일까.

​저자는 여행을 하면서 인연을 맺은 지인들에게 불고기와 해물파전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역시 불고기는 세계적으로 통하는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음식인 것 같다. 불고기 양념을 구하느라 고생한 에피소드도 재밌었고 파전 레시피를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전수했다는 대목에서는 나까지 흐뭇해졌다.

저자는 지인과 친구들 덕분에 오키나와 전통음식을 맛보고 일반 여행 카페에서 흔히 알려진 식당이 아닌 로컬 식당에도 발을 들인다. 역시 어디를 가든 현지인들이 인정하는 맛집이 최고인 듯하다. 오키나와 방언으로 적혀 있는 메뉴판을 보고 고개를 기우뚱하는 그녀에게 음식을 추천해 주는 좋은 친구들. 그녀에게 이런 친구들이 없었다면 오키나와 한 달 살기는 길게 느껴졌을 것 같다.

P.39"오키나와에서는 다들 이렇게 사람을 사귑니다. 내 친구의 친구는 내 친구나 마찬가지죠."
저자는 오키나와에서 만난 인연들과 바다낚시를 하기도 하는데 이것 또한 일반 여행객이 현지에서 하기 힘든 일이지 않은가! 유명한 관광지를 탐방하는 뻔한 인스타그램용 여행이 아닌 사람 간의 소통과 정을 느낄 수 있는 찐 여행이라 느껴진다. 나 역시 오키나와 여행을 하면서 좋은 추억들만 만들고 왔기에 오키나와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바다를 끼고 여유롭게 살아가는 오키나와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그 틈에서 살아가고 싶다. 아직은 꿈같은 일이지만 아예 못 이룰 꿈도 아니겠지. 잠깐이지만 책을 보면서 행복했고 설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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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젖어 - 나는 위로해 주었던 95개의 명화
손수천 지음 / 북산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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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점의 그림이 슬픔을 넘어서는 위로가 된 적이 있는가? 비단 그림뿐 아니라 한 편의 영화나 한 곡의 음악이 지친 마음을 달래주고 위로를 주었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림을 보고 느끼는 감정은 누구나 다를 것이기에 정답이란 없다. 그저 시각적으로 보고 느끼면 그뿐.

누군가는 한 점의 그림을 보고 옛날 추억에 잠기며 과거를 그리워할 수 있고, 누군가는 떠오르기도 싫은 기억이 떠올라 몸서리칠 수도 있다. 이렇듯 예기치 않게도 그림은 우리의 무의식을 건드려 당황하게 만들기도, 행복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자가 마련해 놓은 95점의 그림여행에 기꺼이 동승했다. 나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그림이 있다면 기꺼이 고통을 같이 느끼고 떨쳐버리고 싶어서. 물론 그런 그림은 드물겠지만. 책에는 저자에게 영향을 주었던 95점의 그림이 실려있다. 작품에 대한 해석보다는 저자 본인의 경험담이나 인생관이 실린 에세이 위주라서 더 재밌게 읽었다. 그림에 대한 사실적 해석만 실려있다면 너무 재미없지 않을까. 그래서 사사로운 에피소드나 비밀스러운 저자의 속마음이 흥미로웠고, 같은 작품을 보고도 저자가 나와 다른 관점에서 생각을 한다는 사실이 좀 놀랍기도 했다.

저자 역시 스물일곱 번째에 실린 그림을 보고 초등학교 때 첫 받아쓰기 시험을 떠올린다. 선생님이 한 아이를 혼 내키고 있고 주변에 둘러싸인 아이는 서럽게 울고 있다. 저자는 이 그림을 보고 백 점을 맞지 못하고 90점짜리 시험지를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던 하굣길을 떠올린 것인데 아마 그때 억울했던 감정이 저 그림 속 아이와 같았던 것이겠지.

저자는 김원의 희곡 '봄날에 가다'를 읽으면서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백혈병에 걸린 한 어린아이의 죽음에 분노가 따라왔고, 그래서 하늘나라에서만큼은 그 아이가 고통 없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염원이 하나의 그림을 소환한다.

P.135 "나는 희곡을 읽으며 일부러 에드바르트 뭉크의 '병든 아이'가 아니라 존 조지 브라운의 '소풍 바구니'를 떠올리려고 애썼다."

책 속의 실린 그림들이 조금 더 크고 선명하면 좋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은 더 가까이 마주할 수 있게 말이다. 이미 작품이 그려진 사연이나 화가의 배경을 알고 있는 것도 여러 개 있었는데, 이에 더하여 전혀 몰랐던 사실들도 알게 되어 더없이 좋은 시간이었다. 그림 하나를 놓고 당시 시대적 상황을 유추한다던가 화가의 사상을 집요하게 분석하는 것은 이제 그만. 철학, 종교, 정치적인 배경과 상황을 아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냥 마음으로 느끼는 시간을 가져 보자.

가장 좋아하는 책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사로잡은 그림은?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평안해지는 그림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즉시 대답할 수 있는가.

그림 감상은 사치라고 생각할 정도로 인생이 팍팍한가? 이 책 한 권이면 충분하다. 지금이라도 나를 사로잡은 그림 한 점을 찾아보자. 방에 걸어두고 볼 때마다 평안과 위로를 느껴보자. 꼭 방에 걸어두지 않더라도 컴퓨터 배경화면이나 프로필 사진으로 해두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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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의 어릿광대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7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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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는 서평입니다.

총 7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간 탐정 소설.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난 딱히 단편을 좋아하지 않지만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는 참을 수 없지!! 단편 제목이 참 간결하다. 한 편 한 편 다 읽어내려가고 다시 제목을 보니 딱 잘 지은 것 같다. 경찰 구사나기가 친구이자 물리학자인 유가와에게 조언을 구하면서 같이 사건을 해결하는 식인데 생각지도 못했던 트릭을 찾아내고 범행 수법을 유추해 나가는 과정이 무척 기발하고 흥미롭다.

내가 제일 재밌게 읽었던 건 <3장 들리다> 편이다. 언젠가부터 회사원 무쓰미는 알 수 없는 이명에 시달린다. 대개는 직장에서 일할 때였고 이명이 지속되는 시간은 2,3분 정도. 병원까지 찾아가 보았지만 딱히 원인을 찾을 수 없었고 그 사이에 같은 회사 부장인 하야미가 자택에서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석 달 전에 하야미 부장과 불륜 관계에 있던 여사원이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하야미의 죽음이 원한에 의한 타살인 건지 자살인 건지 구사나기는 혼란스러워한다. 어느 날, 몸이 안좋아 병원을 찾은 구사나기는 가야마라는 남자가 노인에게 지팡이를 휘두르며 난동을 피우고 폭력을 행사하는 걸 목격하게 되고 그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칼로 찔린다. 하지만 정작 가야마를 조사해 보니 그는 건실한 샐러리맨이었다. 가야마는 자신도 왜 난동을 피웠는지 알 수 없다며 계속 환청이 들린다고 호소했다. 가야마 역시 환청 때문에 병원을 찾은 것이었다. 심지어 우연의 일치인지 하야미 부장과 가야마는 같은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과연 하야미 부장은 자살일까, 타살일까. 범인이 이용한 범행 수법은 과연 무엇일까.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단편은 <1장 현혹하다>이다. 신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한 신흥 종교단체의 이야기이다. 이 종교의 신자 하나가 건물에서 뛰어내려 숨졌는데, 교주가 자신이 염력을 사용해서 신자를 추락시켰다고 자백한 것. 우연히 취재차 현장을 목격한 주간잡지 기자는 점점 그 종교에 빠져들게 되고 염력의 실체에 대해 궁금한 나머지, 유가와를 잡지사 편집장이라고 속이고는 같이 잠입 취재를 하러 간다. 그 곳에서 유가와는 염력의 실체에 대해 파헤치게 된다. 마지막에 교주의 정체는 뜻밖이었다. 교주가 모든 일을 계획하고 꾸민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가 최대의 피해자라니 반전이었다.

세 번째로 기억에 남는 단편은 <5장 보내다>편이다. 무얼 보내는 것일까. 이건 텔레파시에 관한 소재이다. 남편 이소가이는 퇴근 후 직원들과 술자리에서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아내의 여동생이 언니가 전화를 안 받는다며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고 빨리 집으로 들어가 보라고 한 것이다. 결국 이소가이는 집에서 아내가 쓰러져 있는 걸 발견한다. 이소가이의 아내와 처제는 쌍둥이이긴 하지만 구사나기는 동생의 텔레파시 이야기가 당최 미덥지 않다. 동생이 주장하는 바로는 자신과 언니의 마음은 이어져 있고 언니의 뇌가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 구사나기는 이번에도 유가와에게 도움을 청한다. 유가와는 이소가이에게 아내와 자신 주변 사람들의 사진을 갖고 오라고 해서 아내 동생에게 뇌자기를 연결하고 사진을 한 장씩 보여준다. 기억을 건드리는 사진이 있으면 뇌자기에 변화가 나타나 범인을 알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이런 과학적인 수사 방식도 모두 트릭이었고 유가와는 동생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도 간파한다. 과연 언니를 죽인 범인은 누구이고 동생은 왜 거짓말을 해야 했을까.

범행 수법을 알고 나면 허탈할 수도 있다. 하지만 범행 동기라든지 수법이 밝혀지기 전까지 결말이 너무 궁금해서 책을 놓기가 힘들다. 엘리트 형사 구사나기와, 물리학자답게 과학적으로 사건을 풀어나가는 유가와 콤비의 조합은 썩 잘 어울린다. 사실 과학적인 트릭보다는 사람의 심리를 먼저 간파해서 범인을 색출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서로 티격태격하다가도 사건 앞에서 한없이 진지해지는 그들은 이 시대 진정한 뇌섹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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