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점의 그림이 슬픔을 넘어서는 위로가 된 적이 있는가? 비단 그림뿐 아니라 한 편의 영화나 한 곡의 음악이 지친 마음을 달래주고 위로를 주었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림을 보고 느끼는 감정은 누구나 다를 것이기에 정답이란 없다. 그저 시각적으로 보고 느끼면 그뿐.누군가는 한 점의 그림을 보고 옛날 추억에 잠기며 과거를 그리워할 수 있고, 누군가는 떠오르기도 싫은 기억이 떠올라 몸서리칠 수도 있다. 이렇듯 예기치 않게도 그림은 우리의 무의식을 건드려 당황하게 만들기도, 행복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자가 마련해 놓은 95점의 그림여행에 기꺼이 동승했다. 나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그림이 있다면 기꺼이 고통을 같이 느끼고 떨쳐버리고 싶어서. 물론 그런 그림은 드물겠지만. 책에는 저자에게 영향을 주었던 95점의 그림이 실려있다. 작품에 대한 해석보다는 저자 본인의 경험담이나 인생관이 실린 에세이 위주라서 더 재밌게 읽었다. 그림에 대한 사실적 해석만 실려있다면 너무 재미없지 않을까. 그래서 사사로운 에피소드나 비밀스러운 저자의 속마음이 흥미로웠고, 같은 작품을 보고도 저자가 나와 다른 관점에서 생각을 한다는 사실이 좀 놀랍기도 했다. 저자 역시 스물일곱 번째에 실린 그림을 보고 초등학교 때 첫 받아쓰기 시험을 떠올린다. 선생님이 한 아이를 혼 내키고 있고 주변에 둘러싸인 아이는 서럽게 울고 있다. 저자는 이 그림을 보고 백 점을 맞지 못하고 90점짜리 시험지를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던 하굣길을 떠올린 것인데 아마 그때 억울했던 감정이 저 그림 속 아이와 같았던 것이겠지.저자는 김원의 희곡 '봄날에 가다'를 읽으면서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백혈병에 걸린 한 어린아이의 죽음에 분노가 따라왔고, 그래서 하늘나라에서만큼은 그 아이가 고통 없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염원이 하나의 그림을 소환한다.P.135 "나는 희곡을 읽으며 일부러 에드바르트 뭉크의 '병든 아이'가 아니라 존 조지 브라운의 '소풍 바구니'를 떠올리려고 애썼다."책 속의 실린 그림들이 조금 더 크고 선명하면 좋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은 더 가까이 마주할 수 있게 말이다. 이미 작품이 그려진 사연이나 화가의 배경을 알고 있는 것도 여러 개 있었는데, 이에 더하여 전혀 몰랐던 사실들도 알게 되어 더없이 좋은 시간이었다. 그림 하나를 놓고 당시 시대적 상황을 유추한다던가 화가의 사상을 집요하게 분석하는 것은 이제 그만. 철학, 종교, 정치적인 배경과 상황을 아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냥 마음으로 느끼는 시간을 가져 보자. 가장 좋아하는 책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사로잡은 그림은?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평안해지는 그림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즉시 대답할 수 있는가. 그림 감상은 사치라고 생각할 정도로 인생이 팍팍한가? 이 책 한 권이면 충분하다. 지금이라도 나를 사로잡은 그림 한 점을 찾아보자. 방에 걸어두고 볼 때마다 평안과 위로를 느껴보자. 꼭 방에 걸어두지 않더라도 컴퓨터 배경화면이나 프로필 사진으로 해두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