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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삼킨 소년
트렌트 돌턴 지음, 이영아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1월
평점 :
책은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담은 장편 소설이자, 열두 살 소년 엘리의 특별하고도 비범한 삶을 담아낸 성장소설이다. 표지가 너무 예쁘다. 소년이 고개를 웅크리고 달 웅덩이를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고 큰 새가 소년과 겹쳐 있는 그림은 책을 다 읽어야만 이해 할 수 있는, 어쩌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일종의 상징이자 메시지 역할을 한다.
"인간에게는 자유가 제일 중요하다.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노력한 인간을 탓하면 안 된다." p.113
왜 탈옥을 시도했느냐는 질문에 슬림 할아버지가 한 말이다. 그의 몇 번에 걸친 탈옥 이야기는 기사화될 정도로 유명했고, 모두에게 전설의 탈옥왕으로 불리지만 엘리에게 있어서는 언제나 다정한 말동무가 되어주는 친구 같은 할아버지다. 호기심 많은 엘리가 궁금한 것을 물어볼 때마다 그럴싸하게 대답해 주는데 슬림 할아버지의 명언 같은 말이 정곡을 찌른다.
"곁을 지켜준다고 해서 꼭 옆에 있을 필요는 없어."p.119
마약에 빠진 엄마와 마약상 새아빠, 말을 안하고 허공에 글씨를 쓰는 형, 그리고 이웃이자 친구인 슬림 할아버지. 결코 평범하지 않은 가족들 속에서, 아니 평범한 어른이 하나 없는 환경 속에서 엘리는 좋은 어른이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자문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과감한 모험을 펼쳐 나간다.
마약상이었던 새아빠는 배신을 당해 악당들에게 끌려가고 엄마는 감방에 갇히게 된다. 행운의 상징으로 여겼던 오른손 검지마저 잃게 된 엘리. 최악의 상황이지만 엘리는 손가락을 잃은 아픔보다 잡혀간 새아빠와 감방에서 외롭게 있을 엄마를 걱정하고 그리워한다. 어른보다 더 어른 같은 엘리. 엘리는 이때 결심한 것일까? 악당들 속에서 영웅이 되겠노라고.
"아저씨에게는 혹시 영웅이 있나요? 어떻게 하면 영웅이 될까요? 자기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면 영웅이 되나 봐요.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고, 밖으로 나가 싸우는 거죠."p.236
엘리에게는 두 가지 어른밖에 없다. 좋은 어른과 나쁜 어른. 손가락 하나를 잃고 병원에 입원한 채로 슬림 할아버지의 감방 동료였던 알렉스에게 편지를 쓸 때조차도 알렉스에게 묻는다. 아저씨의 아빠는 좋은 어른이었냐고.
어쩌면 엘리는 알렉스에게 편지를 쓰면서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겠노라고 의지를 굳힌 것이 아닐는지.
소설 속 인물 중에서 슬림 할아버지 다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인물은 알렉스이다. 소설을 영화화한다면 알렉스는 씬 스틸러가 아닐까. 비중 없는 깜짝 등장인물이지만 알렉스는 출소 후에 엘리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매력 있고 멋있는 사람이다. 엘리가 아무 목적 없이 순수하게 그에게 편지를 쓴 것처럼 알렉스 역시 순수한 마음으로 엘리를 대하고 좋은 어른으로 거듭난 것이다.
엘리가 하고 싶은 일은 범죄부 기자가 되는 것. 왜 하필 범죄부 기자일까? 그렇게 해서라도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나쁜 어른들을 소탕하는 영웅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열 일곱 살이 된 엘리는 수습기자 지원을 위해 면접을 보러 가고 쭈욱 동경하고 좋아해왔던 여인과 같이 일하게 되는 행운까지 거머쥔다. 그녀와 함께 악당들의 정체를 파헤치면서 위험에 처할 때도 엘리는 이제 세상에 없는 슬림 할아버지와 끊임없이 마음속 대화를 나눈다.
"난 좋은 사람이 하는 일을 할 거예요, 슬림 할아버지. 좋은 사람은 무모하고, 용감하고, 본능적인 선택으로 움직이죠. 이게 내 선택이에요, 할아버지. 쉬운 일이 아니라 옳은 일을 하는 거죠."p.627
결국 엘리의 최종 목표는 좋은 어른,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었을까. 그리고 옳은 일을 하는 것.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 좋은 사람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고 싶은 엘리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엘리 곁에 나쁜 어른들보다 좋은 어른들이 훨씬 많았다는 것.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했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했던 용감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소년, 엘리를 알게 되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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