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이 없으면 가난해지고 - 여자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사적인 이야기
김박은경 지음 / 소명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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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이 없으면 가난해진다니!! 뭔가 비장하기도 하고 멋있는 표현 같다. 책 안에는 작가만의 비밀이 가득가득할 것 같아서 목차를 보며 설레었다. 하지만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비밀스럽다기보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고민하고 고뇌하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여자사람으로서의 지극히 일상적인 삶을 보여준다.

책에는 시인이나 소설가의 문구, 영화 속 대사 등이 자주 나온다. 덕분에 작가가 소개해 주는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몰랐던 외국 시인이나 소설가도 검색해 보고 말이다. 하나의 책에서 작가가 추천해 주는 책이나 책의 글귀들을 마주하는 것이 좋다. 작가 역시 어느 작가의 책을 읽다가 책 소개가 나오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 책을 읽는다고 한다.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김금희의 '너무 한낮의 연애'도 읽어봐야겠다. 사랑하는 건 맞지만 내일은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니...우와!!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충격이다.

P.305 "사랑은 언제나 순간의 것. 영원히 너를 사랑한다는 말은 비문에 속한다. 영원은 언제나 불가능한 것, 불가해한 것."

작가의 글은 다소 길고 문장의 호흡이 가파르다. 이런 글은 여유 있을 때 읽어야 좋다. 시간에 조바심 내지 않도록. 오후 주말에 침대에 기대어 읽다가 까무룩 잠이 들어도 좋을, 그런 여유를 가지고 있을 때 말이다. 작가는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쓴 것 같다. 왜 여기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생뚱맞은 이야기가 나오지만 글의 제목을 보고 아하! 이래서 이런 이야기를.. 이런 식이다. 대놓고 자신이 얼마나 가족을 사랑하는지 말하지는 않지만 작가가 가족을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느껴진다. 하지만 아이들의 엄마로서 오롯이 희생하는 여자가 아니라서 좋았다. 아이들과 남편을 사랑하지만 그들을 사랑하는 만큼 지금 작가가 하는 일을 중요히 여기고 작가의 현재와 미래의 삶을 사랑하고 있어서 멋있고 부러웠다. 나로 인해 책임질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그들의 미래를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비혼과 아이 낳기를 고민했다던 작가의 이야기는 우리 여성들 모두의 이야기이도 하니까.

P.170 "언제든 스스로를 믿을 것. 세상에 믿을 건 그것 하나뿐이니까. 거대하고 무한하여 상상 이상일 테니까."

어렸을 적 좋은 추억을 만들어준, 지금은 연로하신 아버지와의 일들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고 따뜻하게 한다.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자신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아버지는 딸을 더 사랑하고 있다는 대목을 읽으며 마음이 울컥해진다. 엄마한테 징징거리고 싶어도, 일찍 돌아가신 엄마는 이제 곁에 없어서, 그럴 수도 없는 딸의 서러운 마음이 느껴져서 더욱 슬프고 말이다. 엄마한테 잘해주지 못한 기억만 생각나서 후회하는 딸의 절절한 마음.

P.266 "기침이 멈추지 않으면 울고 싶어진다. 참을 수가 없고 숨길 수가 없으니까. 아무리 기침을 해도 달려올 엄마가 없으니까."

P.332 "타인은 그야말로 '지옥'이고, 그 지옥에서 나는 을이다.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불안정한 거취 같다. 그런 자리는, 그런 관계는 빨리 벗어나는 게 좋겠다."

나 외에는 타인이다. 가족조차도. 세상 누구도 나와 같을 수 없다.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면 싸우지 않고 갈등 없이 잘 지낼 수 있을까. 타인과의 관계가 이상하게 삐걱거릴 때는 거리를 두라고 작가는 말한다. 완전 공감이다. 거리를 둠으로써 그 사람과 나와의 인연이 여기서 이렇게 끝인 거구나 하고 자연스레 연이 끊기기도 하겠지만 연이 계속 이어져있다면 거리를 두더라도 어떻게든 다시 이어져가겠지. 누구에게 허락을 구할 일도 아니고 인위적으로 사람 사이의 연을 갖다 붙일 수도 없는 노릇.

사는 게 바빠서 점점 잊히고, 서로의 손을 놓아버린 친구와 지인들에게 쓴 편지글 같은 글도 참 좋았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모르나 어떻게든 잘 살고 있겠지라는 믿음이 동반된, 한때 시절 인연을 같이 보낸 동무에게 작가는 참 다정하게도 안부를 묻고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루하루 글을 쓰고 기록하고, 읽기를 권장한다. 비밀을 만들고 공유하고 그것을 쓰라고.

작가의 독려 덕분인지, 잠시나마 나도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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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T 사용설명서 - 블록체인과 메타버스가 바꿀 거의 모든 돈의 미래 NFT 사용설명서
맷 포트나우.큐해리슨 테리 지음, 남경보 옮김, 이장우 감수 / 여의도책방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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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콜린스 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가 NFT라고 뉴스에서 보도하는 걸 봤다. NFT가 뭔지 몰라서 여기저기 검색해 본 1인. 검색해도 잘 모르겠다. 워낙 NFT에 대한 지식이 1도 없기도 했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여전히 생소하기만 하고 내가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자신이 없다. 지금은 누가 NFT에 대해 물어본다면 어설프게나마 설명은 할 수 있을 정도? 책을 읽기 전에는 막연하게 NFT에 대한 개념을 디지털 창작물에 대한 소유권, 차세대 블루오션,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는 거래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p.299 "오늘 첫 NFT를 사게 된다면 당신은 전 세계에서 NFT를 수집한 최초의 수백만 명 안에 들게 될 것이다. 트위터에 처음 모였던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팔로어를 모을 기회를 얻었다."

무언가가 한창 대세로 자리 잡아 너도나도 하고 있을 때 그것은 이미 늦은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후발주자로 뒤늦게 참여 했을 땐 거의 끝물이라는 이야기고 더 이상 득을 볼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지금 시의적절하게 잘 나온 것 같고 NFT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어찌 보면 주식이나 비트코인과 같은 맥락이기도 하고 앞으로 NFT 시장이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에서 도박성 또한 없지 않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과 엔터테인트먼트 이곳저곳에서 NFT 시장에 너도나도 투자하고 있다는 점이 심상치 않긴 하다.

p262 "모든 NFT가 대박을 내서 수십만 달러의 가격에 판매될 수는 없다. NFT 판매의 성패는 바로 '커뮤니티'에 달려 있다."

NFT는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처럼 해시태그나 탐색 등으로 콘텐츠의 확산이 일어나는 게 쉽지 않다고 한다. 이러한 알고리즘으로 구매자들이 방문하는 게 아니라 구매자들이 NFT 웹페이지를 직접 방문하게끔 만들어야 하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올바른 마케팅과 커뮤니티 구축 전략이 필요하다. 책에서는 수집가 커뮤니티 구축하는 법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수집가 커뮤니티가 중요한 이유는 수집가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일회성 NFT 판매를 위한 단기 전략이 아닌, 장기적인 성장 전략을 완성하기 위함이다.

콘텐츠를 만들어 놓았으면 당연히 팔아야 이익이 되는 법! NFT 판매 방식에는 세 가지가 있다. 구매 제안 기다리기, 고정 가격 정하기, 경매 붙이기이다. 꽤 구체적으로 알려주기 때문에 초보자라도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듯하다.

블록체인, 메타마스크 지갑, 암호화폐, 가스피에 대한 용어도 몰랐었는데 이제 이런 용어에 대한 개념이 잡혀서 경제신문이나 뉴스에서 이러한 용어가 나오면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모든 것이 디지털화될수록 해킹에 대한 위험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웹사이트 사칭, 이메일 사기, 가짜 모바일 앱 등등에 대한 해킹을 넘어서 NFT를 보관하는 블록체인 지갑이나 마켓 플레이스의 계정도 얼마든지 해킹을 당할 수 있다. 해킹을 당하지 않는 법에 대해서도 저자는 자세히 설명해 준다.


NFT의 가치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지는 수집품의 가치가 시장의 수요에 좌우되기 때문에 단언하기 어렵다. 변수도, 미지수도 너무 많다. 누가 어떠한 NFT 창작물을 만들어내서 대박을 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창작자들의 로열티 문제나 검증 절차, 저작권 보호 절차 등을 깔끔하게 진행할 수 있다는 데서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아 보이긴 한다. 잘만 이용하면 개인의 이익은 물론, 화폐 거래를 디지털 가상 토큰으로 투명하게 할 수 있으니까. 앞으로 NFT 시장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행착오와 오류를 겪어야 하겠지만 거대한 자본시장과 투자시장에서 NFT가 갖는 의미는 이미 커질대로 커졌다. 아무튼 결론은, 이 책은 NFT세계에 입문하기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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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58 - 《타임》에세이스트가 권하는, 개정2판
로저 로젠블라트 지음, 권진욱 옮김 / 나무생각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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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살아가면서 인간 관계를 더 유들유들하게, 그리고 조금이라도 골칫거리 없이 살아가기 위한 삶의 처세술이 적혀 있는 책이다. 저자가 직접 겪은 경험담도 있고 지인의 이야기들도 있어서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은 아니다. 그러나 읽으면서 웃음이 배어 나오기도 하고 기발한 법칙들에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지식이나 지혜를 얻고자 진지하게 덤벼들며 읽기에 이 책은 너무 유쾌하고 가볍다. 그리고 저자가 말하고 있는 58가지의 법칙은 생각보다 실천하기 쉽다.

물론, 받아들이기 힘든 법칙도 있다. 하지만 글을 읽고 있는 와중에 왠지 신빙성이 있어서 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와는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의 이론과 입장을 읽고 있으니 신박하고 재밌었다. 역시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는 방식도 중요한 것 같다.

P.9 "세상살이에서 어떤 자극을 받았을 때 타성으로 굳어버린 반응과 충돌하지 않도록 경계하라."

각 법칙에는 차례대로 숫자가 붙여져 있다. 저자는 번호를 기억해두면 편할 것이라고 말한다. 책을 내려놓고는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고민하고 심각하다고 해서 세상은 달라지는 것이 없는데 말이다. 인간관계에서 갖는 고정관념과 타성으로 굳어버린 반응들이 나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고방식과 틀에 굳어진 관념들을 조금만 비틀고 전환해도 창의적이고 좀 더 유들유들하게 살 수 있을 텐데.

P.144 "사람은 어떻게 죽는가보다 어떻게 사는가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며, 한 사람의 인생을 재는 가장 좋은 척도는 그의 삶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

저자는 명성을 좇는 삶을 내려놓고 타인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말한다. 인기와 명성이 있는 삶을 살고 싶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꾸준하고 건실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것. 현대인이 깨닫기 가장 어려운 덕목 중 하나가 바로 꾸준히 능력을 쌓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새로움, 혁신, 흥분이라는 개념과는 반대되는 개념인 꾸준함과 묵묵함이 결국에는 만족스러운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꾸준히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저자의 시크함이 묻어나는 58가지 법칙들. 인정하기 싫지만 곱씹어 생각하면 맞는 말이 많아서 수긍하게 된다는 점이 씁쓸하다. 객관적이고도 통찰력 있는 저자의 조언과 뼈 있는 말들이 결국 법칙들을 만들어내고 마치 금지조항처럼 차례대로 번호와 함께 적혀 있는 책이지만 인간관계에서나 삶을 살아갈 때 도움이 될 것 같다. 분명 맞는 말이 더 많아서이기도 하고 나도 유쾌하게 나이 들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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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하스 의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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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낙엽이 뒹굴고 쓸쓸한 정취가 공기를 타고 맴돌면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외롭고도 담담한, 혹은 세련되고 시크한 문체가 생각난다. 에쿠니 가오리 작품을 거의 다 읽어봤지만 그중 웨하스 의자는 에쿠니 가오리 소설 중에서도 가장 쓸쓸함이 묻어나면서도 죽음과 절망에 대해 객관적인 사유를 할 수 있게 한다.

​소설 속 주요 등장인물은 네 명이다. 유부남을 애인으로 두고 있는 나, 대학원생과 사귀고 있는 동생. 특이하게도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가 흘러가는데 주인공 나는 과거로부터 얽매여 있다고 해야 할지, 과거의 기억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해야 할지...특히 현재를 살아가면서도 부모님과의 기억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특별히 부모님과 애틋했던 것은 아니지만 죽음은 슬픈 것이 아니라는 아빠의 말, 한밤에 부모님이 레코드를 듣던 기억, 부모님과 친했던 지인들과의 추억이 그녀의 뇌리 속에 계속 남아있다. 주인공 나는 엄마의 재능을 물려받아 그림 그리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아빠는 교통사고, 엄마는 암으로 일찍 돌아가셨고 동생과는 따로 살고 있지만 연락을 자주 하며 지낸다. 심지어 각자의 애인들을 끼고 밥을 먹고 놀러 가기도 하고 말이다.

P.127 "아빠도 엄마도 죽어 이 지상에 없는데, 여기서 나와 애인과 동생과 대학원생이 이렇게 그들의 레코드를 듣다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묘하고, 그러나 아주 자유로운."

P.166 "나는 자고,일하고, 산책하고,목욕하고,그리고 또 잔다. 가끔 애인이 찾아온다. 우리는 음악을 듣고, 밥을 먹고, 사랑을 나누고, 또 만나자는 말을 하고 헤어진다. 내 생활은 평화롭고, 안정되어 있고, 덜한 것도 더한 것도 없다."

나는 이 문장이 너무나도 쓸쓸하다. 평화와 안정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지만 무미건조한 일상을 숨기면서 처절하게 외롭다고 소리치고 있는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많은 이들의 죽음을 목격해서일까. 죽음은 딱히 슬픈 것이 아니라는 것, 누구나 언젠가 맞이하는 것이 죽음이고 여기와는 다른 세계에서 머무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며 생의 순간순간마다 죽음에 대해 각인하며 살아간다. 서른 여덟 살 밖에 안된 여자가 벌써 죽음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녀를 지배하는 생각의 고리들- 갇힌 세상, 세계의 끝, 절망, 그리고 죽음.

언니는 유부남을 사귀고 있고, 동생의 남친인 대학원생에게는 4년이나 사귄 여자가 따로 있지만 이 사실을 알고도 자매는 서로의 연애에 대해 터치를 하지 않는다. 이 소설이 2004년도에 나왔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세련되고 쿨하다.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그냥 본인이 좋아하면 그뿐.

P.86 "왜일까. 나는 이제 어른인데, 때로 어린아이의 시간에 갇혀 있는듯한 기분이 든다."

어린 시절 딱히 불행한 일을 겪은 것도 아닌데 주인공 나는 초등학교 시절을 고통스럽게 기억한다.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자신을 스파이로 생각하며 스파이 놀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텼을 만큼. 자신이 어른인 것을 자각하고 있긴 하지만 갇혀 있는 또 다른 내 안에는 어린아이가 있어서 그때만큼은 무방비 상태가 되어버린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잠만 자고 싶은- 그러다 또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p.105 "나와 애인의 계획은 완벽하다. 아무 문제도 없다. 아무 문제도. 다만, 그날이 영원히 오지 않으리란 것을 내가 알고 있다는 한 가지 점만 제외하면."

위태위태한 그녀의 연애. 애인이 곁에 없으면 어김없이 절망이 그녀를 찾아온다. 이렇게 매일 외로워할 거면 빨리 다른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거나 동생과 같이 살던가 하지..하지만 그녀는 애인에게 한 번도 이혼하라거나 결혼하자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그녀의 사무치는 고독과 외로움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애인이 유부남이 아니라면 그녀의 외로움이 덜어지는 것일까. 그녀 곁을 떠나지 않고 그녀가 필요할 때 곁에 있어주는 사람을 만난다면 절망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일까.

P.238 "나는 애인에게, 자살하려고 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려 했다. 자연스럽게 죽을 것이란 것을, 그냥 알고 있었을 뿐이라고."

갇혀있는 걸 싫어하고 자유를 추구하는 그녀에게 어쩌면 애인이란 존재는 그녀를 가장 구속하는 덫이자 절망이다. 그녀는 애인이랑 헤어진 후에 막연히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자연스럽게 죽을 것이라고. 그녀 말대로 자살이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것도 안 먹고 그저 가만히 누워서 죽음이 올 때까지 말이다.

​고독했던 그녀는 항상 죽음을 의식하고 살지만 그녀에게 있어 죽음은 슬픈 일도 아니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유, 진정한 해방을 꿈꾸지만 그녀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자신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스파이라는 것을. 웨하스 의자라는 책의 제목. 당연히 가질 수 없고 영원히 소유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지만 한때는 주인공에게 행복을 상징했던, 그러나 결국 허망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그 웨하스 의자가 갖는 상징성에 마음이 아프다. 어쩜 책의 제목이 찰떡이다. 이래서 나는 에쿠니 가오리 작품을 좋아할 수밖에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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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 흔들리는 나를 일으켜 줄 마음 처방전
오왕근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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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니 인간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나온다. 그런데 오왕근 법사의 책 제목은 운명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라니 이게 무슨 말일까. 사주팔자나 운명은 아리송하고도 아이러니하지만 종교를 막론하고 누구나 힘들고 답답할 때는 한 번쯤 사주팔자를 보러 가거나 점을 쳐서 자신의 운을 상승시키고자 한다. 설사 점이나 사주팔자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심심풀이로 해가 바뀔 때마다 신년운을 점치거나 가볍게 타로를 보기도 하고 말이다.

오왕근 법사는 각종 방송이나 유튜브등 나름 매체에서 얼굴이 알려져 있다. 책 띠지에 환하게 웃고 있는 작가를 보니 나도 절로 마음이 평안해진다. 작가의 이력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지만 그가 법사라는 신분에 이르기까지, 한 분야에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전문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고생담과 경험이 책에 낱낱이 적혀 있어 역시 모든 일은 노력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오왕근 법사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사실 자기 계발서나 마음 치유서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문장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신을 모시고 있는 역술가 또는 예언가의 입장에서 써 내려간 글들이 나의 무릎을 치게 만들고 곳곳에 뼈를 때리는 문장이 책 곳곳에 숨어 있어 큰 깨달음을 주었다. 그리고 내가 한 치 앞도 못 보는 어리석은 인간이라는 걸 다시금 알았다. 오왕근 법사는 인생을 바꾸려면 최소 5년에서 10년을 보라고 말한다. 이 말에 나는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당장 눈앞의 일들만 생각하는 근시안적인 사고를 가진 나는 이번 일만 이렇게 넘어가게 해달라고, 제발 이번에만 이렇게 지나가면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사주팔자나 운명을 믿지 않는 사람은 이 책을 꺼려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이런 것들을 맹신하지는 않지만 아예 무시하면서 사는 것도 아니기에 어느 정도 이쪽에 흥미가 있다. 작가가 역술인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현재 상담을 하면서 개인적인 고충이나 에피소드들이 나와 있는데 이런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오왕근 법사가 던지고 있는 메세지는 명확하다. 말 그대로 운명은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 죽는 순간까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 사람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억지로 사주팔자와 신을 믿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가 있든 없든 욕심을 내려놓고, 운명이나 사주팔자에 갇히지 말고 자신의 분수에 맞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아가면 된다. 단지 자신이 선택한 운명에 책임을 지면 되는 것이다.

꿈과 목표를 이뤘다고 해서 행복할까? 얼마 전 안타까운 뉴스를 보았다. 그토록 바라던 간호사 시험에 가까스로 합격한 기쁨도 잠시, 선배 간호사들에게 혹독한 갈굼과 괴롭힘을 당해 목숨을 끊은 23살 후배 간호사의 이야기였다. 차라리 이 여성이 간호사 시험에 합격하지 않고 다른 직업을 가졌더라면 ... 이처럼 인생은 모를 일이다. 행복한 순간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고 괴로운 순간도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이다.

우리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사람에게 상처를 받지만 결국 사람에게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동물이니까. 오왕근 법사도 사람에게 환멸을 느끼고 속세를 떠나 꽁꽁 숨어버렸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나 역시 지겨운 인간들에게 벗어나 이제 다시는 누구와도 인연을 맺지 말아야지 마음을 닫고 산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을 먹어도 사람 인연은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만날 사람은 만나지고 헤어지게 될 인연은 억지로 붙잡아도 떠나기 마련이라는 것을 이제 알고 있다. 그냥 받아들이고 좋은 사람은 내 곁에 두면 된다.

오왕근 법사가 들려주는 말들은 명쾌하고 단순하다. 내가 지금 괴로운 것은 욕심 때문이라는 것! 맞는 말이다. 욕심을 짊어지고 살면 항상 뺏길까 봐 노심초사 불안하고 자기 욕심만을 채우기 위해 남을 배려하지 않고 살다가 결과적으로는 망하게 되는 것이다. 욕심을 내려놓고 살아야지 하다가도 나도 모르게 남을 질투하고 시기하면서 못되게 굴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욕심을 내려놓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책을 읽으며 나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좋은 말들이 많아서 읽는 것 자체만으로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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