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마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21년 12월
평점 :
품절
소마의 여정은 험난하고 거대하다. 모든 것을 잃었던 소년이 세상의 주인이 되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을 담은, 그리고 다시 모든 것을 잃고 죽음을 맞을 때까지의 여정.
무에서 유를 낳는다는 말이 있지만 가족을 잃고 철저히 혼자였던 소마는 어떻게 세상을 호령하는 영웅이 되었을까. 한낱 나약했던 인간이 어떻게 그런 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을까. 초반에는 한 인간의 영웅적인 모습을 과장스럽게 담은 소설이라고 생각했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소마와 함께 웃었고 소마와 함께 울었다.
소설에는 어떤 시대나 지명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다. 가상의 공간과 시간, 생소한 신의 이름들. 그래서 소마가 살았던 시대도 모르겠고 어떤 신을 믿었는지도 모른다. 소마의 고향에서 집들이 다 불타고, 마을 사람들이 재로 변했을 때 소마는 엄마의 시체 옆에서 체념하며 죽음을 기다린다. 하지만 죽어가는 소마를 발견한 어떤 남자가 소마를 어딘가로 데려가고 소마는 낯선 저택에서 말도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곳에서 소마는 사무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한나를 만나게 된다. 한나는 소마를 아들처럼 여긴다. 둘은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 적이 없지만 정서적으로 서로 통하는 걸 느끼는 사이다. 소마가 그 저택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그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었을까. 그래서 헤렌도 만나지 않고 왕립 기사단으로 들어가지 않았더라면...소마가 왕립 기사단에 들어간 것은 그의 운명을 크게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된다. 왕립 기사단의 유일한 여자였던 고네를 통해 소마는 세상에 대한 진실을 배우고 관심을 갖게 된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까지도.
P. 268 "충분했는가, 만족했는가, 이만하면 되었는가, 아니면 지쳤는가. 그것이 그를 멈춰 세운다."
소마에게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너무 어릴 적에 부모님의 죽음을 목격해버렸고 부모님의 복수까지 마친 그에게, 남아 있는 삶은 그저 그만 살아도 좋고 언제 끝나도 아쉽지 않은 나날이었을까.
P.196 " 죽음은 악이 아니다. 죽음은 고통이 아니다. 죽음은 부정이 아니다. 죽음은 악의 소멸이고, 고통의 종식이며, 그래서 긍정이다. 죽음은 안식과 평화다."
끊임없이 내면의 자아와 대화를 하는 소마. 복수를 이루고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가 돼버린 소마는 더 이상 살 이유를 찾지 못한다. 한때 자신을 추방된 이방인이자 버려진 개라고 생각했던 소마는 세상을 다 가진 왕이 되었을 때 권태로움을 이기지 못한다. 자신의 어리석은 욕망을 뒤늦게 탓하고 결국 파멸에 이르지만 작가가 소마를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그래서 소마의 삶은 비극적인가. 나는 그의 삶이 비극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는 최고 영웅의 자리까지 올라선 인물이고 부모의 복수에도 성공했음에도 한 번도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뚜렷한 목표와 강인한 의지를 지닌 매혹적인 캐릭터임에는 분명하다. 항상 죽음을 의식하고 살았던 소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했던 그의 처연한 삶이 애달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