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으로 쓰는 춤
김윤정 지음 / 오렌지디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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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와 관객의 관계, 무대와 예술가의 관계
무대와 세상의 관계, 나와 타자의 관계 등
치열한 사유의 흔적들과
그 결과로 나온 철학적 금언들이
무대를 둘러싸고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1장. 무대와 인생-삶이라는 예술에 대하여
2장. 친밀한 이방인-독일살이와 세계 여행기
3장. 나를 채우는 조각들-보고 읽는 것에 대한 단상

총 3장으로 나뉘는데
1장에서는, 관객의 입장에서 늘 궁금하지만
직접 체험하기는 어려운
무대를 기획하고 무대에 오르는 사람의
작품을 둘러싼 전천후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호기심과 감탄 가득한 마음으로
초행길을 누비는 여행자가 될 수 있었다.

2장에서는 독일에서 수십 년 거주하며
이방인이자 현지인으로서 그동안 보고 느낀
독일살이 이야기와 독일인들 이야기가 나온다.

해외 공연과 개인 여행을 위해 떠난 곳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경험담들이 생생하게 다가오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이 부분이었다.
여러 안무가들과 아르헨티나에서 협업을 했을 때
한 관객으로부터 받은 질문에 답변하는 내용이다.

📚아무래도 여러 나라의 안무가들이
모인 공연이다 보니
어떤 한국적 정서를 가지고 작업했는지가
궁금했던 것 같았다. 나의 대답은 이러했다.
“나는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작품을 하고 표현할 때
단 한 번도 내가 한국인으로서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
내가 고민하고 표현하는 모든 것들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한국적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거부할 수 없는 환경과 유전자.
받아들이고 싶든 부인하고 싶든
나기 전부터 내 것이었고
앞으로도 내 것으로 남을 특질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내면 가장 깊은 곳에 뿌리내린 모습들.

내가 창작하거나 글 쓴 것들을
만약 다른 나라 문화권에서 접한다면
그 사람들도 내 작품들 속에서
‘한국적이다’ 하는 것들을 느끼게 될까?

문득 피아니스트 박종화의 <Nunaya>와
소프라노 손지수의 <님이여 그때만을>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보여주고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는 데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모습.
어쩌면 한국인에게는 이런 것들 역시
한국적인 모습일지도.

1~3장 전체에서, 특히 3장에서는
작품 세계를 더 알아가고 싶은 작가들도 만났고
첫 만남에서 흥미를 많이 끈
새로운 예술가들과 책도 만났다.

쿠사마 야요이와 그의 작품들
<파도>(버지니아 울프)
<지구별 여행자>(류시화)
<공간의 시학>(가스통 바슐라르)
<신의 손>(파올로 소렌티노) 등..

그러면서 작품을 더 잘 감상하고 읽기 위해
또, 더 좋은 기록을 남기고 리뷰를 쓰기 위해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겠다는 성찰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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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1인분만 할게요
이서기 지음 / 책수레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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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MZ 세대로서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고
책 속에 마음을 아프게 하는 구석도 있었다.

‘작중 이서기’가 자신이 받는 부당한 대우와
속마음으로만 비판하는 꼰대 마인드에
맞장구치고 싶은 부분들도 있었다.
개중엔 엄연히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되는
안쓰러운 상황들도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인 맥락에서 봤을 때는
‘작중 캐릭터’ 이서기는 여러모로
나와 성향이 잘 맞지 않는 점들이 있었다.

내가 공무원이거나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저 정도는 남아서 하든 집에서 하든
실력이 부족한 만큼 더 열심히 해야
공동체에서 제 몫을 해내는 것 아닌가?‘
’이런 부분들은 뒤에서도 노력하고 공부해야
최소한의 성의를 다하는 게 되지 않나?’ 등
‘나라면 이러저러하게 했을 텐데’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많았다.

본인의 의지만으로 입사한 곳이 아니고
적응하기가 더더욱 어려웠을 것이고
주인 의식을 갖기도 힘들었겠지만
나에게는 ‘고집 센 사람의 자기 합리화’로 보이는
에피소드들이 일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내가 ’작중 캐릭터‘ 이서기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이
책 마지막 부분 김주성 팀장과 이서기의 대화 중
김주성 팀장의 대사에서 많은 부분 나와
’와, 세상에‘라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같은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작가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이룬 뚝심에는
진심으로 감사와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목차를 다 정해 놓고도 아직도 헤매느라
원고 작성도 제대로 하지 않은 내가 오히려
자기 자신 앞에서 비겁하고 게으른 건 아닌지
성찰과 반성을 하기도 했다.

이런 의문도 든다.
‘받는 만큼만 일한다’는 과연 누구의 기준일까?
우리가 평소 보내는 일상에서도
1인분 이상 받는 건 좋아하면서
왜 남에게는 1인분 이상의 몫을 하는 거에
인색해지며 심하게는 장벽을 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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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이즈 영 God Is Young - 이 시대 청년들에게 전하는 희망 메시지
프란치스코 교황.토마스 레온치니 지음, 윤주현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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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쉽게, 적당히, 대충 읽으려고 한다면
지루하다고 느낄 만큼 쉬운 책.
하지만 문단 별로 의미를 파고들면
밑도 끝도 없이 어려워지기 시작해서
사유라는 바다를 건너야 하는 책.

세상에 죽음이란 게 없어지지 않는 이상
탄생은 죽어감과 같은 의미, 쌍둥이가 되어
그 즉시 시한부라는 울타리에 들어선다.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를 끈질기게 품는다.

이런 사실을 감추며 우리의 시야를 가리는 건
화염방사기로 초를 밝히려는 지나친 혈기.
이글거리는 불꽃 앞에서도 얼음장 같은 마음.
거부할 수 없음을 거부하며 발버둥 치는 노욕.

나아가야 할 때와 나아가도 되는 때.
그리고 자신의 끝을 알고 물러서야 할 때.
한 사람의 생에서 이를 모두 알고 실천하는 건
얼마나 아름다우면서도 어려운 일인가.

시간의 발자국이 눈에 들어올 때면
자신의 젊은 시절 지나쳤던 혈기를
회한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전진 대신 정체를 선택한 자신의 모습을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다며 한탄하기도 한다.

젊은이들은 기성세대가 뭘 줬냐고 하고
기성세대는 왜 떠다 줘도 못 먹냐고 한다.
착취와 절망이 한 편이 되고
나약함과 방종이 한 편이 되어
기약 없는 치킨 게임을 하고 있는 요즘.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식은땀을 쏟아내며
매 순간 힘겹게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걸까.
우리는 잘 죽기 위해 산다.
죽는 것은 잘 살기 위해서다.

청춘과 노년.
마주 보고 있기에 같은 곳을 보고 있는 두 시절.
시간 위의 시간, 세상을 초월한 시간은
같이 일구어갈 때 녹음을 퍼트린다.
그곳에 영원한 젊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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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토슈즈를 신은 이유 - 미국 최고 발레단 ABT 최초의 흑인 수석 무용수 이야기
미스티 코플랜드 지음, 이현숙 옮김 / 동글디자인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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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야
표지 디자인의 진가가 드러나는 책이다.
본문의 문체와 분위기를 많이 닮았다.
뜨거운 열정을 가득 담아내면서도
서서히 몰입하게 되는 매력이 스며있다.

저자인 본인도 신기하다고 말할 만큼
(그런 환경에서 자신과 형제 누구도
엇나가지 않고 무사히 자란 것이)
다사다난했던 가정 환경부터 시작해
늦깎이, 일반적이지는 않은 신체 조건
인종 장벽 등 여러 장벽들을 넘어서는 모습에서
겸허한 마음이 저절로 차올랄다.

발레를 썩 잘 알지는 못하다 보니
ABT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뉴욕이 연고지인 세계적인 발레단.
우리나라 출신인 서희 발레리나가
최초의 동양인 수석 무용수로 있는 곳.
작년이었나 어느 인친님 스토리 편으로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했다는 걸 아는 정도?

하지만 이 책 덕분에
ABT라는 곳에 보다 관심이 생겼고
유튜브에 풀영상이 있으면
조만간 시간 내서 ABT의 영상들을
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자가 오랜 세월 동고동락한 공동체
ABT를 향한 뜨거운 사랑도 가득 느꼈다.

미스티 코플랜드의 공연 영상을
아직 제대로 본 적은 없는데
블로그나 커뮤니티에서의 리뷰를 보면
춤선이나 무용 스타일 등 여러 면에서
호불호가 꽤 갈리는 무용수인 것 같다.

직설적으로 의견을 밝히는 것도 좋았다.
본인에게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걸 인정했다.

관련 대목 중 하나를 언급하자면
’나는 진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음악에 강음이 나왔고
그냥 그 음에 맞춰 턱을 들어 올렸다.
한 번도 물어보거나, 그렇다고 방법을
완전히 터득한 건 아니었다.
그저 알았을 뿐이다. 그건 나의 본능이었다.
놀라운 건 대체로 그게 옳았다는 사실이었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왔던 몫도 크지만
춤에 관한 한 타고난 재능이 있었던 덕분에
늦은 나이에 발레를 시작하고도
프로가 되었고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을
그는 전혀 숨기지 않는다.
꿈을 꺾지는 않지만 희망고문 역시 없다.

약간의 매너리즘과 권태에 빠졌던 나에게
반성을 주는 부분들도 있었다.

“아직도 발레 수업을 들어?“
언젠가 어린 시절 친구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 질문은 나를 참 지치게 만들곤 했다.
이제는 아니지만.
”응.“ 내가 대답했다.
”난 영원히 발레 수업을 들을 거야.“

그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다시 침착하게, 머리를 높이 들어 올리고
스스로 균형을 잡아야 한다.

한정된 소재로 계속 컨텐츠를 생산해야 하는
회사 속의 내 모습에 잠시 버거움을 느꼈을 때
이 책의 서평단을 신청했고 당첨이 됐다.
그런 내게 응원과 일침을 모두 주는 책이었다.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른 뒤에도
스승인 러셀 서면&변화경 부부를 찾아가
레슨을 받는 백혜선 피아니스트와
이 부분에서 모습이 겹치기도 했다.
클래식 음악가들 역시 음악 한 곡만 두고도
무수히 연구하며 피땀 흘리는 사람들이고.

그들의 모습을 보고 동지 의식을 느끼며
다시 활력이 생겼다는 것에도
이 책이 참 고맙다.

발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 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또, 발레에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큰 어려움 없이 정주행하면서
감동과 가르침을 함께 느낄 수 있으니
기회 될 때가 아닌, 기회를 마련해서
이 책을 읽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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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 젖은 옷처럼 달라붙어 있을 때 - 트라우마를 가진 당신을 위한 회복과 치유의 심리에세이
박성미 지음 / 시크릿하우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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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간만에 하루만에 주파한 책이다.
다 읽고 나니 하나의 큰 의문 속에서
몇 가지 작은 의문들이 가지처럼 뻗어나갔다.
“젖은 옷이 몸에 찰싹 달라 붙어 있으면
이걸 과연 오려야 할까 벗겨야 할까?”

세로로 쫙 오려서 몸에서 분리한다면
쉽고 빠른 방법이기는 해도
다시는 그 옷을 입지 못할 것이다.
새 옷을 마련하기 위해 시간적, 비용적으로
여러 노력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반대로 어떻게든 벗겨서 분리해 낸다면
시간은 좀 걸리고 답답하더라도
벗은 다음 말리기만 하면
언제든 다시 내 옷이 되어 입을 수 있다.
어쩌면, 옷을 벗기는 과정에서
옷이 젖어 달라붙어 있을 때를 대처하는
나만의 노하우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불안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술, 담배, 약물, 성적 유희 같은 방법들이
당장은 내 불안을 없애줄 듯 보이겠지만
상황과 시간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는 같은 내용인 불안이 또 찾아오면
그때도 저 방법들로 불안을 없앨 수 있을까.

불안의 근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갔을 때
그 시발점이 완전히 지우는 게 불가능한 것이라면
기약 없이 수시로 내 기억의 시야에 잡힐 거라면
어르고 달래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게
장기적으로는 손실이 덜 가는 방법이지 않을까.

‘지금까지 내 불안을 어떻게 달래고 지냈는지’
불안을 대하는 내 여러 모습도 돌아볼 수 있었다.
어떻게든 외면하려고도 했었고
아예 내 눈을 가려서 불안이라는 존재를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여기려고도 했다.

모든 옷을 똑같은 횟수로 입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정말로 한 번만 입는 옷도 있는 것처럼
우리가 마주하는 불안도
종류와 유효기간이 저마다 제각각이다.

그러나 옷처럼 내 마음대로 딱 한 번 입은 뒤
영원히 치워버릴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시간과 인내심을 조금은 갖고서
나만의 방법들을 만들어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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