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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퇴근길
ICBOOKS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무상으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

소설이라는 걸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순간순간 까먹게 되는 '수상한 퇴근길'
이거 진짜 소설 맞나? 내가 책 소개 글을 잘못 본 건가? 에세이 아닌가? 계속 의심하면서 읽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읽고 다시 한번 검색해 봤어요. 소설이 맞더라고요.
몰입력이 뛰어나지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만한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진 소설이라서 진짜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기분으로 읽었고 고대리의 입장에서도 생각하게 되고 고대리의 아내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면서 푹 빠져서 읽었습니다.
야근과 회식으로 매일 늦게 오던 남편이 매일 같이 칼퇴근을 하고, 그렇게 집에 와서는 같이 저녁을 먹고 안 하던 설거지까지 하고 분리수거까지 해요. 그러고는 뭘 하는지 저녁 내내 서재에 틀어박혀 나오지도 않는 남편. 얼마 전에는 남편의 구두에 흙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고 얼굴에는 어디서 잠이라도 자고 온 건지 침 자국이 그대로 눌어붙어 있기도 해요. 설마 바람이라도 난 건지, 몰래 도박이나 코인 같은 걸 하다 빚 때려 맞아 미리 용서받으려는 수작인지.. 아무리 봐도 남편이 수상하다는 프롤로그로 '수상한 퇴근길'은 시작됩니다.

제가 직접 겪은 상황이 아니더라도 회사에 다니며 많은 상황을 봐서 그런가, 공감되는 내용이 많았어요. 언젠가 이 회사도 내 능력을 알아봐 줄 거라고 생각하며 버티는 고대리는 후배가 자신보다 먼저 승진하는 걸 보면서도 괜찮은 척 웃어내고 자기보다 능력이 없어 보여 내심 무시해 왔던 선배가 사내 정치를 잘해서 광속 승진하는 걸 보면서도 저렇게까지 살아야 하냐며 깔보고 모르는 척해요. 언젠가 자신의 능력을 회사에서 알아봐 주길 기다리며 개인의 시간,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은 포기하고 회사를 위해 애쓰던 고대리는 결국 희망퇴직을 당하게 됩니다.
아내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계속 출근하는 척하는 고대리를 보며 안쓰러웠고 어쩌면 우리 아빠에게도 그랬던 시간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최선을 다해 일했던 회사는 고대리를 회사 밖으로 내보냈고 가족들에게는 미안해서 차마 사실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혼자 전전긍긍하는 고대리의 모습을 보며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가족들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 있을까요? 나의 불안과 걱정을 나누기보다 빨리 다른 회사로 취업을 해서 그때 이런 상황이 있었고 지금은 더 좋은 회사에 취업했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지 않을까 싶었어요. 물론 그 상황을 직접 경험한 게 아니니까 또 막상 그런 상황이 되면 어떤 결정을 하게 될지 모르겠어요.

나보다 잘나가는 친구들을 볼 자신이 없어서, 그냥 먹고살기도 힘든데 친구들까지 챙길 여력이 없어서, 어차피 연락 한 번 없는데 굳이 연락처를 남겨둘 필요가 없
으니까 주기적으로 친구를 '숨김', '차단'하던 고대리입니다. 희망 퇴사 후 아무 연락도 없는 직장동료, 거래처 사람들을 보며 생각합니다.
"내가 잘못 살아온 걸까? 세상이 잘못된 걸까?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거 같은데, 다들 아무렇지도 않나?"
저도 해봤던 고민이라서 공감이 됐어요. 대학교에서도,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또 어느 순간 멀어지기도 하잖아요. 내가 먼저 연락을 했어야 했나? 더 신경 쓰고 챙겼어야 했는가? 생각할 때가 있죠. 인간관계라는 게 정답이 없어서 사람마다 다 너무 다르기 때문에 더 어려운 거 같아요. 그래서 자꾸 내가 이상한걸까 생각에 빠지게 되는데 요즘은 그냥 이렇게 생각해요. 내 소중한 사람들을 챙기는데 더 시간을 쓰고, 또 나를 위한 시간을 많이 가지다 보면 외로워서 이어가는 관계가 아닌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끼는 친구, 지인만 남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고대리는 가족과 함께 먹고살기 위해서는 돈은 벌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다시 회사에 취업을 해야 하는데 다시 취업을 하게 되면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직장이 없어서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됐는데 계속 이렇게 놀 수는 없고 돈을 벌어야 하는데 지금의 일상이 너무 행복해서 자꾸 흔들리는 고대리.
회사에 다니면서 당장 퇴사하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무엇일까 찾아보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어요. 회사 생활에 지쳐서 나는 지금 하는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싶어, 근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퇴사하고 하루 종일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걸 찾아보고 그걸 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 하면서 퇴사를 결심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퇴사를 하고 쉬는데 막상 나의 하루가 온전히 나의 것이 되니까 너무 불안하더라고요. 월급이 매달 들어오지 않을 건데 괜찮을까? 내가 진짜 원하는 게 있기는 할까? 내가 좋아하는 걸 찾는다고 해도 그걸로 돈을 벌 수 있을까? 걱정, 불안만 쌓여 가다가 또 사람인, 잡코리아를 뒤적이는 저를 발견하게 됐어요.
고대리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과 행복,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 사이에서 계속 흔들리는데 저는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안정감, 고정적인 수입과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 없이 나만의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 사이에서 계속 흔들렸던 것 같아요.

에필로그 3 읽으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소설 아니고 에세이 맞네! 하면서 눈물을 닦고 '수상한 퇴근길'을 다시 한번 검색해 보게 했던 에필로그 3. 고대리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책을 읽기도 했지만 자꾸 고대리의 아내를 걱정하면서 읽기도 했는데, 이 부분을 읽으며 가족 간의 사랑과 믿음, 애틋함이 느껴져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보통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 힘내서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으로 '수상한 퇴근길'을 읽으며 잔잔한 감동을 느꼈고 우리 주변에 정말 있을 거 같은 고대리의 일상을 보며 공감하고 또 나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수상한 퇴근길의 주인공 고대리에게는 내 사정 따위 봐주지 않는 냉혹한 현실 속, 나 혼자 던져진 느낌일 때 다시 일어설 수밖에 없게 만드는 존재인 아내와 딸이 있습니다. 저도 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고대리의 아내와 같은 존재가 되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수상한 퇴근길을 덮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