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사표 - 며느리 사표를 내고 기적이 찾아왔다
영주 지음 / 사이행성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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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목이 참 자극적이다. 며느리를 그만두겠다니.. 회사를 그만두거나 이혼을 하는 경우는 많이 보았지만 결혼을 지속하면서 며느리만 그만두는 경우는 정말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얼마나 며느리가 힘들었으면 며느리를 그만둔다고 했을까? 과연 우리나라에서 그게 가능한 이야기일까? 저자의 삶이 궁금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대가족의 장손의 아내이자 며느리,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온 그녀가 결혼 23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 명절을 며칠 앞둔 그날 시부모님댁에 봉투 한 장을 들고 찾아뵌다. '며느리 사표'라는 이름이 쓰여 있는 봉투. 며느리를 그만두겠다고 말하기 위해 무거운 발걸음을 한 것이다. 시부모님은 그녀에게 잘 대해주셨다. 욕을 하면 받을 준비가 되었다. 하지만 시부모님은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언제든지 다시 돌아오고 싶으면 그때 돌아오라고 따뜻하게 말해주셨다. 시부모님의 너그러운 마음씨에 또 한 번 놀랐다. 이렇게 정중하신 분들인데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을까?

장손의 며느리로 살아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결혼 후 계속 시댁에서 함께 살았고 겨우 떨어져 산 것도 아래층으로 이사 간 것이다. 공간이 분리되어 있으면 좀 나을 줄 알았지만 그렇지만도 않았다. 부모님이야 잘 대해 주셔도 장손의 며느리로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남아선호사상을 그대로 따라야 했던 것이다. 남자는 주방에 얼씬도 하지 않으면 손도 까딱 안 하고 살아왔다. 아침 6시마다 기상해서 시부모님, 남편, 아이들의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가족만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친척들이라도 집에 몰려오면 그녀의 일을 끝도 없이 이어진다. 명절뿐 아니라 제사 때도 마찬가지다. 밖에서 친구를 만나기 위해 외출이라도 하면 밥시간이 되어 집으로 돌아와야 마음이 놓여 제대로 나가서 놀아보지도 못했다. 친척들이 몰려와 식사를 할 때면 식사 준비부터 간식 챙기기까지 제대로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밥 먹는 것도 힘들다. 남자들이 먼저 식사하고 그다음 아이들이 식사하고 가장 마지막이 며느리였다. 그 중간중간 일어나서 또 다른 것을 챙기고 겨우 밥 먹고 일어나면 초토화된 밥그릇을 치워야 한다. 따뜻하게 대해주지만 그래도 시댁에서의 일은 끝도 없다. 자상한 남편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힘이 날 텐데 장손으로 자라온 남편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주말이면 쉬어야 한다고 손도 까딱 안 한다. 자유 시간을 가지고 싶어도 주말에는 남편도 축구회에 가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고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다.

내 마음을 돌봐줄 곳이 아무 데도 없었다. 그렇게 묵묵히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녀에게는 그게 당연하고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렇게 살기 싫었던 것이다. 그리고 며느리 사표를 내며 내가 하고 싶은 것. 자아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며느리 사표를 내기 전 남편에게 이혼을 하자고 이야기했다. 남편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제안한 것이 분가였다. 시댁의 아래층이 아닌 좀 더 떨어져 사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남편과 함께 부부 상담을 받는 것이다. 남편은 처음에는 싫다고 했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조금씩 삶을 바꾸며 그녀는 자신을 찾아간다.

혹시라도 이혼을 대비해 자립할 때 필요한 돈도 생활비를 조금씩 쪼개며 모아두었다. 처음에는 남편 없이 어떻게 살아가지? 생각했지만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마음먹는 순간 조금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나도 혼자서 살아갈 수 있고 아이들도 독립할 나이가 되어 독립을 시켰다. 부모의 그늘은 따뜻하겠지만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남들보다 좀 더 빨리 알려준 것이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던 다짐을 하며 살았지만 결국 저자도 엄마처럼 살아가고 있었고 아이들만큼은 그렇게 살지 않기를 바랐다. 처음은 낯설고 두렵지만 내가 짊어진 무게들을 하나씩 내려놓으니 마음도 편해진다.

모아둔 돈으로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한다. 그렇게 조금씩 나를 찾아간다. 다른 사람을 통해 내 모습을 바라본다.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을 통해 발견한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싫은 모습, 어쩌면 그게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 사람의 그런 모습은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의 싫은 모습이다. 그래서 좋은 점 보다 싫은 그 모습이 더 눈에 잘 띄어 상대를 더 싫어하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나의 모습도 발견하고 새로운 나도 발견하고 나아지는 가족의 모습도 발견하다. 바뀌지 않을 것 같았던 남편, 독립을 통해서 더욱 자립심을 키우게 된 자녀들, 그리고 이제는 집안일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며느리가 아닌 동등한 관계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만날 수 있는 시부모님까지. 모두가 이제 그녀를 응원하고 함께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처음은 어려웠지만 시간이 흘러 자신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 모습을 쭉 찾아가고 있다. 다시 새로운 책을 쓰게 된 저자. <며느리 사표>이후의 또 다른 모습이 그려져 있을 것 같다. 시댁에 가면 나도 일을 한다. 자주 가는 것도 아니고 시부모님이 옛날 사람처럼 무조건 여자가 집안일을 해야 한다고 남자는 아무것도 시키지 않는 그런 분은 아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옛날 사람이기 때문에 요즘과 맞지 않는 방식을 요구할 때 보이지 않는 장벽이 생기곤 한다. 지금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나도 내가 자라온 시대에서 살아온 방식대로 아이를 키우고 싶진 않다. 변화된 사회를 인정하며 아이 스스로 자아를 찾기를 바란다. 나 역시 며느리 사표를 낼 만큼 힘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댁이라는 이유만으로 뭔가 답답함이 밀려올 때는 있다. 나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나 역시 늘 자아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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