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때,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 (리커버 에디션)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21세기북스 / 2020년 3월
평점 :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시점.. 그리고 30대가 되었을 때, 내가 생각했던 일들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무작정 30대가 되면 뭔가 다른 내가 되어 있을 줄 알았다. 20대의 숱하게 했던 고민들. 30대가 되면 그런 고민에서 벗어나 정말 대단한 커리어 우먼이라도 될 줄 알았다. 20대의 후반을 지나고 30대가 되었을 때 여전히 나는 똑같은 고민을 하며 살고 있었다. '뭘 먹고 살아가야 하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뭐지?', '내가 하고 싶은 게 진짜 있는 건가?', '언제까지 부모님에게 얹혀살아야 하지?' 등 수많은 고민을 했다. 그런데 그런 고민들의 답은 여전히 찾지 못했다.
나는 내가 결혼할 줄 몰랐는데 어쩌다 보니 결혼도 하게 되었고 아이도 둘씩이나 낳게 되었다. 그렇게 허겁지겁 결혼, 출산, 육아를 하다 보니 30대 후반의 끝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내년이면 마흔을 바라보게 되어도 여전히 20대 후반에 했던 고민을 나는 하고 있다. 여전히 불안하고 후회스러운 순간들이 너무나 많다. 그래도 그때처럼 뭔가 당연히 다 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버리고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때, 내게 미처 하지 못한 말>은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젊은이에게 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삶에 많은 무게를 안고 가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면 좋은 조언처럼 느껴진다. 처음 내가 이 책을 읽을 때는 그저 시시하게 느껴졌다. '내게 지금 이런 이야기가 필요한가?'싶은 가벼운 마음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거부감이 들었던 건 나를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라는 사람보다. 내 아이, 내 가족을 먼저 바라봤기 때문에 진짜 '나'라는 사람을 보지 못해 거부감이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은 온전히 나를 제대로 바라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누군가를 만나면 나의 이야기보다 내 가족, 내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다. '그게 과연 내가 원하는 걸까?', '그게 과연 나일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그게 궁금한 것이다. 나라는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나보다 아주 조금 더 인생을 먼저 살고 있는 언니에게서 다정한 조언을 받은 기분이었다.
내가 마음속에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살았다면 그 마음을 비우고 좀 더 삶을 가볍게 살아야 함을 깨닫게 된다. 나이가 가지고 있는 무게. 나이에 얽매여 살기보다 나답게 살기. 그리고 요즘 같은 시대 조금 늦게 철이 들어도 나쁘지 않음을 느껴본다. 물론 늦게 철들어도 된다는 말이 아이처럼 살겠다는 것은 아니다. 어른과 아이 사이의 균형은 필요한 것 같다. 인생은 다양한 답이 있다. 어느 누구의 삶도 그게 잘못되었다고 잘했다고 평가받을 수는 없다. 내가 잘 사는지 누군가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고 내가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그것을 내가 알고 있다면 괜찮다. '포기'라는 말을 너무 나쁘다고만 생각할 필요도 없다. 때론 내가 하기 버거운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거절하는 것도 내 기분을 먼저 생각해서 정중히 거절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 사람의 상처보다 나를 먼저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우리가 삶이 버거운 건 내가 아닌 타인의 시선에 의해서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보는지 보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행복을 쉽게 가지지 못하는 이유도 내가 아닌 타인과의 비교 때문에 오는 것이다. 차이를 인정하고 내가 예전의 나보다 성장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행복할 수 있을 텐데 우리는 타인의 시선과 타인과의 비교로 지금 가지고 있는 행복을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가는 많은 불안과 후회를 하며 살았다고 한다. 나 역시 후회는 정말 많이 했다. 사람들이 많이 하는 후회가 '그때 그 말을 하지 말 걸..'과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이라고 한다. 나 역시 그런 순간들이 참 많았다. 그런 순간들을 후회하며 살아가도 여전히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저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이고 지금 현실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지금의 행복을 포기해서도 안된다.
이 책은 살면서 생각해보는 단어들. 나이, 포기, 선택, 독립, 관계, 상처, 걱정, 습관, 직업, 기다림, 생각, 순간, 이기심, 용기, 후회, 균형 등 이 단어가 의미하는 여러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작가의 경험담과 사진, 그리고 책과 영화의 인용으로 다양한 시선을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답을 찾을 수도 있지만 여전히 그 답을 모르고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답이 중요하기 보다 삶의 자세가 중요하다. 때로는 덤덤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자세가 필요하고 때로는 포기하지 않고 부딪히는 자세도 필요하다. 모르면 모른다고 가만히 있지 않고 질문하는 것도 필요하다. 내 나이에는 이래야 한다는 정답은 없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삶을 지금보다 더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그리고 좀 더 나다운 나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나를 알아가기를.. 그때, 누군가 나에게 해주지 못해지만 지금의 나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어 더 나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