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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온 더 트레인
폴라 호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본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먼저 제목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굳이 영어 발음 그대로를 쓸 이유가 대체 무엇이었을까. "열차를 탄 여인" 이나 "열차의 목격자"(둘 다 100퍼센트 만족할 수 있는 제목은 아니다.) 같은 제목으로도 얼마든지 번역할 수 있지 않나? 고유명사도 아니고 그냥 열차에 탄 사람을 뜻하는 영어 단어를 그대로 제목에 쓴 이유를 좀 알고 싶다. 책 제목을 볼 때마다 불만스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요즘 외화도 이런 식으로 한국 개봉판 제목을 따는 경우가 많던데, 사실 좀 무성의해보이기까지 한다. 뭐, 한국어판 제목에 대해선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고...
영화로도 제작되었다는데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현지에서 도나 보다. 그래도 원작 소설 자체는 미스터리와 스릴러가 잘 버무려 있다. 주인공인 레이첼은 남편의 불륜으로 이혼당하고 알코올 의존증까지 앓았고, 지금까지도 술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친구에게 도움을 받으며 어렵게 살 곳을 구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고, 눈치가 보인다. 직업도 없지만 직장에 나가는 척하며 늘 런던 행 열차를 타는 레이첼. 그녀에게 유일한 행복이란 런던으로 가는 열차를 타면서 지나치는 행복한 커플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뿐이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행복해보였던 커플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는 예감과 함께 레이첼은 그들의 집에 가보기로 하는데...
주인공은 레이첼이지만 실제로 이야기는 세 여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야기의 주인공 레이첼, 유모로 취직한 메건(그리고 메건은 레이첼이 매일 보는 그 커플 중 한명), 그리고 레이첼의 남편이었던, 톰의 불륜 상대이자, 현재는 부인이 된 애나. 세 캐릭터의 시점을 오고 가면서 조금씩 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특히 알코올 의존증인 레이첼 때문에 진상이 베일에 싸여 있고, 이는 이 소설의 미스테리 요소를 더 강화시킨다. 후반부에 가면서 레이첼은 스스로를 극복하게 되지만 중반이 조금 넘어서까지도 레이첼 자신조차 자신의 기억을 믿지 못하면서 이야기가 뒤얽히는 것이 이 소설의 묘한 재미다. 주인공의 능력이 뛰어나서 재밌는 이야기가 있고, 그 반대라서 재밌는 경우가 있는데, 분명히 이 작품은 후자다.
단순한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 이 소설의 바탕은 복잡한 가정사에서 오기 때문이다. 혼인 관계에서의 부부, 가정내에서의 부부의 권력 차이, 권태, 쇼윈도 부부(물론 그래봤자 레이첼 기준이긴 하다.), 가정 폭력, 불륜, 여성의 삶 등이 소설내의 주요 사건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특히 레이첼은 가정 폭력의 피해자이기도 하고, 애나 역시 언제라도 그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상태다. 레이첼에게 행복해 보였던 메건조차 결혼생활에 대한 권태와 남편과의 관계, 자유, 자신의 고통스런 과거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던 여성이었다. 불행했던 결혼 생활을 겪고 그 후유증에 여전히 시달리는 레이첼은 열차에서 결국 자신의 다른 모습을 보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부부의 일은 부부 밖에 모른다는 말이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말이 안 떠오를 수가 없다. 레이첼도 한 때는 행복해 보이는 아내였고, 메건도, 애나도 그랬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그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고.이를 통해 결혼이, 가정이, 남편이 여성들에게 어떤 것인지, 어떤 의미가 되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