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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6년 7월
평점 :
(본 리뷰에는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보고 복수극이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펼쳤는데, 예상을 빗나가게 하는 탄탄한 이야기에서 오는 몰입감이 굉장하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읽었던(리뷰를 미루다 결국 나중에 읽은 책을 먼저 쓰게 되버렸다.) 걸 온 더 트레인과 비교해서 더 재밌게 읽었다. 특히 영화 "나를 찾아줘"의 성공 이후로 해당 영화의 원작이 소개되는 것도 그렇고 다양한 유형의 여성 캐릭터들이 나오는 외국 소설들이 한국에도 많이 소개되고 있는 것 같아 그런 흐름을 보고 있는 것도 꽤 재미있다. 사실 책을 고르고 나서까지 난 사회파 복수극을 예상하고 있었다. 제목부터가 왠지 그런 느낌이 들게 하니까.
이야기는 테드라는 남성이 릴리라는 여성 캐릭터를 공항에서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자신의 비밀을 하나씩 밝혀보자는 릴리의 제안에 테드는 아내의 불륜과 살인충동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릴리는 그를 도와주겠다고 나선다. 동시에 테드는 릴리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아내를 꼭 죽이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첫 도입부는 영화팬들이라면 익숙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가 히치콕이 감독한 열차안의 낯선자들을 변주한 것이라고 하니까. 해당 영화를 보지 못해서 어느 정도 비슷한지는 잘 모르겠다.
처음에는 테드와 릴리의 아내와 그 불륜남을 죽이겠다는 살해 모의가 착실하게 진행되어 갈지 궁금해서 페이지를 넘기게 되지만, 국면이 전환되면서 이야기가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흥미롭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생각지도 못한 스토리 진행에 놀라게 되기도 하고. 단순한 범죄 소설이 아니라는 점에서 일단 점수를 준다. 이야기의 호흡 또한 굉장히 빠르고 캐릭터들(특히 릴리)이 치밀하기도 해서 이야기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빠르게 흘러간다. 덕분에 책 두께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특별히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여기서도 점수 추가.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릴리라는 캐릭터이다. 물론 현실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끔찍하게 무섭고 잔인한 사람이겠지만 이 책에선 적어도 어느정도 설득력을 갖고 움직이며 독자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특히 인간적이긴 한데.. 어딘가 결여되어있다는 것이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드러나기도 한다. 이런 배경 또한 이 릴리라는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어준다. 특히 살인에 대한 자신의 시각과, 살인에 대한 정당성을 테드에게 망설이지 않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이 캐릭터를 제대로 설명해준다고 할 수 있겠다. 릴리가 워낙 대단한 사람이라서 그런 건지 릴리를 제외한 다른 캐릭터들은 사실 릴리가 얼마나 치밀한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예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덕분에 릴리라는 캐릭터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되니 독자 입장에서는 이득일지도.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대한 의문은 실제로 오래전 부터 있어 온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 릴리는 사람들의 그런 욕망을 자극하는 캐릭터가 아닐까, 저 사람을 죽이면 세상이 아름다워질 것 같아, 좀 더 나은 세상이 될 것 같아 같은 생각에서 오는 상상이나 욕망말이다. 릴리의 시원시원함에 감탄하다가도 씁쓸한 뒷맛을 느끼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이런 이유일지도. 대부분의 사람들을 상상조차 안 하거나 상상만하고 끝나지만. 제목에 비해 작중에 등장하는 살인은 조금 통속적인 것이지만 사람은 통속적인 이유로 얼마든지 온갖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오히려 이 책은 그런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인간의 욕망에 대해 얘기하는 책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