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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상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ㅣ 어른을 위한 동화 18
한강 지음, 봄로야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5월
평점 :
아이의 칠흑 같은 눈동자는 늘 촉촉하게 젖어있다. 햇빛에 반짝이는 잎사귀, 늦은 밤 퍼지는 피리소리, 이마를 스치는 바람의 촉감... 따라 흐르는 눈물은 아이의 뺨을 적신다. 눈물을 달고 사는 아이의 별명은 울보고, 눈물단지다.
어느 날, 눈물상자를 손에 든 아저씨와 푸른 새벽의 새가 눈물단지를 찾아온다. 세상의 모든 눈물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눈물, 아이의 눈물방울을 담고 싶다는 아저씨는 이상하지만 특별하다. 눈물단지의 눈물을 기다려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아저씨와 푸른빛의 새와 함께 길을 나선다.
“내가 찾고 있는 건 순수한 눈물이야.”
“순수한 눈물이요?”
“자기가 울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면서 흘리는..... 특별한 이유가 없지만, 또한 이 세상의 모든 이유들로 인해 흘리는......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물이란다.”(p17)
그리고 울지 못해 외로이 살아오던 할아버지의 첫눈물을 보고서 눈물의 가치를 깨닫는다.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더이상 눈물단지는 자신의 눈물이 부끄럽지 않다.
“그 기억을 마지막으로, 그림자눈물샘이 얼어붙었던 것 같습니다.”(p58)
짧은 동화나, 눈물의 소중한 가치는 충분히 전해진다. 세상의 모든 빛을 담은 순수한 눈물은 어떤 차가운 것도 녹이는 보물 같은 것이다. 눈물은 소중한 것이다.
그걸 모르고 지냈다. 감상적이고 예민한 나한텐, 조울증까지는 아니어도 그 비슷한 게 찾아올 때가 있다. 눈물 한번 쏟으면 젖은 종이처럼 한동안 마음 상태가 흐물흐물해져서 우는 건 되도록 참으려했었다.
때때로, 예기지 않은 순간에 우리를 구하러 오는 눈물에 감사한다.(p71)
그림자도 눈물을 흘린다는 말을 읽으며, 차마 겉으로는 흘릴 수 없어 마음속으로 쏟는 눈물이 그것 아닌지 생각해보았다. 마음에서 흐르는 눈물이 뺨을 타고 방울방울 태어나는 순간을 부끄러워할 게 아니란 사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눈물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거짓의 눈물이 아니라 진실한 빛을 담은 최고의 눈물이란 걸 깨달았다.
그동안 흘린 내 눈물색은 어떤 빛이었을지 궁금하다. 여기 나온 여러 빛깔의 눈물이 탐이 난다. 여러 색을 담은 눈물을 흘려보고 싶다.
“순수한 눈물이란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눈물을 말하는 게 아니야.
모든 뜨거움과 서늘함, 가장 눈부신 밝음과 가장 어두운 그늘까지 담길 때,
거기 진짜 빛이 어리는 거야.“
“오히려, 네 눈물에는 더 많은 빛깔이 필요한 것 같구나. 특히 강인함 말이야. 분노와 부끄러움, 더러움까지도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그렇게 해서 눈물에 어린 빛깔들이 더욱 복잡해질 때, 한순간 네 눈물은 순수한 눈물이 될 거야. 여러 색깔의 물감을 섞으면 검은색이 되지만, 여러 색깔의 빛을 섞으면 투명한 빛이 되는 것처럼." (p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