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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 정진홍의 900킬로미터
정진홍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평점 :
내려놓지 못했던 것들을 걸러내고 어디로 떠날 수 있는 여유, 처음에는 부러워 샘이 났다. 떠난 곳이 험난한 순례길이고 그게 사실은 인생길과 비슷하다는 걸 알았을 때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매서운 눈보라를 뚫어야 하고 차가운 얼음바닥에 누워 자야하고 심지어 죽음까지 각오해야 걸을 수 있는 길. 이게 사실 인생길이라니! 피하겠다, 떠나겠다 굳이 다짐하지 않아도 누구나 한가운데 서 있는 곳이 모험의 길임을 마주하고 나니 쓸쓸함, 공허함이 몰려왔다. 그렇다면 난 왜 이렇게 무거운 배낭을 메고 있었을까?
정진홍 작가를 따라서 마음으로 그곳을 천천히 걸어 보았다. 산티아고 순례길 위의 사람들, 그들이 길 위에서 삶을 걷고자 한 이유, 그리고 새롭게 찾은 산다는 것의 의미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게 힘겹고 괴로운 탐색의 시간 이후에 온 값진 것임을 알고 나니 어느새 순례길의 시린 겨울바람이 궁금해지는 게... 어쩌면 나도 삶에 대해 배낭을 덜어볼 각오를 해볼 수 있겠다 싶다.
처음의 두려운 마음을 가다듬으니 길 곳곳에 남겨진 시간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고 순례자의 설움과 기쁨이 전해졌다. 삶의 행적을 한눈에 본 기분이다. 읽는 동안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순례자의 비애가 더 가깝게 느껴져서 많이 쓸쓸했지만 나 자신을 사색하는데 좋은 계기를 마련한 것 같아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도록 책을 통해 전해진 감정들이 여운으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