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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드뷔시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권영주 옮김 / 북에이드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빌려 본책이라 띠지 없이 봤다. 강추란 말 듣고 살펴보니 미스터리 소설, 그래서 스포일러를 최대한 읽지 않으려고 줄거리도 안보고 펼쳤다. 책이 어떤 책인지 정확히 모르고 봐 읽으면서 순간 순간 놀랐다. 읽다보니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소녀가 장애를 극복하는 성장 소설에 가깝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별채에 잠들어있던 그녀와 사촌이자 친한 친구인 또 다른 소녀 그리고 할아버지가 불에 휩쓸리게 되는데 소녀 혼자만 살아남게 된다. 신체 대부분 3도 화상을 입은채로.
피부 이식으로 손가락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그녀는 할아버지의 막대한 유산을 물려 받게 되고 주변의 시기와 이유 모를 위협에서 시달리지만 최고의 피아니스트의 도움을 받아 음악에만 몰두한다.
이쯤되니 성장 소설이란 확신이 섰다. 소녀가 사고 후 몇달 만에 놀랄만한 연주 실력을 뽐내는 장면 그리고 학교를 대표하여 콩쿠르 대회에 나가는 장면까지 주인공의 성장기는 감동적이다. 응원하며 열심히 보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전환된다. 어머니가 살해당한 것이다. 작가의 소개글을 보니,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상을 받았단다. 분위기는 분명 뭔가를 말해주는듯 한데, 가족 내부의 심상치 않은 어떤 것을 그녀도 그녀를 가르치는 최고의 피아니스트도 제쳐두기에 독자인 다시 음악으로 돌아갔다.
읽다 보면 그럴때가 있다. 일본어를 몇개월만에 공부한 어떤 분의 에세이를 보다가 몇번이나 그만두었던 일본어를 다시 공부하고 싶어져 책을 펴게 될때, 인문학 책을 보면 오프라인,온라인으로 인문학 강의를 찾아 듣고 싶어질때, 어떤 시련을 극복하고 이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보면 용기를 얻게 될때가 말이다.
안녕,드뷔시도 비슷했다. 글로써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을 묘사하는 부분은 이 책이 놀라운 이유 가운데 하나였는데 특히 소녀가 드뷔시의 달빛에 빠져들어 '왜 이태까지 이런 기분을 느껴보지 못했을까' 하는 장면은 최고 중의 최고였다. 피아노를 배우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늦은 시간인데도 피아노 뚜껑을 당장이라도 열어 건반을 치고싶은 그런 마음을 글로 느낄 수 있다니, 정말 신기했다. 음악 소설은 읽어본적이 없어서 그런가.
감격적인 장면은 이뿐만이 아니다. 화상을 입은 주인공이 딛고 일어나는 부분은 뭉클하다. 바로 얼마전에 『지선아, 사랑해』라는 이지선 님의 에세이책을 봤다. 그래서 그 분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었는데 소설로도 인간의 놀라운 의지를 느낄 수 있다니, 놀랐다.
주인공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우승자로 명명되는 최고의 장면을 놀라운 반전이 대신한다. 안타깝게도 그간의 모든 감정을 싹 사라지게 만드는 꺼림칙한 반전이었다. 작가가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것들이 반전을 위한 장치로 느껴진게 분통하기까지 했다. 뭐, 이 분야에서 으뜸가는 상을 받으려면 반전과 트릭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반전을 보고 나니 왜 독자의 시선을 다른 곳(성장기)에 두고자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초반 등장했던 사촌인 '또 다른 소녀'를 왜 등장시켰고 그녀의 가족사(인도에서 쓰나미로 부모님이 죽었지만 그녀만 가까스로 살아남아 소녀와 같이 지내게 되었다)를 소개했는지, 이렇게 빨리 퇴장시킬꺼면,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런 반전은 상상치도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작가가 묘사하는 아름다운 예술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잊혀지고 말기 때문이다.
사람 마음까지 움직이게 만드는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주인공의 꿈과 열정이 이런 예상 가능할뻔 한 반전을 숨기기 위함이였는지, 그런 생각도 든다.
소녀가 드뷔시에게 안녕을 고하는 것처럼 소설을 읽는 동안의 감동, 글로 느낀 음악의 세계는 덮고나니 굿바이가 된 것 같다. 꺼림칙한, 다른 것들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게하는 반전은 오래도록 기억될 거 같다. 처음부터 반전을 기대하고 봤다면 대단한 반전이야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것보다도 명장면이 정말 많았기에『한 줌의 먼지』같이 결말이 두개였다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도 든다.
"일도, 사생활도 실의와 절망의 연속. 실제로 한계에 몰렸을 거야. 요양 중이던 아일리겐슈타트에서 유서까지 썼으니까."
"유서…"
"그래. 다만 이 유서라는게 참 유서답지 않은 유서라 말이야. 간단히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야. '나는 기쁜 마음으로 죽음을 향해 걸음을 서두르련다. 목동의 노래를 다른 사람은 듣는데 나에게는 들리지 않았을 때는 자살을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내 예술만이 그런 마음을 붙잡아 주었다.' 알겠지? 고뇌를 이야기하기는 해도 이 세상에 작별을 고하는 게 아니야. 오히려 절망을 딛고 일어나 고난을 극복하겠다는 결의를 표명하는 내용이지. 실제로 베토벤은 이 이듬해에 <교향곡 제3번 영웅>같은 위풍당당한 대작을 발표했거든. 낭떠러지 끝에 몰린 인간의 엄청난 반역 정신. 그 의지가 낳은 힘찬 음악…" p231
"다시 베토벤으로 돌아가서, 귀가 들리지 않아도 지휘봉을 입에 물고 피아노와 격투하는 모습. 흙투성이가 돼서, 눈물범벅 땀범벅이 돼서,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 의지. 어쩌면 사람은 오래 사는 생명보다 계속 싸워 나가는 의지 쪽이 중요한 게 아닐까.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는 분명히 그런 물음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해."p233
한사람은 유서를 씀으로써, 또 한 사람은 촉망받던 장래와 결별함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얻은 것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란 뭘까. p265
사람이 감동하는 건 언제나 사람의 마음이거든, 그 마음을 형태로 한 게 예술성이야. p273
도망치는 것을 배우지 마라. 그만 싸우고 싶다고 생각하는 자기 자신에게 지지 마라. p341
"성공하는 사람은 원래 어디선가 터무니없는 짓을 하는 법이야. 평탄할 길, 온당한 장소에 연연하는 인간은 등산도 못 하고, 하물며 하늘을 날지는 절대 못 하는 법이다, p195
사람은 누구나 강해지고 싶어 하지만, 예기치 못한 불행이나 타고난 약함 때문에 좌절할 때가 있다. 그런 때, 어둠에서 빛이 있는 곳으로 이끌어 주는 것은 바로 곁에서 뻗어 주는, 피가 흐르는 손이다. 자기와 마찬가지로 나약하지만 의지의 힘으로 극복하려고 발버둥치는 인간의 뜨거운 손이다. 그에게 음악은 그런 손인지도 모른다. p253
아무리 절망해도, 아무리 좌절해도, 포기하지만 않으면 잿더미 속에서 불사조가 부활하듯 다시 용감하게 일어설 수 있다. 특별한 사람들뿐 아니라 모든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그 힘이 깃들어 있다, p256
손가락에 장애가 있어서 피아노를 온전히 칠 수 없다?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을 테니 목소리를 내기 싫다? 역시 나는 형편없이 비겁한 인간이다. 그런 건 싸움을 회피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
싸우는 사람은 부상을 입어도 싸운다. 싸우는 사람에게는 타인의 시선도, 논리도 상관없다. 그저 자기의 무기와 전쟁터가 있을 뿐이다. 나는 무기를 버리고 전쟁터에서 도망치려 했던 패잔병이었다. 도망치면 확실히 편하다. 하지만 그뿐이다. 편한 길을 택해 얻게 되는 것은 태만, 그리고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의 시간뿐이다. 모든 싸움은 즉,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한번 도망치기 시작하면 점점 더 싸우기가 겁이 난다. p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