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예보
차인표 지음 / 해냄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온종일 비가 내린다. 비오는 날이 참 좋았었는데, 이제는 비를 마음 놓고 맞을 수도 없으니 많이 아쉽다. 울적함을 뒤로 하고 이 책의 첫장을 폈는데, 날씨 예보를 연상하게 하는 제목 때문인지 왠지 비오는 오늘 읽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늦은 밤의 빗소리도 잊을 정도로, 웃기도 하고 살짝 눈물도 흘리며, 기대 이상으로 정말 즐겁게 봤다.

 

DJ 데블이 예보하는 오늘은 절망 자체. 나고단, 이보출, 박대수 이 세 사람의 오늘이 여느때와 다를바 없이 우울할거라며 섬뜩한 웃음과 함께 악담을 퍼붓는다. 

 

 먼저 나고단씨, 그는 취업에 성공하지 못하고 나이트클럽의 '쫌만 더'로 고참이 되었다. 그의 별명 쫌만 더는 키 작은 그의 서러움을 유쾌하게 표현한 것이다. 모아둔 돈을 사업에 투자해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도 또 일어섰지만 빚더미의 노숙자 신세가 되어버렸다. 여자친구 겸 아내였던 여자가 바람 나 도망가고 무정자증이라 자식도 없고, 하나뿐인 형은 캄보디아에 우물 팔러 떠나버리고. 성산대교에서 자살하려다 공익 근무원들에게 차라리 여의도에 가서 죽으란 말을 들었고 그를 위로하는 사람은 아무도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여의도 반포대교에서 준비를 마친 그에게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나타나는 보조 출연자 이보출씨는 그에게 5천원을 준다.

 

 보조 출연자 이보출씨는 내 인생에서는 엑스트라가 되지 말자며 조기 종영할 사극의 마지막 장면을 찍고 있었다. 일당 4만원을 모아 멀리 떨어진 초등학생 아들과 같이 살 날을 바라며 오늘도 죽기살기로 일하지만 사실 그는 박대수씨에게 쫓기는 신세다. 대박을 꿈꾸며 돈을 빌려 주식에 투자했다 다 말아먹었기 때문.

 

 딸 봉봉이의 골수 기증자를 기다리는 박대수씨는 살아오는 동안 한번도 남에게 무엇을 준적이 없다. 이보출씨을 돈을 받아낼 목적보다는 딸에게 무능한 아빠가 되기 싫어 뭔가는 해야겠다 싶어 쫓는거다. 이보출씨의 아들을 납치했는데 이보출씨와 연락이 닿지 않아 초조하다. 꿈에서 봉봉이는 건강한 숙녀로 성장해있다. 빗줄기가 그의 얼굴을 때린다. 빗물 섞인 눈물이 주르륵. 그는 신에게 빌어본다. 딸을 살려달라고.

 

책을 덮고 창 밖 하늘을 보니 어느덧 토요일 아침이 되어버렸고, 비는 여전했다. 그 비가 주님의 손길 같았다. 박대수씨의 얼굴을 감싼 빗줄기가 성령님의 은혜가 아니였는지. 신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을까?   

 

어쨌든 3사람의 오늘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그런데 DJ데블이 전하는 예보에 따르면 그들의 20년은 달랐다.

 

나 DJ 데블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여러분들이 오늘 하루만 바라보는 거, 미련 두고 먼 미래까지 바라보지 말고, 그냥 오늘 하루에 다 끝내버리는거. 왜냐하면 나에겐 오직 하루만 있거든요. 하루만으로 족하지요, 모든 걸 끝내버리기에는. 흐흐흐. P215

 

저자는 IMF 가장들의 한숨을 보고 동료 연예인들의 자살을 겪으며 위로와 사랑이 가장 필요할 때라 생각했다 한다. 그래서 탄생하게 된 이 소설은 전하는 바를 뚜렷하게 말해준다. 한발짝만 다가가면 인생이 얼마나 유쾌하고 희망이 있는지, 주변에 응원의 손길이 얼마나 고마운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세사람 사연의 정황을 들으니 어느 누구를 탓할 수 없구나는 생각이 든다. 박대수씨가 이보출씨의 뒤를 쫓는 이유도 돈을 못 갚는 이보출씨의 정황을 들으니 함부로 판단해야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개인의 사연이 있고 내가 그들이 되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오로지 신만이 그것을 아신다. 전할 수 있는 것은 위로의 말, 자만과 허세가 없는.   

 

사랑은 하는 겁니다. 내일이나 모레 할 거라고 얘기하거나 계획하는 게 아니고 그냥 지금 바로 하는것, 그게 사랑입니다. P225

 

"진짜 사랑은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거라고" P199

 

다음은 정말 울컥했던 장면이다.

 

바로 그 순간.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나는 보았다. 슬픔이 영혼을 꽉 채울 때, 인간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를. 악을 쓰던 아저씨의 화난 두 눈에 순식간에 눈물이 스며들더니 이내 눈물은 방울되어 떨어지고, 그 눈물방울이 땅에 땋기도 전에 체념한 듯한 그의 눈동자는 마취제를 뿌린 것처럼 무표정하게 변했다. 이윽고 "허"하고 토해 낸 그의 작음 한숨은 신음 소리조차 낼 수 없는 고통이 영혼을 짓누르는 소리처럼 들렸다. 어쩌면 농담조로 내뱉은 반포대교로 가서 뛰라는 한마디에 그는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마음 깊이 아파했다. 그 때 나는 주먹을 들어 직접 가격하지 않아도 상대방을 처절하게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243 

 

휴식은 할 수 있지만 절대로 중단해서는 안 되는 것. 그것이 인간의 삶이다. -작가의 말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유쾌하고 감동적이었다. 다만 힘든 가장을 대표하는 세사람 말고도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했으면 더 공감이 되었을텐테, 하는 생각이 든다.  

 

지친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소설, 재밌고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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