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의 변명 - 소크라테스를 죽인 아테네의 불편한 진실
베터니 휴즈 지음, 강경이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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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세기의 예민한 아테네와 기존에 알고 있던 아테네는 많이 달랐다. 서양 문화와 현대 민주주의의 시초라 불리는 아테네의 현명한 모습 뒤에 숨은 모순을 읽고 나니 위대한 현자를 죽음으로 몬 도시의 변명이 이해가 갔다.

 

역사학자이고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저자는 이 책 한 권에 소크라테스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아테네의 모든 것을 빠짐없이 있는 그대로 재현했다. 10여년을 철학자의 발자취를 따라 걸은 저자의 수고 덕에 소크라테스의 터전은 보이듯 느껴지듯 생생하게 다시 살아났다.

 

작은 부족 사회에서 출발해 그리스 최고 도시 국가로 성장한 아테네. 소크라테스가 나고 자란 시기는 아테네에 황금꽃이 피어나는 시기였다. 거리에는 민중의 숨이 가득했고, 권력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실현하는 사람들로 늘 붐볐다. 시끌벅적한 도시를 누비며 모른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누구에게든 질문을 던지고 캐묻던 소크라테스도 도시의 발랄함을 사랑했던 아테네인이었다.

 

앎으로써 덕과 행복에, 선에 이를 수 있다한 소크라테스는 지금도 그러하지만 당시에도 따르는 사람이 많던 존경받는 철학자였다. 그가 누구보다도 지혜로웠기 때문에 그의 눈에 아테네의 어두운 면이 속속히 들어왔고 자신이 나고 자란 그곳을 걱정하고 사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칭찬이 가득한 도시국가에서 얼룩 같은 존재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만보다는 겸손을, 자아도취보다는 정직을 권했다. 당시 아테네는 세계 역사상 가장 처참한 전란을 겪었지만 그들 도시가 깔끔하고 밝은 분위기로 유지되도록 애썼다. 그러려면 아테네의 민주주의 연극은 계속되어야 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에게 자기기만을 멈추라고 다그쳤다. (P284)

 

소크라테스가 종교 법정에 선 이유는 그의 지혜와 영향력 때문이었다. 황금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잇따른 전쟁과 분열의 폐허 더미에서 아테네인들은 다시 일어설 힘을 모으고 있었다. 그들에게 소크라테스는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정치는 설득 잘하고 말솜씨 좋은 사람에게 맡기는 게 아니라 능력 있는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 탐구하여 올바름에 도달해야 한다, 사랑을 찾으라, 하는 그의 주장을 아니꼽게 보는 무리가 많았다.

 

그곳 사람들이 정치에 자신의 목소리를 굽히지 않는 이유는 잘 먹고 잘 사는 권력에 맞춰 있었고, 그들은 아테네의 관습을 위하여 소크라테스를 비방해야 했다. 젊은이들을 주술로 꾀어 사회를 어지럽히며 신들을 모독한 혐의로. 그렇게 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자들에게 사형당한 것이다.

 

소크라테스: 제게 유죄선고를 내리는 것은 이 증오라는 것입니다. 제가 실제로 유죄선고를 받는다면 그것은 멜레토스나 아니토스 때문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편견과 악의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앞으로도 일어날 것입니다. 제 소송으로 절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주저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아테네의 역사 곳곳에 담긴 소크라테스의 단심은 그의 정신만큼 위대했다.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본 기분이다. 읽고 보니 첫 장의 '최초의 순교자'라는 표현의 의미가 이해가 간다. 아테네인들이 그들의 역사 내내 투쟁하며 지키고자 했던 자랑스러운 특권, 표현의 자유를 소크라테스를 죽임으로써 무너뜨렸다는 건 참 씁쓸한 일이다.

  

소크라테스와 그가 사랑한 아테네를 알고 싶다면 꼭 필요한 책이라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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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 (양장)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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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주차로 읽고 있던 책이 무려 700페이지다. 시간이 치여서 결국 잠시 덮어두고 이 책을 집었다. 본문 내용이 70페이지가 채 되지 않아서 쉽게 읽을 수 있겠다고 만만하게 보았는데, <단순한 열정>은 그렇게 만만한 책이 아니었다.

 

저번에 한번 읽은 아니 에르노의 담담하고 진솔한 글은 단번에 독자를 매료시키는 독특한 향기가 있었다. 내면을 타고 흐르는 향기가 너무 섬세하고 또 강렬해서, 자신의 치부를 꾸임 없이 사실 그대로 적은 글은 원래 그런 것일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었다. 그 향이 그리워 그녀의 글을 꼭 읽어야지 했는데, 두 번째로 펼친 이 책 역시 감당하기 힘든 매력이 느껴졌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p11)

 

연하의 유부남 A라는 남자로 인하여 이해하기 힘든 강렬한 열정에 사로잡혀 지내던 '나'의 흔적이 고스란히 적혀 있다. 그녀가 보이는 열정이란 보통 사람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경계에 있는 것인데(그래서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나'는 그 사람 덕분에 '남들과 나를 구분시켜주는 어떤 한계 가까이에 어쩌면 그 한계를 뛰어넘는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라 고백하며 삶의 모든 원인이 되었던 그를 향한 집착 같은 열정을 하나하나 기억에서 풀어내었다.

 

'나'의 생활은 오직 그를 향해 흘러간다. 익숙한 일상을 제외하고 그를 기다리는 일밖에 할 수가 없다. 그 사람의 전화가 온 미래인양 그 사람 말고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그를 기다리고 기다리는 순간은 기대감, 두려움, 조바심이 한데 뭉친 시간이다. 이후에 찾아오는 행복을 새기고 간직하는 일도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녀가 몸에 남은 정사 자국을 하루라도 더 품고자 하고 그가 마신 술잔이며 목욕 가운도 있는 그대로 그림처럼 간직하고자 함은 설명할 수 없는 광기 같은 열정의 표출이다. 그리고 그가 완전히 떠난 후에도 강렬한 사랑의 열정은 그녀를 지배한다.

 

그런데도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어떤 영화를 볼 것인지 선택하는 문제에서부터 립스틱을 고르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이 오로지 한 사람만을 향해 이루어졌던 그때에 머물고 싶었기 때문이다. 첫 페이지부터 계속해서 반과거 시제를 쓴 이유는, 끝내고 싶지 않았던 '삶이 가장 아름다웠던 그 시절'의 영원한 반복을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예전의 기다림이나 전화벨 소리, 만남을 대신하고 있는 나의 고통을 묘사하는 것이기도 하다.(P52)

 

불륜이란 거북한 소재가 <단순한 열정>의 중심이 아니다. 아니 에르노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욕망의 자신을 단순히 솔직히 그리고자 하였고, 지금은 아련히 기억에 떠오르곤 하는 그때 자신을 글로써 만나고자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윤리적인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나의 어떤 면을 발견했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그렇게 옳고 그름을 거르며 읽으니 거부감이 어느 정도 사그라졌지만, 여전히 그 열정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의아했다. 소녀처럼 앞뒤 안 가리는 치명적인 사랑 어떤 것에 빠져본 적 없기 때문일까. 그래서 책 속에 보인 열정이 내 머릿속에선 이해되지 않는 건지... 어딘가에 무언가에 쉴새 없이 빠져드는 열정이 부럽다.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 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P67)

 

짧은 글 한 편이 마음을 휘젓는다. 솔직하고 담백한 글의 매력이 정말 대단하다. 한 남자를 기다리는 시간 외에는 어떤 미래도 없던 여자의 사랑이 부러울 때마다 펼쳐 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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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 - 좁은 길에서 만난 하나님
김범석 지음 / 두란노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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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며 웃으며 단숨에 본 책이란 말에 백번 공감한다.

 

이 책 <역전>은 가난하고 섬김이 필요한 자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가득 담긴 책이다. 넓고 편한 길의 가치관을 믿음으로 내려놓고 따른 김범석 목사님을 통하여 하나님은 사랑이 절실한 이웃에게 잴 수 없는 크고 넓은 마음을 보이셨다.

 

김범석 목사님이 순종으로 좁은 길을 걷기까지, 놀라운 역사가 펼쳐지기까지는 많은 시련의 눈물이 있었다. IMF로 거리에 내몰린 노숙자들과 하루 한 끼가 고픈 쪽방촌 사람들을 위해 온몸을 불사르는 열성이 처음부터 가능했던 건 아니었다. 예수님의 사랑을 베푼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무한한 애정을 보여도 마음과 몸이 가난한 그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타인에게 마음 문을 쉽게 열지 못하였고, 그로인해 보람 대신 의심, 배신과 억울함이 목사님에게 대가로 주어졌다. 목사님은 하나님의 일꾼은 보람을 위해서 일하는 게 아닌 사명을 위해서 일한다는 믿음을 가졌고,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 친구처럼 가족처럼 다가가려 애썼다.

 

책에는 그 여정이 진솔하게 적혀있다. 가진 것을 돌려받을 생각 없이 진정으로 나눈 다는 건 목사님의 입장에서는 특히 순종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목사님에겐 하루하루가 곤욕이었는데, 형의 사업 실패로 갚아야할 빚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고 매일 밤 과일 장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역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억울한 배척과 수치심에 못 견뎌 도저히 못하겠다고 원망도 울기도 하였다.

 

그러나 힘들 때 받은 하나님의 위로로 견더 낸 4년간의 연단은 목사님에게 값진 선물로 새롭게 탈바꿈되었다. 탈북자 사역에 토대가 되는 등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던 것이다. 그렇게 목사님은 사람들 말이 아닌 하나님 뜻에 움직이는 충실한 일꾼으로서 나눔재단, 보이지 않는 성전 건축 프로젝트 등을 바라시는 뜻대로 이끌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내가 하나님 앞에 자랑할 것은 요것밖에 없기에 나는 지금도 그 두 번의 결정이 무식하고 못난 나를 하나님이 사용한 이유라고 믿는다. 그건 바로 하나님 대문에 '좁은 길'을 선택한 것이다. (P144)

 

김범석 목사님이 순종으로 걸은 좁은 길을 본 시간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잘 되는 과일 사업을 포기하고 사역에 전념한 일, 교회의 편안한 교역자 자리를 내려놓기로 마음먹은 일, 두 번의 좁은 길을 따른 순종은 하나님의 언약의 시작이었다.

 

그 좁은 길이 생명길이고 역전의 길이었다는 고백을 읽으면서 퍼뜩 든 생각은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답은 간단히 나왔다. 인내는 모르고 불평은 잘하는 나는 길 앞에 서서 계산만 하였을 것이다.

 

충성된 종은 하나님의 말슴을 믿고 의심하지 않고 따르는 자요, 가라 하면 가고 서라 하면 서고, 돌아서라 하면 돌아서는 자이다. (P194)

 

내 남은 인생 동안 무엇에 도전을 할 것인가?주님의 충성된 종으로서 세상 재물과 세상 명예가 아닌 무한한 하나님의 그 마음에 도전하리라!(P205)

 

이 책에 담긴 아름다운 순종과 진정으로 이웃을 위하려 애쓰는 사랑의 정신을 읽고 나니 내 안의 이중성이 피할 수가 없게 다 드러난다. 내 믿음의 이유가 사실은 넓은 길의 가치 어딘가에 있다는 게 부끄럽다. 지금의 시련을 견디지 못한다면 언제든 흔들려버릴 믿음이 아닌, 계산 없이 망설임 없이 좁은 길을 택하는 순종과 충성된 종의 믿음을 갖고 싶다.

 

여러 과제가 마음에 남는다.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본 <역전>. 뜻 깊은 귀중한 시간이었다. 강력 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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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이기는 능력, 영원
폴 트립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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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이 까마득히 멀게 느껴지기는 한다. 당장 눈앞의 고통은 어마어마해 보이고 내세는 멀고 추상적이게만 느껴지기 때문에 바른 시각을 유지하기가 결코 쉽지만은 않다. 그래도 어떻게든 바른 시각을 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중요한 것을 놓칠 수밖에 없다.(p66)

 

영원한 곳이 실재한다는 확신 그리고 고통 없는 이상향을 향한 갈망이 나에게도 있다. 그런 마음을 품고서 당장에 보이는 현실 말고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게 기도한다. 그렇게 기도하면 다음 날 아침을 새롭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슬프게도 막상 문제 앞에선 의지가 흐물흐물 해지는 걸 경험한다.

 

참 기쁨을 누리는 일이란 오로지 하나님과의 소통에서 출발하고 펼쳐진다는 걸 알고 바라는데도 고통을 그저 피하고 싶은 생각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드는 생각 하나, 지금 힘이 드는데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어리석은 의구심이다.

 

이 책 <영원>은 영원한 곳을 믿고 바라나 현실 생활과는 별개로 떼어 생각하는 사람, 부딪히는 현실 벽의 답은 영원이 있는 곳에 있음을 알아야할 사람을 위한 책이다. 즉 영원을 갈망하는 존재 인간에게 하나님이 바라시는 진짜 기쁨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진짜 기쁨은 진리를 알고 감사와 기대감으로 살 때 솟아나는 내적 평안과 안식이다. (p79)

 

저자 폴 트립 교수는 고난과 환난을 피할 길 없는 현실은 잠깐 머물다 가는 곳이고 하나님의 계획은 영원히 살 천국에 있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그리고 고난에 치여 깊은 무력감에 시달리고 현실 문제와 천국 소망을 따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보호하심으로 현재를 이겨내라 말한다.

 

영원에는 지옥이란 곳은'하나님과의 분리가 이루어지'는 곳이고, '끝없는 고통만'(p208) 존재하기에 천국으로 바르게 갈 방향키를 잘 잡는 것이 중요하다. 그 길에는 예수님이 계신데 감지하지 못하고 문제에 얽매여 영원을 바라보는 눈을 감아버리기 때문에 현재 세상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건져주시는 선하신 하나님을 믿고 이겨낼 때 현재 세상에도 승리하고 잘 마쳐서 영원의 곳으로 들어갈 수 있다.

 

지금 당장의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선? 성경적인 관점으로 영원을 바라볼 때 하나님 바라시는 참 기쁨을 진정으로 체험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공허한 하루가 아니라 기쁨으로 충만한 하루를 살고 싶다. 그러려면 영원에 대한 내 시각이 먼저 바뀌어야함을 알았다. 딴 길로 새지 말고 평안 속에 머물고자 기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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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보좌 중보기도 - 위대한 부흥의 시작, 중보기도의 모든 것 엔튜크시스 시리즈 1
김종필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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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향기 풍기던 10월 초 주일 설교 시간, 온몸을 뒤덮던 강한 바람을 잊을 수가 없다. 평소 나긋나긋 설교하시는 담임 목사님이 "제발 예수님이 바라는 기도를 하세요! 하지 말란 기도는 하지 마시고요!!!" 손을 떨고 머리를 흔들면서 울듯이 말씀하시는데, 그때 일었던 마음속 파도가 지금도 생생하다.

 

아마도 그때서야 중보기도자의 참된 자질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 같다. 내가 기도하는 제목이 예수님이 하지 말라는 기도의 대표 사례가 아닌가 하는 충격, 하나님 바라시는 기도는 이게 아닌데 하는 혼란이 가시고 나니, 내게 원하시는 기도 즉 하나님나라를 위하여 드리는 기도가 내 선택이 아닌 당연한 의무임을, 그것을 잊는 죄와 그 심각성을 그때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던 것 같다.

 

며칠 전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을 고발하는 임지선 기자의 <현시창>을 읽었다. 세상이란 현실은 사탄이 바라는 그대로 화평이 부서져 있었고, 하나님 형상을 잃은 인간의 모습은 지독하게 끔찍했다. 울고 있는 이웃을, 예수님을 저버리기를 서슴지 아니하고 사탄의 대표자로서 임무를 착실히 따르는 모습. 그 죄의 끝은 너무나 비참했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내 영혼의 문제에만 집착하고 불평하며 불필요한 기도를 드리는 어리석은 내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하늘보좌 중보기도>는 이런 시대에 절실한 중보기도의 의미, 기도하는 자의 자질과 중보기도의 놀라운 힘을 담은 책이다. 죄에 물든 서구 교회를 위해 밤낮으로 기도하고 사역하는 김종필 목사님은 깊이 있는 중보기도란 무엇이고 그것이 왜 필요한지를 성경적으로 구체화하였다.

 

책은 완전한 중보기도자 예수님을 소개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하나님은 모든 소유를 대표할 사람을 만드셨고, 사람에게 대리자의 역할을 맡기셔서, 이 땅의 하나님 소유를 다스리고 번성하고 정복할 권리를 주셨다. 그런데 아담이 사탄의 꼬임으로 죄를 범한 결과, 존귀한 하나님의 형상과 이미지를 잃게 되었다. 예수님은 죄로 인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게 된 인간과 거룩하신 하나님 사이를 중재하시고 화해시키셨다. 삶을 온전히 바치기까지 하여 사탄의 힘을 막으셔서 희망 없는 인간에게 사탄을 결박할 수 있는 권세를 보여주신 것이다.

 

목사님은 예수님의 이같은 삶을 본보기로 하여 제사장의 삶을 설명한다. 그 삶이란 누리고 가진 것을 포기하는 순교자의 삶이고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를 지는 삶이며 죄를 끊은 성결한 삶이라 말한다.

 

"네가 그들을 위하여 중재하길 원하노라."중보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듣고,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화해시키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P88)

 

성경 속 인물들의 중보기도를 보면 하나님이 어디에 계획과 목표를 두시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계획이 영원의 것에 있다는 걸 알 때, 성령님의 인도를 따르는 사랑의 중보기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깊이 있는 기도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깊이 있는 기도가 시급한 때가 이때임을 또 알았다. 심판과 멸망을 막는 기도를 원하신다는 하나님 뜻에 따라 사랑의 마음으로 중보하기를 원한다. 내가 바라는 것만 찾는 어리석은 모습을 내려놓고, 주신 사명대로 거룩한 삶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하나님 기다리시고 찾고 계신 올바른 중보기도자가 되고 싶다. 묶인 것을 풀어주시고 풀린 것을 묶어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이시란 걸 잊지 말자고 다짐한다.

 

중보기도자의 진정한 자세를 알려준 책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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