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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여왕 - 안데르센 동화집 ㅣ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5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김양미 옮김, 규하 그림 / 인디고(글담) / 2009년 2월
평점 :
한겨울에 몰아치는 찬바람을 뒤로하고 따뜻한 잠에 빠지는 일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다. 안데르센의 아름다운 동화집 <눈의 여왕>을 그런 설레는 기분으로 읽었다.
눈의 여왕은 처음 읽는다. 책에 실린 다른 단편은 만나본 적 있지만 소녀 게르다의 모험담을 담은 눈의 여왕은 이번이 처음이다. 섬세한 일러스트는 말만 들었던 동화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켰고 한편의 동화를 더욱 빛나게 하였다.
'멋지고 아름다운 것들은 모조리 찌그러뜨려 거의 보이지 않게 만들고, 쓸모없고 흉측한 것들은 더 크게 비추어 돋보이게' 하는 거울 하나가 악마의 손에서 만들어진다. 거울은 조각조각 모래알같이 부서져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데, 그것은 거울의 무시무시한 힘을 그대로 보존하여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어지럽힌다. 눈에 달라붙어선 모든 걸 비꼬아 보게 하고, 심장에 깊이 박혀서는 마음을 얼음같이 꽁꽁 얼려버린다.
장미를 사랑하고 찬송하기를 좋아하는 천진난만한 소녀 게르다와 소년 카이에게 변화의 폭풍이 닥친 것은 바로 거울 조각이 카이의 심장에 박힌 후부터였다. 차갑게 변해버린 소년은 눈의 여왕의 썰매에 끌려 자신도 모르게 붙잡히고 만다. 기억을 잃은 채, 마음과 몸이 검게 변한 채 얼음 빼고는 텅 빈 얼음성에 갇혀 버린 카이 그리고 친구를 찾아 여기저기 헤매는 게르다가 동화를 본격적으로 전개한다.
소녀의 순수하고 착한 마음은 사람들과 동물들을 돕게 하고 마침내 게르다는 카이를 마주하게 된다. 게르다는 기억하지 못하는 카이를 끌어안으며 함께 불렀던 찬송가를 귓가에 속삭인다.
게르다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눈물이 카이의 가슴에 떨어져 심장으로 스며들더니 얼음덩어리를 녹이고 거울 조각을 씻어 냈습니다. 카이가 게르다를 쳐다보았습니다. 게르다가 찬송가를 흥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들장미가 자라는 골짜기 아래 우리 아기 예수 함께하시네.
그러자 카이가 왈칵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어찌나 울었던지 눈에 박힌 거울 조각이 눈물을 타고 빠져나왔습니다.(P92)
온갖 풍파를 이겨내고 마침내 카이의 심장에 박힌 얼음 조각을 빼낸 게르다. 할머니의 방으로 예전처럼 돌아와 앉은 그들은 손을 맞잡고 따스한 하늘을 마주한다.
춥고 황량했던 눈의 여왕의 성에 대한 기억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건 그저 고통스런 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P96)
안데르센의 놀라운 상상력으로 탄생한 동화 속 세계는 눈꽃처럼 신비하고 아름다웠다. 어쩜 이렇게 실감나게 풀었는지 정말 즐거웠는데, 꿈결에 직접 걸어본 듯 생생하다. 슬픈 장면도 기쁜 장면도 마음을 울려 오래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보고 또 보고픈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