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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 당신의 짝은 지금 행복합니까?
남규홍 지음 / 도모북스 / 2011년 12월
평점 :
'짝'이라는 인기 TV프로그램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프로그램을 제대로 본 적이 없습니다. 매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남자 몇 호, 여자 몇 호의 이야기에 일부러 관심을 갖지 않으려하고 피해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한번은 마음을 다잡고 TV앞에 앉아서 '짝'을 보고 있었는데 마음이 무척 불편해짐을 느꼈습니다. 남자가 타고 온 차, 여자의 외모, 직업과 학벌과 같은 외적인 모습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내실을 드려다 볼 힌트가 되는 행동과 말을 보며 인물들의 순위를 매기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괜찮은 사람은 괜찮은 사람과 만나는 잔인한 현실과 마주하며 선택받지 못한 약자인 짝없는 짝들에게 동정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가장 통속적인 주제인 사랑과 만남을 이야기하고 있는 따뜻한 프로그램 앞에서 나 자신은 얼마나 세속적인 시선으로 TV밖에서 팔짱을 끼며 지켜보고 있었던가 싶어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짝을 찾는 일은 달콤하지만 때로는 잔인하다. 누구는 수없이 많은 짝을 만나지만 누구는 평생 단 한 번도 짝을 만나지 못한다. 그래서 만물의 짝짓기는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이기적이다. (86쪽)
이야기의 시작은 왜 하필 '짝'이었나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짝>의 저자 남규홍 피디는 가장 한국다운 이야기, 그리고 현재의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국가와 사회, 가정의 뿌리가 되는 짝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재 한국 사회에 만연해 곪을대로 곪아 삭고 썩어버린 사회적 문제들을 짝을 통해 진단하고 처방해보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붕괴되어가는 가정의 현실을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화와 사회, 그리고 국가에게도 부분적인 책임이 있고, 그 책임을 간과하다간 한번 밀려나간 파도가 다시 돌아오듯 병이 병을 만드는 현실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좋은 짝을 만나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것은 모든 인간의 욕망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욕망이 나갈 출구를 찾지 못해 헤메이는 구룡포 항구의 바닷가 외기러기 짝들의 모습은 현실 그대로의 모습이라 더욱 쓸쓸하고 황량해 보였습니다.
그럼 짝의 시작은 어떠했을까. 설레는 첫 만남, 그리고 사랑을 나누고 결혼으로 이어지는 그림은 TV프로그램 '짝'의 애정촌의 모습을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긴장한 눈빛을 하고 교환해대는 서로의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전달해 보려는 무언의 외침. 하지만 짝의 맺어짐은 그 어떤 밀림 속 정글보다도 치열하고 잔인한 승부를 통해 승자는 달콤한 과주를, 패자는 쓰디쓴 독주를 마셔야 했습니다. 미스코리아 출신 미녀를 얻기 위한 사법연수생 판검사 후보자의 한결같은 구애의 현장과 그 마음을 받아주는 훈훈한 '짝'의 결말은 더이상 세속적인 사랑의 모습으로 볼 것이 아니라 순수함과 진정성이 묻어나는 러브 스토리를 보여주는 한편의 영화가 되었습니다.
애정촌의 입구는 고즈넉한 경사길 계단이고 저 너머에는 몇 명인지 모르는 남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여자들은 그 순간 백마 탄 왕자를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남녀가 만나는 긴장의 순간, 그들의 표정은 떨리고 흥분되어 있다. 여자들이 도착할 때마다 남자들의 시선은 복잡하게 교차한다. 천 분의 일 초로 감정이 쪼개지고 있다. 한 명씩 자태를 드러낼 때마다 남자들의 본능은 꿈틀댄다. (…) 애정촌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77쪽)
하지만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사랑 영화는 결혼 후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생활 드라마가 되고, 법정 드라마가 되기도 합니다. 시골에서 60년을 함께산 노부부의 모습을 통해 짝의 한국적인 모양을 보여주고 우리에게 짝은 어떤 의미였는지를 사회적인 통념과 문화를 바탕으로 생각하게 합니다. 또 이유와 시작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게 패인 도시 속 짝의 균열을 보여주며, 혹시 당신의 짝도 이런 모습이지 않느냐는 질문을 합니다. 당신의 이야기, 혹은 당신의 짝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사회적 통념아래 결혼을 유지하는 이유와 삶의 의미를 각자의 짝에게 두지 않고, 특정한 무엇인가에 두고 있는 우리 사회의 처절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결혼에 대한 처절한 현실을 느끼며 서로에게 바라는 것도 없고 사는 것은 모두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한다. 이미 결혼 생활은 몸만 있고 마음은 떠나 있다. 나에게 맞는 짝은 어딘가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265쪽)
가정 문제로 끙끙대는 동병상련의 남성들에게 술집은 피난처요 구원의 장소다. 술집에 오래 있다고 모두 다 술고래는 아니다. 술잔에 담긴 사연이 그 남자가 취해가는 이유다. 술이 좋아 술을 먹는다고 생각한 것이 세상의 뚜껑을 본 것이라면 그들이 왜 집에 가지 않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은 뚜껑을 따고 진짜 세상을 보는 것과 같다. 이것이 사는 것인가? 이것이 정녕 우리가 꿈꾸었던 사랑의 본질이고 결혼의 속살인가? 오늘도 그 남자가 술집 문을 열고 있다. (34쪽)
연애시절 구구절절한 사랑을 노래했던 우리 부부가 지금은 왜, 그리고 어떻게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슬픈 한숨이 절로 새어나오고 고민하고 또 고민해보아도 해결책을 찾는 일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이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시간과 돈의 여유, 그리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스스로의 문제일 수 있다는 방향으로 흘러가서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콕 집어서 그렇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은행 부지점장과 벨리댄스 원장 커플에 대비되는 모습으로 생산직 근로자와 가정주부 커플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으니, 세속적이었던 우리의 시선이 필연적일 수 밖에 없고, 이것이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이구나를 느꼈습니다. 결국엔 사법연수생을 향한 미스코리아의 선택이 여러모로 옳은 결정이었다는 것이 되어버렸으니 말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동물이 인간이라는 프리즘으로 볼 때 짝의 실체는 더 선명하게 보일 수도 있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고 하는가? 아무도 통제할 수 없는 세상에서 사랑은 때로는 폭력적이다. (236쪽)
그리고 결국엔 스스로의 행복은 짝을 통해 이룰 수 있다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그전에 당신의 짝은 정말로 행복한가에 대해 생각해볼 문제라는 말을 보탭니다. <짝>은 짝이라는 화두를 통해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중년의 한 남자가 생각하는 가벼워보이지만 무거운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상적인 사랑을 이야기할 때는 편하고 재미있었던 이야기들이, 현실적인 사랑을 이야기할 때는 불편해서 피하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우리들의 진실된 이야기였기 때문에 피하고 묵혀두고 내버려 둘 것이 아니라 직시하고 부딛혀서 돌파해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규홍 님이 책 속에서 했던, 이 책을 통해 단 한 쌍이라도 싸움을 그치고 이별을 멈추고 술잔을 기울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는 말처럼, 저도 이 글을 통해서 그랬으면 한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살다 보니 제일 고마운 존재가 바로 옆에 있는 짝이었다는 생각으로 현실에 대한 모든 걱정을 잠시 잊고, 연애시절 때처럼 서로의 짝에게 행동하고 표현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남자는 오늘 저녁 예쁜 꽃을 사들고 집으로 갑니다. 그리고 여자의 말에 귀기울여 들어주는 시간을 가집니다. 그리고 여자는 그 꽃을 받고 마음에 있던 고마움의 말을 전합니다. 그리고 남자 옆에 있어 주는 시간을 가집니다. 대한민국이 행복해지고 건강해지는 가장 쉽고 빠른 길은 짝의 행복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여기서 질문을, 당신의 짝은 지금 행복한가요.
지금 이 순간 짝이 던지는 화두는 단순하고 명쾌하다. 짝이 건강해야 가정도 사회도 평화롭다. 지금 내 곁에 있는 바로 그 사람이 내 운명이다. 우리들의 인생은 순수하고 황홀한 짝짓기의 처음처럼 끝날 수는 없는가? 당신은 지금 가장 소중한 짝에게 희생과 배려와 사랑을 베푸는 것을 잊고 살지 않는가? 짝의 노래는 그렇게 되돌아가고 있다. (281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