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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시효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김성기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제3의 시효>는 F현 경찰청의 강력계 형사 반장들의 이야기 입니다. 강력 1반에는 절대로 웃지 않는 무표정의 '파란 귀신' 구치키 반장이, 2반에는 범임을 잡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혈한 구스미 반장이, 3반에는 육감을 통해 사건을 읽고 범인을 검거하는 천재형 무라세 반장이 범죄와의 싸움의 일선에 서있습니다. 이들이 맡은 범죄를 중심으로 선후배 형사와 함께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옴니버스 형식의 묶음 단편집이 요코하마 히데오의 <제3의 시효>입니다. 침묵의 알리바이, 제3의 시효, 죄수의 딜레마, 밀실의 탈출구, 페르소나의 미소, 흑백의 반전라는 제목의 6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이야기는 F현 경찰청 사람들을 배경으로 각각의 강력반 형사와 반장을 중심으로 이동하며 완전히 다른 색깔의 이야기를 그려갑니다.
검독수리는 대개 알을 두 개씩 낳아. 그 알은 이삼 일 간격으로 부화하는데, 먼저 태어난 새끼가 나중에 태어난 새끼를 부리로 마구 쪼아대지. 그러다가 결국에는 죽이고 말아. (184쪽)

너무나도 다른 색깔의, 개성이 뚜렷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진 형사들이 펼치는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가 옴니버스 식의 단편집 묶음이라는 점은 장편 추리 소설을 기대한 독자라면 조금 아쉬울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형사들이 겪는 고충과 심리적 갈등, 딜레마에 빠지는 사건, 그것은 소설 속의 범죄를 뛰어넘어 어쩌면 우리들의 인생을 보여 주는 것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옴니버스 형식이지만 이야기 모두가 그렇게 비슷한 공감대를 포함하고 있기에 한편의 이야기로 묶어 두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또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오지 않을 법한 개성 강한 반장들이지만, 그들도 다 같은 나약한 인간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그랬던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겁이 나서 그럴 수가 없다.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과장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왠지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면서 어느새 자신의 안위를 염려하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득실 따위를 생각지 않고 곧장 내달렸던 시기도 있었다. (130쪽)
휴머니스트 미스터리의 대가라고 알려진 유명한 작가, 요코하마 히데오의 소설. 이번에 처음으로 접했습니다.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누군가의 추천을 받고 구입해뒀다가 오랫동안 책장에 묶혀 두었습니다. 트릭을 풀고 범인을 추리해 나가는 본격 추리 소설에 빠져 있어서, 증거를 수집하고 탐문하면서 언제 발견할지 모를 단서를 쫒아 계속해서 잠복수사를 펼쳐야만 하는 형사소설에서 크게 재미를 못봤기 때문에 <제3의 시효>를 섯불리 읽을 수 없었습니다. 책장에 꽂혀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던 이 소설을 지금이라도 발견한 것이 천만 다행이란 생각까지 듭니다. 형사 소설의 재미와 맛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수 있었습니다. 범죄와의 싸움, 사건과의 싸움, 트릭과의 싸움 보다도 같은 형사 동료와의 싸움, 수사 과정에서 겪게 되는 용의자와 배경이 되는 법과의 싸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형사 자신과의 싸움에 대한 미묘한 감정의 심리전의 참맛을 알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심리전이 굉장히 예리하고 날카로웠습니다.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