섀도우 J 미스터리 클럽 3
미치오 슈스케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결국 모든 건 우연이라는 이야기야. (135쪽)



    제 7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작이 할 소리인가요? 결국 모든 것이 우연이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치밀하게 짜여진 구성으로 태연하게 아무일 없었다는 듯 행동했던 일상들. 그리고 그것들은 퍼즐 조각이되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어 갑니다. 소설을 다 본 지금, 경악을 금치 못하며 과연 대상 작품이구나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씁쓸한 여운을 남기며, 앞에서 읽었던 소소한 대화와 행동을 돌이켜 보기 위해 책을 뒤적거려야만 했습니다. 



    미치오 슈스케의 소설을 처음 접했습니다. 하지만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던 터라 그의 다른 작품에 대한 서평을 많이 봤습니다. <섀도우>, 한 작품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가 집필하는 스타일을 대충 알 것도 같습니다. 그의 작품은 색깔이 없습니다. 대화와 행동 묘사 모두 군더더기 없이 간결합니다. 16g의 밥알을 정확하게 모아서 만든 전통 일본식 초밥의 느낌이었습니다. 정갈하게 쏙쏙 한입씩 들어가고 입안에서  톡쏘는 향이 잠시 난 뒤에 꿀꺽.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에 개성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초밥이 맛이 없진 않으니까요.



    <섀도우>는 동시간대의 일상의 모습을 다섯 사람의 시선으로 보여줍니다. 어른이면 어른, 아이면 아이, 그들이 보는 세상 혹은 환상을 그들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고 묘사합니다. 작가가 그 사람들의 입장에 완전히 '투영'되어 무색의 자신에게 색을 입히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암 투병중이었던 사키에의 죽음을 시작으로 의문의 자살 사건 그리고 뒤이어 발생한 교통사고, 환각인지 기억인지 알 수 없는 정체모를 영상들.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들의 일상은 점점 비틀리고 있습니다. 마치 뭉크의 그림처럼 말입니다.



    미스터리 소설이고, 추리 소설이고, 더군다나 본격물이기 때문에 단서를 쫓아 사건을 해결해 보려는 독자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사건은 무엇이었는가, 원초적인 질문으로 돌아가면서 혼란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됩니다. 등장인물들 모두가 의심스럽습니다. 더군다나 중간중간에 나오는 정신의학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증상은 환상인지 상상인지 영상인지, 혼란스럽습니다.



    예를 들어 몇 사람이 길을 같이 달리는데 살인자가 쫓아 왔다고 해보자. 그때 살해당할 가능성이 제일 높은 건 누구일까? (39쪽)



    소설 속에서 요이치로가 아들 소스케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살해당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누구일까요. 아니, 살아남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이 누구일까요, 라는 질문이 맞는 것 같습니다. 요이치로가 생각하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소설 속에 나와있습니다. 그가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부분이었습니다. 왠지 공감가는 구석도 많았습니다. 슬픔을 안고 묵묵히 살아가는 무표정한 모습의 얼굴, 담담하게 생각을 이야기하고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꼭 헌신적인 용의자 X 같았습니다. 이런 것을 '투영'이라고 해야할까요. 요이치로의 모습에 그대로 투영된 묘한 기분이 잠시 들었습니다.



    더는 누군가의 '보호해야 할 존재'일 수는 없다. 의지를 갖고 행동해야 한다. 그것이 옳은 일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의지로 누군가를 지킬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한다. (295쪽)



 

미친 사람만이 이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뭉크의 <절규>

뒤에서 커플이 점점 다가오고 있고, 솔로는 분노의 절규를 하고 있다는 그림은 아니겠지.



    소설 속의 요이치로가 어느날 사온 복사본 그림입니다. 거기에 나와있는 낙서 비슷하게 쓰여진 글귀가 바로 '미친 사람만이 이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입니다. 미치지 않고서는 이 이야기는 말이 안됩니다. 이 작품 하나로 미치오 슈스케에게 미쳐버렸습니다. 다른 작품들도 모조리 다 읽어봐야 겠습니다. 그림에 낙서한 사람이 뭉크 자신인지, 아니면 그의 작품을 본 다른 사람들의 반응인지 궁금합니다.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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