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연애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8
마키 사쓰지 지음, 김선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눈물이 납니다. 콸콸 쏟아질 정도로 펑펑 우는 눈물이 아니라, 이슬과 같은 젊은 날을 그리워하는 씁쓸한 맛의 눈물이 한숨처럼 맺힙니다. 마키 사쓰지<완전연애>는 추리소설이고 미스터리 소설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가슴아픈 사랑을 그린 연애소설일 것입니다. 타인이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죄를 완전범죄라 합니다. 그렇다면 타인이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사랑은 완전연애라 해야 할까요? 서문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모양새의 사랑, 우리는 흔히 짝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래, 난 그 사람이 좋다. 언제부터 내렸을까. 차양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기와무는 자연스레 납득했다. 책 속에만 존재했던 '연정'이라는 단어가 소년에게 너무나 친숙해졌다. (53쪽)



    짝사랑은 젊은이의 특권이라고 합니다. <완전연애>혼조 기와무, 혹은 나기라 다다스 라고 불리는 일본 서양화의 대가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는 소설입니다.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혼과 열정이 가득한 인생을 살았고, 그 모습은 노년기에 접어들어서도 소년으로 비유되기도 합니다. 아마 평생 한 여인을 향한 짝사랑을 해왔던지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젊음을 머금은 소년처럼 살았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소년은 그런 비겁한 자신을 증오했다. 국민학교 시절, 아버지의 책장에 있던 무샤노고지 사네아쓰의 희곡을 읽었다. 착하고 힘없는 주인공이 자신이 여동생도 구할 수 없음을 깨닫고 창자에서 쥐어짜낸 신음으로 토해냈던 마지막 대사. '나는 힘을 원한다.' (137쪽)



    황순원님의 <소나기>가 생각났습니다. 소년과 소녀의 순수한 사랑이야기. 소녀는 재쳐두고서 소년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소녀의 죽음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순간, 자신의 무능력이 한탄스러웠을 것입니다. 자연의 섭리, 혹은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라는 거대한 벽앞에 소년이 할 수 있었던 말은 아마 '나는 힘을 원한다.'가 아니었을까요. 무능력함에 스스로가 느낀 부끄러움은 분노로 변하고 그것이 마른 장작이 되어 열정이라는 불씨와 함께 활활 타올랐을 것입니다. 이런 것이 사춘기때 흔히 겪는다는 질풍노도의 감정 기복이 아닐까요.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내 모습과 지금도 젊음(?)을 유지중인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서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또 나기라 다다스의 외로웠지만 결코 그의 세계에서 만은 외롭다고 할 수 없었던, 평생이 어렸던(혹은 어리석었던) 인생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자신만의 세계가 있는 사람은 주위의 누가 뭐라고 한들 절대 불행하거나 외롭지 않다는 말이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비밀을 끝까지 공개하지 않고 거장이 눈을 감을 때 까지 그만의 세계가 깨지지 않도록 배려해준 주위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대신 전하고 싶을 지경입니다.



 

생각만해도 가슴 설레이는 사랑이 있는가. 

그대는 아직 젊구나.



     그것도 이보다 더 클 수 없을 정도의 대형 밀실이다. 인간 세상은 물론 태양계, 은하계까지 포함하는 광대무변한 밀실 살인이지 않은가? (235쪽)



    동생이 먼저 <완전연애>를 읽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것 같은데, 아무도 사건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아." 한 인물의 일대기를 그린 자서전이라고 해야하나, 그렇기 때문에 사건과 관련없는 듯한 곁가지 같은 이야기가 시간 순서대로 천천히 나열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과연 전혀 관련이 없는 듯한 쓸데없는 이야기들 이었을까요.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팬이라면 이런 단서들을 빠짐없이 주워 담아 놓아야 할 것입니다. 사건은 이십년 단위로 총 3번 일어납니다. 제9회 본격미스터리 대상에 걸맞게 사건마다 본격류의 미스터리한 트릭이 다수 등장합니다. 밀실 살인, 완벽한 알리바이, 사라진 흉기 등등 미스터리 팬의 구미를 당기기 충분한 트릭으로 작가와 두뇌싸움을 하는 시간들이 즐거웠습니다. 아무튼 왜 사건이 일어났는데 아무도 사건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완전연애 아니, 완전범죄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아무도 그것이 범죄였는지 몰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거 본격 미스터리의 규칙이라고 할 수 있죠?

    분명 그렇다고 할 수 있겠군. 작가는 독자에게 거짓말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모든 사실을 털어놓을 필요도 없다.

    예. 공정하기만 하면 그만이죠. (399쪽)



    추리소설이라는 특정 장르의 소설만 주야장천 읽다보니 이제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올랐구나를 느낍니다. 조금이라도 식상하다는 느낌이 드는 추리소설이 있으면 가차없이 책을 덮어버립니다. 그러면서 요즘에는 어떻게 이야기의 모습을 만들어 내느냐, 서술의 형태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명탐정이 등장하는 시리즈나 형사의 행동과 시점을 따라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형태의 소설은 소설을 쓰는 입장에서 서술 형태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작가 입장에서 고민을 많이 하게될 것입니다. 독자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되지만 사실을 모두 다 털어 놓을 필요도 없다는 대화가 소설 속에 있습니다. <완전연애>는 정말로 그점을 잘 활용한 소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교묘하게 잘 숨겼습니다. 그리고 그런 비밀을 파헤칠 수 있는 단서들를 잘도 흘려 놓았습니다. 그런 단서를 주워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그 순간 독자들이 다른 곳으로 한눈을 팔게끔 하는 작가의 순간적인 재치도 옅볼 수 있었습니다. 분명히 이것이 복선이긴 복선인데 라고 느끼는 순간, 이야기를 뿌리채 흔들어 정신없게 만들고 추리를 할 겨를을 주지 않는 이런 훼방이 작가의 필력이라고 해야하나, 소설을 다 읽고 이야기를 다시 돌이켜보니 정말 정신없이 일대기를 그려나갔구나 싶습니다. 



    한 사람의 일방적이고 무모하리만큼 어리석은 사랑. 이런 이야기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서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백야행>이 생각납니다.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그림자처럼 맴도는 일그러진 형태의 사랑이야기. 마키 사쓰지 <완전연애>에서도 비슷한 모양새였지만 한가지 다른 점은 삐뚫어졌다고 볼 수는 없는 소년의 순수함이 도드라진 사랑이었단 점입니다. 사랑 앞에 순수하지 못한 사람이 어디 있겠냐 하겠지만, 이 소설은 정말로 사나이 가슴에 불을 짚이는 애잔함이 묻어납니다.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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