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토바 전설 살인사건 명탐정 아사미 미쓰히코 시리즈
우치다 야스오 지음, 한희선 옮김 / 검은숲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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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고토바 전설 살인사건>에 대한 소개글을 봤을 때,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와 비슷한 느낌의 이야기일 줄 알았습니다. 혹시라도 스포를 당할지도 몰라서 책 소개글을 꼼꼼하게 보지 않고 대충 흘겨보았기 때문에 그런 오해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제목만 봐도 '전설'이라는 단어가 떡하니 들어가 있으니 왠지 오래된 이야기가 술술 흘러나오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이 이야기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그렇게 오래된 느낌의 이야기가 아니고 배경도 현대이며 인물들도 형사와 경찰, 혹은 탐정 등의 요즘 시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로 책을 집어들었으니 어쩔 수 없었을 테지만 이렇다 보니 책을 펴자마자 함정에 빠진 듯한 묘한 반전을 경험하며 읽어나가야 했습니다.





    우치다 야스오의 소설은 이번이 첫 만남이었습니다. 누적 판매부수가 1억부를 돌파했다니 과연 무엇이 어떻길래, 라는 궁금증이 불끈 솟아오르더군요. <고토바 전설 살인사건>은 1982년 소설이니 꽤 오래된 이야기지만 그렇게 촌스러운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담백하다고 해야하나, 좋게 말해서 담백함이지 밋밋함 혹은 맹맹함이 느껴지는 소설이었습니다. 일본 소설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그런 느낌의 모습인데, 이걸 나쁘고 싫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구석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담백함이 이야기 전개에 속도감을 실어주었으니 장점으로 잘 작용했다고 봅니다. 전직 기자가 썼다고 해도 믿을 만큼의 건조한 문장들의 나열로 빠르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사미 미쓰히코. 우치다 야스오의 소설에 등장하는 명탐정의 이름입니다. 거대한 시리즈의 추리소설에서 명탐정의 첫 등장을 중요시하고 자세히 살펴보는 편인데요, 아사미 미쓰히코의 첫 등장은 놀랍게도 별 것이 없습니다. 그 어떤 수식어나 묘사도 없는 건조한 상태라 솔직히 지금 소설을 다 보고 나서도 이 인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흐리멍텅한 이미지 뿐, 역시 잘 모르겠다는 느낌입니다. 그건 아무래도 이 이야기를 집필했을 당시에 아사미 미쓰히코를 시리즈물의 명탐정으로 정해놓고 소설을 써내려갔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소설이 우치다 야스오의 데뷔작은 아니지만, 전직 작가로 전향한 첫 소설이 <고토바 전설 살인사건>이었으니, 이 소설을 데뷔작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런데 작가는 이 소설을 사실 반은 재미삼아서, 반은 놀이삼아서 집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후의 이야기를 계속 쓸 생각까진 하지 않았던 터라 아사미 미쓰히코의 등장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면 크게 대단하진 않지만 아마추어가 썼다고 여기기엔 괜찮은 모습을 하고 있는 애매한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재미로 이 정도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수준이라면 당연히 대단하다고 해야겠지요. 그동안 봐왔던 인기 일본 작가들의 데뷔작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것에 비해서는 이 정도의 소설은 양호하다는 느낌입니다.



    실제로 이 소설을 집필하기 위해 우치다 야스오는 고토바 법황의 유배 경로와 소설의 배경이 되는 지역들을 취재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취재, 참으로 멋지지 않습니까. 소설을 쓰기 위한 취재활동이라니, 사립 탐정 느낌도 나면서 말이지요. 그러고 보니 이 소설이 유려한 글솜씨를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화려함은 비록 떨어질지 몰라도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한 철저한 준비를 치밀하게 한 흔적은 확실히 보이는 것 같습니다. 문체를 극복한 구성이라고 해야할까요. 적절한 타이밍에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독자보다 반발 앞서서 단서를 던져주고, 그리고 다시 모두 다 체가 버리는 과정들이 꽤 괜찮았습니다. 이 소설 특유의 속도감은 여기에서 나왔다고 봐도 되겠군요.



    그래서 살인사건의 범인은 쉽게 맞출 수 있는가 하면, 굉장히 쉬운 편입니다. 독자가 건드릴 수 있게 만들어 둔 추리의 요소가 많지 않은 데다가 어느 정도까지 이르면 예상이 가능한 전개가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일부러 속도를 늦쳐가며 읽지 않는다면 속도에 빠져들어 추리고 단서고 간에 단번에 읽어버리고 치워버릴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조금 느긋하게 속도에 취하지 않고 읽어 나간다면 이것저것 따져가보며 볼만한 것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많지 않았고, 있다 하더라도 구체적이지 않아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앞으로 명탐정 아사미 미쓰히코 시리즈가 계속 국내에 소개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이 소설이 거대한 시리즈의 시작이 될것이라고 여기며 쓴 소설이 아니었고, 전직 작가라고는 하지만 소설가라는 느낌보다는 취미생활로 재미삼아 쓴 느낌이 났던 소설이었던 만큼 <고토바 전설 살인사건> 하나를 보고 시리즈 전체를 평가할 순 없어보입니다. 이 시리즈의 다른 이야기 두어편은 더 봐야, 시리즈를 모조리 다 보고야 말겠다라는 다짐을 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을 계속 쓰다보면 없던 재능도 생기기도 할 테니까요. 다음에 볼 우치다 야스오의 소설이 화려하길 바라지는 않지만 그만의 색이 느껴지는 소설이었으면 하고 기대해봅니다.



    그러나 상대가 악마라면 우리는 신이 되어 그것을 심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형사님. (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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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외 세계문학의 숲 5
다자이 오사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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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도 인연이 있어야 만난다는 말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책도 사람을 골라 스스로 찾아오기도 하고, 또는 억지로 오지 않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고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무슨 인연이 있어서 나에게 왔을까. 이 책은 나의 어떤 점을 꽤뚫어 보고 이렇게 스스로 찾아 온 것일까. 왜 나에게 왔을까, 그리고 어떻게 나에게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평생 <인간실격>이라는 책을 모르고 지낼 수도 있었고, 다자이 오사무라는 인물에 대해 모르고 살았을 수도 있었는데 나는 어떤 힘에 의해 이끌려서 이 책에 관심을 보였고, 또 이 책은 신기하게도 나의 손으로 들어왔으며, 그대로 방치해두어 될 책을 왜 나는 집어 들고 읽었는가. 그런 생각들을 하다보니 무서웠습니다.



 



 

    이 소설이 우울한 시대의 좌절하고 방황하는 청년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론 부분적으로 자신의 내면과 닮은 부분을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알 것도 같다'라는 그 가벼운 말과 태도-―물론 스스로는 절대로 가볍지 않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는 직접 내면의 밑바닥, 가장 어두운 부분까지 내려가 본적이 있는 사람에게는 아픔과 상처가 될 잔인한 가벼움의 표현일 것입니다. 그러니 그가 느낀 감정들에 무척 가까웠다고 여기지만 대놓고 그랬다라고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이해해주길 바라며 동정을 원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필요없으니 제발, 알 것 같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알량한 공감따위는 집어치우고,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둘 것을 주문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신의 이야기를 쓴 수기형식의 소설을 남겨 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타인을 위한 글을 썼던 다자이 오사무가 가장 자기 자신을 위한 글을 썼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썼던 다른 글들은 어찌보면 가면을 쓴 다른 얼굴을 한 다자이 오사무가 쓴 글일지도 모릅니다. 언뜻 <인간실격>에서 내비친 숨겨진 본 모습이 다른 글들에서도 순간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 모습이 깊어지려하면 재빨리 숨기며 무서워하고 바들바들 떨며 순진무구한 가면의 표정으로 바뀌는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자 번뜩이는 눈을 하고, 깊고 어두운 이야기가 매끄럽게 물흐르듯 줄줄 이어지는데 그것이 제가 본 <인간실격>의 모습입니다. 물론 소설 속의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은 모양새로 번뜩이는 눈마저 숨겨놓고 내리깔며 바들바들 떨고있었지만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또 이런 생각도 듭니다. 결국 세상에 남겨지는 것은 음악과 그림, 글과 이름 뿐인 세상에서 자신이 살다갔다는 존재의 이유가 될 무엇인가를 남기려했던 작은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미 모든 것이 다 결정났고, 이 소설을 쓰고 있던 당시에 마음은 이미 끝나있던 상황에서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 시간동안 끝을 준비하고 마무리 지으며 장식하는 마음으로 수기를 완성했을 것입니다. 결국에 그런 작은 몸부림이 세상에 남겨져 바다건너 타국에 있는 한 사람에게도 전해졌으니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하나. 아무튼 뚜렷하게 무엇을 위한 성공인지는 모르겠다만 성공이긴 성공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그의 성공은 아무나 이룰 수 없는 성공이라 그의 '실격'은 수많은 실격 당한 인간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입니다. 생각하고 있고 마음먹고 있다고 그들이 다 같은 통찰은 보이질 못할 것이고, 같은 것을 보고 자신은 알고 있다고 인지할 지라도 표현하는 능력에서 격차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의 실격은 외적인 모습과 재능에 의해 한층 더 돋보이고 화려하며 꽤 멋있어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 꽃피우지 못한 수많은 실격자들 보다도 반발의 차이만큼은 양지에 있었다고나 할까요. 이 소설을 읽고 그런 생각에까지 이르니 참으로 우울해졌습니다. 세상의 인간실격자들과 다자이 오사무와의 단 하나 크고 중요한 차이점은 우린 아직 살아있다는 것인데 혹시라도 그런 살아있음 조차도 타의에 의해 살아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그마저 결정하지 못한다면 실격이라는 그 '격'도 없는, 그러니까 명함도 내밀어 보지 못한 잉여가 되는 것이니까요.



    이런 생각에까지 이르니 이 책이 나에게 올 수 밖에 없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당연함은 알 것도 같은데 아직까지 또렷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인간실격>은 알았는데 그럼 나는 어떡해야하는가. 이 책은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무엇이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자이 오사무가 이 소설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그에게 전혀 폐가 되지 않을 만큼 전적으로 이해하고 느끼고 공감하는데, 그럼 나는 이 글을 본 다음에 어떤 반응을 보이며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 그러니까 그걸 모르단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질문들이 묘하게 가슴 속에서 불안함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우울하고, 슬프고,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고. 온 몸에서 힘인지 영혼인지 모를 무언가가 빠져나가 한없이 나약해고, 없던 병까지 생겨서 결국에는. 모르겠습니다.




    내가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아직까지도 전혀 알지 못한다는 뜻이겠지요. 내가 가진 행복의 관념과 세상 사람들의 행복의 관념이 전혀 맞물리지 않는다는 불안감, 나는 그 불안감 때문에 밤마다 뒤척이고 신음하고 자칫 미쳐버릴 뻔한 적도 있습니다. 나는 과연 행복한 걸까요? 어렸을 때부터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을 참 많이도 들었지만, 나로서는 항상 지옥 같은 마음뿐이고 나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 사람들이 도리어 나와 비교도 안 될 만큼 훨씬 더 안락해 보였습니다. (15쪽)



    인간에 대한 두려움에 항상 바들바들 떨면서, 또한 인간으로서의 나자신의 말과 행동에 털끝만큼도 자신감을 갖지 못한 채, 그리고 나만의 깊은 고뇌는 가슴속 작은 상자에 감춰두고서, 그 우울과 긴장을 꼭꼭 감추고 또 감추며 오로지 천진한 낙천성만 있는 척 나는 장난꾸러기 별난 아이로 점차 완성되어 갔습니다. (19쪽)



    아름답다고 느낀 것을 그대로 아름답게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건 얼마나 만만하고 어리석은 짓인가. 대가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자신의 주관에 따라 아름답게 창조하고, 혹은 추한 것에 구역질을 하면서도 그에 대한 관심을 숨기지 않고 표현의 기쁨에 젖는다. 즉, 타인의 생각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화법의 원초적인 비전을 다케이치에게서 전수받은 것입니다. (40쪽)



    나와는 또 다른 형태로 역시 이 세상 사람들의 삶에 완전히 유리되어 어쩔 줄 모르고 있다는 점에서만은 분명 똑같은 부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광대 짓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게다가 그 광대 짓의 비참함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 나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었습니다. (45쪽)



    아침에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나자 나는 원래의 경박하고 가식적인 광대가 되어 있었습니다. 겁쟁이는 행복조차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솜에도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행복에 상처를 입는 일도 분명 있습니다. 더 이상 상처를 입기 전에 어서 빨리 헤어지고 싶어서 예의 광대 짓이라는 연막을 쳤습니다. (62쪽)



    세상. 어쩌면 나도 그것을 희미하게나마 알 것 같았습니다. 개인과 개인 간의 투쟁이고, 게다가 그 자리에서만의 투쟁이며 게다가 그 자리에서만 이기면 되는 것이다. 인간은 결코 인간에게 복종하지 않는다. 노예조차도 노예다운 비굴한 앙갚음을 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때 그 자리의 단판 승부에 의지하는 것 밖에는 살아남을 방도가 없다. 그럴싸한 대의명분을 부르짖지만 모든 노력의 목표는 반드시 개인, 개인을 뛰어넘어 다시 개인. 이 세상의 난해함은 개인의 난해함. 큰 바다는 세상이 아니라 바로 개인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세상이라는 너른 바다의 환영에 겁을 먹는 데서 약간은 해방되어 예전처럼 한없이 온갖 고민을 하는 일 없이, 이른바 우선 당장 급한 필요에 따라 얼마간 번뻔스럽게 처신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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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강자 - 이외수의 인생 정면 대결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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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의 책을 읽고 그 속에 담긴 내용을 모두 이해했다고 이야기하려면 그 책을 쓴 사람의 인생까지 모조리 다 공부해야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외수 님. 대단히 유명한 분이신데 저는 이분의 이름 세 글자만 알고 있었지 이분이 어떤 분인지 전혀 모르고 지냈습니다. 오래 전에 티비에서 한번 본 기억이 있는데 프로그램 자체가 우중충하고 재미없어서 채널을 돌렸던 것 같습니다. 도인같은 외모를 하고 계시고 글을 쓰는 분이시구나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우리시대를 말하는 대한민국 대표 아이콘 중에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분을 전혀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니, 스스로가 무지했음이 느껴졌고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국내 최초 트위터 팔로워 100만명 돌파를 이룬 분이신데 저는 며칠 전이 되어서야 팔로워라는 단어의 뜻을 알았으니 세상을 몰라도 한참을 몰랐던 것 같아서 '대략난감'합디다. 푸헐.



 



 


    이외수 님의 <절대강자>'이외수의 인생 정면 대결법'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제목 그대로 강하고 똑부러지는 맛이 있는 명쾌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또 이외수 님이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고 지낼까를 엿볼 수도 있었습니다. 세상이 얄굿게도 이런 모양이다, 남 이야기할 게 아니라 너나 잘해라, 중요한 건 마음이다, 사랑은 소박하면서 거룩하다, 등등의 내용-줄여서 말하자면-의 인생과 관련된 짧은 글들을 모아놓았습니다. 짧은 글들이 트윗 140자 글자수 제한을 마추려는 듯한 모양새를 한 채로 모여 있어서 이 책을 보며 대한민국 유명 대표 트위터답구나라는 생뚱맞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책에 닮긴 짧은 글들은 우리의 인생의 무겁고 심각한 부분들을 건드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결같이 해학을 가득담아 삐딱한 태도를 보이고 세상을 비꼬고 있습니다. 이 책 속에서도 이외수 님께서 자신에 대하여 사람들이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다는 부분을 넌지시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문득 그런 논란의 중심에 있을 법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진지하게 마침표를 찍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부분들까지 모조리 웃음으로 넘기려하는 모습에 붕떠버려서 좋은 말씀을 가슴에 새기기가 쉽지 않았던 점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유머와 개그의 분위기가 재미있어서 좋았지만 책을 다 보고나니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읽고있었나 싶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저 웃고 넘기기엔 너무나 무거운 현실과 현재의 이야기였기에 세상을 바라보는 집요함을 끝까지 유지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어떠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웃음으로 퍼지지 않고 하나의 점이 되어 뚫고 나갔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었습니다. 그래도 뭐 대단한 상상력을 동원한 세상 꼬집기를 보인 것이란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이 독특하고 좋아 보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 드리기도 참으로 우스운 일이지만, <절대강자>는 이외수 님의 외모와 무척 닮은 모습을 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똥은 똥이요라는 당연히 맞는 말씀을 멋있게 씹고 뱉어주시는 도인의 냄새가 풍기는 글귀들이었습니다. 풍류를 알고 멋을 알고 예술을 알고 여유도 아는데, 그 모든 앎이 과거의 고통스런 수행의 터널을 지나온 경험에서 우러나온 된장같은 맛이기에 더욱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택견에서 이크이크 하며 상대방을 야루며 요리조리 피하는 듯한 늬앙스의 해석하기 나름의 어중간한 입장의 표현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나 난감하기도 했습니다. 꼭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꼴의 모양을 한 가끔식 뱉어내는 도인의 수많은 말들 중에서 이 중에서 하나만 제대로 걸려라는 식의 이야기는 아니었을 텐데요,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래서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겠죠. 그런데 이것이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하나의 예술 형태가 되어 보이니 그 또한 대단하다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대단한 이외수 님의 글들에 화룡점정이 되어 <절대강자>를 더욱 빛나게 한 것이 있었습니다. 정태련 님의 그림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남아 존재하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그대들은 절대강자라고 말할 수 있는 옛 유물들의 오밀조밀한 모습의 그림을 글귀 중간마다 박아놓은 것은 정말로 절묘한 조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이 그림들이 지안指眼이라 하여 만져서 느낄 수 있는 그림이라 더욱 이 책에 담긴 글들과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외수 님의 글이 바로 정태련 님의 세밀화처럼 정교하고 섬세한 맛이 있으면서 오돌오돌함을 촉각으로 느낄 수 있는 글이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책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리고 확실한 느낌이 있는 이 책을 주위 분들에게 선물해주고 싶단 생각이 듭니다. 



    남을 비난하고 싶은가. 그때마다 '나는 완벽한 인간인가'라고 자문해보라. 완벽한 인간은 개뿔. 부처님도 인생을 고(苦)라는 한 음절로 축약하셨다. 남을 비난할 겨를이 있으면 차라리 그 시간에 코딱지를 파내는 편이 훨씬 인간다울 것이다. (229쪽)



    <절대강자>에서 이외수 님은, 남을 평가하기 전에 너나 잘해라는 이야기를 제법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사실 이 책에 대한 감상글을 적기가 껄끄러웠습니다. 똥맛도 모르는 사람이 똥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글의 앞에서 나는 '이외수를 몰랐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입니다. 그저 이 책을 통해 처음 이외수라는 인물을 접해보았고, 이전에는 전혀 몰랐기 때문에 편견없이 바라 볼 수 있었던 사람, 그리고 독자으로써 그 어떤 선입견도 없이 순수한 시선으로 <절대강자>를 바라보았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는 변명 비스므리한 나약한 소리를 해봅니다. 결국에 <절대강자>를 읽고 강자는 개뿔. 약자가 되어버린 기분이 들어서 '조낸' 그시기 합니다요잉. 푸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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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척박한 가슴이 각박한 일상을 만들지요. 오로지 돈만을 위해 살아가는 인생은 결국 허무와 회한만을 남기게 됩니다. 인간은 예술이 있기 때문에 위대한 존재이며 사랑이 있기 때문에 거룩한 존재입니다. 그대 꿈속으로 빛나는 별들과 눈부신 꽃들을 보냅니다. (29쪽)



    쓰는 사람이 감동하지 않는 소설은 읽는 사람도 감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내 소설의 첫번째 독자이면서, 가장 엄격하고도 신랄한 독자가 된다. (35쪽)



    성공한 이들을 비방하는 일로 자기 위안을 삼는 부류들은 발전과 성공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별다른 재능이나 열정도 없이 암울한 마음의 담벼락에 불만의 담쟁이넝쿨이나 무성하게 키우면서 언제나 자기우월감에 빠져있으니, 대저 무엇을 밑천으로 성공에 이르겠습니까. (93쪽)



    저는 이따금 문장의 생기와 탄력을 목적으로 신조어나 속어 따위를 사용하곤 합니다. 어떤 분들은 그러한 문장구사를 언어의 파괴 행위로 단정짓기도 하지요. 하지만 푸헐, 저는 생기도 없고 탄력도 없는 문장 구사가 언어의 박제 행위나 다름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111족)



    진실로 그림움이 극에 달하면 천 리 바깥 새벽 풀섶 헤치며 님 오시는 발자국 소리도 들을 수 있는 법이지요. (160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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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 실크 하우스의 비밀 앤터니 호로비츠 셜록 홈즈
앤터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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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에게 어린 시절의 추리소설은, 라디오 옆에 앉아서 여름방학 탐구생활을 조금 끄적이다 마루에 누워 선풍기 바람을 쐬가던 한량같은 시절의 좋은 친구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마루에 엎드려 발을 동동구르며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 중에서도 조금 친하다고 여긴, 친구같은 추리소설이 바로 셜록홈즈 시리즈였습니다. 그 당시 어떤 제목의 셜록홈즈 시리즈를 읽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하지만 책 속의 우중충한 삽화너머의 베이커가 221B 하숙집의 산만한 모습과 희뿌연 런던시내 안개 속에서 어둡게 다가오는 마차 소리는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리고 반짝이는 눈을 하고 왓슨에게 서두를 것을 주문하는 홈즈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합니다. 사냥이 시작되었네, 왓슨!



 


 


    그동안 저작권이 묶여 있던 셜록 홈즈 시리즈가 100년의 시간을 넘어 우리 곁에 찾아왔습니다. 세상에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던 수많은 셜록홈즈 이야기 중에서도 이번 셜록홈즈 이야기는 그것들과 다르다고 하는데요, 앤터니 호로비츠<셜록홈즈 실크하우스의 비밀>코난 도일 재단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셜록홈즈 시리즈이고, 앤터니 호로비츠가 현재 유일한 셜록홈즈 시리즈의 공식 작가라는 점에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리고 <셜록홈즈 실크하우스의 비밀>이 코난 도일 이후의 첫번째 홈즈 시리즈라고 하니, 그 이야기가 어떤 모습일지 대단한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공식인정'을 그렇게나 강조하고 있는지 그 점도 무척 궁금했습니다.


 


    제가 즉석에서 내놓을 수 있는 것만 해도 설명할 방법이 대여섯 개 정도 됩니다. 저는 항상 모든 증거가 다른 편을 가리키지 않는 한 일련의 사건들을 어떤 식으로든 해석할 수 있고, 설령 그런 상황이라 하더라도 성급하게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51쪽)



    성급하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역시 대단하구나' 입니다. 솔직한 말로, 정말로 무엇이 그렇게나 공식인정이란 말인가 라는 생각으로 매의 눈을 하고 꼬투리를 잡을 요량으로 책을 펼쳐들었습니다. 하지만 시작부터 이어진 왓슨의 독백을 들은 이후로 모든 부정적인 생각과 삐딱한 태도가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세월의 흐름이라는 우주의 대법칙 앞에서 절대로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기억들, 그리고 오로지 그때만 경험하고 느낄 수 있었던 꿈과 모험에 대하여 이번 모험담을 정리하던 왓슨이 느꼈을 그리움에 무한히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크하우스의 비밀은 커녕 아직 본 이야기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모험이 그리워지는 이상야릇한 감정이 솟아 올라서 자신도 모르게 이야기 속으로 순순히 빨려 들어갔다고나 할까요. 그만큼 오랜 시간동안 홈즈를 그리워하던 팬들에게는 향수를 자극하는 좋은 선물이 될 소설이란 생각이 듭니다.



    "왓슨, 자네는 보기만 하고 관찰을 하지 않아." (…) 내가 아니라 홈즈였다면 이들이 더 많은 이야기를 했을까? 분명 그랬을 것이다. 홈즈는 물을 한 방울 보여 주면 거기에서 대서양의 존재를 유추하는 친구다. 나는 그걸 보여 주면 어디 수도꼭지가 있나 보다고 생각할 사람이다. 그것이 우리 둘의 차이점이었다. (247쪽)



    개인적으로 매우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래도 소설 속 홈즈의 말처럼 왓슨이 되지 않기 위해 재미있게 보기만 하지 않고 관찰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셜록홈즈 실크하우스의 비밀>은 앤터니 호로비츠가 이 소설을 위해 8년간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 속에 묻어있는 방대한 지식과 시대의 묘사를 통해 작가가 이 소설을 위해 준비한 시간과 노력을 볼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즘 나오는 소설과 같은 세련된 모습으로 변해버릴려고 할 때마다 정말로 100년 전에 쓰여진 소설이라고 믿을 수 밖에 없도록 구식적인 문체와 표현들이 시기적절하게 등장함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한번 입을 열면 몇페이지를 훌쩍 넘겨버리는 장문의 대화-오히려 연설에 가까운-와 이 시대 사람들이 격식을 차리는 듯해보이는 대화 중간의 수식어들이 그렇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책에서 느낄 수 있었던 번역투의 묘사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았지만 분위기를 몰아가야 했던 도입부에서 이 소설이 100년 전 셜록홈즈 이야기의 연장선이라고 믿게끔 하는 묘한 마법을 발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른 소설이었으면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이 되었을 그 부분이 셜록홈즈였기 때문에 대단하게 보였고, 그런 점이 혹시 의도한 것이었을까 라는 생각으로 이어져 결국엔 대단한 소설로 인정하고야 말았습니다. 괜히 꼬투리잡을 생각부터 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소설은 머리로 읽을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야한다는 아주 식상한 표현이 이 경우에 딱 맞아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번만은 나도 이성이 아니라 직감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고 있다네, 왓슨.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불안한 걸까? 마부 양반, 어서 출발해 기차역으로 가 주시오! 너무 늦지 않았기만을 기도할밖에. (127쪽)



    또한 과거 셜록홈즈 시리즈에서 보여줬던 여러 장면들에 대한 반가운 '다시 보여주기'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셜록홈즈가 지내던 베이커가 221B 하숙집의 풍경과 베이커 가의 탐정단 아이들의 수색장면들이 그러했고, 안개가 잔득 낀 런던 골목의 어디선가에서 울려퍼지는 한마리 개의 메마른 짓음과 눈섭을 휘날리며 목숨을 걸고 범인을 향해 따라붙는 마차 추격전이 그러했습니다. 홈즈에 대한 정확한 묘사로 원작과 완전히 동일한 인물을 만들어냄은 당연한 것이었고, 저는 왓슨에 대한 가장 왓슨다운 생각과 행동에 대한 묘사들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정도로 왓슨을 연구하고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라면 저라도 공식 인정하려 들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홈즈 시리즈에 대한 이 정도 수준의 패러디라면 논리적으로 보아도 이건 패러디를 넘어선 원작의 연장선이라고 보아도 되겠다 싶은 생각입니다.



    논리적으로 따졌을 때 정답은 그것밖에 없는 듯했다. 하지만 가능성이 전혀 없는 답안을 모두 제하면 아무리 있을 법하지 않더라도 남은 것이 정답이라고 홈즈가 수없이 강조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226쪽)



    한편으로 최근에 나오는 영화와 드라마도 혹시 코난 도일 재단의 공식 인정을 받은 이야기인가 궁금해졌습니다. 이야기가 이렇게 많이 늘어나면 앞뒤가 맞지 않은 경우가 더러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소설에서 등장한 홈즈의 형과 모리아티 교수가 최근에 본 영화에서도 등장했었는데, 왓슨의 기억력을 토대로 쓰여진 셜록홈즈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오려면 이 부분에 대해서 여러모로 신경쓸 부분이 많아 보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이제 셜록홈즈의 공식적인 이야기는 더이상 없을지도 모를 일인데 앞으로 나올 이야기들을 걱정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옛 친구 셜록홈즈의 이야기를 오래간만에 보고는 향수병인지 뭔지 모를 괜한 그리움과 뜬금없는 설레임에 김칫국부터 마시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도 기다려 집니다. 악당들을 물리칠 셜록 홈즈와 왓슨 박사의 모험이 계속해서 나오길 바랍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가 않다. 나는 오늘날까지도 그를 그리워하며 가끔 "사냥이 시작되었네, 왓슨!"이라고 하는 그 낯익은 대사가 들리는 듯한 환청에 시달린다. 그 소리를 듣고나면 믿음직한 리볼버를 손에 쥐고 어두컴컴한 베이커 가를 휘감은 안개 속으로 뛰어들 일이 두 번 다시 찾아올 리 없는 현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질 따름이다. 모든 인간의 운명이라 할 수 있는 그 거대한 어둠 너머에서 홈즈가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들 때면 솔직히 나도 그의 곁으로 건너가고 싶다.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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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는 누가 죽였나 황금펜 클럽 Goldpen Club Novel
이상우 지음 / 청어람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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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역사공부를 할 때, 역사라는 것은 권력을 잡은 후대가 기록한 가상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기록을 그대로 믿고 외울 것이 아니라, 그 시절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이 흘러가게 된 이유를 알아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역사 속 약자의 입장과 그들의 실수를 공부해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패하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여 후대가 평가할 역사의 기록에서 반역의 무리에 들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 생각이 어찌보면 기회주의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정의의 승리가 필연적이지 않았고, 승리한 악의 무리에 의해 정의가 악으로 탈바꿈되는 경우도 많았으며, 아직까지 우리는 은폐와 조작을 사실이라고 믿고 배우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니 얼마 남아있지 않은 부족한 사료를 근거로 역사에서 누가 옳고 그른지를 편을 갈라 놓고 평가하는 것이 무의미해 보였습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좀 했습니다. 국토에 대한 관심도 더 갖게 되고요. (238쪽)



 


 


    역사에 대한 제 개인적이고 부끄러운 생각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별 것 아닌 이야기를 장황하게 했던 이유는, 결국 역사소설은 그런 면에서 참으로 재미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입니다. 역사적 사실에 소설가의 상상력을 동원해 가공된 이야기들이 대단하는 생각을 합니다. 과거 인물에 대하여 혹시 사실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라고 질문해보며 재조명하고 재평가하는 소설에 절로 호기심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런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의혹과 의문을 통해 뒤집어진 역사의 그림을 보여주는 소설 속의 이야기가 무척 좋았습니다. 또 그런 역사의 현장을 간접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흥미진진했습니다. 아마도 그맛에 역사소설이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합니다.



    동북 변경의 완성은 육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고려의 윤관 장군이 애척한 고려 영토를 모두 찾는데 힘을 써야 할 것이다. 윤관 장군이 개척한 우리 영토의 북방 경계는 공험진이라는 기록이 전해온다. 일설에는 공험진이 아닌 선춘령이라고도 한다. 이 지점은 두만강에서 북쪽으로 칠백 리에 있다고 하니 꼭 구토를 찾아 우리 영토로 확실하게 해야한다. (189쪽)



    이상우 님의 역사소설 <김종서는 누가 죽였나>는 조선시대 태종부터 단종까지 네 임금을 섬긴 고명대신이었던 김종서(1383-1453)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진 족과의 전투와 외교를 통해 6진 개척을 이루어내는 과정을 시작으로,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에 의해 암살당하고야 마는 이야기까지, 제목 그대로 김종서는 누가 죽였나에 대한 의문부호를 찍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소설 속 가상의 인물인 홍득희라는 여인을 통해 성장소설과 무협소설, 또는 연애소설이 되기도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자칫 밋밋할 수 있었던 딱딱한 이야기가 홍득희라는 인물의 대단한 활약 덕분에 꽤 재미있는 이야기로 흘러간 것 같습니다.



    조선 북방의 화척들은 이 모진 삭풍 속에서도 세상을 원망만하지는 않습니다. 조선 백성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165쪽)



    그런데 아무리 홍득희가 종횡무진 활약을 펼쳤다 하더라도 이야기의 흐름이 기승전결로 마무리지어질 소설이라는 장르를 생각해볼 때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마치 20부작 사극을 보는 것처럼 '그리고 몇년 뒤'로 턱턱 이어지는 전개가 매끄럽지 못한 느낌이었습니다. 어찌보면 2회까지 아역배우가 등장하는 전형적인 사극의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한데, 따지고 보면 사극으로 만들기에 전반적으로 위기가 느껴지지 않을 에피소드들이라 시청율을 장담하기 어려워 보이기도 합니다. 뭐랄까, 작가의 정력이 느껴지지 않은 허약한 구조와 전개였다고 할까요. 누구나 알고있고 예상가능한 그 이야기를 결국엔 아무런 반전없이 그대로 맥없이 끝내버려서 허무함이 느껴졌습니다. 또 '누가 죽였나'라는 거창한 제목은 왜 붙여놓았으며,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추리소설이라는 소개글은 추리의 어떤면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궁금합니다.



    그래서 왜 하필 김종서였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김종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기에는 그를 따르는 주변 인물들이 너무 부족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특색있는 이야기를 만들기가 힘들었던 것 같고, 오로지 내세울건 임금을 향한 충직함과 대의명분뿐인 무미건조한 이야기가 되어버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더군다나 김종서가 북방에서 6진 개척을 이루는 과정이 전혀 극적임이 없었고, 여진 족과 오고간 교류의 흔적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이 없었기에 함경도와 평안도에서 있었던 일화들은 홍득희의 이야기를 제외하면 전혀 흥미를 끌지 못했으며, 팩션을 통해 역사 공부를 할만한 지식이 되지도 못했습니다. 이 소설에서 핵심적으로 추구했던 이야기는 김종서의 업적이 아니라 김종서의 죽음이었으니 말입니다. 김종서에 관한 소설이었으면 여진족과의 마찰을 외교력으로 풀어내는 그의 명쾌한 지략에 비중을 두고, 그때 맺어진 인연으로 훗날 많은 도움을 받게되어 위기를 넘기는 에피소드로 이어지는 한편의 무협소설의 그림이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삼국지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김종서, 수양대군, 안평대군의 삼파전을 절묘하게 그려낸 조선시대 권력 다툼의 삼국지말입니다. 더 나아가 이 소설을 '수양대군은 왜 미쳤을까'라는 제목으로 삼국지의 조조격인 수양대군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써내려가 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수양대군이 실력있는 인재들을 포섭해나가는 과정에 얽힌 에피소드들, 그리고 그의 아래에 있던 신숙주, 한명회 등의 책사들이 펼치는 지략과 무장들의 무용담을 실은 인물열전이었다면 오히려 할 이야기가 많아 보였습니다. 비록 이때 당시의 그들은 악의 무리로 평가받았지만, 그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의 생각과 계산이 있었을 테니 말입니다. 또 권력을 향한 한 인간과 집단의 욕심과 잔인함, 추악함을 계유정난을 통해 드러내고, 이후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른 뒤에는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일을 답습하지 않으려는 부질없는 집착을 향한 투쟁을 그려낸다면 정말로 흥미진진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또 말년에는 나약한 한 인간이 되어 과거의 일에 대해 번뇌하고 반성하지만, 또 다시 집착하고 미쳐가는 이중적인 모습을 비춘다면 그야말로 걸작이 되었을 텐데요. 물론 지금까지 제가 했던 이 이야기가 이미 소설로 나온 식상한 이야기라면 어쩔 수 없지만 말입니다.



    수양대군은 엄하기만 하고 어질지 못하여 사람을 다루지 못한다. 남의 윗사람 될 자격도 없는데 홍 주부가 그를 따르는 것은 참된 마음이 아닐 것이다. 그에 비해 안평대군은 도랑이 크고 넓어 거친 무리들도 모두 포용하였다. (…) 자네는 세상 돌아가는 일을 좀 멀리 보아야 한다. (346쪽)



    결국에 김종서는 300년이 지난 뒤에 복권하여 역적에서 충신으로 재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설마저 그의 편을 들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악당이 범죄를 저지르는 과정을 악당의 입장에서 그려놓은 추리소설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범인의 시각으로 범죄 행각을 다 드러내놓고, 왜 그런 잔학무도한 일을 벌이는 것인지를 독자에게 훤히 다 보여주는 구조의 이야기들 말입니다. 비록 추리할 여지를 남겨놓지 않은 범죄소설이지만, 그런 행동을 지켜보는 것만으도로 보통 이상의 재미가 있습니다. 결국에는 김종서의 죽음을 둘러싼 궁금증이 느껴지지 않았고, 미스터리함도 찾아볼 수 없었던 이야기였기에 더욱 김종서가 아닌, 수양대군의 이야기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며, 소설 <김종서는 누가 죽였나>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 봅니다.


 

    이 글을 써놓고 포스팅하는가 마는가를 꽤 오랫동안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에 수양대군에 대한 팩션이 이미 존재하지는 않을까 하는 궁금증에 시간을 두고 몇가지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러다 2008년 한국추리작가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추리소설인 <수양대군 살인사건>이라는 단편을 이상우 님께서 쓰셨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래서 읽어 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김종서가 아니라 수양대군에 대한 신숙주의 이야기가 되어도 변치않는 한결같음이 삭풍처럼 느껴져 당황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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