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토바 전설 살인사건 명탐정 아사미 미쓰히코 시리즈
우치다 야스오 지음, 한희선 옮김 / 검은숲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처음 <고토바 전설 살인사건>에 대한 소개글을 봤을 때,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와 비슷한 느낌의 이야기일 줄 알았습니다. 혹시라도 스포를 당할지도 몰라서 책 소개글을 꼼꼼하게 보지 않고 대충 흘겨보았기 때문에 그런 오해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제목만 봐도 '전설'이라는 단어가 떡하니 들어가 있으니 왠지 오래된 이야기가 술술 흘러나오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이 이야기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그렇게 오래된 느낌의 이야기가 아니고 배경도 현대이며 인물들도 형사와 경찰, 혹은 탐정 등의 요즘 시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로 책을 집어들었으니 어쩔 수 없었을 테지만 이렇다 보니 책을 펴자마자 함정에 빠진 듯한 묘한 반전을 경험하며 읽어나가야 했습니다.





    우치다 야스오의 소설은 이번이 첫 만남이었습니다. 누적 판매부수가 1억부를 돌파했다니 과연 무엇이 어떻길래, 라는 궁금증이 불끈 솟아오르더군요. <고토바 전설 살인사건>은 1982년 소설이니 꽤 오래된 이야기지만 그렇게 촌스러운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담백하다고 해야하나, 좋게 말해서 담백함이지 밋밋함 혹은 맹맹함이 느껴지는 소설이었습니다. 일본 소설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그런 느낌의 모습인데, 이걸 나쁘고 싫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구석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담백함이 이야기 전개에 속도감을 실어주었으니 장점으로 잘 작용했다고 봅니다. 전직 기자가 썼다고 해도 믿을 만큼의 건조한 문장들의 나열로 빠르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사미 미쓰히코. 우치다 야스오의 소설에 등장하는 명탐정의 이름입니다. 거대한 시리즈의 추리소설에서 명탐정의 첫 등장을 중요시하고 자세히 살펴보는 편인데요, 아사미 미쓰히코의 첫 등장은 놀랍게도 별 것이 없습니다. 그 어떤 수식어나 묘사도 없는 건조한 상태라 솔직히 지금 소설을 다 보고 나서도 이 인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흐리멍텅한 이미지 뿐, 역시 잘 모르겠다는 느낌입니다. 그건 아무래도 이 이야기를 집필했을 당시에 아사미 미쓰히코를 시리즈물의 명탐정으로 정해놓고 소설을 써내려갔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소설이 우치다 야스오의 데뷔작은 아니지만, 전직 작가로 전향한 첫 소설이 <고토바 전설 살인사건>이었으니, 이 소설을 데뷔작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런데 작가는 이 소설을 사실 반은 재미삼아서, 반은 놀이삼아서 집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후의 이야기를 계속 쓸 생각까진 하지 않았던 터라 아사미 미쓰히코의 등장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면 크게 대단하진 않지만 아마추어가 썼다고 여기기엔 괜찮은 모습을 하고 있는 애매한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재미로 이 정도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수준이라면 당연히 대단하다고 해야겠지요. 그동안 봐왔던 인기 일본 작가들의 데뷔작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것에 비해서는 이 정도의 소설은 양호하다는 느낌입니다.



    실제로 이 소설을 집필하기 위해 우치다 야스오는 고토바 법황의 유배 경로와 소설의 배경이 되는 지역들을 취재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취재, 참으로 멋지지 않습니까. 소설을 쓰기 위한 취재활동이라니, 사립 탐정 느낌도 나면서 말이지요. 그러고 보니 이 소설이 유려한 글솜씨를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화려함은 비록 떨어질지 몰라도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한 철저한 준비를 치밀하게 한 흔적은 확실히 보이는 것 같습니다. 문체를 극복한 구성이라고 해야할까요. 적절한 타이밍에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독자보다 반발 앞서서 단서를 던져주고, 그리고 다시 모두 다 체가 버리는 과정들이 꽤 괜찮았습니다. 이 소설 특유의 속도감은 여기에서 나왔다고 봐도 되겠군요.



    그래서 살인사건의 범인은 쉽게 맞출 수 있는가 하면, 굉장히 쉬운 편입니다. 독자가 건드릴 수 있게 만들어 둔 추리의 요소가 많지 않은 데다가 어느 정도까지 이르면 예상이 가능한 전개가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일부러 속도를 늦쳐가며 읽지 않는다면 속도에 빠져들어 추리고 단서고 간에 단번에 읽어버리고 치워버릴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조금 느긋하게 속도에 취하지 않고 읽어 나간다면 이것저것 따져가보며 볼만한 것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많지 않았고, 있다 하더라도 구체적이지 않아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앞으로 명탐정 아사미 미쓰히코 시리즈가 계속 국내에 소개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이 소설이 거대한 시리즈의 시작이 될것이라고 여기며 쓴 소설이 아니었고, 전직 작가라고는 하지만 소설가라는 느낌보다는 취미생활로 재미삼아 쓴 느낌이 났던 소설이었던 만큼 <고토바 전설 살인사건> 하나를 보고 시리즈 전체를 평가할 순 없어보입니다. 이 시리즈의 다른 이야기 두어편은 더 봐야, 시리즈를 모조리 다 보고야 말겠다라는 다짐을 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을 계속 쓰다보면 없던 재능도 생기기도 할 테니까요. 다음에 볼 우치다 야스오의 소설이 화려하길 바라지는 않지만 그만의 색이 느껴지는 소설이었으면 하고 기대해봅니다.



    그러나 상대가 악마라면 우리는 신이 되어 그것을 심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형사님. (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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