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서는 누가 죽였나 황금펜 클럽 Goldpen Club Novel
이상우 지음 / 청어람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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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역사공부를 할 때, 역사라는 것은 권력을 잡은 후대가 기록한 가상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기록을 그대로 믿고 외울 것이 아니라, 그 시절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이 흘러가게 된 이유를 알아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역사 속 약자의 입장과 그들의 실수를 공부해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패하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여 후대가 평가할 역사의 기록에서 반역의 무리에 들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 생각이 어찌보면 기회주의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정의의 승리가 필연적이지 않았고, 승리한 악의 무리에 의해 정의가 악으로 탈바꿈되는 경우도 많았으며, 아직까지 우리는 은폐와 조작을 사실이라고 믿고 배우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니 얼마 남아있지 않은 부족한 사료를 근거로 역사에서 누가 옳고 그른지를 편을 갈라 놓고 평가하는 것이 무의미해 보였습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좀 했습니다. 국토에 대한 관심도 더 갖게 되고요. (238쪽)



 


 


    역사에 대한 제 개인적이고 부끄러운 생각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별 것 아닌 이야기를 장황하게 했던 이유는, 결국 역사소설은 그런 면에서 참으로 재미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입니다. 역사적 사실에 소설가의 상상력을 동원해 가공된 이야기들이 대단하는 생각을 합니다. 과거 인물에 대하여 혹시 사실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라고 질문해보며 재조명하고 재평가하는 소설에 절로 호기심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런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의혹과 의문을 통해 뒤집어진 역사의 그림을 보여주는 소설 속의 이야기가 무척 좋았습니다. 또 그런 역사의 현장을 간접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흥미진진했습니다. 아마도 그맛에 역사소설이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합니다.



    동북 변경의 완성은 육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고려의 윤관 장군이 애척한 고려 영토를 모두 찾는데 힘을 써야 할 것이다. 윤관 장군이 개척한 우리 영토의 북방 경계는 공험진이라는 기록이 전해온다. 일설에는 공험진이 아닌 선춘령이라고도 한다. 이 지점은 두만강에서 북쪽으로 칠백 리에 있다고 하니 꼭 구토를 찾아 우리 영토로 확실하게 해야한다. (189쪽)



    이상우 님의 역사소설 <김종서는 누가 죽였나>는 조선시대 태종부터 단종까지 네 임금을 섬긴 고명대신이었던 김종서(1383-1453)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진 족과의 전투와 외교를 통해 6진 개척을 이루어내는 과정을 시작으로,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에 의해 암살당하고야 마는 이야기까지, 제목 그대로 김종서는 누가 죽였나에 대한 의문부호를 찍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소설 속 가상의 인물인 홍득희라는 여인을 통해 성장소설과 무협소설, 또는 연애소설이 되기도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자칫 밋밋할 수 있었던 딱딱한 이야기가 홍득희라는 인물의 대단한 활약 덕분에 꽤 재미있는 이야기로 흘러간 것 같습니다.



    조선 북방의 화척들은 이 모진 삭풍 속에서도 세상을 원망만하지는 않습니다. 조선 백성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165쪽)



    그런데 아무리 홍득희가 종횡무진 활약을 펼쳤다 하더라도 이야기의 흐름이 기승전결로 마무리지어질 소설이라는 장르를 생각해볼 때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마치 20부작 사극을 보는 것처럼 '그리고 몇년 뒤'로 턱턱 이어지는 전개가 매끄럽지 못한 느낌이었습니다. 어찌보면 2회까지 아역배우가 등장하는 전형적인 사극의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한데, 따지고 보면 사극으로 만들기에 전반적으로 위기가 느껴지지 않을 에피소드들이라 시청율을 장담하기 어려워 보이기도 합니다. 뭐랄까, 작가의 정력이 느껴지지 않은 허약한 구조와 전개였다고 할까요. 누구나 알고있고 예상가능한 그 이야기를 결국엔 아무런 반전없이 그대로 맥없이 끝내버려서 허무함이 느껴졌습니다. 또 '누가 죽였나'라는 거창한 제목은 왜 붙여놓았으며,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추리소설이라는 소개글은 추리의 어떤면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궁금합니다.



    그래서 왜 하필 김종서였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김종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기에는 그를 따르는 주변 인물들이 너무 부족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특색있는 이야기를 만들기가 힘들었던 것 같고, 오로지 내세울건 임금을 향한 충직함과 대의명분뿐인 무미건조한 이야기가 되어버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더군다나 김종서가 북방에서 6진 개척을 이루는 과정이 전혀 극적임이 없었고, 여진 족과 오고간 교류의 흔적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이 없었기에 함경도와 평안도에서 있었던 일화들은 홍득희의 이야기를 제외하면 전혀 흥미를 끌지 못했으며, 팩션을 통해 역사 공부를 할만한 지식이 되지도 못했습니다. 이 소설에서 핵심적으로 추구했던 이야기는 김종서의 업적이 아니라 김종서의 죽음이었으니 말입니다. 김종서에 관한 소설이었으면 여진족과의 마찰을 외교력으로 풀어내는 그의 명쾌한 지략에 비중을 두고, 그때 맺어진 인연으로 훗날 많은 도움을 받게되어 위기를 넘기는 에피소드로 이어지는 한편의 무협소설의 그림이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삼국지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김종서, 수양대군, 안평대군의 삼파전을 절묘하게 그려낸 조선시대 권력 다툼의 삼국지말입니다. 더 나아가 이 소설을 '수양대군은 왜 미쳤을까'라는 제목으로 삼국지의 조조격인 수양대군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써내려가 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수양대군이 실력있는 인재들을 포섭해나가는 과정에 얽힌 에피소드들, 그리고 그의 아래에 있던 신숙주, 한명회 등의 책사들이 펼치는 지략과 무장들의 무용담을 실은 인물열전이었다면 오히려 할 이야기가 많아 보였습니다. 비록 이때 당시의 그들은 악의 무리로 평가받았지만, 그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의 생각과 계산이 있었을 테니 말입니다. 또 권력을 향한 한 인간과 집단의 욕심과 잔인함, 추악함을 계유정난을 통해 드러내고, 이후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른 뒤에는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일을 답습하지 않으려는 부질없는 집착을 향한 투쟁을 그려낸다면 정말로 흥미진진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또 말년에는 나약한 한 인간이 되어 과거의 일에 대해 번뇌하고 반성하지만, 또 다시 집착하고 미쳐가는 이중적인 모습을 비춘다면 그야말로 걸작이 되었을 텐데요. 물론 지금까지 제가 했던 이 이야기가 이미 소설로 나온 식상한 이야기라면 어쩔 수 없지만 말입니다.



    수양대군은 엄하기만 하고 어질지 못하여 사람을 다루지 못한다. 남의 윗사람 될 자격도 없는데 홍 주부가 그를 따르는 것은 참된 마음이 아닐 것이다. 그에 비해 안평대군은 도랑이 크고 넓어 거친 무리들도 모두 포용하였다. (…) 자네는 세상 돌아가는 일을 좀 멀리 보아야 한다. (346쪽)



    결국에 김종서는 300년이 지난 뒤에 복권하여 역적에서 충신으로 재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설마저 그의 편을 들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악당이 범죄를 저지르는 과정을 악당의 입장에서 그려놓은 추리소설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범인의 시각으로 범죄 행각을 다 드러내놓고, 왜 그런 잔학무도한 일을 벌이는 것인지를 독자에게 훤히 다 보여주는 구조의 이야기들 말입니다. 비록 추리할 여지를 남겨놓지 않은 범죄소설이지만, 그런 행동을 지켜보는 것만으도로 보통 이상의 재미가 있습니다. 결국에는 김종서의 죽음을 둘러싼 궁금증이 느껴지지 않았고, 미스터리함도 찾아볼 수 없었던 이야기였기에 더욱 김종서가 아닌, 수양대군의 이야기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며, 소설 <김종서는 누가 죽였나>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 봅니다.


 

    이 글을 써놓고 포스팅하는가 마는가를 꽤 오랫동안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에 수양대군에 대한 팩션이 이미 존재하지는 않을까 하는 궁금증에 시간을 두고 몇가지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러다 2008년 한국추리작가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추리소설인 <수양대군 살인사건>이라는 단편을 이상우 님께서 쓰셨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래서 읽어 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김종서가 아니라 수양대군에 대한 신숙주의 이야기가 되어도 변치않는 한결같음이 삭풍처럼 느껴져 당황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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