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러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폴라 데이 앤 나이트 Polar Day & Night
랜섬 릭스 지음, 이진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해리포터 시리즈는, 큰 인기를 얻을 수 밖에 없었던 수많은 요소들을 갖춘 소설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이유들 중에서도, 아이들의 이야기이지만 어른들이 읽어도 무방할 만큼 진지한 동화였다는 점이 가장 주요했던 것 같습니다. 해리포터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이야기 속에 나오는 소품과 마법의 설명을 공부하면서 봐야하고, 그런 가상 현실의 지식을 공부해나가며 소설을 '배워'나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그런 재미가 어른들을 어린이들이 등장하는 판타지 동화에 빠져들게 하고 있으며,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정교하고 세세한 보조 지식들로 인해 동화가 더 이상 어린이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때로는 어렵기도 하고 진지해지기도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부수적인 지식들은 영화를 통해 이미지화되면서 더 이해하기 쉬워졌고, 또 해리포터 시리즈는 영화의 파급력에 힘입어 전세계에 엄청난 팬을 보유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이런 해리포터의 성공 공식 중에서 앞에서 이야기한 몇가지 요소들을 랜섬 릭스<페러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태생적으로 특별한 주인공 어린이, 자식에게 무관심한 부모, 혹은 보호자가 있는 우울한 가정, 현실과 다른 모습을 한 세계를 창조해내기 위한 상상력과 상상력을 구체화시켜주는 특정 용어들의 구체적인 모습들이 무척 닮아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아이들은 루프를 통한 시간여행을 경험하고 악당들을 물리치곤 하는데, 가상 현실을 진지하게 그려낸 많은 용어들이 그럴싸해보여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굉장히 진지한 표정을 하며 읽어내려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 중간중간마다 사진을 담고 있어서 판타지 소설이지만 꽤 사실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영화와 비슷한 힘을 내기 위한 영상화 작업을 통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는 사진들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들이 매우 기괴한 모습을 한 빛 바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작된 사진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찌보면 무서워 보이기도 하고 오싹한 기운이 감도는 '이상한' 사진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들은 묘하게도 이야기의 전개를 위한 특정 분위기를 확실하게 잡아주는 대단하고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 실린 사진들은 소설을 위해 임의적으로 만들어진 사진들이 아니라 실제로 오래 전에 작가가 발견하여 전혀 가공하지 않은 진본 사진들이라고 하니 더욱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페러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어른들을 위한 이상한 동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집어든 어른들은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아이들의 모험을 통해 평범한 삶에서 벗어나길 꿈꾸었던 판타지를 경험할 것입니다. '왜 악당은 악당일까'와 같은 철학적인 고민없이 단순하게 만들어진 가상의 세상에서 빠른 속도감을 느끼며 한편의 판타지 영화를 본다는 느낌으로 가볍게 보기에도 좋은 소설이었습니다. 어린이가 보기에도 좋을 정도의 적절한 수위의 공포와 단순한 구조의 세상도 좋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말이 없어도 'to be continued'라고 누구나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뻔해보인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들도 무척 궁금해집니다.









 

    그 얘기들은 거짓말이라기보다는 과장이라고 했다. 할아버지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동화라기보다는 괴담에 가까웠다고. (21쪽)



    울음을 멈출 수 없어서 이 세상의 나쁜 일들을 생각했고 나쁜 일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보니 울음이 점점 더 격해져서 숨도 겨우 쉴 정도가 되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증오심 때문에 소각로에서 불타 죽어야 했던 사람들을 생각했다. 아이들 따윈 어떻게 되든 개의치 않았던 폭격기 조종사가 버튼을 누르는 바람에 불에 타고 몸이 갈기갈기 찢겼을 이곳의 아이들을 생각했다. (135쪽)



    이곳에서의 삶이 매일 똑같은 날로 영원히 지속되고 죽음 없는 여름날만 계속되어서 몸은 물론 마음까지도 피터 팬과 친구들처럼 그 시간 속에 밀봉된 것 같았다. (205쪽)



    네 부모님은 널 사랑할지 몰라도 결코 널 이해하지 못해. (320쪽)



    늘 평범한 삶에서 벗어나길 꿈꾸었지만 내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단지 나에게 주어진 삶이 얼마나 이상한지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었다. (426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울트라 황금지구의
가이도 다케루 지음, 신유희 옮김 / 예담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어렸을 땐 유치하지만 나름 진지했던 혼자만의 스릴넘치는 모험을 자주 해보았습니다. '병신 같지만 멋있어'라고 혼자서 스스로를 토닥거리며 했던 그런 바보짓들 말입니다. 꼬마였을 땐 일찍 자야 착한 어린이라는 엄마의 말에 반발하여 혼자서 꼬박 밤을 새워가며 침대에서 놀아보는 모험도 해보고, 어른이 되면 마실 수 있다는 커피도 몰라 타서 마셔보기도 했습니다. 조금 커서는 친구들과 껄렁껄렁한 농담을 해가며 선생님께 반항해보기도 하고, 시험 날에는 칠판 앞에 교묘하게 반 전체를 위한 컨닝 페이퍼를 제작해 보기도 했습니다. 사병의 면세 담배를 착취해가는 간부들을 응징하기 위해 병들 전원이 모두 금연을 결심했다는 허위 문서를 올려보기도 하고, 진정한 종교의 자유가 없어 보이고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가지기 위해 조로아스터교도인 척 해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제가 했던 반항적인 모험들은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하나같이 소심하고 유치한 모양을 한 혼자만의 추억으로 간진하기에 딱 좋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을 필두로 메디컬 미스터리 작품들로 유명한 가이도 다케루의 비非 메디컬 소설의 시작, <울트라 황금지구의>유치찬란한 코미디 범죄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책 표지에서 부터 느낄 수 있는 유치찬란함의 냄새가 소설 안에서도 그대로 폴폴 풍기고 있습니다. 개콘 복학생 유세윤의 개그와 비슷하다고 해아할까요. '머야 이게', 뭐 이런 느낌이지만 웃기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서 계속 찾아 보게끔 하는 중독성 있는 그런 개그와 웃음이 있는 소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코미디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매우 괜찮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코믹물과는 조금 다른 색깔의 느낌인데요,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코미디를 만담이라고 한다면 가이도 다케루의 코미디는 슬랩스틱이 조금 가미된 스탠딩 코미디라고나 할까요. 양쪽 다 비슷한 코믹 소설이지만 굳이 따지자면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울트라 황금지구의>는 전편의 메디컬 미스터리 시리즈의 배경이 되었던 가상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관료의 비리와 그 때문에 고통받는 소시민의 모습, 그리고 그들이 초조해하며 갈등하는 모습을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등 떠밀려지듯 저지를 수 밖에 없는 소시민의 범죄 이야기가 어찌보면 참으로 심각하고 무거운 이야기인데, 이들이 하도 유쾌한 모습을 하며 재미있고 빠르게 이야기를 풀어나가 길래 이 문제점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말고 할 겨를이 없게 합니다. 외과의 출신답게 과학에 대한 수 많은 지식들을 소설 전반부터 정신없이 쏟아내어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정 부분부터는 그 지식들이 사실인지 아닌지 긴가민가 할 정도로 황당한 전개로 이어져 '그럴싸한 진지함에 속아버렸구나' 싶기도 합니다. 이런 것이 병신같지만 멋있는 진지함이라고 할까요. 아무튼 이런 식으로 하나의 세상을 묘하게 그럴듯하게 만들어 놓고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정말로 대단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결같이 유치찬란한 이야기로 웃음만을 이야기하고 있진 않습니다. 범죄의 설정, 추리의 난이도, 트릭의 정교함 등등 외적인 부분을 이야기하자면 이 소설이 그렇게 대단한 소설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아마도 아무런 맛도 정취도 없는 소설이었겠지요. 그런데 유치한 범죄 대회를 한바탕 모두 치루고 난 뒤에 이런 위기와 스릴이 마치 그들이 모험과 장난을 일삼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해주었던 에피소드라며 추억하는 부분들에서는 웃음기가 쫙 빠진 진지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소설 속에서 가장 유치했던 인물이 돌연 진지한 모습으로 바뀌어 이제 다시 어른이 될 시간이라는 말을 내뱉자 소설을 보며 키득거리던 제 웃음이 시시덕거림에서 진중한 미소로 바뀌었습니다. 잠깐 동안이지만 청춘으로 돌아가 스릴을 맛보고 모험을 즐기는 계절에 발을 담궜던 것입니다. 비록 책을 통해서 였지만 말이지요.



    그렇다 보니 <울트라 황금지구의>를 통해 앞에서 보여주었던 유치한 모습의 이야기들까지 제게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그때 그 시절하며 누구나 품고 있는 어린 시절의 모험과 같음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으로 말이죠. 남들이 보기에는 유치할지 몰라도 어렸던 자신의 좁은 세상 속에서는 나름 진지한 모습을 하고 땀을 닦아가며 머리를 쥐어짜내서 복수와 사회정의 구현을 위한 나만의 작은 몸부림. 뭐, 너무 거창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혼자서 그렇게 느꼈다면 또 그걸로 된 거란 생각을 합니다. 또한 독특하고 개성넘치는 인물들의 모습과 생뚱맞은 사건의 흐름을 지켜본 독자로써 다같이 한바탕 우여곡절을 겪어 왔던 것 같은 묘한 동질감에 꽤 만족스러운 모험극이었단 생각을 합니다. 전작에 나왔던 시라토리라는 인물도 잠시 등장하는 것 같고, 후속작에 대한 여운도 살짝 남기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앞으로 나올 가이도 다케루의 범죄 코미디 시리즈가 무척 기대됩니다.







    그런 나와 글라스 조는 가끔 어울려 다니면서 사회개혁을 위한 성전聖戰이란 명목 하에 범죄 축에도 못 끼는 자잘한 위법행위를 반복했다. 친구 녀석이 바퀴벌레가 들어 있던 라면 값을 환불 받으려다 실패했다고 하면, 대신 우리가 그 라면가게에서 라면을 먹고 튀어 친구의 기분을 풀어준다. 그런 식으로 사소하나마 반사회적 행위를 저지르면서 소소한 자기만족에 빠졌다. (140쪽)



    우울하기 짝이 없었다. 그게 사실이라 해도 지적받고 싶지 않은 여름 아침은 누구에게나 있고, 지적질 당하고 싶지 않은 상대도 반드시 존재한다. 그러나 왕왕 그런 지적은 그런 일을 절대 지적받고 싶지 않은 기분 좋은 여름 아침, 절대 지적질 당하고 싶지 않은 상대로부터 받기 마련이다. (180쪽)



    그것이 이런 식으로 깔끔하게 진행된다면 아무런 맛도 정취도 없다. (202쪽)



    "내가 기억하는 한, 우리의 '지하드 다이하드'는 좀 더 장대하고 저속하고, 그리고 바보 같을 정도로 저돌적이었어."

    "너 너무 멋진 거 아냐? 세상에서 너만 순수하고 용감하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그런 허세가 마냥 통하진 않는다는 거, 알잖아?"

    알지. 하지만……. 나는 솔직하게 내 마음을 표현했다.

    "그런 대사, 너한테서 듣고 싶지 않았다." (321쪽)



    우리는 피차 손이 닿지 않는 세계로 가버린 건가. 나는 힘을 손에 넣고 세상을 바꾸려하고 있어. 너는 아직 자신 안의 황금향에 머물며 꿈꾸는 잠에 빠져 있고. (323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시고백
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1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렸을 땐 누구나 자기 자신이 남들과 다른 존재라고 여기곤 합니다. 학교라는 좁은 세상,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공부를 해가며 매일 보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일주일 단위의 하루가 흘러가는 정신없는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던 바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 바쁜 일정의 흐름 속에서 남들과 다른 존재라고 여기던 청소년기의 자아인식이, 자신이 남들과 다른 이유를 스스로가 특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가 이상하거나 틀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인식 때문에 이 시기에 스스로에게 박아 놓은 '가시'가 생겨나게 되고, 그것이 점점 자라나도록 방치해두면 가시가 더 깊게 파고들어 결국엔 더 큰 아픔이 되고 상처가 됩니다. 어느 정도 아파올 때 뽑아버리면 그만일 작은 가시지만 제때 뽑아내지 못한다면 곪아서 흉터가 생기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 자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상처가 되어 남아있기도 합니다.



 


 


    김려령 님의 소설 <가시고백>은 청소년기라는 작은 세상 속에서 자신의 가시만이 오로지 세상의 전부인 줄 알며 자라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해일, 지란, 진오, 다영.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고등학생 네 명은 누구에게도 고백하지 못해 품게 된 각자의 가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소설을 읽는 어른들은 아마도, 나도 이 어린 친구들이 가지고 있었던 같은 고민들을 청소년기에 했었지라고 말하기가 조금 부끄럽고 멋쩍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많이 무덤덤해져 가시의 존재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한 어른들 역시, 청소년기에 이런 모습의 고민 하나 쯤은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묘하게 이 어린 친구들의 작은 마음과 그들의 세상에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것 말입니다.



    친하다고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소설 속 그런 애매한 관계의 네 친구들이 서로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과정들이 무척 따뜻해 보입니다. 특히 우연한 기회로 만들게 된 '병아리 부화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 친구들은 급속도로 마음을 열고 친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쉽게 다가가기 힘들었던 담인 선생님까지 '차갑지만 내 제자들에게 따뜻한 남자'로 만들어 버리는 묘한 마법이 병아리 부화기를 통해 발휘하고 있습니다. 새 생명의 탄생과 성장의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그것 자체로 신비로운 일이고 부화기 안의 작은 세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사람들을 푸근하게 만들어 주위 사람들 모두를 쉽게 가까워지게 만드나 봅니다.



    하지만 이들의 갈등과 고민이 '고백'을 통해 쉽게 해결되는 부분은 많이 아쉬웠습니다. 소설 속의 병아리 부화기에서도 유정란에 수정체가 생기는 경우는 6개 중에서 단 2개 뿐. 모든 일이 척척 그렇게 쉬울 순 없을 것입니다. 고백의 형태를 한 말이 되어 나오기까지 수 많은 갈등과 내면의 대화들이 오고갈 것인데 그런 부분에 대하여 생략한 듯한 전개가 이어지고 아이들 역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뜬금없이 세상이 너무 밝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이건 어쩌면 저 스스로가 너무 세속적이 되어서 개인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을 연다고 쉽게 마음이 열리는 세상, 말하지 않아도 다 이해하고 웃고 넘길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은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따뜻함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들의 갈등과 고민의 내용에 대해 부연설명과 장황한 해설이 없더라도 사람을 통해서 사람들이 자연 치유되는 모습들이 참으로 좋아 보였습니다. 마치 저 자신도 소설 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 다 같이 치유되는 따뜻함이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병아리 부화기의 온열기처럼 푸근한 온기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어른들보다 내면적으로 더 성숙하다 말할 수 있는 소설 속 아이들의 모습, 그리고 그들이 주위 사람들을 포용하고 이해하며 웃음을 만들어 내는 모습들이 무척 좋았습니다. 



    가끔은 아이들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마음에 담아둔 짐을 내려놓고 싶습니다. 그 짐을 풀어서 사람들에게 내어 보이고 고백해서, 때로는 사랑을 말하고, 때로는 용서를 빌며, 때로는 같이 울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박힌 가시가 더 깊이 박히고 상처가 깊어져 크게 자라나기 전에 그 가시를 뽑아 내버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상대방이 그런 고백을 나에게 한다면 힘들게 빼내려 하는 그 가시를 조심스레 받아주고 이해하고 감싸줄 수 있는 따뜻함을 표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면 합니다. 같이 울며 웃고, 이해하고 들어주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바꾸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그런 세상을 만들어 보고도 싶습니다.



 




 


    해철은 "다 너를 위해서."라고 말하는 자들을 멀리 하라고 방부했다. 자신을 위한 자기 만족을 위한 행동이 대부분이니까. 진심으로 위한다면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게 움직이는 것이라 했다. 부담 듬뿍 주면서 "내가 너를 위해 이만큼 했다."고 하는 건 행한 만큼의 억압도 행사하겠다는 것과 같다고. (29쪽)



    재미있는 건, 자기도 이미 누가 더 나은지 알고 있다는 거야. 알고 있으니까 더 싫지. 싫은 사람은 뭘 해도 싫어. 촌그럽게 싫은 걸 싫다고 말할 순 없으니까 폄하하고 남은 관심도 없는 걸 굳이 까발려. 나 좀 아는데 그러면서. 그런데 그러는 거 다 읽힌다. (114쪽)



    병아리를 키우는 남학생이 사는 집은 어떨까. 어떤 부보와 어떤 형제가 사는 집일까. 어떤 집에서 어떻게 자라야 달걀에서 병아리를 떠올릴 수 있을까. 지란에게 달걀은 그저 손쉽게 해먹을 수 있는 음식 재료일 뿐이었다. 그런데 해일은 달걀에서 병아리를 보았다. 부러웠다. 평화롭고 따뜻한 집일 것 같아서. 그런 집에 한번이라도 가 보고 싶었다. (141쪽)



    고백 실패. 뽑아 내지 못한 고백이 가시가 되어 더 깊이 박히고 말았다. 잘못 고백했다가 친구들을 잃을까 겁이 났던 것이다. (171쪽)



    물건의 사연을 알아 버린 도둑. 물건의 영혼이 얼마나 위태한지 알아 버린 도둑이었다. 해일은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깊게 팬 손금과 자잘한 손금이 어지럽게 엉켰다. 손은 머리가 지시한 대로 움직여야 한다. 저 혼자 움직이는 손은, 이미 자신의 손이 아니었다. (214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누가미 일족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코미조 세이시의 소설에 대한 소개글을 보면 '역대, 최고의, 1위'와 같은 수식어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본 그의 작품들 모두가 그런 타이틀 하나씩을 가지고 있는 모양새였는데요, <이누가미 일족>은 3번의 영화 제작과 5번의 드라마 제작이라는 대단한 타이틀을 가진 작품입니다. 아마도 독특한 배경의 장소에서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복잡한 구성의 영상물이 되었을 겁니다. 또 영화 한편에서 20분 간격으로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테니 적절한 타이밍 살인사건이 발생해서 관객들의 주의를 환기시켜주는 괜찮은 시나리오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소설 <이누가미 일족>을 영화로 만들었다면 제법 괜찮은 모양을 한 기묘한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졌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 무슨 기묘한 이야기란 말인가. 전부가 우연이었다. 전부가 우연이 겹쳤던 것이다. 하지만 그 우연을 솜씨있게 틀에 넣어 하나의 베를 짜내기 위해서는 보통 아닌 지혜가 필요하다. (407쪽)



    요코미조 세이시<이누가미 일족>을 1950년 <팔묘촌>과 함께 집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두 소설이 묘하게 닮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패전 이후의 일본 사회의 봉건적인 모습과 음울한 분위기, 한 거대 가문의 일그러진 가족상까지 공통점을 제법 많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건 이때 발표했던 요코미조 세이시 소설의 공통된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공포스럽고 기괴한 분위기의 배경에 반대되는 유쾌한 모습을 한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를 앞세워서 그가 먹구름처럼 몰고다닌 살인사건을 다루는 본격 추리소설의 한결같은 모습. 이 모습이 <이누가미 일족>에도 그대로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한결같음이 이제는 은근히 좋아졌습니다. 요즘 나오는 본격 추리소설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살인동기가 요코미조 세이시의 소설에서는 시대의 분위기를 타고 꽤 그럴싸한 모습으로 비춰지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때의 일본사회라면 그럴지도 라며 비약적인 살인동기도 인정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누가미 일족>은 1955년에 발표한 중편 <도르래 우물은 왜 삐걱거리나>와도 매우 닮은 모습입니다. 처음 이 소설을 봤을 때 <도르래 우물은 왜 삐걱거리나>의 확장판 장편소설인줄 알았을 정도로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혀 다른 내용으로 이어지고 결말도 다르며 구성도 다르지만, 굉장히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패전 이후의 일본사회에서 거대 가문의 자제들이 귀환하는 모습은 거의 대부분이 이런 모양을 한 비슷한 형태였나 봅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빗어진 갈등의 양상도 비슷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트릭이나 독자를 유인하는 함정까지 결국엔 닮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산 지방의 폭풍우에는 기분 나쁜 데가 있다.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고, 그것만으로도 사람을 위압하는 느낌인데 호수에서 나는 소리 또한 심상치 않았다. 거무죽죽하게 흐려진 물이 파도를 일으키고 물거품을 일으켜 요동치는 모습은 바다와는 또 다른 무서움이 있다. 만약 누군가 폭풍우가 치는 호수를 들여다본다면 여자의 검은 머리처럼 서로 뒤얽히고 휘감기며 북적거리는 수초의 그대한 군락을 발견하고 기묘한 불쾌감에 소름이 돋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무슨 새인지 한 마리, 폭풍우를 맞으며 어두운 호수 위를 화살처럼 비스듬히 가로질러 간다. 마치 무언가의 영혼처럼. (165쪽)

 


    이 소설은 음울한 분위기의 호숫가 대저택을 배경으로 이누가미 사헤라는 인물의 죽음 이후에 남겨진 유언장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남겨진 유언장에 매우 잔인한 내용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가뜩이나 복잡한 관계로 얽혀있어 편치않았던 가족관계를 유산상속과 관련해서 더욱 싸움을 부추기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마침 살인을 몰고 다니는 긴다이치 코스케가 이곳을 지나고 있었으니, 살인사건이 발생하지 않고는 못 배길 본격 추리소설의 적절한 무대가 만들어진 것이죠.



    긴다이치 코스케는 굉장히 겸연쩍어 하며,

    "아니, 그, 그, 그렇게 말씀하시면, 가, 가, 감사." (338쪽)

 


    그래서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적절한 시간 간격을 두고 이 집안에서는 연속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들이 무엇인가를 상징하는 수고스러운 형태를 보이고 있어서 앞으로 일어날 살인사건까지 독자가 어느정도 예상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래서 수많은 인물들 중에서 앞으로 죽을 사람들을 제외시키고 범인을 맞춰나가기 위한 추리를 해나가며 인물들의 과거를 추적해나가는 재미가 꽤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봤을 때 난이도가 제법 높은 트릭, 혹은 추리내용이라 아마 독자가 모든 퍼즐을 정확하게 완성시키기는 어려울 것 같아 보입니다. 그래도 정정당당한 승부를 펼치는 추리소설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하, 하지만…… 범인은 어, 어째서 그, 그렇게 수고로운 짓을 한 겁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135쪽)

 


    요코미조 세이시의 소설에서는 책을 한번 손에 쥐면 그자리에서 끝을 보게 만드는 대단한 힘이 있습니다. 끊임없이 '뭐지? 그렇군, 뭐지? 그렇군'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묘하게 흥분하게 하는 재미있는 형태의 한 소설들이 많습니다. 작가가 직접 분위기를 몰아간다고 해야하나, 앞으로 나올 이야기의 모습을 넌지시 찔러주는 추임새마저도 재미있습니다. 또 이야기의 흐름이 매우 매끄럽게 진행되어 사건과 관련이 없는 곁가지같은 내용은 일절 담고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군더더기없는 깔끔한 구성을 보이며 독자는 빠른 속도감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긴다이치 코스케라는 캐릭터도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재미있는 인물이라 살인사건이 누구의 승도 아닌 미지근한 승부로 끝나더라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런 점들 때문에 이 소설의 시리즈가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확고한 매니아층을 만들며 오랜 시간동안 사랑을 받아왔던 것 같습니다. 요코미조 세이시, 혹은 긴다이치 코스케 라는 이름만으로도 꽤 괜찮은 수준의 소설이 나온다라는 기대감이 이제는 이들의 이름만으로 보증하는 단계가 되었으니, 제겐 이들의 이름이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긴다이치 코스케는 매우 유유자적한 풍모를 지닌 탐정이다. 언뜻 보면 어디에도 이렇다 할 장점이 없는 매우 풍채가 좋지 않은 말더듬이 남자지만, 그 멋들어진 추리력은 <혼진 살인사건>, <옥문도> 그리고 <팔묘촌>등의 사건에서 증명된 바 있다. 이 남자는 흥분하면 말더듬이 점점 심해지는데다 무턱대고 더벅머리를 긁어대는 버릇이 있다. 그다지 품위 있는 버릇은 아니다. (2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점성술 살인사건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1981년, 일본 본격 추리소설의 거장 요코미조 세이시가 타계하자 신본격의 시작을 알리는 대단한 작품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본격의 끝과 시작이 묘하게 맞물리는 이 일을 두고 세간에는 요코미조 세이시가 부활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었다고 합니다. 그때 혜성같이 화려하게 등장한 소설이 바로 시마다 소지<점성술 살인사건>입니다. 아니, 시작은 그렇게 화려하지 않았군요. 에도가와 란포상 본심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으니 말이에요. 그런데 출간된 이후, 추리소설 팬들을 사이에서 입소문이 돌면서 차차 화려함을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똑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처음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차츰 인정받고 있다고 합니다. 소설을 읽어본 제가 지금부터 이 소설에 대한 입소문의 듣지 못했던 분들에게 소문을 퍼트리려고 하고 있으니 신기할 노릇입니다. 아니! 이 소설이 데뷔작이었다니, 대단합니다.



 





    데뷔작이었던 만큼 엉성한 부분들이 보입니다. 쓴소리부터 하자면, 이야기의 도입부에서 한층 고조시켜 놓은 긴장감을 소설이 끝날 때 까지 유지시키지 못했던 점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이건 정교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구성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요, 신인의 패기로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들을 소설 하나에 모두 담아놓으려는 무리수를 두다보니 소설 중반에 독자를 맥빠지게 만드는 전개가 이어졌고, 그래서 이야기가 난잡해 보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소설의 첫 장부터 독자에게 최고조의 긴장감을 선사하는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시작 부분에서 보여준 화려한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시키는 것이 아마도 이 소설이 가진 가장 큰 숙제였을 텐데, 그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내지 못한 것 같아서 조금 아쉽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는데도 역시 이 소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책 속의 책'의 이야기가 주는 신비롭고 환상적인 분위기가 점성술과 살인이라는 소재와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 속의 책'이라는 모양에서 오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무척 좋아하거든요.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에서도 비슷한 느낌의 환상적이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는데, 어찌보면 이런 모습의 소설이 시마다 소지의 주특기 혹은 필살기같은 한방이 아닌가 싶습니다. 두 소설 모두 옛날 옛적에 하면서 공소시효가 지나도 훨씬 지난 옛 사건을 파헤치는 사건 풀이를 다루고 있으니 묘하게 닮은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금은 현미경 단위까지도 수사 대상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범죄자에게 꿈이 없는 시대라고. (486쪽)



    한편 <점성술 살인사건>에서 홈즈 역을 맡은 미타라이 기요시와 왓슨 역을 맡은 이시오카 가즈미, 저는 이 두 인물이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들이 쇼파에 앉아서 '그건 이래서 아니고, 그러니 일단 제외시키고'하는 식의 일장 연설 추리대화들이 마치 독자도 함께 참여해서 같이 추리를 해나가나고 있다는 착각이 들게하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래서 소설 속에 독자도 동참할 수 있는 모습이라 무척 좋았습니다. 하지만 홈즈의 폭풍과 같은 풀이를 듣는 것처럼 미타라이의 풀이가 정신 없이 휘몰아칠 때가 간혹 있는데, 그럴 때는 속도에 맞게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점성술 명탐정 미타라이 기요시의 폭풍과 같은 추리 연설, 그리고 우울증을 앓고 있는 그의 침울해하는 표정과 변덕에서 오는 기이한 행동들이 은근히 매력적입니다. 또 그런 변덕을 받아주며 스스로 왓슨 역을 자청한 이시오카의 소극이면서도 진지한 나름의 단서수집과 추리도 재미있었습니다.


 

    헛수고야, 헛수고라고. 그대로야. 모든 것이 이전에 상실돼 있어. 내가 하려는 것 따위는 헛수고지. 사소한 기쁜이나 슬픔이나 분노, 그런 것은 태풍이나 소나기, 봄이 되면 매년 어김없이 피는 벚꽃 같은 거야. 인간은 그런 것에 매일 좌지우지되면서 결국 모두 비슷한 곳으로 흘러가. 아무도, 아무것도 되지 못해. (177쪽)


    그래서 나는 더러운 쓰레기 더미처럼 보이는 이 도시가 실은 여러가지로 억압된 비명이 가득 찬 소굴인 것을 알았지. 그때마다 항상 생각했어, 듣는 것은 이제 충분하다고. 그런 시대는 오늘로써 단호히 끝내자. 이제 슬슬 누군가를 구해줘도 될 때야. (250쪽)

 


    사실 사회파니 본격이니 하는 구분도 무의미한 편가르기일 뿐이지만, 신본격의 시작이라고 하는 시마다 소지의 소설에도 사회파의 느낌이 제법 많이 납니다. <점성술 살인사건>에서는 고정관념과 피해의식에서 기인한 홈즈와 왓슨 파헤치기가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가 영국의 기만적인 외교활동에 까지 연결되면서, 오호 이 이야기기가 이렇게도 흘러가는구나 싶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홈즈와 왓슨을 싫어하는 듯한 삐딱한 태도를 보이고 있으면서 묘하게도 미타라이와 이시오카가 그들과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으니 그점이 재미있기도 합니다.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건 간단해. 뭐든 비판은 쉽고 창조는 어려워. (256쪽)



    추리의 문제는 총 세가지가 등장합니다. 각각의 사건의 연관성을 찾아내는 것부터 방법과 이유까지, 40년간 일본에서 홈즈역을 자청한 추리꾼들이 모여 의논해보고 탐구해보아도 미스터리로 남아있었던 한 괴상한 사건을 들춰내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추리가 어찌보면 쉽고, 어찌보면 어려운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소년탐정 김전일>을 봤던 독자라면 쉽게 눈치 챌 수도 있는 트릭이 주요 트릭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필 제가 기억하고 있는 <소년탐정 김전일>의 유일한 에피소드가 바로 이 트릭의 이야기여서 소설을 읽자마자 김이 새버렸습니다. <소년탐정 김전일>에서는 이 소설의 트릭을 도용한 것에 대해 얼마 전까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최근 개정된 책부터 <점성술 살인사건>의 트릭을 차용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고 하던데 그 말을 듣고 무척 화가 났습니다. 그렇지만 트릭의 해법을 미리 알고 있더라도 <점성술 살인사건>을 괜찮게 읽었기 때문에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시마다 소지처럼 말이지요.



    이야기의 거의 막바지에 이르면 시미다 소지가 직접 독자에게 던지는 도전장이 등장합니다. 풀이가 나오기 전에 독자 스스로가 한번 추리해보라는 거만하고 얄미운 메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힌트와 증거는 모두 주어졌으니 논리와 추리를 통해 정정당당하게 한번 승부해보자는 패기가 느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도전장을 내밀기 전에 답을 알려주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정적인 힌트를 보여주고 있긴 합니다. 그러니 결국에는 그 힌트를 보기 전에 트릭을 풀이해내야 진정한 승리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떤지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으신가요.



    이 사건의 수수께끼를 누군가가 풀어 주었으면 좋겠다. (246쪽)



    아무튼 신본격의 시작을 알리는 대단한 작품으로 이 소설은 일본 추리소설사에서 큰 역사적이 의의를 갖고 있습니다. 데뷔작이라고 하나 여느 다른 작가의 데뷔작과는 질적으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점성술 살인사건>, 추리소설 팬이라면 꼭 한번 읽어봐야할 필독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퍼즐을 좋아하고 수수께끼를 좋아하며 이상하고 요상한 것에 잘 이끌리는 분들에게 심심풀이 땅콩과 같은 유익한 소설이 될 것란 생각을 해봅니다. 아니, 그런데 이 소설이 정말로 데뷔작이란 말인가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대단합니다. 시마다 소지 님,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아조트는 왜 만들어져야 하는가, 그것은 내가 서양화를 그리는 것과 같은 한 개인의 변덕스러운 창작 행위가 결코 아니다. 이것은 미의식에 이르는 극한이며 무한대의 동경이지만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이야기이고, 아조트는 그러한 사정과는 별개로 우리 대일본제국의 미래를 위해서 만들어야 한다. 일본 제국은 잘못된 길을 걸어서 역사를 만들어 왔다. 그 부자연스러운 흔적은 역사 연표의 도처에서 찾아낼 수 있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전에 없는 커다란 변화를 체험하려 하고 있다. 이천 년에 이르는 잘못의 대가를 지금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망국의 위기가 눈앞에 있다. 그리고 그 위기를 구할 존재가 바로 아조트이다. (4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