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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고백
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12년 2월
평점 :
어렸을 땐 누구나 자기 자신이 남들과 다른 존재라고 여기곤 합니다. 학교라는 좁은 세상,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공부를 해가며 매일 보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일주일 단위의 하루가 흘러가는 정신없는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던 바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 바쁜 일정의 흐름 속에서 남들과 다른 존재라고 여기던 청소년기의 자아인식이, 자신이 남들과 다른 이유를 스스로가 특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가 이상하거나 틀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인식 때문에 이 시기에 스스로에게 박아 놓은 '가시'가 생겨나게 되고, 그것이 점점 자라나도록 방치해두면 가시가 더 깊게 파고들어 결국엔 더 큰 아픔이 되고 상처가 됩니다. 어느 정도 아파올 때 뽑아버리면 그만일 작은 가시지만 제때 뽑아내지 못한다면 곪아서 흉터가 생기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 자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상처가 되어 남아있기도 합니다.
김려령 님의 소설 <가시고백>은 청소년기라는 작은 세상 속에서 자신의 가시만이 오로지 세상의 전부인 줄 알며 자라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해일, 지란, 진오, 다영.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고등학생 네 명은 누구에게도 고백하지 못해 품게 된 각자의 가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소설을 읽는 어른들은 아마도, 나도 이 어린 친구들이 가지고 있었던 같은 고민들을 청소년기에 했었지라고 말하기가 조금 부끄럽고 멋쩍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많이 무덤덤해져 가시의 존재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한 어른들 역시, 청소년기에 이런 모습의 고민 하나 쯤은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묘하게 이 어린 친구들의 작은 마음과 그들의 세상에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것 말입니다.
친하다고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소설 속 그런 애매한 관계의 네 친구들이 서로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과정들이 무척 따뜻해 보입니다. 특히 우연한 기회로 만들게 된 '병아리 부화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 친구들은 급속도로 마음을 열고 친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쉽게 다가가기 힘들었던 담인 선생님까지 '차갑지만 내 제자들에게 따뜻한 남자'로 만들어 버리는 묘한 마법이 병아리 부화기를 통해 발휘하고 있습니다. 새 생명의 탄생과 성장의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그것 자체로 신비로운 일이고 부화기 안의 작은 세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사람들을 푸근하게 만들어 주위 사람들 모두를 쉽게 가까워지게 만드나 봅니다.
하지만 이들의 갈등과 고민이 '고백'을 통해 쉽게 해결되는 부분은 많이 아쉬웠습니다. 소설 속의 병아리 부화기에서도 유정란에 수정체가 생기는 경우는 6개 중에서 단 2개 뿐. 모든 일이 척척 그렇게 쉬울 순 없을 것입니다. 고백의 형태를 한 말이 되어 나오기까지 수 많은 갈등과 내면의 대화들이 오고갈 것인데 그런 부분에 대하여 생략한 듯한 전개가 이어지고 아이들 역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뜬금없이 세상이 너무 밝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이건 어쩌면 저 스스로가 너무 세속적이 되어서 개인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을 연다고 쉽게 마음이 열리는 세상, 말하지 않아도 다 이해하고 웃고 넘길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은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따뜻함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들의 갈등과 고민의 내용에 대해 부연설명과 장황한 해설이 없더라도 사람을 통해서 사람들이 자연 치유되는 모습들이 참으로 좋아 보였습니다. 마치 저 자신도 소설 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 다 같이 치유되는 따뜻함이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병아리 부화기의 온열기처럼 푸근한 온기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어른들보다 내면적으로 더 성숙하다 말할 수 있는 소설 속 아이들의 모습, 그리고 그들이 주위 사람들을 포용하고 이해하며 웃음을 만들어 내는 모습들이 무척 좋았습니다.
가끔은 아이들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마음에 담아둔 짐을 내려놓고 싶습니다. 그 짐을 풀어서 사람들에게 내어 보이고 고백해서, 때로는 사랑을 말하고, 때로는 용서를 빌며, 때로는 같이 울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박힌 가시가 더 깊이 박히고 상처가 깊어져 크게 자라나기 전에 그 가시를 뽑아 내버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상대방이 그런 고백을 나에게 한다면 힘들게 빼내려 하는 그 가시를 조심스레 받아주고 이해하고 감싸줄 수 있는 따뜻함을 표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면 합니다. 같이 울며 웃고, 이해하고 들어주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바꾸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그런 세상을 만들어 보고도 싶습니다.
해철은 "다 너를 위해서."라고 말하는 자들을 멀리 하라고 방부했다. 자신을 위한 자기 만족을 위한 행동이 대부분이니까. 진심으로 위한다면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게 움직이는 것이라 했다. 부담 듬뿍 주면서 "내가 너를 위해 이만큼 했다."고 하는 건 행한 만큼의 억압도 행사하겠다는 것과 같다고. (29쪽)
재미있는 건, 자기도 이미 누가 더 나은지 알고 있다는 거야. 알고 있으니까 더 싫지. 싫은 사람은 뭘 해도 싫어. 촌그럽게 싫은 걸 싫다고 말할 순 없으니까 폄하하고 남은 관심도 없는 걸 굳이 까발려. 나 좀 아는데 그러면서. 그런데 그러는 거 다 읽힌다. (114쪽)
병아리를 키우는 남학생이 사는 집은 어떨까. 어떤 부보와 어떤 형제가 사는 집일까. 어떤 집에서 어떻게 자라야 달걀에서 병아리를 떠올릴 수 있을까. 지란에게 달걀은 그저 손쉽게 해먹을 수 있는 음식 재료일 뿐이었다. 그런데 해일은 달걀에서 병아리를 보았다. 부러웠다. 평화롭고 따뜻한 집일 것 같아서. 그런 집에 한번이라도 가 보고 싶었다. (141쪽)
고백 실패. 뽑아 내지 못한 고백이 가시가 되어 더 깊이 박히고 말았다. 잘못 고백했다가 친구들을 잃을까 겁이 났던 것이다. (171쪽)
물건의 사연을 알아 버린 도둑. 물건의 영혼이 얼마나 위태한지 알아 버린 도둑이었다. 해일은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깊게 팬 손금과 자잘한 손금이 어지럽게 엉켰다. 손은 머리가 지시한 대로 움직여야 한다. 저 혼자 움직이는 손은, 이미 자신의 손이 아니었다. (214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