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성술 살인사건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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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981년, 일본 본격 추리소설의 거장 요코미조 세이시가 타계하던 해, 신본격의 시작을 알리는 대단한 작품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본격의 끝과 시작이 묘하게 맞물리는 이 일을 두고 세간에는 요코미조 세이시가 부활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었다고 합니다. 그때 화려하게 등장한 소설이 바로 시마다 소지<점성술 살인사건>입니다. 아니, 그러고보면 시작은 그렇게 화려하지 않았군요. 에도가와 란포상 본심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으니 말이에요. 그런데 출간된 이후, 추리소설 팬들을 사이에서 입소문이 돌면서 차차 화려함을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똑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처음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차츰 인정받으며 입소문을 타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제가 이 소설에 대한 입소문의 아직 들어보지 못했던 분들에게 소문을 퍼트리려고 하고 있으니 정말로 신기할 노릇입니다. 아니! 이 소설이 데뷔작이었다니, 대단합니다.


 




    데뷔작이었던 만큼 덜 다듬어져 엉성한 부분들이 보입니다. 쓴소리부터 하자면, 이야기의 도입부에서 한층 고조시켜 놓은 긴장감을 소설이 끝날 때까지 유지시키지 못했던 점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이건 정교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구성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요, 신인의 패기로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들을 소설 하나에 모두 담아놓으려는 무리수를 두다보니 소설 중반에 독자를 맥빠지게 만드는 전개가 이어졌고, 그래서 이야기가 난잡해 보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소설의 첫 장부터 독자에게 최고조의 긴장감을 선사하는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작 부분에서 보여준 가슴 졸이게 한 화려한 긴장감을 소설의 끝까지 유지시키는 것이 아마도 이 소설이 가진 가장 큰 숙제였을 텐데요. 그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내지 못한 것 같아서 조금 아쉽습니다.



    하지만 이런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는데도 역시 이 소설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책 속의 책'의 이야기가 주는 신비롭고 환상적인 분위기가 점성술과 살인이라는 소재와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저는 이 '책 속의 책'이라는 모양에서 오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합니다.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에서도 비슷한 느낌의 환상적이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는데, 어찌보면 이런 모습의 소설이 시마다 소지의 주특기, 혹은 필살기같은 한방이 아닌가 싶습니다. 두 소설 모두 '옛날 옛적에'하면서 공소시효가 지나도 훨씬 지난 옛 사건을 파헤치는 사건 풀이를 다루고 있으니 묘하게 닮은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금은 현미경 단위까지도 수사 대상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범죄자에게 꿈이 없는 시대라고. (486쪽)



    한편 <점성술 살인사건>에서 홈즈 역을 맡은 미타라이 기요시와 왓슨 역을 맡은 이시오카 가즈미. 저는 이 두 인물이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들이 쇼파에 앉아서 '그건 이래서 아니고, 그러니 일단 제외시키고'하는 식의 일장 연설 추리대화들이 마치 독자도 함께 그 대화에 참여해 같이 추리를 해나가나고 있다는 착각이 들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소설 속에 독자도 동참할 수 있는 자리가 있어서 무척 좋았습니다. 하지만 홈즈의 폭풍과 같은 풀이를 듣는 것처럼 미타라이의 풀이가 정신 없이 휘몰아칠 때가 간혹 있는데, 그럴 때는 속도에 맞춰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점성술 명탐정 미타라이 기요시의 폭풍과 같은 추리 연설, 그리고 우울증을 앓고 있는 그의 침울해하는 표정과 변덕에서 오는 기이한 행동들이 은근히 매력적입니다. 또 그런 변덕을 받아주며 스스로 왓슨 역을 자청한 이시오카의 소극이면서도 진지한 나름의 단서수집과 추리도 재미있었습니다.


 

    헛수고야, 헛수고라고. 그대로야. 모든 것이 이전에 상실돼 있어. 내가 하려는 것 따위는 헛수고지. 사소한 기쁜이나 슬픔이나 분노, 그런 것은 태풍이나 소나기, 봄이 되면 매년 어김없이 피는 벚꽃 같은 거야. 인간은 그런 것에 매일 좌지우지되면서 결국 모두 비슷한 곳으로 흘러가. 아무도, 아무것도 되지 못해. (177쪽)


    그래서 나는 더러운 쓰레기 더미처럼 보이는 이 도시가 실은 여러가지로 억압된 비명이 가득 찬 소굴인 것을 알았지. 그때마다 항상 생각했어, 듣는 것은 이제 충분하다고. 그런 시대는 오늘로써 단호히 끝내자. 이제 슬슬 누군가를 구해줘도 될 때야. (250쪽)

 


    사실 사회파니 본격이니 하는 구분도 무의미한 편가르기일 뿐이지만, 신본격의 시작이라고 하는 시마다 소지의 소설에도 사회파의 느낌이 제법 많이 납니다. <점성술 살인사건>에서는 고정관념과 피해의식에서 기인한 홈즈와 왓슨 파헤치기가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가 영국의 기만적인 외교활동에 까지 연결되면서, 오호 이 이야기기가 이렇게도 흘러가는구나 싶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홈즈와 왓슨을 싫어하는 듯한 삐딱한 태도를 보이고 있으면서 묘하게도 미타라이와 이시오카가 그들과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으니 그점이 재미있기도 합니다.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건 간단해. 뭐든 비판은 쉽고 창조는 어려워. (256쪽)



    추리의 문제는 총 세가지가 등장합니다. 각각의 사건의 연관성을 찾아내는 것부터 방법과 이유까지, 40년간 일본에서 홈즈역을 자청한 추리꾼들이 모여 의논해보고 탐구해보아도 미스터리로 남아있었던 한 괴상한 사건을 들춰내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추리가 어찌보면 쉽고, 어찌보면 어려운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소년탐정 김전일>을 봤던 독자라면 쉽게 눈치 챌 수도 있는 트릭이 주요 트릭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필 제가 기억하고 있는 <소년탐정 김전일>의 유일한 에피소드가 바로 이 트릭의 이야기여서 소설을 읽자마자 김이 새어 버렸습니다. <소년탐정 김전일>에서는 이 소설의 트릭을 도용한 것에 대해 얼마 전까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최근 개정된 책부터 <점성술 살인사건>의 트릭을 차용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고 하던데 그 말을 듣고 저는 무척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트릭의 해법을 미리 알고 있더라도 <점성술 살인사건>을 괜찮게 읽었기 때문에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시마다 소지처럼 말이지요.



일본 추리소설의 신본격은 이렇게 시작했다고 한다.

시마다 소지의 팬이라면 당연히 읽어봐야 할, 데뷔작이지만 대단했던 소설.



    이야기의 거의 막바지에 이르면 시미다 소지가 직접 독자에게 던지는 도전장이 등장합니다. 풀이가 나오기 전에 독자 스스로가 한번 추리해보라는 거만하고 얄미운 메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힌트와 증거는 모두 주어졌으니 논리와 추리를 통해 정정당당하게 한번 승부해보자는 패기가 느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도전장을 내밀기 전에 답을 알려주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정적인 힌트를 보여주고 있긴 합니다. 그러니 결국에는 그 힌트를 보기 전에 트릭을 풀이해내야 진정한 승리라고 볼 수 있는데, 도대체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 이 문제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으신가요.



    이 사건의 수수께끼를 누군가가 풀어 주었으면 좋겠다. (246쪽)


    아무튼 신본격의 시작을 알리는 대단한 작품으로 이 소설은 일본 추리소설사에서 큰 역사적이 의의를 갖고 있습니다. 데뷔작이라고 하나 여느 다른 작가의 데뷔작과는 질적으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점성술 살인사건>. 추리소설 팬이라면 꼭 한번 읽어봐야 할 필독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퍼즐을 좋아하고 수수께끼를 좋아하며 이상하고 요상한 것에 잘 이끌리는 분들에게 심심풀이 땅콩과 같은 유익한 소설이 될 것란 생각을 해봅니다. 아니, 그런데 이 소설이 정말로 데뷔작이란 말인가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대단합니다. 시마다 소지 님,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아조트는 왜 만들어져야 하는가, 그것은 내가 서양화를 그리는 것과 같은 한 개인의 변덕스러운 창작 행위가 결코 아니다. 이것은 미의식에 이르는 극한이며 무한대의 동경이지만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이야기이고, 아조트는 그러한 사정과는 별개로 우리 대일본제국의 미래를 위해서 만들어야 한다. 일본 제국은 잘못된 길을 걸어서 역사를 만들어 왔다. 그 부자연스러운 흔적은 역사 연표의 도처에서 찾아낼 수 있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전에 없는 커다란 변화를 체험하려 하고 있다. 이천 년에 이르는 잘못의 대가를 지금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망국의 위기가 눈앞에 있다. 그리고 그 위기를 구할 존재가 바로 아조트이다. (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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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가미 일족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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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코미조 세이시의 소설에 대한 소개글을 보면 '역대, 최고의, 1위'와 같은 수식어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본 그의 작품들 모두가 그런 타이틀 하나씩을 가지고 있는 모양새였는데요, <이누가미 일족>은 세 번의 영화 제작과 다섯 번의 드라마 제작이라는 대단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아마도 독특한 배경의 장소에서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복잡한 구성의 영상물이 되었을 겁니다. 또 영화 한편에서 20분 간격으로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테니 시기적절한 타이밍에 살인사건이 발생해서 관객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모양을 한 괜찮은 시나리오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직 영화나 드라마를 보지 못했지만, 소설 <이누가미 일족>을 토대로 만들었다면 제법 괜찮은 모양을 한 기묘한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무슨 기묘한 이야기란 말인가. 전부가 우연이었다. 전부가 우연이 겹쳤던 것이다. 하지만 그 우연을 솜씨있게 틀에 넣어 하나의 베를 짜내기 위해서는 보통 아닌 지혜가 필요하다. (407쪽)


 

 



 


    요코미조 세이시<이누가미 일족>을 1950년 <팔묘촌>과 함께 집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두 소설이 묘하게 닮았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패전 이후의 일본 사회의 봉건적인 모습과 음울한 분위기, 한 거대 가문의 일그러진 가족상까지 공통점을 제법 많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건 이 당시 발표했던 요코미조 세이시 소설의 공통된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공포스럽고 기괴한 분위기의 배경에 반대되는 유쾌한 모습을 한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를 앞세워서 그가 먹구름처럼 몰고다닌 살인사건을 다루는 본격 추리소설의 한결같은 모습. 이 모습이 <이누가미 일족>에도 그대로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한결같음이 이제는 은근히 좋아졌습니다. 요즘 나오는 본격 추리소설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살인동기가 요코미조 세이시의 소설에서는 시대의 분위기를 타고 꽤 그럴싸한 모습으로 비춰지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때의 일본사회라면 충분히 그럴지도'라며 비약적인 살인동기마저 인정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누가미 일족>은 1955년에 발표한 중편 <도르래 우물은 왜 삐걱거리나>와도 매우 닮은 모습입니다. 처음 이 소설을 봤을 때 <도르래 우물은 왜 삐걱거리나>의 확장판 장편소설인줄 알았을 정도로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혀 다른 내용으로 이어지고 결말도 다르며 구성도 다르지만, 굉장히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패전 이후의 일본사회에서 거대 가문의 자제들이 귀환하는 모습은 거의 대부분이 이런 모양을 한 비슷한 형태였나 봅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빗어진 갈등의 양상도 비슷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트릭이나 독자를 유인하는 함정까지 결국엔 닮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산 지방의 폭풍우에는 기분 나쁜 데가 있다.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고, 그것만으로도 사람을 위압하는 느낌인데 호수에서 나는 소리 또한 심상치 않았다. 거무죽죽하게 흐려진 물이 파도를 일으키고 물거품을 일으켜 요동치는 모습은 바다와는 또 다른 무서움이 있다. 만약 누군가 폭풍우가 치는 호수를 들여다본다면 여자의 검은 머리처럼 서로 뒤얽히고 휘감기며 북적거리는 수초의 그대한 군락을 발견하고 기묘한 불쾌감에 소름이 돋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무슨 새인지 한 마리, 폭풍우를 맞으며 어두운 호수 위를 화살처럼 비스듬히 가로질러 간다. 마치 무언가의 영혼처럼. (165쪽)

 


시기적절하게 죽어나가는 사람들 틈에서 추리소설에서 말하는 속도감을 경쾌하게 느낄 수 있다.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중에서 걸작이라고 하기엔 무언가 0.2g 아쉽지만 대단한 소설임은 분명.



    이 소설은 음울한 분위기의 호숫가 대저택을 배경으로 이누가미 사헤라는 인물의 죽음 이후에 남겨진 유언장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남겨진 유언장에 매우 잔인한 내용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가뜩이나 복잡한 관계로 얽혀있어 편치않았던 가족관계를 유산상속과 관련해서 더욱 싸움을 부추기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마침 살인을 몰고 다니는 긴다이치 코스케가 이곳을 지나고 있었으니, 살인사건이 발생하지 않고는 못 배길 본격 추리소설의 적절한 무대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긴다이치 코스케는 굉장히 겸연쩍어 하며,

    "아니, 그, 그, 그렇게 말씀하시면, 가, 가, 감사." (338쪽)

 


    그래서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적절한 시간 간격을 두고 이 집안에서는 연속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들이 무엇인가를 상징하는 수고스러운 형태를 보이고 있어서 앞으로 일어날 살인사건까지 독자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래서 수많은 인물들 중에서 앞으로 죽을 사람들을 제외시키고 범인을 맞춰나가기 위한 추리를 해나가며 인물들의 과거를 추적해나가는 재미가 꽤 있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봤을 때 난이도가 제법 높은 트릭, 혹은 추리내용이라 아마 독자가 모든 퍼즐을 정확하게 완성시키기는 어려울 것 같아 보입니다. 그래도 정정당당한 승부를 펼치는 추리소설임에는 틀림없고 그 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하, 하지만…… 범인은 어, 어째서 그, 그렇게 수고로운 짓을 한 겁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135쪽)

 

 


    요코미조 세이시의 소설에서는 책을 한번 손에 쥐면 그자리에서 끝을 보게 만드는 대단한 힘이 있습니다. 끊임없이 '뭐지? 그렇군, 뭐지? 그렇군'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묘하게 흥분하게 하는 재미있는 형태를 한 소설들이 많습니다. 작가가 직접 분위기를 몰아간다고 해야하나, 앞으로 나올 이야기의 모습을 넌지시 찔러주는 추임새마저도 재미있습니다. 또 이야기의 흐름이 매우 매끄럽게 진행되어 사건과 관련이 없는 곁가지같은 내용은 일절 담고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군더더기없는 깔끔한 구성을 보이며 독자는 빠른 속도감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긴다이치 코스케라는 캐릭터도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재미있는 인물이라 살인사건이 누구의 승도 아닌 미지근한 승부로 끝나더라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게 합니다. 이런 점들 때문에 이 소설의 시리즈가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확고한 매니아층을 만들며 오랜 시간동안 사랑을 받아왔던 것 같습니다. 요코미조 세이시, 혹은 긴다이치 코스케 라는 이름만으로도 꽤 괜찮은 수준의 소설이 나온다라는 기대감이 생겨나니, 이제는 저에게 이들의 이름이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긴다이치 코스케는 매우 유유자적한 풍모를 지닌 탐정이다. 언뜻 보면 어디에도 이렇다 할 장점이 없는 매우 풍채가 좋지 않은 말더듬이 남자지만, 그 멋들어진 추리력은 <혼진 살인사건>, <옥문도> 그리고 <팔묘촌>등의 사건에서 증명된 바 있다. 이 남자는 흥분하면 말더듬이 점점 심해지는데다 무턱대고 더벅머리를 긁어대는 버릇이 있다. 그다지 품위 있는 버릇은 아니다.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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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의 시 민음 경장편 5
김사과 지음 / 민음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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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그림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글도 좋아합니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볼 때가 있습니다. 좋아하는 두 가지 모두를 동시에 할 순 없을까. 그림으로 글을 쓰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드니, 그럼 글로 그림을 그려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 부끄럽지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글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굉장히 멋진 일입니다. 생각만해도 가슴 설레이고 당장 무엇이라도 해야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 문학시간 글쓰기 숙제로 하나의 그림을 글로 그려서 제출했던 적이 있습니다. 많은 것을 담아내려는 의욕이 앞선 나머지 굉장히 난해한 글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짦은 문장력을 극복하기 위해서 시 비슷한 형태를 취해서 산문도 아니고 시도 아닌 어정쩡한 형태의 글. 그리고 나를 제외하곤 아무도 알 수 없는 함축적인 의미를 가득 담아, 읽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할 색깔을 입히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명암과 인물들의 상징적인 행위에 대한 농과 담의 조절까지. 스스로는 꽤 만족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법한 괜찮은 그림을 글로 그려서 선생님께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선생님한테 혼났습니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이지 않은 사고, 그리고 걸러내는 과정 하나 없이 내면에 흐르고 있는 의식을 그대로 뱉어내고 있는 잔인한 글, 혹은 시. 김사과 님의 <테러의 시>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허용하는 통속적인 이념과 도덕성을 거부하고, '아니오'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표현하고자 하는 방식의 틀까지 그 모든 것을 거부하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매우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난해합니다. 그러니까 '나쁘다, 싫다, 별로다.' 뭐 이런 느낌이 아니라,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건 저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 지도 모릅니다. 예술은 아무나 하는 보통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편으로는 감사과 님의 '아니오'라는 태도가 <테러의 시>에 접근하려는 보통 사람들을 '아니오'라고 거부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뭐랄까, 그러니까 결국 저는 모르겠단 겁니다.



    <테러의 시>는 혼란과 타락이 가득한 도시, 서울에서 조선족 아가씨 제니와 영국인 불법체류자 리가 만나 개처럼 사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개처럼'이라는 표현은 정말 그렇긴한데, 그렇다고 그들을 보고 연민의 감정이 생기거나 하진 않습니다. 저는 그들의 눈으로 보았던 폭력을 경험해보지도, 느껴보지도 못한 보통사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은 '이곳'에서 이방인이 되어 이방인의 눈을 하고 우리의 현실을 드려다보고 있는 것이지만, 저 스스로는 절대로 '이곳'에서 이방인일 수 없기 때문에 어쩌면 그건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감정일 수 있겠다 싶은 것입니다. 그들의 세상에서는 제가 오히려 이방인이니까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회피해 버리고 마려는 생각이 어쩌면 나는 가해자라는 생각 때문에 생긴 죄책감에 기인해서 현실을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도망치려는 행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무튼 간에 저는 이 소설을 보고 여러가지 이유로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소설이 나를 거부했구나, 혹은 나는 이 소설로부터 거부당해버렸구나,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느낌은, 역시 학교다닐 때 바로 그 문학시간, 이상 님의 시나 글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상 님의 작품을 보고 저는 난해하고 어렵지만, 이 글을 보고 나는 무엇인가를 느껴야하는가, 혹은 무엇인가를 느끼고 있는 것처럼 남들에게 보여야만 하는가, 하는 생각 때문에 더욱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들의 무리에 나도 속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소망이 생겨났고, 누군가로부터 나 자신은 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며 인정받거나 위안받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투명한 유리지붕 너머의 세상과 공기를 나도 한번 느껴봤으면 싶었습니다. 김사과 님의 <테러의 시>를 보고 문득 그때의 그런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남들은 어떻게 볼 지 몰라도 제가 생각하기에 그들의 글은 무척 닮아 보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글'이란 느낌이 듭니다. 그 중에서도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그림과 무척 닮은 모습입니다. 우리가 보고 느끼고 알고 있는 대상들을 비틀어 놓거나 특정 부분만 강조해 놓으면서 무언가 의미심장한 내용을 전달하려고 하는 모습. 그런데 초현실주의 그림들이 대개 그렇듯, 이게 뭔가?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외롭고 우울하고 고립된 감정이 생겨납니다. 이 소설로 인해 내가 이방인이 된 듯하고, 이 동네가 너무 낯설어서 나는 도대체 어디에 발을 딛이고 서 있어야 하는가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모르겠다'였나 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동네가 그렇게 싫지만은 않습니다. 어딘가 나와 닮은 구석도 느껴지고,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에서야 불쑥 생겨납니다. 김사과 님의 다른 글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까지 말입니다.







 


    제니가 유일하게 아는 것은 그곳에서 제니가 조선족 창녀라고 불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학생의 말에 따르면 창녀는 돈을 받고 섹스를 하는 여자다. 그런데 제니는 돈을 받고 섹스를 한 적이 없다. 따라서 제니는 창녀가 아니다. 하지만 대학생의 말에 따르면 제니는 창녀가 맞다. 아니 여자들이란 다 창녀다. 왜냐하면 돈을 받지 않고 남자와 섹스하는 여자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니는 돈을 받지 않고 섹스한다. 그러니 제니와 자는 남자들은 창녀와 섹스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제니와 섹스한다. (39쪽)



    하지만 중국 사람 아니야. 한국 사람도 아니야. 재준이 말했다.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야. 어, 아무것도 아니야. 그녀는 조선족이야. 조선족이라고! (88쪽)



    언제나처럼 환각인지 현실인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환각은 항상 현실보다 살아 있고, 현실은 항상 앞뒤가 맞지 않으니까. (146쪽)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돼지와 함께 돼지처럼 길렀죠. 맞아요, 우리는 인간이 아니었어요. 동물로 키워진 적이 있는 인간들은 서로를 알아보죠. 아무리 감추려 해도, 상류층의 악센트와 비싼 옷을 감추어도, 우리들은 서로를 알아볼 수 있어요. (167쪽)



    동물로 키워진 인간들의 특징은 특징이 없다는 거예요. 쉽게 말해 인간성이 없는 거예요. 당연하죠, 우리는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아니, 여전히. 우리는 인간이 뭔지 몰라요. 물론 겉으로는 인간처럼 보이죠. 하지만 아니에요. 뭔가 빠져 있어요. 하지만 그건 평범한 인간들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인간으로 길러졌다고 모두가 제대로 된 인간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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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이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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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에 있었던 일인데'라는 말을 들으면 저는 일단 무섭기부터 합니다. 옛날에, 그것도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데, 이제와서 이야기의 진위를 증명할 길이 없으니, 이거 참, 이 이야기를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습니다. 이렇게 믿거나말거나 식의 괴담들은 무섭기도 하고, 때론 사람을 난감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특히 자다가 가위 눌렸던 경험담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등줄기가 오싹해지고 식은 땀이 흐를 것 같습니다. 이야기로 그냥 흘겨듣지 않고, 이야기 속의 장면을 생생하게 상상해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손 끝에서 느껴지는 감촉, 짓누르고 있는 공기의 냄새, 차라리 보고 싶지 않다고 두눈을 질근 감아보지만 눈이 감기지 않고 오히려 누군가가 눈꺼풀을 더 커지게 열어젖히고 있는 듯한 느낌, 그리고 공포에 질려 못 볼 것을 보고야 만 듯한 표정의 흔들리는 눈동자까지. 



 


 


    물론 소설 <괴이>가 그런 식의 공포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소설 속의 이야기들을 그냥 그렇다더라 하는 마음으로 놓아버려야 하니 괜히 불편해지고 괴이한 기분에 빠져듭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 시리즈 중의 하나, <괴이>는 괴이한 이야기들을 모아둔 단편집입니다. 저는 단편 모음집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가볍게 읽기에는 나쁘지 않다만 '집集', 그러니까 단지 모아놓고 그칠 것이 아니라, 모아놓은 이유가 분명하게 보여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은 단편집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작가가 단편집을 쓸 생각을 갖고 써내려갔던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출판사와 편집자가 어쩔 수 없이 모아 묶어 둔 단편집들은, 짧은 글들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찾아내기가 힘들었고, 오히려 따로 보면 좋았을 글들이 서로를 방해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서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물 단편집 <괴이>는 다릅니다. 짧은 이야기들을 묶어서 하나의 책으로 만들려 했던 분명한 의도가 보이는 글입니다. 처음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작가가 단편의 이야기들을 묶어 놓을 생각을 하며 썼던 글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묶여 있는 짧은 글들이 공통적으로 일본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라는 점은 당연한 것이고, 그외에 이 시대 소시민에 대한 작은 이야기를 해보고자 했던 뚜렷한 목적 의식까지 보입니다. 또 매번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고용살이꾼'이라는 공통된 소재로 비슷한 직업을 가진 계층의 이야기를 하는 일관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각 단편에 나오는 인물들이 조금씩 겹치는 모양새를 하고 있어서 저는 매우 놀랬습니다. 이 이야기들이 구전되어 왔을 법한 옛날 이야기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래되는 과정에서 각 지명과 이름들이 조금씩 바뀌며 전해질 수도 있는데, 이렇게 이야기가 낡고 닳아가는 과정까지도 귀신에 홀린듯 묘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건 어쩌면 혼자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일본어 원문으로 봤으면 또 그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무척 궁금합니다. 분명히 단편들마다 등장했던 인물들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습을 하고 재등장 하고 있는데, 이게 참 말로 정확하게 어떻다라고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단편<바지락 무덤>에서 바로 그런 묘한 느낌이 드는 이유를 살짝 알려주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이거 참 정말 내가 생각했던 그것이 맞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미야베 미유키가 의도했던 것인지가 굉장히 궁금해졌습니다. 참으로 희괴한 일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괴이>는 절대로 무섭거나 징그러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담담하게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조곤조곤 말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유명한 범죄소설들에서 볼 수 있었던 흔히 알려진 글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깔끔하기도 하고 담백하기도 합니다. 따뜻한 화로 옆에 앉아 탁탁 튀겨가는 숯을 바라보며 붉게 상기된 얼굴로 소곤거리며 조심스레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같은 느낌입니다. 대단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이것은 또 이것대로의 매력이 있습니다. 일본 대표 여류작가인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와는 또 다른 느낌과 형태의 감성이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멋진 문장, 가슴에 와닿는 문장, 밑줄을 그어야 할 것만 같고 가슴에 새겨 들어야 할 것만 같은 문장은 아니지만, 소박하게 담아놓은 예쁜 그릇 위의 밑반찬 같은 이야기들이란 생각이 듭니다. 또 그런 느낌이 꽤나 좋았습니다.



    한편 이 이야기들의 출처가 무척 궁금합니다. 단지 그녀 머리 속의 상상력을 동원한 것이라면 미야베 월드는 무진장 넓은 곳이구나를 느낍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고 큰 위기나 갈등의 구조도 없는 단순한 형태의 글이지만,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역시 대단합니다. 특히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들이 나올 때 마다 자연히 귀를 쫑긋 세우고 귀기울이게 만드는 흡인력은, 독자가 느낄 수 없을 만큼 교묘하게 웅크리고 숨어있는 모습을 하고 있으니 그점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어느 비오는 날 밤, 초상집을 찾았다가 그 집 귀신이 내 어깨 위로 폴짝 뛰어올라 들러붙어 있는 줄도 모르고, 추적추적 내리는 빗 속의 길을 비틀비틀 걸어서 집으로 돌아와서 결국 집 안으로 귀신을 달고온 꼴이 되어버린 모양처럼 말입니다. 묘하게 사람을 홀리는 맛이 있습니다. 가랑비에 옷이 흠뻑 젖어 버린 줄도 모를 정도로 빠져들게 만드는, 괴상하고 이상한 힘이 느껴지는 소설입니다.








    아주머니네 고향의 산신님을 모신 신사에는 특이한 전설이 있었대. 그건 말이지, 신점 제비에서 흉을 뽑게 되면 신사 뒤에 있는 매화나무로 가서 신점 제비를 가지에 매달면서 이렇게 비는 거야―이 흉운을 저 대신 누구누구에게 붙여 주세요, 하고. (122쪽)



    그 '도깨비'는 당신들이 토해 낸 더러움을 전부 빨아들이고 짊어져 주고 있는데, 그것을 고맙게 생각하지도 않고 멀리 하려고만 해요. 당신들은 그렇게 깨끗한가요? 당신들은 그렇게 옳은가요? (170쪽)



    네가 쓸쓸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건 아마 내가 쓸쓸하기 때문일 거야. 하지만 나는 네 얼굴에 내 마음이 비칠 때까지 내가 쓸쓸하다는 것조차 전혀 깨닫지 못했어. (171쪽)



    당연하다. 하지만 안 되었다. 무언가―다로의 마음 깊은 곳에 가만히 숨어 있던 무언가가, 목소리르 내서는 안된다, 그것은 나쁜 일, 위험한 일이라고 알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충고를 따르지 않으면 엄청난 일이 벌어질 거라는 막연한 느낌이 몸 안족에서 치밀어올라, 양팔에 소름이 돋기도 했다. 그래서 다로는 입을 다물고 다시 침묵 속으로 되돌아갔던 것이다. (188쪽)



    많은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라면 친절하고 다정한 얼굴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죽일 수 있는 놈들이 있어요. 그런 놈들은 어느 모로 보나 인간 같은 멀쩡한 얼굴 밑에 귀신의 본성을 숨기고 있지요. (235쪽)



    으스스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끝이 흐지부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도깨비가 쫓아와서 소동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도깨비의 정체를 나중에 알게 된 것도 아니다. 맥락이 없다. (2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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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번호 113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0
류성희 지음 / 황금가지 / 2012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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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법원에서 재판 과정을 본 적이 있습니다. 민사 재판에서는 변호사가 미리 준비해온 변호의 내용을 읽고 판사는 그것을 듣고 언제까지 판결을 내겠다고 하는 일련의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단조로운 모습의 반복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형사 재판의 경우에는 간혹 굉장한 구경거리가 있기도 합니다. 세상에 이런 일들도 있구나 싶고, 이런 일로도 재판을 받으려 하는구나 싶은, 갖가지 형태의 다툼에 대해 법이 사람들을 중재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피고가 직접 변호하는 이야기들은 무척 흥미진진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울고불고 어린 아이처럼 떼를 쓰기도 하고, 선처를 부탁한다며 재판과 전혀 상관없는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사를 한참동안 연설하기도 합니다.



 



 


    남의 집 불구경하듯 재판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다가 문득, 만약에 저 울타리 안에 내가 있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생각만해도 끔찍했습니다. 탕, 탕, 탕. 10년, 20년. 이런 결정을 내리는 법이라는 것이 갑자기 무서워 보였습니다. 또한 단상 위를 한참동안 올려다 봐야 겨우 보일듯말듯한 재판관의 모습이 한없이 거대해 보였고, 무형의 무거운 무엇인가로 나를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다 보니 가능하다면 법없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될 수 있으면 경찰서와 법원은 피해야 할 곳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법도 사람이 만든 것이다 보니 때에 따라 해석하기 나름인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분쟁을 미리 알고 예상해서 정해놓는 일이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경우에 가장 가까워 보이는 항목이나 판례를 참고하여 저울질을 해가고, 법이 인정하는 보편타당한 답을 구하려고 노력하나 봅니다. 하찮은 교통사고도 상당수가 쌍방과실로 결론지어집니다. 아무리 안전운전을 해도 일단 사고가 났다면 사고가 났을 당시 거기에 그렇게 있었던 것이 죄가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서로의 과실을 계산해서 적절한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 것이 법입니다. 피고인지 원고인지, 법은 입장에 따라서도 달라지고 해석도 달리해야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나의 사건에서 명쾌하게 정해져 있는 답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법입니다. 단지 '진실에 조금 더 가까워 지기위한' 노력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경우 말입니다. 그래서 법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류성희 님의 <사건번호 113>은 한 살인사건을 두고 검사와 변호사, 용의자와 피고인, 참고인, 형사와 증인 등이 등장하는 범죄소설이며, 법정 스릴러 소설입니다. 한국판 사회파 추리소설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패기 넘치는 신입 검사 승주와 조폭의 아들인 형사 준석은, 피해자를 보호해야할 법이 가해자를 위한 법이 되어있다며 현대사회의 법에 대해 삐딱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충분한 증거가 없으면 무죄로 간주한다는 법의 내용을 못마땅해 하며, 오히려 재판을 거치는 동안에는 모든 용의자를 유죄로 간주하고 조사해야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들은 사건번호 113인 한 사건을 통해서 아주 서서히 법을 받아들이는 관점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과거에 묻어두었던 기억의 껍질들이 벗겨지면서 상대를 차가운 이성으로 대하려 하기보다는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변화가 생깁니다. 이 변화가 무척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전개되어 뚜렷한 경계없이 스며드는 형태가 좋았습니다. 뜬금없이 커다란 충격을 받고 그것을 계기로 스스로 그렇게 되었다, 라는 억지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자의반타의반으로 입장의 변화에 내몰리게 되면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것이라 은은하게 수긍할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추리소설 중에서 본격 미스터리는 범죄의 동기가 약한 반면 트릭이 정교하고, 사회파 미스터리는 트릭이 정교하지 못한 반면 강력한 범죄의 동기를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사건번호 113>는 한국형 사회파 미스터리답게 범죄의 동기와 법에 대한 해박한 지식 등은 굉장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범죄와 관련된 인물들의 치밀한 심리묘사와 그런 행동을 보일 수 밖에 없는 개연성까지 말이지요. 하지만 트릭에서는 조금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독자들을 끝까지 책을 쥐고있게 만들 장치가 '어떻게'라는 질문을 통해 최후의 보루처럼 독자의 궁금증을 계속해서 유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마지막에 밝혀진 트릭의 해법이 조금 싱거운 모습을 하고 있어서 허무함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시시하다는 정도는 아니고, 조금 더 화려하고 기발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랄까요. 그런 아쉬움은 아마도 사건의 대부분의 모습을 독자에게 미리 보여주는 형태를 하고 있고, 관련된 인물들 모두의 행동과 생각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숨겨도 될 내용은 마지막까지 숨기고 독자들이 끝까지 궁금하게 하도록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최근에 국내 추리소설과 범죄소설을 읽고 굉장히 큰 실망을 했습니다. 감상문을 남긴다는 생각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이것은 소설입니까' 라고 묻고 싶은 책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류성희 님의 소설은 그 소설들과 달라도 많이 다른 모습입니다. 사건과 관련되어 설정해둔 인물들의 모습, 그리고 인물들의 과거 기억들이 사건에 간접적으로 미치는 영향과 그들의 기억들로 인해 입장이 변화하는 모습, 그리고 그런 것들이 사건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사건 전반적인 틀을 변화시키려 했던 작가의 노력이 느껴졌습니다. 또 법의 다양한 모습 보이기, 혹은 법의 특정 모습에 대한 꼬아보기 등등 법에 대한 깊이있는 탐구가 좋았습니다. 건조하고 딱딱한 문체로 일관된 모습, 그리고 강우성 감독의 영화에서 나올 법한 인물들의 전형적이고 틀에 박힌 모습들까지. 법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라 오히려 이 모든 것들이 괜찮게 느껴졌습니다. 오랜만에 법과 관련된 괜찮은 추리소설을 읽었습니다. 마치 야쿠마루 가쿠의 <천사의 나이프>, 다카노 가즈야키의 <13계단>, 조금 더 과장해서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을 보는 듯 했습니다. 







 

    살아 있는 인간이 만든 인간의 법이 산 자에게 좀 더 기울어져 있다면, 그것은 법이 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죽은 자에게도 산 자에게도 똑같이 평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래야 법이다. (9쪽)



    지금 네 감정은 중요하지 않아. 아니, 네 감정 따윈 없어. 딸이 지금까지 널 어떻게 여겼던,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여기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아. 넌 그저 저 아이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해야 하는 거야. 단지 그것만을 생각해야해. (114쪽)



    어쩌면 누군가의 엄마인 그녀와 누군가의 딸인 자신은 처음부터 게임이 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무조건적인, 맹목적인 사랑의 힘은 그 어느 것보다 더 강하고 독하고, 잔인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엄마란 이름으로 그 사랑을 가졌을 때는 더욱 더 강력한. (208쪽)



    잘못은 인정 하겠는데 그것을 만천하에 드러낼 용기는 나지 않았다. (287쪽)



    그런데 검사의 신분이면 기소하지 않으면 직무 위반이 되고, 변호사의 신분이면 함구해도 법적인 하자가 없다. 이게 얼마나 우스운 법이란 말인가? 죄는 어디로 가고 입장만 남는다. (3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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