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번호 113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0
류성희 지음 / 황금가지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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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법원에서 재판 과정을 본 적이 있습니다. 민사 재판에서는 변호사가 미리 준비해온 변호의 내용을 읽고 판사는 그것을 듣고 언제까지 판결을 내겠다고 하는 일련의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단조로운 모습의 반복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형사 재판의 경우에는 간혹 굉장한 구경거리가 있기도 합니다. 세상에 이런 일들도 있구나 싶고, 이런 일로도 재판을 받으려 하는구나 싶은, 갖가지 형태의 다툼에 대해 법이 사람들을 중재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피고가 직접 변호하는 이야기들은 무척 흥미진진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울고불고 어린 아이처럼 떼를 쓰기도 하고, 선처를 부탁한다며 재판과 전혀 상관없는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사를 한참동안 연설하기도 합니다.



 



 


    남의 집 불구경하듯 재판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다가 문득, 만약에 저 울타리 안에 내가 있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생각만해도 끔찍했습니다. 탕, 탕, 탕. 10년, 20년. 이런 결정을 내리는 법이라는 것이 갑자기 무서워 보였습니다. 또한 단상 위를 한참동안 올려다 봐야 겨우 보일듯말듯한 재판관의 모습이 한없이 거대해 보였고, 무형의 무거운 무엇인가로 나를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다 보니 가능하다면 법없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될 수 있으면 경찰서와 법원은 피해야 할 곳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법도 사람이 만든 것이다 보니 때에 따라 해석하기 나름인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분쟁을 미리 알고 예상해서 정해놓는 일이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경우에 가장 가까워 보이는 항목이나 판례를 참고하여 저울질을 해가고, 법이 인정하는 보편타당한 답을 구하려고 노력하나 봅니다. 하찮은 교통사고도 상당수가 쌍방과실로 결론지어집니다. 아무리 안전운전을 해도 일단 사고가 났다면 사고가 났을 당시 거기에 그렇게 있었던 것이 죄가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서로의 과실을 계산해서 적절한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 것이 법입니다. 피고인지 원고인지, 법은 입장에 따라서도 달라지고 해석도 달리해야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나의 사건에서 명쾌하게 정해져 있는 답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법입니다. 단지 '진실에 조금 더 가까워 지기위한' 노력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경우 말입니다. 그래서 법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류성희 님의 <사건번호 113>은 한 살인사건을 두고 검사와 변호사, 용의자와 피고인, 참고인, 형사와 증인 등이 등장하는 범죄소설이며, 법정 스릴러 소설입니다. 한국판 사회파 추리소설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패기 넘치는 신입 검사 승주와 조폭의 아들인 형사 준석은, 피해자를 보호해야할 법이 가해자를 위한 법이 되어있다며 현대사회의 법에 대해 삐딱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충분한 증거가 없으면 무죄로 간주한다는 법의 내용을 못마땅해 하며, 오히려 재판을 거치는 동안에는 모든 용의자를 유죄로 간주하고 조사해야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들은 사건번호 113인 한 사건을 통해서 아주 서서히 법을 받아들이는 관점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과거에 묻어두었던 기억의 껍질들이 벗겨지면서 상대를 차가운 이성으로 대하려 하기보다는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변화가 생깁니다. 이 변화가 무척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전개되어 뚜렷한 경계없이 스며드는 형태가 좋았습니다. 뜬금없이 커다란 충격을 받고 그것을 계기로 스스로 그렇게 되었다, 라는 억지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자의반타의반으로 입장의 변화에 내몰리게 되면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것이라 은은하게 수긍할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추리소설 중에서 본격 미스터리는 범죄의 동기가 약한 반면 트릭이 정교하고, 사회파 미스터리는 트릭이 정교하지 못한 반면 강력한 범죄의 동기를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사건번호 113>는 한국형 사회파 미스터리답게 범죄의 동기와 법에 대한 해박한 지식 등은 굉장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범죄와 관련된 인물들의 치밀한 심리묘사와 그런 행동을 보일 수 밖에 없는 개연성까지 말이지요. 하지만 트릭에서는 조금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독자들을 끝까지 책을 쥐고있게 만들 장치가 '어떻게'라는 질문을 통해 최후의 보루처럼 독자의 궁금증을 계속해서 유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마지막에 밝혀진 트릭의 해법이 조금 싱거운 모습을 하고 있어서 허무함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시시하다는 정도는 아니고, 조금 더 화려하고 기발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랄까요. 그런 아쉬움은 아마도 사건의 대부분의 모습을 독자에게 미리 보여주는 형태를 하고 있고, 관련된 인물들 모두의 행동과 생각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숨겨도 될 내용은 마지막까지 숨기고 독자들이 끝까지 궁금하게 하도록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최근에 국내 추리소설과 범죄소설을 읽고 굉장히 큰 실망을 했습니다. 감상문을 남긴다는 생각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이것은 소설입니까' 라고 묻고 싶은 책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류성희 님의 소설은 그 소설들과 달라도 많이 다른 모습입니다. 사건과 관련되어 설정해둔 인물들의 모습, 그리고 인물들의 과거 기억들이 사건에 간접적으로 미치는 영향과 그들의 기억들로 인해 입장이 변화하는 모습, 그리고 그런 것들이 사건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사건 전반적인 틀을 변화시키려 했던 작가의 노력이 느껴졌습니다. 또 법의 다양한 모습 보이기, 혹은 법의 특정 모습에 대한 꼬아보기 등등 법에 대한 깊이있는 탐구가 좋았습니다. 건조하고 딱딱한 문체로 일관된 모습, 그리고 강우성 감독의 영화에서 나올 법한 인물들의 전형적이고 틀에 박힌 모습들까지. 법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라 오히려 이 모든 것들이 괜찮게 느껴졌습니다. 오랜만에 법과 관련된 괜찮은 추리소설을 읽었습니다. 마치 야쿠마루 가쿠의 <천사의 나이프>, 다카노 가즈야키의 <13계단>, 조금 더 과장해서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을 보는 듯 했습니다. 







 

    살아 있는 인간이 만든 인간의 법이 산 자에게 좀 더 기울어져 있다면, 그것은 법이 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죽은 자에게도 산 자에게도 똑같이 평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래야 법이다. (9쪽)



    지금 네 감정은 중요하지 않아. 아니, 네 감정 따윈 없어. 딸이 지금까지 널 어떻게 여겼던,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여기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아. 넌 그저 저 아이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해야 하는 거야. 단지 그것만을 생각해야해. (114쪽)



    어쩌면 누군가의 엄마인 그녀와 누군가의 딸인 자신은 처음부터 게임이 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무조건적인, 맹목적인 사랑의 힘은 그 어느 것보다 더 강하고 독하고, 잔인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엄마란 이름으로 그 사랑을 가졌을 때는 더욱 더 강력한. (208쪽)



    잘못은 인정 하겠는데 그것을 만천하에 드러낼 용기는 나지 않았다. (287쪽)



    그런데 검사의 신분이면 기소하지 않으면 직무 위반이 되고, 변호사의 신분이면 함구해도 법적인 하자가 없다. 이게 얼마나 우스운 법이란 말인가? 죄는 어디로 가고 입장만 남는다. (313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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