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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가미 일족 ㅣ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8년 8월
평점 :
요코미조 세이시의 소설에 대한 소개글을 보면 '역대, 최고의, 1위'와 같은 수식어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본 그의 작품들 모두가 그런 타이틀 하나씩을 가지고 있는 모양새였는데요, <이누가미 일족>은 세 번의 영화 제작과 다섯 번의 드라마 제작이라는 대단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아마도 독특한 배경의 장소에서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복잡한 구성의 영상물이 되었을 겁니다. 또 영화 한편에서 20분 간격으로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테니 시기적절한 타이밍에 살인사건이 발생해서 관객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모양을 한 괜찮은 시나리오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직 영화나 드라마를 보지 못했지만, 소설 <이누가미 일족>을 토대로 만들었다면 제법 괜찮은 모양을 한 기묘한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무슨 기묘한 이야기란 말인가. 전부가 우연이었다. 전부가 우연이 겹쳤던 것이다. 하지만 그 우연을 솜씨있게 틀에 넣어 하나의 베를 짜내기 위해서는 보통 아닌 지혜가 필요하다. (407쪽)
요코미조 세이시는 <이누가미 일족>을 1950년 <팔묘촌>과 함께 집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두 소설이 묘하게 닮았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패전 이후의 일본 사회의 봉건적인 모습과 음울한 분위기, 한 거대 가문의 일그러진 가족상까지 공통점을 제법 많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건 이 당시 발표했던 요코미조 세이시 소설의 공통된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공포스럽고 기괴한 분위기의 배경에 반대되는 유쾌한 모습을 한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를 앞세워서 그가 먹구름처럼 몰고다닌 살인사건을 다루는 본격 추리소설의 한결같은 모습. 이 모습이 <이누가미 일족>에도 그대로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한결같음이 이제는 은근히 좋아졌습니다. 요즘 나오는 본격 추리소설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살인동기가 요코미조 세이시의 소설에서는 시대의 분위기를 타고 꽤 그럴싸한 모습으로 비춰지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때의 일본사회라면 충분히 그럴지도'라며 비약적인 살인동기마저 인정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누가미 일족>은 1955년에 발표한 중편 <도르래 우물은 왜 삐걱거리나>와도 매우 닮은 모습입니다. 처음 이 소설을 봤을 때 <도르래 우물은 왜 삐걱거리나>의 확장판 장편소설인줄 알았을 정도로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혀 다른 내용으로 이어지고 결말도 다르며 구성도 다르지만, 굉장히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패전 이후의 일본사회에서 거대 가문의 자제들이 귀환하는 모습은 거의 대부분이 이런 모양을 한 비슷한 형태였나 봅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빗어진 갈등의 양상도 비슷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트릭이나 독자를 유인하는 함정까지 결국엔 닮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산 지방의 폭풍우에는 기분 나쁜 데가 있다.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고, 그것만으로도 사람을 위압하는 느낌인데 호수에서 나는 소리 또한 심상치 않았다. 거무죽죽하게 흐려진 물이 파도를 일으키고 물거품을 일으켜 요동치는 모습은 바다와는 또 다른 무서움이 있다. 만약 누군가 폭풍우가 치는 호수를 들여다본다면 여자의 검은 머리처럼 서로 뒤얽히고 휘감기며 북적거리는 수초의 그대한 군락을 발견하고 기묘한 불쾌감에 소름이 돋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무슨 새인지 한 마리, 폭풍우를 맞으며 어두운 호수 위를 화살처럼 비스듬히 가로질러 간다. 마치 무언가의 영혼처럼. (165쪽)
시기적절하게 죽어나가는 사람들 틈에서 추리소설에서 말하는 속도감을 경쾌하게 느낄 수 있다.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중에서 걸작이라고 하기엔 무언가 0.2g 아쉽지만 대단한 소설임은 분명.
이 소설은 음울한 분위기의 호숫가 대저택을 배경으로 이누가미 사헤라는 인물의 죽음 이후에 남겨진 유언장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남겨진 유언장에 매우 잔인한 내용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가뜩이나 복잡한 관계로 얽혀있어 편치않았던 가족관계를 유산상속과 관련해서 더욱 싸움을 부추기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마침 살인을 몰고 다니는 긴다이치 코스케가 이곳을 지나고 있었으니, 살인사건이 발생하지 않고는 못 배길 본격 추리소설의 적절한 무대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긴다이치 코스케는 굉장히 겸연쩍어 하며,
"아니, 그, 그, 그렇게 말씀하시면, 가, 가, 감사." (338쪽)
그래서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적절한 시간 간격을 두고 이 집안에서는 연속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들이 무엇인가를 상징하는 수고스러운 형태를 보이고 있어서 앞으로 일어날 살인사건까지 독자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래서 수많은 인물들 중에서 앞으로 죽을 사람들을 제외시키고 범인을 맞춰나가기 위한 추리를 해나가며 인물들의 과거를 추적해나가는 재미가 꽤 있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봤을 때 난이도가 제법 높은 트릭, 혹은 추리내용이라 아마 독자가 모든 퍼즐을 정확하게 완성시키기는 어려울 것 같아 보입니다. 그래도 정정당당한 승부를 펼치는 추리소설임에는 틀림없고 그 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하, 하지만…… 범인은 어, 어째서 그, 그렇게 수고로운 짓을 한 겁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135쪽)
요코미조 세이시의 소설에서는 책을 한번 손에 쥐면 그자리에서 끝을 보게 만드는 대단한 힘이 있습니다. 끊임없이 '뭐지? 그렇군, 뭐지? 그렇군'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묘하게 흥분하게 하는 재미있는 형태를 한 소설들이 많습니다. 작가가 직접 분위기를 몰아간다고 해야하나, 앞으로 나올 이야기의 모습을 넌지시 찔러주는 추임새마저도 재미있습니다. 또 이야기의 흐름이 매우 매끄럽게 진행되어 사건과 관련이 없는 곁가지같은 내용은 일절 담고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군더더기없는 깔끔한 구성을 보이며 독자는 빠른 속도감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긴다이치 코스케라는 캐릭터도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재미있는 인물이라 살인사건이 누구의 승도 아닌 미지근한 승부로 끝나더라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게 합니다. 이런 점들 때문에 이 소설의 시리즈가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확고한 매니아층을 만들며 오랜 시간동안 사랑을 받아왔던 것 같습니다. 요코미조 세이시, 혹은 긴다이치 코스케 라는 이름만으로도 꽤 괜찮은 수준의 소설이 나온다라는 기대감이 생겨나니, 이제는 저에게 이들의 이름이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긴다이치 코스케는 매우 유유자적한 풍모를 지닌 탐정이다. 언뜻 보면 어디에도 이렇다 할 장점이 없는 매우 풍채가 좋지 않은 말더듬이 남자지만, 그 멋들어진 추리력은 <혼진 살인사건>, <옥문도> 그리고 <팔묘촌>등의 사건에서 증명된 바 있다. 이 남자는 흥분하면 말더듬이 점점 심해지는데다 무턱대고 더벅머리를 긁어대는 버릇이 있다. 그다지 품위 있는 버릇은 아니다. (22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