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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보지 않은 길 - 한국의 성장동력과 현대차 스토리 ㅣ 나남신서 1905
송호근 지음 / 나남출판 / 2017년 2월
평점 :
소규모 개방경제로 대외요인에 크게 영향받는 한국 경제는 매년 위기다. 새로운 경쟁자의 부상, 유가 상승, 금리인상, 신 기술의 등장 등 수많은 변수들이 한국 기업들로 하여금 맘편하게 있을 수 없게 만든다. 최근 몇 년간은 화장품이나 게임, 엔터테인먼트 같은 소프트한 기업이 인기다. 자동차나 중공업, 철강 같은 무거운 산업은 부진하다. 중국 기업들의 부상으로 차별화도 예전에 비해 줄어들었다.
현대차도 한국 제조업 위기론의 중심에 있는 기업이다. 현대차의 영욕은 주가차트만 봐도 알 수 있다. 2009년에 5만원 언저리에서 불과 2년 남짓한 기간동안 5배인 25만원까지 가볍게 날아올랐다. 엔고와 지진으로 일본 자동차가 주춤거리면서 반사이익도 봤다. 기술을 중시하고 꾸준히 품질을 높혀왔으며 해외공장에 공을 들이며 내공을 쌓은 현대차가 기회를 잡았다. 현대차는 글로벌 시장에서 치고 나갔다. 더 높은 곳을 향해 숨을 고르는가 싶더니 안타깝게도 15만원까지 급락했다. 그리고는 쉬이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테슬라 같은 전기차 기업들이 부상하기 시작했고, 구글이 자율주행차를 시험하고, 애플도 자동차 산업에 뛰어든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국을 대표하는 제조기업이고, 전후방 막강한 산업연관효과를 지니고 있는 현대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알파고와 테슬라가 기세 등등해지는 미래에 현대차는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할까. 이런 의문이 자연스럽게 시장에 반영되어 주가로 나타난다. 펀드매니저들을 만나보면 대체적으로 현대차의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경우가 많았다. 조심스럽게 저가 매수 관점에서 나서는 경우는 있어도 현대차의 성장성과 경쟁력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 책은 송호근이라는 사회학자의 현대차 탐사르포다. 서점에 가보면 애플, 구글에 대한 책을 많아도 상대적으로 삼성, 현대 같은 우리나라 기업들에 대한 책이 많지 않다. 그리고 외국 기업을 분석한 책보다 영 볼게 없다. 아마 기업에서도 적극적으로 취재에 응한다거나,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하지 않는 탓도 있어보인다. 대체로 교수님이 쓰신 글은 어려운 말이나 이론을 붙이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는 저널리스트 글처럼 딱딱하지 않고 직접 취재를 통한 생동감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비교적 기업의 치부와 속사정도 전달하고자 하는 모습이 보인다.
아무래도 사회학자이고 '사람'에 촛점을 맞추다보니 노조 얘기가 많이 나온다. 신문에 의해 '귀족'노조로 불린다. 잔업을 많이 해서 1억에 가까운 연봉까지 올려놨고, 공장의 인사나 공정속도 등은 노조가 거의 컨트롤 하고 있다. IMF때 짤렸거나 짤린 동료를 본 노동자는 고용안정성과 복지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비정규직으로 방어막을 친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경영진은 공정 자동화에 집중했고, 엔지니어의 비중을 높혔다. 비용이 높고 경직적인 한국 공장보다는 해외공장 설립에 대한 동기부여가 될 수 밖에 없다. 공정에 자동화를 도입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쉽다. 토요타와 비교해서도 숙련 노동자는 없고 경쟁력이나 노하우가 쌓이지 않으므로 대체 가능한 단순 조립공들만 있다. 장인보다 부품에 가까워진 노동자는 또 포퓰리즘적인 노조에 집착하게 된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고, 시장은 전기차나 자율주행차로 나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고성장 시점에서는 노동자들의 헌신이 현대차 발전에 큰 공헌을 했지만, 이제는 너무 경직되고 기득권화된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도 나름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도 뭐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서 현대차 자체의 발전에 장애가 올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해지고 있다는데 있다. 현대차의 위기는 한국 제조업과 경제 위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변화의 계기는 정말 심각한 상황에 다다르지 않는 한 발생하지 않는다. 심각한 것도 정도가 있다.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미리 리더십을 발휘해서 방법을 궁리하고 대화하고, 진솔하게 다가가는 게 경영진이 아닐까 싶다. 현대차가 이런 문제를 잘 풀어나가서 다시 발전 모델을 세우고 세계를 선도하는 '가 보지 않은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