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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과거 앞에 서성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 강태공으로 알아보는 천하를 낚는 삶의 태도 ㅣ 동양철학전집 고전보감 시리즈 2
강태공 지음 / PHILO / 2026년 8월
평점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서 읽고 제 의견을 담아서 작성하였습니다.>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 한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 차가운 성어(成語)속에는 과거의 실패나 떠나간 인연에 헛된 미련을 두지 않겠다는 강태공의 서슬 푸른 철학이 담겨 있다. 지나간 어제에 매달리느라 오늘 새로 길어 올려야 할 우물의 시간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준엄한 경고인 셈이다. 한 번 엎질러진 것은 엎질러진 것이다. 그것을 다시 담으려 애쓰는 동안 새로 길어 올 물의 시간을 잃는다.
인생을 살다 보면 지난 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는 것 같다. 이럴 때는 강태공과 같이 과거의 실패에 헛된 미련을 두지 않아야 하는데 일반인에게는 그게 결코 쉽지 않다. 강태공이 그 자리에서 우리에게 건네는 말은 단 한 줄이다. 엎질러진 물을 닦아낸 자리에, 비로소 내일이 놓일 자리가 생긴다는 것. 그 자리는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다. 다만 우리가 엎질러진 물을 핥느라 그 자리를 보지 못했을 뿐이다.
강태공의 단호함은 여기에 있다. 그는 비워 둘 줄 알았다. 비워 두는 것이 채우는 것보다 어려운 일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채우는 데에는 욕망 한 줌이면 되지만, 비워 두는 데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정직함이 필요하다. 내가 외롭다는 사실, 내가 인정받고 싶다는 사실, 내가 누군가의 곁에 있고 싶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마음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함이 필요하다. 가려지지 않은 결핍을 마주하는 일은 처음에는 아프다. 그러나 그 아픔 끝에서야 비로소, 당신은 자신의 빈자리의 정확한 모양을 알게 된다. 3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강태공처럼 비워둘 줄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힘겨운 삶을 살아왔던 것 같다. 남은 삶 만큼은 비워둘 줄 아는 삶을 살아가야겠다.
빈 그릇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다음 계절을 기다리는 밭과 같다. 무엇을 심을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을 뿐, 그 땅은 어느 때보다 너그럽고, 어느 때보다 깨끗하다. 그 위에 무엇을 심을지를 천천히 골라 보아라. 급하게 아무 씨앗이나 뿌리지 말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결이 무엇인지를 먼저 들여다보아라. 그릇의 크기를 늘리는 일보다, 그릇 안을 한번 정직하게 비우는 일이 우선이다. 조만간 명예퇴직을 하게 되는 나로서는 퇴직 후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아직 구체화된 바가 없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서 자신감이 생겼다. '빈 그릇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라는 저자의 글이 앞으로 천천히 무엇을 심을 것인지 골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당신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자리에서, 알아 달라고 애쓰지 마라. 당신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해해 달라고 매달리지 마라. 그것은 잔물결을 향해 해일을 설명하는 일과 같다. 보지 못하는 자에게 보이게 만들 수는 없다. 다만 보는 자가 올 때까지, 당신의 깊이를 잃지 않으면 된다. 오늘 하루, 잠시만 멈춰 서서 강 너머를 바라보기를 바란다. 매일의 알림과 비교와 자극에서 한 발짝 물러나, 당신의 인생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가만히 들여다보기를 바란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을 찬찬히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졌다. 앞만 보고 너무 조급하게 달려왔던 과거를 돌아보며 100세 인생의 절반을 넘은 지금 시점에서 남은 삶은 여유를 가지고 내 밭에 무엇을 심을 것인지 천천히 골라봐야 할 것 같다. 강태공처럼 때가 되기를 무던히 기다릴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남은 삶을 알차고 보람있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