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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죽음이라는 환상 - 고통 없이, 내 뜻대로, 존엄하게 죽는 일은 가능한가
박혜윤.신성준.최은경 지음 / 아몬드 / 2026년 5월
평점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서 읽고 제 의견을 담아서 작성하였습니다.>
올해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느닷없이 내게 전해졌다. 올해로 66세인 큰 누나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내겐 너무나도 갑작스런 소식이어서 한없이 눈물만 흘렸다. 어렸을 때 내게 큰 누나는 영어선생님이었고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로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말기 암 판정을 받고 1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게 된 누나를 보면서 나는 이 책<깨끗한 죽음이라는 환상>의 내용이 남 일 같지만은 않았다.
나는 10여년 전 단순포진 발병으로 1주일 간 병원에 입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아내와 함께 장기 기증 서약을 했다. 그리고 부모님께서 병원에서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 <깨끗한 죽음이라는 환상>을 읽으면서 존엄사에 대해 깊이 고민을 하게 되었다. 연명치료는 받고 싶지 않고, 건강하게 잘 지내다가 깨끗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게 나의 소망이다.
'깨끗하게 사라지는 죽음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비추며 연결된 죽음을 생각하는 일. 우리의 논의는 바로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깊이 연결된 세계 속에서 한 사람의 임종이라는 고귀한 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덜 고통스럽게 맞이하고, 마지막까지 존재 자체가 환대받는 말기의 모습을 함께 상상하고 싶다.' 서문에서 저자가 쓴 글을 읽으면서 나 또한 저자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의사조력임종'은 아직 많은 이에게 낯선 표현이다. 국내에서 '안락사'가 제목에 포함된 책은 적지 않은 반면, '존엄사'를 사용한 경우는 드물게 보일 뿐이다. '의사조력임종'이나 '의사조력자살'로 검색하면 관련 도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연명의료 중단과 안락사는 어떻게 다를까? 핵심은 '죽음의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다. 연명의료 중단은 넓은 의미에서는 안락사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으나, 고통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와는 구별된다.
적극적 안락사는 죽음을 '만드는' 행위이고, 소극적 안락사는 죽음을 '막지 않는' 행위다. 책임의 귀속 방식이 다른만큼 윤리적 평가의 무게도 달라진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적극적 안락사는 금지하는 반면, 소극적 안락사에 해당하는 연명의료 중단은 허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캐런 퀸런 판결'은 미국에서 연명의료 중단의 정당성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이정표가 된 판결이며, '낸시 크루잔 판결'은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죽을 권리를 다룬 최초의 판결이다.
한국 사회가 조력임종을 긍정하려 한다면, 지금 던져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누가, 어떤 이유로 이 선택을 원하는가? 그리고 누가, 어떤 동기로 그 선택을 돕고자 하는가? 이 두 질문은 결국 하나의 더 근본적인 물음으로 향한다.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고자 하는가? 조력임종은 단지 허용 여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고통 앞에서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되려 하는지,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 곁에 어떻게 머물 것인지를 묻는 질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깨끗한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나의 부모님 두 분이 모두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셨기 때문에 나는 병원에서 나의 삶을 마감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건강을 잘 유지해서 죽는 날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다가 밤에 잠 들어서 아침에 눈을 뜨지 않고 생을 마감하고 싶은 게 나의 바람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존엄사'에 대한 논의는 아직 우리나라에서 정례화되려면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안락사'에 대한 찬반 여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라도 병원에서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도 '안락사'에 대한 명쾌한 법이 제정되어 소모적인 논쟁의 종지부를 찍었으면 좋겠다. 이 책이 그 길을 열어가는 시발점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