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죽음에 관한 철학
나이토 리에코 지음, 오정화 옮김 / 이사빛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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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서 읽고 제 의견을 담아서 작성하였습니다.>


내가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 본 첫 계기가 된 것은 할머니의 사망 소식이었다. 취업한 지 7년차였던 2002년 한일월드컵이 끝나고 며칠 지나지 않았던 8월 한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불교에서는 윤회설을 이야기하고 있고, 기독교에서도 사후세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특별히 종교를 믿고 있지 않아서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죽음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에 나도 언젠가는 죽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철학자들의 죽음에 관한 철학을 소개하고 있는데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사람은 죽으면 하데스로 가는 자와 '지혜로운 신의 품으로 가는 자'로 나뉘어, '철학하고 있는지, 철학하고 있지 않은지'로 사후의 목적지가 결정된다고 말했습니다. '불멸의 영혼'과 '지혜로운 신'의 세계. 이들을 통합시키면 어렴풋이나마 이데아의 세계가 보입니다.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가 사후에 향했다는 세계를 떠올리며 그곳에서 '이데아계'를 발견했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후설의 현상학을 전제로 하이데거가 수행한 철학적 작업은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뿌리부터 다시 규정하는 것이었습니다. 후설의 현상학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의 '당연함'을 철저하게 폐기해 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하지만 '죽음'에 관해 현상학적인 태도로 임할 때의 문제점은 '일단 죽어보는' 실험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죽음을 '순수경험'을 할 수 없는 것이지요.'


'하이데거의 사생관에서 죽음은 '완성'이며, 부루마블 게임에서의 '진행'입니다. 그러나 죽음의 목표가 '인생 경험 축적'이라는 것은 인간의 간절한 '바람'이지만, 천국 등 후생을 상정하지 않는 이상 탄생 전과 죽음 후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사르트르는 '죽음은 탄생 전과 같다.'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출발점에서 와서 출발점으로 돌아갈 뿐, 거기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죽음이란 '허무'인 것이지요. 니체는 삶을 반복함으로써 삶을 보강하고 죽음의 의미를 지웠지만, 사르트르는 무에서 무로 돌아간다는 것뿐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인간에게 있어 '죽음'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의 내용에서도 이런 말이 있지만 죽음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 '죽음'을 실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이 책에서 다양한 철학자들과 스님들의 죽음에 대한 철학을 소개하고 있지만 내가 얻은 결론은 단 하나다.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다." 살아있는 동안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삶의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아내와 함께 '장기기증' 서약을 했고, 이 약속이 내가 죽은 후에도 꼭 실행이 되기를 바란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시간'과 '죽음'만큼 모든 이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것이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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