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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 - 상 - 고려의 영웅들
길승수 지음 / 들녘 / 2023년 11월
평점 :
나는 고려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이지만 시중에 출판된 책들 중 고려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아서 매우 아쉽다. 고려 개국의 일등공신 중 한 분이 우리 남양홍씨의 중시조이신 홍유(홍은열, 태조왕건이 내려 준 이름이 은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역사책에서 배운 바로는 고려 개국의 일등공신은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등이다. 내가 태어난 대구에 가면 팔공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여기서 당시 왕건과 견훤 간의 전투가 벌어졌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유명한 '공산전투'다. 당시 왕건이 견훤에게 패하여 도주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도주 과정에서 왕건과 연관이 있는 지명이 대구에 많이 남아 있다고 고등학교 시절 국사선생님께 배운 기억이 있다. 신숭겸이 왕건을 살리기 위해 옷을 바꿔 입고 왕건의 모습으로 꾸며 적군의 눈을 속인 틈을 타서 무사히 피신을 해서 화를 면하게 되었다는 왕산(현재 지묘1동 북쪽에 있는 산), 왕건이 도주하다 왕을 잃어버렸다는 시량리, 도주 중 날은 반야이고 중천에 달이 떠 있어 탈출로를 비췄다고 해서 반야월, 이 지역에 도달하여 안심했다는 안심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현재 왕산 앞에는 왕건 대신 죽은 신숭겸 장군의 유적지가 위치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고려거란전쟁을 다루고 있는데, 거란의 소손녕이 서기 993년 고려를 침공했고 서희가 활약했던 거란의 1차침공이 아니라 그로부터 17년 후인 1010년에 있었던 고려와 거란의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것을 보통 거란의 2차 침공이라고 부른다. 거란이 고려를 침공한 이유는 고려에서 강조가 목종을 폐위시키고 현종을 옹립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거란 황제의 친정이었으며 총 40만의 대군을 동원했다고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고려 측 주요인물로는 양규, 김숙흥, 조원, 강민첨, 왕순, 강감찬, 강조 등이며 거란 측 주요인물로는 야율융서, 소배압, 한덕양, 야율분노, 야율세량 등이 있다. 그리고 1010년 당시 고려의 군제도도 상세히 소개하고 있어서 고려의 병력 운용 체계도 살펴볼 수 있다. 당시 고려군은 중앙군 6위(전투부대: 좌우위, 신호위, 흥위위 / 치안유지 부대: 금오위 / 의장대: 천우위 / 수문 부대: 감문위)와 국경의 주,진에 주둔하며 방어를 담당하는 주진군, 노동부대인 사역군 등으로 편성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당시 사용했던 수성무기와 공성무기도 소개하고 있어서 고려군의 무기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거마창, 골타, 철질려, 목만 또는 포만, 야차뢰, 낭아박, 첨두목려(충차), 투석기, 운제 등이 당시 사용했던 무기들이다.
1010년(경술년) 11월 23일 미시(14시경)에 드디어 삼수채 회전이 시작되었다. '고려군이 수비에 치중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 거란군이 대대적인 공격을 시작했지만 갑자기 고려군의 진영에서 수백 발의 화살이 동시에 날아왔고 고려의 수레들과 거란의 철갑기병들이 굉음을 내며 충돌했다. 앞서 달리던 철갑기병들의 말들이 갑자기 나타난 수레와 수레에 거치된 방패에 그려진 맹수 문양에 놀라 순간적으로 멈추는 통에 긴 종대로 달리던 철갑기병들은 연쇄 충돌을 일으켜 마치 휴지가 구겨지듯이 구겨지고 있었다. 이어 고려군의 수레 진 사이로 고려군의 철기병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거란군의 전열을 뚫고 집단을 세워놓고 무술을 연마하듯이 거란군을 베고 찔렀다. 전장은 지옥도로 변하고 있었고 군사들이 지르는 비명이 천지에 가득 찼다.' 이 대목에서 나는 쾌재를 불렀다. 대규모의 거란군에 맞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쁨도 잠시였고, 소배압이 이끄는 거란의 대규모 반격이 시작되었고 결국 삼수채에서 고려군의 주력이 패하고 말았다. 강조는 거란군에 사로잡혔지만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도 거란군에 끝끝내 항복하지 않은 강조의 기개는 높이 살만했다. "나는 만세토록 왕을 시해한 자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조국을 배반한 변절자로 남지는 않을 것이다!" 강조는 비록 죽었지만 고려군에게는 아직 여전히 항전의지가 남아 있었다. 양규의 질문에 김숙흥은 이렇게 답했다. "가장 중요한 곳은 서경일 것입니다. 모든 주진이 함락당하더라도 흥화진과 구주가 무사한 이상, 서경만 지켜낸다면 적들은 반드시 물러날 것입니다." 이윽고 서경성 공방전이 시작되었고, 조원과 강민첨은 새로운 면천법을 발표하여 노비들에게 동기부여를 했고, 성안의 사기는 진작되었다. 결국 조원과 강민첨의 탁월한 능력으로 서경성 방어에 성공할 수 있었다.
'적들은 지쳤고, 오랫동안 적과의 교전은 역설적이게도 성안의 장정들을 모두 정예병으로 만들어 놓을 것이다. 성안의 군사들을 삼군으로 나누어 진법을 훈련시킨다. 이 정예병들이 진법을 익혀 진퇴가 일정해진다면 적의 빈틈을 노려 성을 나가 싸워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상당한 시일이 지난 후의 일이기에 자세히 논의하지 않고 대강만 정해놓았다.' 조원은 이 전술을 '능동방어전술'이라고 불렀다. 침묵을 깨고 조원이 일동에게 말했다. "유성이 북쪽에 떨어졌으니 거란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란군이 물러났다. 상권은 여기에서 끝이 났는데 하권에서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 지 자못 궁금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만약 전장에서 패전의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면 강조와 같은 기개를 보일 수 있을까?"라고 자문해 봤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나라도 심각한 위기에 처한 상태다. 이런 위기를 타개할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