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력 - 역사를 뒤집은 게임 체인저
폴 록하트 지음, 이수영 옮김 / 레드리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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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때부터 군사무기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부터는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서 최근에는 군사무기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은 기존의 군사무기를 다룬 책들과는 달리 서양의 역사를 바탕으로 군사무기를 다루고 있어서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고, 각 부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1부_화약 혁명: 1300년부터 1800년까지
2부_혁명의 시대: 1800년부터 1870년까지
3부_화력 혁명: 1870년부터 1918년까지
4부_화력의 황혼: 1918년부터 1945년까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기간은 1300년부터 1945년까지여서 내가 관심이 있는 2차세계대전이후의 군사무기는 해당되지 않는 게 솔직히 너무 아쉬웠다. 게다가 화약을 발명한 것은 중국인데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서양사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아쉽게 느껴졌다.

 

19세기 후반부터 모든 국가에 설립된 군사 기관의 규모는 급격하게 커졌다. 서구 열강들이 보편적 병역 의무를 점차 받아들임으로써 육해군의 규모가 커지고,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이탈리아 같은 유럽 국가의 대규모 군대 병력은 각각 100만 명을 훨씬 넘었다. 이러한 규모의 군대에 최신 무기를 보급하려면 막대한 에너지, 돈, 자원과 같은 투자를 쏟아부어야 했다. 또한 몇 년마다 군대를 최신식 무기로 재무장하는 것 역시 거의 불가능했다. 

 

19세기 중반에 시작되고, 20세기에 2회나 터진 세계대전에서 정점에 달한 대량 생산 능력은 군사력의 가장 중요한 기본이 되었다. 군사력은 산업 역량과 동등해졌다. 1939년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산업 역량으로 군사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강대국 수가 점점 줄어들었고, 미국과 소련이라는 초강대국 2개만이 세계 최고 수준의 군사력과 전투 준비 유지 능력을 갖췄다. 

 

군사기술의 연속적인 혁명은 다음과 같은 주목할 만한 결과를 가져왔다. 국제적으로 단호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서구 국가의 수는 현저히 줄어들었고, 영원히 존중받을 수 있는 국가도 줄어들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이 모든 혁명의 시작이자 중세의 쇠퇴기였던 500년 전에 일어난 또 다른 혁명인 서양의 화약 혁명에서 비롯되었다.

 

대포가 발달한 배경 뒤에는 화약이 있었다. 화약은 중세 유럽의 가장 큰 발명품이었지만, 그 출신지는 유럽이 아니었다. 일찍이 서기 9세기에 중국에서 화약이 발명되었고, 이후 수 세기 동안 중국인들은 화약의 사용법을 익혔다. 화약이 유럽으로 건너온 시기와 과정은 알려지지 않았다. 화약을 처음 사용했던 중세부터 19세기에 사용된 추진제와 폭발물로 발전하기까지 화약은 끊임없이 재발명되고 개선되었다. 그러나 기본적인 구성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무게를 기준으로 '초석'이라는 질산칼륨이 약 75퍼센트, 무른 나무로 만든 숯이 15퍼센트, 황이 10퍼센트를 차지한다.

 

20세기 전까지 직사 화기는 다른 포병 무기보다 더 많았다. 야포의 두 번째 종류인 곡사포는 18세기에 유럽 야전 포대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공성 무기였던 곡사포는 대포와 박격포를 절충해 만들었으며 매우 특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곡사포는 치수, 구조, 성능 면에서 야포와 차이가 있었다. 같은 구경의 다른 대포보다는 짧고 뭉툭했으며, 구경이 일직선으로 곧은 대포와는 달리 곡사포의 포미 지름은 다른 부분보다 더 작았다. 좁은 포미는 약실 기능을 했고, 같은 구경의 대포보다 장전하는 화약의 양도 더 적었다. 야포와는 용도가 달랐기 때문에 사정거리도 야포보다 짧았다.

 

놀랍든 아니든 대포 관련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도록 이끈 원동력은 1870년 이후의 소총과 마찬가지로 초라해진 프랑스와 급부상한 독일 간의 피 튀기는 경쟁이었다. 1870년 이전까지 영국과 미국은 대포 연구와 개발 분야에서 세계를 이끌었다. 하지만 프로이센군이 대포 기술의 선두 자리를 소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가로채기 시작했다. 

 

1870년대에 프랑스는 대포 설계 경쟁에서 크게 앞섰고,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선두를 내주지 않았다. 1870년과 1914년 사이에 대포를 발전시킨 모든 획기적인 혁신은 프랑스의 공장과 기술자 들에게서 비롯되었다. 이에 대응하는 일반적인 전술은 참호를 파는 것이었다. 참호는 의외로 오래갔다. 물론 소총 공격에 맞서 효과적으로 엄폐하는 것이 참호의 첫 번째 목적이었지만, 적군에게 거센 포격을 당해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프로이센군은 1864년에 덴마크 영토를 침공하면서 이 사실을 깨닫고 좌절한 적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전투기만큼 진화한 군용기는 없었다. 1939년부터 1940년까지 사용된 전투기와, 그 이후부터 1945년까지 사용된 전투기의 성능은 '단엽기 혁명' 이전과 이후만큼이나 큰 차이가 났다. 심지어 Bf 109와 같이 제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있었던 모델도 변형과 파생형이 너무나 많아서 1939년 버전과 1945년 버전을 비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총포시대의 무기 개발은 국제 관계의 흐름에 반응할 뿐만 아니라, 흐름의 방향을 변화시키기도 했다. 서양에서 나타난 전쟁과 평화의 패턴은 부분적으로 화기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그 발전에서 초래된 열띤 군비 경쟁 때문에 형성되었다. 전쟁이 오늘날의 국가를 만들었다면, 오늘날의 전쟁을 만든 것은 화기였다.

 

나는 이 책을 통해 화기의 발달이 전쟁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어왔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과거에 일어난 전쟁으로 인해 우리나라와 일본, 우리나라와 북한 등은 아직도 관계 회복을 하지 못하고 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전쟁의 흐름도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해온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도 화력을 증강하기 위해 수많은 국가에서 지속적으로 무기를 개발하고 있을텐데 이런 노력이 군사무기쪽이 아니라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방향으로 활용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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