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 최진석의 자전적 철학 이야기
최진석 지음 / 북루덴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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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철학적 사고를 하게 된 때는 아마 고등학교 1학년 때가 아니었나 싶다. 교련 첫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내 준 숙제가 원인이었다. 그 숙제는 '내가 왜 사는가?'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A4 용지 1장에 채워 와서 발표하는 거였다. 당시에 어떻게 숙제를 해서 제출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아직도 이 질문은 내가 명쾌하게 답변을 못한 상태로 남아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동양철학의 진수로 공자의 '논어'와 맹자의 '맹자'를 떠올릴텐데 이 책의 저자인 최진석 교수님은 달랐다. 동양철학, 그 중에서도 도가 철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를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대학원에서 독일철학을 공부할 때는 미간을 찌푸리고 신경을 곤두세우며 책을 읽곤 했는데 장자를 읽으면서 재미에 푹 빠졌다. 그래서 '공부를 하려면 재미있고 좋아하는 것을 해야지'란 생각으로 동양철학으로 바꿨다. 게다가 유가보다는 도가 책을 읽을 때 더 영감이 떠오르고 짜릿짜릿했다."

 

이 책의 앞부분에서 저자인 최진석 교수님의 이름이 '진절'에서 '진석'으로 바뀌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나는 이 부분을 읽다가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함평에서는 사람들마다 내 이름을 듣자마자 '진절머리 난다'는 표현을 떠올리고, 그 말을 꼭 한 번씩은 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고민하다가 개명을 결정합니다. (중략) 부처의 뜻을 잇는 자손들이 사는 땅이라는 이름을 가진 손불면 사무소에서 아버지는 공문서 위조를 감행하십니다. 최진절에서 '절(?)'은 '재(才)'로 시작하는데, 이 '재(才)'변을 준비해 가신 만년필로 몰래 한 획을 내려그어 '목(木)'으로 고쳐버리십니다. 그러면 '석(晳)'이 됩니다. 그래서 나는 '최진석(崔珍晳)'으로 재탄생합니다."

 

우리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 내가 별이 되는 것이다. 이 순간의 삶 속에서 내가 영원을 경험하는 것, 이것이 삶의 목적이다. 그런데 한번 삶이 시작되면 눈앞이 온갖 목표들로 가득 채워지고 그것이 목적을 넘어서게 되어 정작 목표를 지배하는 목적을 잃어버린다. 나에게 별은 무엇일까? 목적을 잃지 않게 해주는 힘이다. 자유로워지는 것! 깨닫는 것! 자존감을 잃지 않는 것! 자부심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 목적이다.

 

윤동주의 서시에 나오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길은 '모든 죽어가는 것 사이에 있다. "죽어가는 것"에 흔들리지 않고, "별을 노래하는 마음"을 지키면, 오히려 "죽어가는 것"을 살릴 수 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 한다. 나는 이것이 순간을 사는 인간이 영원을 확보하는 방법이 아닌가 한다. 내 생각은 그렇다.

 

굳어져가는 나의 반짝거림을 잃지 않기 위해 필요한 중간고리가 있다. '반성'이다. 어떤 가치도 지속적인 반성이 따르지 않으면 완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별똥별보다 더 짧은 순간을 사는 인간이 영원한 별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에 대한 부정, 반성, 의심이 필요하다. 왜 그럴까? 영원을 경험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영원을 경험해서 내가 영원한 존재로 등극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나의 '별 헤는 마음'이다.

 

왕태나 애태타는 존재자에게서 존재가 빠져 달아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잘 지킨 사람들이다. '불편' 심지어는 '장애'적 상황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감수한 사람들이다. 경박하지 않고 성스러운 삶은 스스로 '불편'과 '장애'를 자초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다. 시민으로 사는 일도 마찬가지다. 불편을 자초하며 경박함을 벗어나면서라야 비로소 가능하다. 그것을 우리는 시민 의식이라 하지만, 사실은 인간으로서의 성스러움을 지키려는 태도다. 성스러운 삶은 불편을 감수하거나 자초한다.

 

"공이 이루어져도 그것을 차고앉지 않는 일(功成而不居)"은 노자 철학의 핵심인 '무위(無爲)'의 한 형태이다. 노자에 의하면, '무위'로만 위대함을 이룰 수 있다. '무위'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無不爲)'. 독일의 문호 괴테는 스스로를 뱀과 같은 존재로 생각했다. 허물을 벗고 항상 새로운 시작을 시도한다는 뜻이다. 괴테만큼의 성취를 이루고 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괴테의 성취는 부단한 허물벗기의 결과다. 허물을 벗는 뱀은 살고 허물을 벗지 못하는 뱀은 마침내 죽는다. 공(功)이라는 허물에 갇히면 안 된다.

 

공자와 노자가 살던 시기는 중국의 기존 지배 이데올로기가 무너지면서 새 세상이 열리는 과정에서 여러 나라가 서로 지배적 우위를 점하려고 각축하던 때다. 이 두 사상가는 사상이야 다르지만, 목적은 같았다. 바로 지배력을 가진 나라를 만드는 일이다. 선도력과 지배력으로 우위를 점하는 나라를 꿈꿨다. 요즘 말로 하면 바로 선도국이다. 그 목적을 공자는 '덕성'을 기반으로 해서 완성하려 했고, 노자는 자연 질서를 인간 질서로 응용하는 방식으로 완성하려 했을 뿐이다.

 

혁명은 아무리 환상이고 야만이어도 '절도 있는 행동', '학업' 그리고 '생계에 대한 책임'과 함께할 때라야 효율적으로 완수될 수 있다. 혁명의 주체들은 왕왕 혁명적 환상과 야만에만 빠져, 혁명의 길과 관계없어 보이지만 매우 중요한 '착실한 보폭'을 중시하지 않는다. '착실한 보폭'이 국가에서는 '정책'으로 현실화된다. 혁명이 정치로만 남고 정책으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일들은 '착실한 보폭'을 소홀히 한 결과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동안 노자와 장자 철학이 어렵다고만 생각해서 깊이있게 읽어보려고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을 반성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어렵다고 중도 포기했던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닌데, 앞으로는 어렵더라도 꾸준히 노력해서 끝장을 보는 연습을 해야할 것 같다. 나는 독서모임을 운영하면서도 지금까지 철학책을 별로 읽지 않았는데 앞으로는 철학책도 꾸준히 읽어가면서 철학적 사고를 하는 연습을 한다면 회원들의 반응도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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